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9: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
(마 9:23)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
(마 9:24)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
(마 9:25)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마 9: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다른 성경과 병행해서 보면 한 관리란 가버나움 회당의 회당장이었다. 마태복음의 기사와 마가복음의 기사를 병행해서 봐야 한다.
(막 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막 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마태는 야이로의 딸이 이미 죽었었고, 죽었어도 다시 살리실 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는 ‘죽게 되었사오니’라는 진행형으로 썼다. 마태의 기사와 마가의 기사가 서로 다를 때 우리는 마가의 기사를 우선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마가가 가장 먼저 복음서를 기록하고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마가의 복음서를 참고하여 자신들이 본 것을 썼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막 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님이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는 길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길 딸이 이미 죽었다는 것이었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오시지 말라는 것이다. 괜한 수고만 더 하신다는 것이다.
시체를 만진다는 것은 부정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 진다는 것이었다.
(민 19: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을 하거나 하혈을 하는 여자를 만지거나 그녀의 물건이나 닿은 곳에 닿으면 하루 동안만 부정하게 되는데, 시체를 만지면 7일 동안이나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체를 만지게 되면 복잡한 정결 의식을 거쳐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그 부정이 항상 그래도 있는 것이었다. 민수기 19장에는 시체를 만졌을 때의 정결 의식 규정을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옷을 만진 12년 혈루증을 앓은 여인을 용납하셨고, 이번에는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시신의 손을 잡으시는 기행을 하셨다.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누어 보자.
1. 다른 사람과 닿으면 그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사람
2. 부정한 사람과 닿아서 부정하게 되는 사람
3. 부정한 사람과 닿아서 그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
가장 안좋은 것은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하는 사람이고, 그 다음은 부정한 사람과 닿아서 자기를 지킬 수 없는 사람이다. 가장 훌륭한 사람은 부정한 사람과 닿아서 그를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을 빛이라고 표현했다.
예수님이 회당장의 집에 가셨을 때 통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오셨어도 어쩔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마음으로 단정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시고 밖으로 내 보내셨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며 ‘달리다쿰’이라고 하셨다.
(막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죽음은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놀랐다. 모든 일을 대할 때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