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5
1.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2.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3.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5.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속에서 우리는 주저앉아 며칠 동안을 울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그는 왜 울고 있었을까? 그의 태생이 문제였다. 그는 그가 살고 있는 강한 나라 페르시아 민족의 후손이 아니라 거기에 전쟁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이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써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 포로로 끌고 갔을 때, 느헤미야의 할아버지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던 것이다.
바벨론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으로 바뀌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여전히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다른 민족이 지배하는 땅에서 살아가기란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일해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은 제국의 고위층에 오르게 되었다. 느헤미야가 올랐던 자리는 아마 외국인으로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높은 자리였을 것이다.
그의 지위는 왕궁에서 마시는 술을 맡은 장관이었다. 당시에 왕궁에서 먹는 술을 관리한다는 것은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 제왕들은 항상 독살 당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보통 술에 독을 타서 죽였기 때문에, 왕은 자신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술 맡은 장관으로 임명하였다. 느헤미야는 상대적으로 약한 민족의 한 사람이었지만 신실함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페르시아 제국에서 고위층이 되었다고 해도 태생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느헤미야의 태생적 상황은 변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의 민족성은 시편 121편에 잘 나타나 있다.
(시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시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시 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여기서 '나' 또는 '너'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으로서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호와는 자기 민족을 돕는 하나님이시라는 노래이다. 그냥 돕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돕는 분이시고 영원히 돕는 분이라는 노래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민족성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 따라 이루어져 있다. 종교성이 강한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낙동강, 두만강 건너편이나 그 위쪽 만주 땅, 지금의 중국 동북 삼성에 가면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그들을 조선족이라고 말한다. 주로 일본 제국주의 시대 때 일본인들의 폭력을 피해서 달아난 사람들의 후손이다.
그들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언어를 그대로 쓰고 있고 할아버지가 먹던 음식을 그대로 먹고 있다. 경상도에서 도망친 사람의 후손들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경상도식 문화생활을 하고 경상도식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산다.
처음에 만주 땅으로 도망쳐서 도착한 한국인들은 아무 것도 없는 땅을 일구어 논밭을 만들었다. 그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그곳에서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상상할 수도 없다. 남의 나라 땅에서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았다. 그리고 그 자식들이 그런 부모들 슬하에서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자신들이 대한 민족의 정신을 물려받았다.
1984년 4월 중국 연변에서 발행된 중국교포의 한글잡지 '도라지'에 이런 시가 실렸다.
(지은이 김학송)
나는 조선민족이다
이 세상 그 어데를 가나
나는 진정 자랑하고 싶노라
내가 배운 가장 무거운 말로
- 나는 조선민족이다!
조선민족 -
천 번 불러 다정한 그 부름 속엔
얼마나 살뜰한 정이 깃들어 있는가!
선조의 넋
부모의 터
미래로 달려갈 후손들의 복된 숨결까지도
......
그리운 우리 겨레
이름은 몰라도
정다운 우리 형제
그 언제 이런 세월 있었던가!
은혜로운 햇빛 아래
다사로운 큰 집에서
조선민족의 긍지로 살며 숨쉬기에
이것이 소중한 줄 친구여 아는가!
용감하고 슬기로운 우리민족
다정하고 다감한 우리민족
오직 미래를 위해
온갖 슬픔도 가실 줄 알고
온갖 어려움도 이길 줄 아나니.....
내가 갈 길,
내가 짊어질 짐을 너무나 잘 아노라
가령 내가
이 세상을 막끝 이름없는 계곡에서
한오리 연기로 사라진다 하더라도
나는 정녕 잊지를 않으리라
내가 이세상에서
조선민족으로 살았다는 것을!
증평이나 증평 근처에도 중국에서 돈을 벌려고 온 조선족들이 많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가 우리와 조금 다른 것을 느끼면서 이상하게 보고 무시하고 천대하지만, 그들은 어려운 시절을 외국 땅에서 이겨낸 위대한 대한 민족이었다.
