미가서 6장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첫사랑이 실패하는 이유는 관념적으로 상대를 보기 때문이다. 관념적이라는 것은 환상을 가지고 본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첫사랑을 하게 되는 사람의 뇌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다. 아직 경험이 없는 사람이니까 뇌가 시키는 대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뇌는 우리에게 종족을 번식하는 일을 하게 하기 위하여 이성 상대를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둔갑시켜 보여준다. 첫사랑을 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 비춰지는 상대는 흠이라고는 전혀 잡을 데 없는 완전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보여지는 것이다. 흠이 보여도 좋아하는 마음이 그것을 흡수해 버린다. 그의 관념 속에서 그 상대는 완전한 존재이다. 첫사랑에 성공하는 사람은 100% 없다. 첫사랑과 결혼할 수 는 있어도 평생 첫사랑에 대한 인식이 변함이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첫 사랑은 환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망을 가져온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아야 더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억속에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루어진다면 실망의 고배를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없애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는 사람이든 하나님이든 관념적인 관계를 가지면 안된다. 성도들이 목사와의 관계를 가질 때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이 이것이다. 초신자들은 사람들은 목사님은 화장실에도 안가는 거룩한 존재로 본다. 그러다가 목사의 매우 인간적인 모습들을 보면 실망한다. 하나님을 관념적으로 믿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시는 분으로 믿고 열심이 기도한다. 그러다가 예상 외로 하나님이 움직여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식고 기대도 떨어지고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교회에 다녀 봤더니 별거 없더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러해야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러해야 하는 분이 아니라 인격적인 관계를 가져야 하는 분이다.
미가서 6장에 보면 미가가 이렇게 말한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관념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나님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실까만 생각한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드리다가 복을 받았으니 나도 그렇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겠지. 1+1=은 예나 지금이나 2이니까...."
그러나 미가는 이런 생각을 과감하게 배격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 교제를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관념 속의 사랑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사무엘 하 13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다말이라는 예쁜 누이가 있었는데,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다말을 관념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 첫사랑이었으리라. 그냥 좋아하는 것과 첫사랑은 다르다. 첫사랑은 온통 몰두하게 되는 관념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다말은 배다른 여동생이어서 자기 아내로 취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율법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레18:11. 네 아버지의 아내가 네 아버지에게 낳은 딸은 네 누이니 너는 그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라
그러나 율법의 규칙보다는 첫사랑의 힘이 더 센 것이다. 관념적으로 사랑하게 된 그녀를 암몬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고 싶어하였다.
사실 우리도 같은 일을 하고 산다. 지금 집에 TV홈쇼핑에서 산 물건들을 하나도 안 쓰고 있는 사람들 있을 것이다. TV를 통해 물건을 보았을 때는 환상이 생긴다. 저것만 있으면 정말 행복해 질 것 같다. 그런데 택배를 받고 보니 자기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환상의 배설물들을 집에 쌓아놓게 된다.
우리 집에도 식구들이 관념 속에서 샀던 악세사리 같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암논이 일단 다말에 대한 환상이 생긴 이상 법이고 규칙이고 관습이고 뭐고 간에 일을 내야 했다. 암논은 애만 태우다가 병이 나고 말았다. 세상의 규칙이 그를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억제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우리는 항상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하고 싶은 마음과 억제하는 마음. 우리가 억제하는 마음을 잃어버렸을 때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를 껴안고 입을 맞추게 될 것이다. 너무 억제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어쨌든 상사병이 났는데 이건 완전히 첫사랑 열병이다. 이 때 사촌 요나답이 와가지고 꾀를 알려 주었다. 그 놈은 불량배였을 것이다. 그의 꾀 대로 암논은 실행하게 되었다. 암논이 병에 걸려 누워있는 시늉을 하고, 아버지 다윗이 오니까 "아버님, 누이 다말을 보내주십시오. 다말이 제 앞에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제게 직접 주어 받아 먹으면 한결 좋아지겠습니다."라고 부탁했다. 다윗은 아들이 측은해서 그의 부탁을 순순이 들어 주었다. 다윗은 다말을 암논에게 오게 하였고, 아버지의 명령대로 다말은 암논에게 와서 간단한 음식을 했다. 그러자 암논은 거기 시중들던 사람들을 다 나가라고 하고 다말에게 침대로 와서 먹여 달라고 부탁한다. 다말이 손수 만든 음식을 가지고 암논이 누워 있는 침대로 가자 달려 들어 같이 자자고 한다. 그러자 다말이 말하기를 "오라버니, 이러지 마십시오. 제발 나를 욕보이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에는 이런 법이 없습니다. 이런 바보짓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라도 아버님께 저를 달라고 말씀해 보십시오. 거절하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율법에는 어떻게 되어 있든지 사촌지간 이복 형제 간의 결혼이 가능한 때였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관념 속에 있는 사람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어떻게든 당장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일을 치루고야 말았다. 그런데 첫사랑, 관념적인 사랑, 환상속에서의 단점은 필연적으로 환상이 깨어진다는 것이다. 암논은 다말을 현실 속에서 사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다말이 현실로 다가오자 그녀를 딴 여자 바라보는 식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게 되었고 다말이 싫어졌다. 그가 관념에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현실 속에 있는 다말이 몹시 싫어졌다. 자신이 환상 속에서 사랑한 그 수준만큼 다말이 싫어졌다. 암논은 다말에게 "어서 내 방에서 나가!" 하고 소리쳤다. "오라버니, 너무하십니다. 이제 저를 내쫓으신다는 것은 방금 저에게 저지르신 일보다도 더 나쁜 일입니다." 다말이 애원했지만 암논은 들은 체도 않고 하인을 불러 "이 계집을 내 앞에서 쫓아내고 문을 걸어라."라고 명령하였다. 하인이 다말을 내보내고 문을 잠가버렸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서만 사랑하던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환상이 깨어졌을 때는 자기가 하나님을 사랑한 그 만큼 무신론자가 된다. 옛날에 하나님을 한 번 믿어 봤다는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다시 사랑할 수 없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잘못 사랑했기 때문이다. 암논이 결코 다말을 다시 사랑할 수 없게 되었듯이....
