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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44,000은 완전 수

작성자보통 사람|작성시간19.03.21|조회수230 목록 댓글 0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어두운 밤에 연못에서 개구리들이 울어대는 소리는 정말 시끄럽다. 그들은 수컷 개구리들이다. 자신의 우렁찬 목소리로 암컷 개구리들에게 구애를 하는 것이다. 개구리들이 후손을 남겨서 무슨 성취감을 누리겠는가. 본능적으로 후손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죽어라고 우는 것이다.

  선거 때 많은 후보자들이 개구리처럼 울어 댄다. 유권자들이야 어떤 사람이 좋은 놈이고 어떤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알 리가 없다. 그저 목소리 큰 사람, 길 가다가 한 번 쯤 목소리를 들어본 사람을 찍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목소리를 빽빽 질러대면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듣는 사람들은 , 저 사람 대단한데? 무슨 말인지 몰라도 한 표 줘야겠는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온 동네가 후보자들이 마이크를 입에 대고 질러대는 목소리로 시끌벅적한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목소리가 더 커야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얼마 전에 신천지 이만희 씨와 신천지 목사들이 신천지를 반대하는 목회자들과 이단 대책 연구소 연구원들과 TV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 토론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충 군데 군데 보니 대화의 주도권을 이만희 씨가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무슨 말인지 끊임없이 말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의 말이 옳든 그르든 그의 말에 말려들고 있었다


   보통 성도들은 교회에서 듣는 것에는 매우 익숙하다.  주일 예배, 주일 오후 예배, 수요 예배, 심야 기도회, 새벽 기도회까지, 모든 기도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있다.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는 그 어떤 질문이나 반론도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집회에서는 보통의 성도들은 듣기만 해야하는 입장에 있다.  어떤 교회에서는 성경 공부 시간을 따로 마련하여서 질문할 기회도 주지만 사실은 성경 공부 시간에 질문하거나 반론까지 제기할 수 있는 교인은 드물다.  아니, 질문하거나 반론을 펼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보통의 교인들에게 전도라는 것은 '우리 교회 분위기 좋고 목사님 훌륭하시니까 그냥 한 번 나와 보세요.'라는 정도이다.  그러나 기성교회에 대항하는 독특한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기성 교회 교인을 전도할 때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배운다.  그들은 기성 교회 성도들과 접촉하면서 말의 주도권을 잡는다.  그들이 말을 할 때 기성교회 성도들은 질문이나 반론을 하고 싶어도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들을 수 밖에 없다. 


  칼싸움을 생각해 보자. 두 사람이 각자 칼을 잡고 싸움을 하고 있다.  칼을 잡고만 있는 사람은 칼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에게 이길 수 없다.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계속해서 공격을 한다.  같이 칼을 휘둘러야 승산이 있다.  그러나 보통 교회의 성도들은 칼을 휘두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말씀을 듣고 '아멘'해도 들은 말씀을 가지고 거짓을 가지고 공격해 오는 사람들에게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다.  


  대화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쉴새 없이 말로 공격해 오면 그것을 다 듣고만 있으면 승산이 없다.  말로 공격해 오면 같이 말로 공격해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  어떤 편이든 더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독특한 교회 사람들은 전도 나오기 전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다 배우고 칼을 휘두를 준비를 철저하게 해 가지고 나오는데, 공격을 당하는 보통의 교회 성도들은 그들에게 맞짱을 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꾀 논리적으로 공격해 오는 그들에게 논리적으로 대항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듣기만 하다가 '너는 이런 것도 모르느냐?  너는 이런 것도 배우지 못했느냐? 그런 교회 왜 나가냐? 우리 교회 와서 성경 공부 같이 하자.'는 말을 듣게 된다. 


  다른 민족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았던 유대인은 말을 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듣는 것이나 배우는 것보다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대학교 도서관에 가면 조용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닐 둘이, 셋이 모여서 서로 치열하게 토론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잘 알려진 말이 있다.  "말로 할 수 없으면 모르는 거다."   https://youtu.be/nttlAfVQT6w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최대의 방어는 공격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신앙에 대하여 도전해 오면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처럼 그 말을 다 듣고 있지 말고 아무 말이나 생각해 내어 공격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한 뒤 예수님의 말씀처럼 '신발에 흙을 떨어버리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소위 36계 줄행랑 전법이다.   


