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율법이라는 말을 구시대라는 말로 바꾸고 참 형상이라는 말을 신시대라는 말로 바꾸어보자. 어떤 일을 약속하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약속을 기다리는 시간과 그 약속이 이루어진 후의 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약속이라는 것은 현재 있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을 일을 의미한다. 앞으로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약속된 것을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약속이 이루어진 상태라면 약속된 것을 누리는 상태가 된다. 구시대와 신시대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약속을 받은 상태에서는 약속 받은 것에 대하여 상상만 할 뿐이다. 상상하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달력에 표시하고 매일 쳐다본다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약속을 기억해 내는 다양한 수고를 할 것이다. 그런 수고가 구약시대의 제사이다.
인간 약속의 허무함
나는 여러 번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들었지만 아직 밥 먹자는 연락을 받지 못한 적이 많다. 아무리 기다려도 밥 먹자는 사람이 언제 먹을지 연락을 안 한다. “언제 밥 한번 먹자”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1위라고 한다. 그래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그냥 하는 의례적인 말일 가능성이 많다.
선거 때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당선되면 무엇을 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믿은 사람들은 바보가 된다. 대통령도 거짓말로 당선이 되고, 군수도 거짓말로 당선이 된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믿지 못할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증평 코아루 주민들도 군수를 뽑을 때 후보자가 자신이 군수가 되면 코아루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군수가 되고 나서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게 정치가들이다. 그래서 무슨 선거를 할 때 무슨 공약을 내세우는 것을 약속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그저 말이나 시원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그것을 지키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미쁘시고 신실하시고 믿을만한 약속을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백성의 소원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나라에서 사는 것이었고, 하나님은 그런 나라에서 살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이었고, 구약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께 받은 그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며 살았다. 그들이 드리던 제사는 하나님을 만나는 연습이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히]10: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들이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통로였으면 매일 그런 제사를 반복해서 드렸을 리가 없다.
하도 매번 제사를 드리다보니 시간이 지나자 건성이 되었고, 제사가 사람들의 재물을 강탈하는 수단이 되었고, 제사장들은 제사장직을 매관매직하게 되었고, 제사를 도대체 왜 드리는 지 이해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인간은 어떤 일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왜 그 일을 하는 지 알지 못하게 되고, 신비감도 떨어지는 것이다.
'매번'이라는 말과 '단번'이라는 말을 비교하고 대조해서 읽어야 한다.
야구선수들은 본게임을 하기 위해서 수없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연습을 한다. 잘 때도 방망이를 안고자고 TV를 볼 때도 방망이를 휘두르며 시청을 할 수도 있다. 골프선수들은 본게임에서 방망이를 잘 휘두르기 위하여 수없이 골프채를 휘두른다.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거나 어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쉬지 않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어야 실제 연설에서 말을 매끄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연습을 하는 이유는 본게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약시대 드렸던 제사는 하나님을 만나는 연습이었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매번 제사를 드렸어도 그들은 여전히 죄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고, 하나님은 여전히 두려운 하나님으로 그들과 멀리 떨어져 계셨다.
[히]10: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그러나 연습이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연습을 통해서 본 게임에 잘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사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죄가 없어야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그것이 구약 시대 제사의 진정한 효과였다.
[히]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그러나 연습은 연습일 뿐이었다. 그들이 매일 드리던 제사는 그들의 죄를 잊지 않게 해 줄 뿐 죄를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비행기나 자동차가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해도 그것은 장난감일 뿐이다. 기술이 발전해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비행기가 실재 비행기처럼 날아다니고, 아이들이 장난감으로 타는 자동차가 실재 자동차처럼 만들어졌어도 장난감일 뿐이다. 아이들이 진짜 비행기를 타거나 진짜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는 순간에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기억은 잊어버리고 두렵고 설레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달력에 자기 생일을 기록해 놓고 선물 받을 날을 학수고대 한다. 그 날이 오기까지 아직 선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계속 선물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히]10: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시편 40편은 잘 알려주고 있다.
