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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척간두 / 百尺竿頭☞ 百 일백 백, 尺 자 척, 竿 낚싯대 간, 頭 머리 두
겉뜻 :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
속뜻 :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함
유래 :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임을 말한다.
막다른 위험에 놓이게 됨을 뜻하는 말로 '백척간두에 서다'로 쓰이며 줄여서 '간두'라고도 한다.
또, 노력한 위에 한층 더 노력하는 상태 또는 마음가짐을 뜻하기도 한다.
백척간두진일보라 하여, 어떤 목적이나 경지에 도달하였어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노력함을
뜻하거나, 충분히 언사를 다하였어도 더 나아가서 정묘한 말을 추가함을 말한다.
1004년(경덕1) 송나라의 도원이 저술한 불교서적인 경덕전등록에 쓰여 있으며,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극한상태에 올려놓고 정신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 함흥차사 / 咸興差使 ☞ 咸 다 함, 興 일 흥, 差 다를 차, 使 하여금 사
겉뜻 : 함흥으로 간 심부름꾼
속뜻 : 심부름꾼이 가서 소식이 없거나, 또는 회답이 더딜 때의 비유
유래 : 조선(이조) 초 함흥으로 간 태조(조선 제1대)를 모셔 오기 위해서 보낸 使臣(사신).
1398년 (태조 7) 세자 芳碩(방석)이 왕자의 난으로 죽은 뒤 태조는 정치에 뜻이 없어
왕위를 조선 제2대 定宗(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갔다.
태종이 즉위하여 성석린을 보내어 일단 서울로 돌아왔으나,
1402년(태종 2)에 다시 북동 방면으로 간 채 돌아오지 않으므로 왕이 차사를 보냈으나
차사도 돌아오지 않아 이 때부터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함흥차사'라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차사를 모두 태조가 죽인 것이라 하나 문헌에는 박순의 희생만이 알려져 있고 그 후
여러 차례의 간청에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사부 무학대사가 가서 겨우 서울로 오게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