  말하는 사람이 주문처럼 계속 말하면 듣는 사람은 그 말에 취해서 말려 들어가기 마련이다.  말에는 주술성이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잠언에서 말하는 음녀는 틀림없이 이단 전도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7:21) 여러 가지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7:22) 젊은이가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7:23)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

(7:24)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7:25)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7:26)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7:27)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청량리 역에서 여호와 증인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젊은 누나가 와서 성경에 대하여 아느냐고 하면서 이런 저런 말을 하기에 내가 아는 모든 성경 구절과 지식을 동원해서 공격했다.  내가 더 말을 많이 했다.  그 누나는 준비해가지고 온 성경 구절이 동이 났고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으므로 일단 사라졌다.  그 때 내가 성경 지식이 많았기 때문에 공격을 한 것이 아니다.  나도 잘 모르는 말을 그냥 해 댄 것이다.  잠시 후 그 누나가 젊은 형님들 몇 명을 데리고 왔다.  그 형님들은 다시 성경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고 하면서 나를 공격했다. 그러나 나는 절대 밀리지 않고 내가 아는 모든 성경 구절을 들이대면서 질문과 반론을 펼쳤다.  물론 내가 더 말을 많이 했다.  그 형님들은 준비해가지고 온 성경 구절이 동이 났고 내가 들이미는 성경 구절과 주장을 주로 듣는 입장에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잠시 후 슬그머니 사라졌다.  나는 지금도 내가 그들에게 말한 것들이 무엇인지 잘모른다.  그러나 내가 말했기 때문에 내가 이겼다.  


  (해석)


  요한계시록 7장은 이단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사용하는 장이다.  뿐만 아니라 보통의 교회 목회자들도 서로 다른 해석을 내 놓는 장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해석을 내 놓고 '나의 해석만 진리이니 나의 말만 들으세요.'라고 하기에도 조심스럽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이 뭔가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게 하기 위하여 요한계시록 7장을 해석해야 한다.  여러분은 듣고 생각하고 외우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요한의 시대 사람들은 세상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천사들이 네 모퉁이에 서 있다는 것은 세상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에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바람은 위험과 고난을 의미한다. 그들이 왜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하고 있었는지는 다음 구절에서 나타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를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7: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7: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해 돋는 데는 동쪽이지만, 방향으로 동쪽이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해가 동쪽에서 올라 오기 때문에 해의 권세를 의미한다.  해가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말로 할 수 없다.  하루라도 아침에 해가 뜨지 않으면 세상은 끝이다.  동쪽이 우리나라를 의미한다거나 우리나라 사람 중에 그 천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오해한 것이다.   

 

  인을 친다는 것은 소유권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소유로 선택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은혜 주시고 보호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소유를 마귀에게 넘겨주지 않으신다


  요한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숫자를 144,000명이라고 말했다. 요한은 사람의 숫자를 일일이 세 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수를 떠올렸던 것이다. 나는 가끔 돈을 센다. 종이 돈을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한 30장 쯤 넘어가다가 몇 개를 셋는지 까먹을 때가 많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센다.  요한이 12,000명씩 12번, 144,000명을 실제로 세었다면 숫자를 세다가 까먹고 세다가 까먹고 하다가 중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요한은 그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영적인 숫자를 떠올렸을 것이다.    


  144,000, 그 수는 완전함, 충만함을 의미하는 12라는 완전한 숫자가 녹아들어간 숫자였다.


  21장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 성의 둘레와 면적을 12,000 스타디온, 그 성의 크기는 144 규빗이다.

  하루가 오전 12시간과 오후 12시간, 1년이 12개월로 나누어지며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스라엘의 지파가 12지파이며, 신약에서 예수께서 세우신 사도가 12명이었다. 대제사장의 의복에는 12개의 보석을 달았고, 성막의 성소에는 12개의 떡을 진열했다. 또 새 예루살렘성에는 12개의 문이 있고, 생명나무는 12개월동안 12가지의 열매를 맺는다.