하나님은 양이나 소, 염소, 비둘기 같은 동물들을 사용하여 드리는 제사와는 다른 제사를 예고하셨다. 그 제사를 기다리며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제사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제사의 제물 죄가 없는 사람의 몸이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몸을 주셔서 제물을 삼으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대속을 위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인정하시는 단 한 번의 제사였던 것이다.
[히]10: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은 매일 완전히 동물을 태워 드리는 번제와 지은 죄를 대신해서 동물을 죽여 드리는 제사를 인정하시지 않으셨다.
연습한 것을 인정하는 경기는 없다. 연습을 아무리 잘 했더라도 본경기에서 잘하지 못하면 금메달은 없다. 운전학원에서 운전면허시험 전에 운전 연습을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도 시험에서 잘해야 합격이 된다. 연습 때 잘 한 사람이 흔히 하는 말이 “지금 방금 전에 연습해서 받은 점수를 시험점수로 인정해 줄 수 없나요?”이다. 연습은 연습으로 끝난다. 시험 때 잘해야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히]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저자는 역시 시편 40편을 인용하고 있다.
[시]40: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시]40: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두루마리 책은 구약 성경 전체, 예수님 이전에 선지자들로 통하여 전하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의미한다. 많은 선지자들은 여러 시대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언했지만, 그들은 이 세상의 구원자로 올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오셔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을 완수하셨다.
[히]10: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히]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정리를 하자면 첫 째 것이라고 표현된 연습 게임들은 인정하지 않고 둘째 것이라고 표현된 본 게임을 인정하신 것이다. 구약의 모든 제사들은 연습 게임이었고, 예수님이 드린 제사는 본게임이었다.
[히]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구약 시대에는 아무리 자주,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렸어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뵙지 못했다.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 죄의 문제가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두려운 하나님이었다.
[히]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히]10: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매일’이라는 말과 ‘영원’이라는 말을 비교하고 대조해서 읽어야 한다. 예수님 이전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연습을 매일하는 제사를 드렸지만 그 제사들은 하나님과 만나는 제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는 단 한 번 드렸을 뿐인데 그 이후로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제사가 된 것이다.
‘서서’라는 말과 ‘앉으사’라는 말을 비교하고 대조해서 읽어야 한다. 제사장들은 어제도 제사를 드렸고 오늘도 제사를 드리고 있었고 내일도 제사를 드려야 했다. 그래서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서서 그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에 제사를 드린 후 더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서 하나님과 함께 앉아 계신다.
[히]10: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운동경기를 끝내고 승리를 한 선수들은 금메달을 받기 위해 단상에 올라갈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단상이 준비 되고 시상식이 시작되면 승리한 선수들은 단상의 제일 위에 올라가서 자기와 경기한 다른 선수들을 내려다보면서 금메달을 받는 영광을 받는다.
옛날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대적하던 사람들의 왕의 목을 발로 밟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한다는 것은 발로 밟는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예수님이 단번에 드린 제사로 인하여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히]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님이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 단번에 드린 제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기 전의 과도기에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는 그 시간이 오기까지 보호를 받고 보전된다.
[히]10: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히]10: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내 법'이란 두려움을 주었던 구약 시대의 율법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통해서 온 새로운 법을 말하는 것이고, 그 법은 하나님을 더 이상 멀리 떨어져 계신 두려운 분이라고 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부를 수 있는 분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자기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마음과 생각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까이 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매우 가까워서 믿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히]10: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는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히]10: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우리는 제사를 드리러 모인 것이 아니다. 금메달을 딴 사람이 다시 경기를 위하여 연습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연습은 금메달을 따기 위하여 하는 것이다.
(맺음)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각이 저마다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고 보는 우리들과, 단지 세상의 불의에 도전했던 한 청년의 죽임이라고 보는 사람들과, 선지자의 한 사람의 의로운 죽음이라고 보는 사람들,... 그 외에도 수 없이 많은 시각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 주시고 계시는 것일까? 바로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 주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만 아는 것을 비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