가끔 성도들이 이런 기도를 반복하는 것을 듣는다.
"하나님, 처음 사랑을 되찾게 해 주소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처음 사랑은 되찾아서는 안된다. 그 사랑은 하나님을 관념 안에서 사랑했던 첫사랑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은 우상 숭배와도 같다.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하나님은 서양 철학자들이 말하는 수학적으로 완벽한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격을 가지신 분이시다. 질투도 하고 후회도 하고 화도 내고 사랑도 하고 열정도 있고 무관심하기도 하시다. 신앙 생활이란 이렇게 하나님을 현실 속에서 만나고 사귐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규정해 놓고 어떤 식으로 대해 주시기만 하면 어떤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다.
부부 사이는 연인 사이하고 완전히 틀리다. 연인 사이는 환상 속에 있는 관계이고, 부부사이는 현실 속에 있는 관계이다. 부부는 서로를 우상으로 보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관계를 맺는다. 대놓고 방귀를 뿡뿡 뀌어도 미워하지 않고 속이 어디가 안좋은지 걱정한다. 연애할 때는 그렇게 하면 절대 안 된다. 환상이 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귐에 있어서 관념적인 연애의 관계에서 관계적인 부부의 관계의 수준으로 이끌어 내어야 한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2장에 보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하시니라.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 나의 현실 속에 계신 하나님이 되어야지 환상 속에 계신 분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와 같은 분이라고 가르치셨다. 그 아버지는 죽은 아버지가 아니고 죽을 아버지도 아니고 언제나 살아 계시는 아버지이다. 우리의 관념 속에, 혹은 기억 속에 저장되어야 할 아버지가 아니고 지금 살아계셔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녀를 양육하시는 아버지이시다.
신학교 1학년 때부터 조직신학을 배운다. 그 조직신학이라는 것은 서양놈들이 만든 것인데 (우리는 조진 신학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은 무한하고 유일하고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시고 지혜가 있으시고 주권이 있으시고 성경, 정의, 성실, 자비, 사랑, 선하시고......영원, 불변"
이런 것들을 다 외워야 했다. 하나님을 관념 속에서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이런 것을 들으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머리속에서 정리해서 개념화 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규정한다면 우상 숭배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교회와 신학교에서 배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있는 것인가? 론이 성경에 있는 것인가? 셋이 셋이기도 하고 하나이기도 하다는 이상한 말을 왜 우리가 배워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와 예수님과 성령님을 관념화 하고 있는 이런 생각들을 외울 필요가 없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면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아버지로 우리가 이해하면 끝나는 것이다. 성령님에 대해서도 도대체 그분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어떤 성질이 다르냐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관념화 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완전한 지식(관념적인 지식)을 얻으려고 한다면 신정론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신정론은 이렇게 질문한다.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그런 분이시라면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느냐?"라는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선지자들도 다 한 번씩 겪은 일이다.
하나님을 관념화 시켜 놓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왜 병에 걸리고 계획한 일이 잘못되고 선한 일을 하는데 고통스러운 일이 닥치는지 이해를 못한다.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관념과 현실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갈등할 수밖에 없다.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에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당연히 병이 나아져야 된다고 믿는다. 주로 순복음 교회의 성도들이 그런 오류에 빠져 있다.
욥의 실수도 하나님을 관념화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에 대해 스스로 정리해 놓은, 교리나 같은 관념을 늘여 놓으면서 하나님은 이렇고 이러니까 이러하셔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현실에 나타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자기 입을 막았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실제로 보았을 때 자기의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버릴 수 있었다. 바울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실재로 경험했을 때 예수님에 대한 관념을 다 버렸다. 우리는 우리가 규정해 놓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진짜 하나님과 현실적으로 사귈 수 있다. 우리가 관념적으로 규정해 놓은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이다.
전 세계는 현재 서양인들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고 있다. 그들에게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학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철학, 언어, 종교까지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의 신앙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그들은 하나님을 규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의 생활 속에서 만나고 섬겨야 한다. 그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일을 하실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