 

  1천이라는 수는 충만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12지파의 각 지파마다 인을 맞은 이들이 모두 12,000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수 12와 충만수 1,000이 합쳐진 것이다. 

 

  12,000이라는 숫자가 다시 완전 수 12라는 숫자와 곱해져서 144,000 이라는 숫자가 된다.  그러므로 이 숫자는 문자의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충만한 숫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7:4)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7:5)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144,000명으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숫자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요한과 같은 유대인들은 똑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꿈도 같은 꿈을 두 번 꾸어야 신속하고 확실히 이루어질 꿈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 두 사람을 보내셨다.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해야 확실한 증인이 되기 때문이었다.   


  9절부터 보니 아무도 셀 수 없는 많은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어린 양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무도 셀 수 없는 수의 사람들은 앞서 144,000이라는 숫자의 사람들의 반복이다.  '144,000'과 '아무도 셀 수 없는'이라는 말은 같은 말이다. 그 둘의 의미는 충만하고 완전한 숫자를 의미한다.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7: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요한은 흰 옷 입은 사람들에 대하여 질문했다. 그 때 장로 중 하나가 대답하길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라고 말해 주었다. 당시 고난을 당하고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7: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7:12)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7: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7: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24장로들은 모든 성도들의 대표가 아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영적인 존재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성도들의 편에서 일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24라는 숫자는 12+12이다. 완전하고 충만한 숫자를 두 개 붙임으로서 확실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장로 중에 하나가 요한에게 질문 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이 질문은 묻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가르쳐 주기 위한 질문이다.  요한은 그에게 "저는 모르지만 당신은 아십니다."라고 했다.  

 

  장로는 그들이 다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상하지도 않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7: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여기서 장막을 치신다는 것은 어떤 장소나 어떤 예배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상황, 성도들의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은 장막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다윗의 장막을 떠올렸다.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는 장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는 모세 시대에는 성막이었고,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이었다.  스룹바벨 시대에 무너졌던 성전을 다시 지었고, 예수님 시대에 헤롯은 성전을 증축하고 있었다.  천으로 지은 것이 성막이고 돌로 지은 것이 성전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중심에는 항상 이것이 있었다.  성막이나 성전이나 모두 장막이라는 말로 바꿀어 부를 수 있었다.  천국 역시 장막이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다.  


  형편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양의 장막들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있었지만, 그 중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 장막이 다윗이 임시로 지었던 장막이다.  다윗 왕은 예수님 오시기 약 천 년 전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임시로 장막을 세웠다.  그 장막은 40년 동안 사용되었다.  


(대상 15:1)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모세 시대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언약궤를 두는 회막이 있었고, 솔로몬 시대에도 성전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신 장소는 다윗이 세운 허름한 장막이었다. 왜냐하면 다윗은 그 장막에서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찬양했기 때문이다


  모세의 장막과 대조되는 다윗의 장막에는 짐승의 희생 제사 대신 찬양과 경배 그리고 감사가 있었다. 다윗은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의 치부가 드러날 정도로 뛰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대상 15:27) 다윗과 및 궤를 멘 레위 사람과 노래하는 자와 그의 우두머리 그나냐와 모든 노래하는 자도 다 세마포 겉옷을 입었으며 다윗은 또 베 에봇을 입었고

(대상 15: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대상 15:29) 여호와의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을 보고 그 마음에 업신여겼더라


  하나님은 다윗의 장막에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고 다윗이 세운 나라를 강하게 하셔서 다른 나라들이 감히 침략하지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화려한 성전을 지었지만, 그 후로도 계속 다윗의 허름한 장막을 그리워하셨다.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5: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라는 말은 진정한 예배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의미하고 있다.  

(7: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요한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고난을 당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구절이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로마의 권력자들에 의하여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역사를 보면 네로는 자기 정원을 밝히기 위하여 기독교인들을 불태워 횃불 대용으로 썼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항상 핍박을 당해 왔다.  기독교인이 정의의 편에 서면 불의의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기 마련이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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