중국에는 주류 민족인 한족 외에도 여러 소수 민족이 있다. 그 소수 민족 중에서 가장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민족이 조선족이다. 중국 땅에서 다른 민족은 무시를 당해도 조선 민족은 대우를 받고 살아간다. 조선족은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다. 또한 중국 소수민족 중에서 문화수준이 가장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다른 민족들의 집은 더러워도 조선족들의 집은 깨끗하고 우리나라 국내 국민들의 삶과 크게 차이나지 않게 잘 꾸며 놓고 생활한다.
나는 중국에 갔을 때 조선족 형제의 집에서 며칠 지낸 적이 있다. 조선족 형제의 집은 매우 깨끗하고 음식도 정갈하고 한국의 보통 집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그 후 나는 몽고족 형제의 집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집은 단독 주택이 아니라 아파트였는데도 현관에 들어설 때부터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만큼 집안과 집밖이 차이가 나지 않게 더러웠다. 방안에는 모래와 진득거리는 물질이 밟혀서 양말이 금방 더러워 졌다. 집안 모든 곳이 더러웠다. 그렇게 사는 것이 몽고민족의 민족성이다.
조선족보다 더 먼 곳으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는 만주에 가서 살다가 소련이 거기 사는 조선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시켰다. 그 이유는 조선인이 일본인과 가까운 족속들이라 일본인의 첩자 노릇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정착한곳에서 쫓겨나서 머나 먼 중앙아시아로 끌려가 황량한 벌판에 버려졌던 사람들을 고려인이라고 부른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일본 지도자를 권총으로 죽이고 외친 것이 "까레이 우라 까레이 우라."이다. ‘까레이’라는 말은 꼬레아, 즉 고려인이라는 것이다. ‘우라’는 만세라는 뜻이다. 그래서 '고려인 만세'라는 뜻이 된다.
느헤미야 역시 바벨론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자랐지만 그는 천대받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손이었고 자신의 신분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에서 무려 1800km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지만,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민족적인 교육의 힘은 위대했다.
느헤미야는 어느 날 자기 동생이 조상들의 땅, 예루살렘에 갔다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들을 불러서 그곳 형편을 물었다.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겨진 자들은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고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타버렸다‘고 알려 주었다.
옛날 나라들은 다 도시 국가였고 도시란 성이 있어야 약탈을 피하고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도 도시였고 성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직 성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성을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계속해서 약탈을 당하고 있거나 언제든지 약탈을 당할 정도로 약하다는 것이었다.
우리 민족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폭력을 피해서 만주로 도망친 사람들도 힘든 삶을 살았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조선 땅에 남은 사람들은 더 큰 어려움 속에서 살아야 했다.
고국의 사정 이야기를 들은 느헤미야는 털썩 주저앉아 통곡했다.
4절을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라고 기록되어 있다.
미국의 명설교가 월리엄 코빈 목사님이 고백하기를 자기 생애 중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언제였는가 하니, 대학생 아들을 자동차 사고로 잃었을 때였다고 한다. 그때 그는 자기는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좌절했다고 한다. 그는 말하기를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나는 나의 과거를 잃었기 때문에 그런대로 견딜 수 있었지만, 내 아들이 죽었을 때는 내 미래를 잃어버렸기에 견딜 수 없었다." 고 했다.
느헤미야는 언젠가는 자신이 민족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식은 그의 희망을 무너뜨렸다.
자기 민족의 땅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황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느헤미야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며칠 동안 주저앉아 울었지만, 다시 일어서서 자기 민족의 땅 가나안으로 가려고 시도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자기 민족의 땅으로 돌아와서 52일 만에 예루살렘 도시의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게 된다.
유대 민족의 저력 못지않게 우리 민족의 저력도 대단하다. 일례만 보더라도 1997년에 IMF가 터지면서 우리나라가 완전히 빚더미에 앉아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3년 만에 IMF를 극복하여 개인당 국민 소득이 7년 만에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올라갔다. 이것은 그 똑똑하다는 독일 민족이나 미국 사람들도 결코 따라 올 수 없는 고속 회복과 고속 성장이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 민족성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민족을 이 땅에 탄생시키셨다. 혈육이 장소가 만드는 민족성을 떠나서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민족이 되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