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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世 진광순(陳光恂-譜:純) 문과장원>고려사 원본

작성자해송(海松) 陳玉洙|작성시간15.12.06|조회수36 목록 댓글 0

3世 진광순(陳光恂-譜:純) 문과장원>고려사 원본|…―* 카페장 미완성자료

해송(海松) 陳玉洙 | 등급변경

| 조회 0 |추천 0 |2015.12.06. 05:04 http://cafe.daum.net/jinssisarangbang/O2KI/3533                

 

 국역 고려사 : 세가

명종 8년(1178) 무술년


• 8년 봄 정월

갑진일. 장군 노탁유()1)를 금나라에 보내 만춘절()을 축하하게 했다.
병오일. 병부낭중() 최효구()를 보내 특산물을 바치게 했다.
기유일. 연등회 참석차 왕이 봉은사()에 갔다.
○ 금나라에서 복산회충()을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했다.
을묘일. 왕이 신중원()에서 친히 재()를 지냈다.
정사일. 각 도에 민정을 살필 찰방사(使)2)를 다음과 같이 파견했다. 공부낭중() 최선()을 흥화도()에, 형부원외랑() 최효저()를 운중도()에, 합문지후() 임유겸()을 삭방도()에, 감찰어사() 최돈례()를 연해(沿) 명주도()에, 비서승() 윤종양()을 서해도(西)에, 천우위() 장군() 오광척()을, 양·충주도()에, 낭장() 이문중()을 진·합주도()에, 시어사() 송단()을 경·상주도()에, 장군 송군수()를 전·라주도()에, 형부시랑() 이문중()을 광·청주도()에, 기거주() 황보탁()을 춘주도()에 각각 파견해 백성들의 애로를 청취하고, 관리 및 왕이 보낸 사자들에 대한 상벌을 내리면서 10년 동안의 고과[殿3)]를 소급적용하게 했다. 당시 탄핵 받은 자가 8백여 명이나 되었으며 최효저()는 심사를 꼼꼼히 하지 않아 면직당했다.
무오일. 왕이 금나라 사신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다.
○ 흥왕사() 승려가 중방()에다가, 자신이 있는 절의 승려가 덕수현( : 지금의 개성직할시) 사람과 반란을 모의했는데, 산원() 고자장()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고변했다. 중방에서 고발당한 승려와 고자장을 체포해 먼 섬으로 유배보내면서 도중에 몰래 사람을 시켜 강물에 던져 죽였다. 고자장은 성질이 매우 포악했으므로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서로 축하했다.
기미일. 명인전(殿)에서 제석도량()을 열었다.
경신일. 서북로병마사(西使) 이의민이 서경의 반군 3백여 명을 참살한 후 승전을 알려왔다.

• 2월

임신일. 내전(殿)에서 불정도량()을 열었다.
갑술일. 서경유수판관(西) 박인택()이 부임 도중 고원역()에 당도하자 반군의 습격을 받아 길에서 살해당했다.
신사일. 왕이 괴강()4)에 친히 초제()를 지냈다.

• 3월

초하루 을미일. 왕이 영통사()에 행차했다.
기유일. 왕이 보제사()에 행차해 오백나한재()를 지냈다.
신해일. 억울하게 수감된 죄수가 없는지 재심사한 후, 각 도의 찰방사가 압송해온 탐관오리 35명을 사면했다. 대감()·전중시어사(殿) 진광인()이 이들을 제대로 탄핵하지 못해 어사대()의 탄핵까지 받았으나 결국 풀려난 것이다.
갑인일. 재추와 문·무() 3품 이상의 고위 관리들이 식목도감()5)에 모여서 서경(西)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의논했다.
병진일. 어사대에서 내시()와 다방()6)의 정원이 초과되었다고 간언하자, 왕의 지시로 내시에서 임정식() 등 12명을, 다방에서 6명을 각각 줄였다.
무오일. 중방()의 건의에 따라 대장군 장박인()과 김숙()으로 하여금 좌·우() 다리 길을 맡아, 길 가의 가옥과 담장 중 조금이라도 관용도로를 물고 들어온 것이 있다면 모두 원래대로 복구시키도록 조치했다.

• 여름 4월

을해일. 서경의 반군이 곡주()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병자일. 반군이 수안( : 지금의 황해남도 수안군)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재물과 곡식 및 소와 말을 노략질해갔다.
경진일. 왕이 왕륜사()에 행차해 나한재()를 지냈다.
○ 우박이 쏟아졌다.
임오일. 대장군 김광식()을 서경제치사(西使)로, 장군 박순()을 그 부사(使)로 각각 임명했다.
을유일. 태묘()에 체제()를 지냈다.
○ 서경(西)의 관제()를 다시 정했다.
경인일. 오령군()7)을 동원해 서경의 반군을 진압하게 했다.

• 5월

갑오일.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임자일. 무당들을 도성()에 모아 놓고 비를 내려달라고 다시 기도하게 했다.
신유일. 재차 기우제를 지냈다.

• 6월

갑자일. 왕이 봉은사()에 행차했다.
정묘일.진광순() 등을 급제시켰다.
기묘일. 찰방사(使)로부터 탄핵받은 탐관오리들을 파직시키는 한편, 행정고과가 우수한 자는 모두 품계를 올려 주었다.

• 윤6월

임자일. 평장사() 이광진()이 죽었다.

• 8월

초하루 임진일. 내전(殿)에서 소재도량()을 열었다.
갑진일. 사형수 20명을 감형시켜 유배보냈다.
신해일. 신안후()가 죽자 애도의 뜻으로 사흘 동안 조회를 중지했다.

• 9월

계미일. 명인전(殿)에서 이레 동안 장경도량()을 열었다.

• 겨울 10월

기유일. 왕이 태묘()에서 친히 협제()8)를 지내고 서경의 반군을 평정한 사실을 고한 후, 사면령을 내렸다.
병진일. 대관전(殿)에서 인왕백좌도량()을 열고 전국의 관아에 3만 명의 승려에게 음식을 대접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11월

임신일. 장군 기세준()을 금나라에 보내 왕의 생일을 축하해 준 데 대해 사의를 표하게 하고, 낭중 전량()은 신년을 하례하게 했다.
계유일. 팔관회()를 열고 왕이 법왕사()에 행차했다.
무자일. 편전에서 동·서의 양계() 여러 성의 상장()과 도령()9)을 접견한 후, 상장에게는 포백()을, 도령()에게는 비단 옷, 금으로 장식한 띠, 말 1필을, 그들의 하인들에게는 베 10필을 선물로 주었다. 서경의 반군을 평정한 뒤에도 도적이 자주 출몰했기 때문에 그들이 다시 동요할까 선물을 주어 회유하려 한 것이나, 식자들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 이 달에 금나라가 여덟 장군 휘하의 군사를 보내 의주 국경 관문 밖에 진을 치게 했다.

• 12월

임자일. 왕이 명인전(殿)에서 친히 닷새 동안 인왕도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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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미지 (4)

고려사 - 명종 8년(1178) 무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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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 명종 8년(1178) 무술년

[네이버 지식백과]명종 8년(1178) 무술년 (국역 고려사: 세가, 2008. 8. 30., 경인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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