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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의 역사를 지닌 안동 임청각 문화재 탐구

작성자대덕산(ㅂㅌㅇ)|작성시간25.07.01|조회수147 목록 댓글 2

1. 임청각 문화재 소개

임청각 현판/퇴계 이황(李滉)의 친필

임청각 전경
임청각 내부모습

* 소재지: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임청각길 53~63) .
* 건립연대: 조선 중종 10년 (1516)
* 2009년 현재 소유자는 이창수, 관리자 이상동이다.

1)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조선 중기 전통가옥 안동 임청각은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李原, 1368~1429)의 여섯째 아들 이증(李增, 1419~1480)이 건축한 조선 중기의 종택 건물과 이증의 셋째 아들 이명(李洺)이 중종 때 세운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君子亭)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해 임시 정부의 초대 국무령(國務領)을 지낸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1858~1932) 은 이명의 17대 주손(冑孫)이다.

2) 이상룡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 이상룡 (1858~1932)의 고향집으로, 3대에 걸친 독립운동가 11명을 배출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2. 石洲 李相龍 . 그는 누구인가?

ㅣ) 독립운동의 거목 석주 이상룡 동영상

https://youtu.be/ybuSBw-kqb8?si=5CiRlZnNx3Sa-lEx


2) 石洲 李相龍 신상 소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石洲 李相龍

* 출생: 1858. 11. 24.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부내면 용상리 법흥골
(現 경상북도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
* 사망: 1932. 6. 15 (향년 73세)
만주국 길림성 서란현(舒蘭縣) 소과전자(燒鍋甸子)
*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 묘역-2호
* 재임기간: 초대국무령
1925. 7. 7~1926. 2. 18.


3. 군자정 알아보기

군자정: 보물 제182호 (1963.01.21)
군자정 현판

1) 건립 시기: 1515년 중종 10년, 형조좌랑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 ‘군자정’이 원형이며, 전체 종택은 동일한 가문이 소유하며 세종 시대 종실 출신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

2) 군자정은 목조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임진왜란을 겪은 오래된 건물이다. 군자정 대청에는 이현보(李賢輔) 등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으며, 안동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李滉)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군자정은 ‘丁’자형의 누각으로 된 별당 건축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대청이 남향으로 앉아 있고, 그 왼쪽에 온돌방 4칸이 연접하여 ‘ㅏ’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온돌방의 한 부분은 각주를 세워 굴도리를 얹은 간단한 구조로, 홑처마로 구성하였다. 그러나 대청은 원주를 사용하였고, 그 위에 이익공 계통의 공포(栱包)와 그 사이에 화반을 1개씩 배치하였으며, 겹처마로 만들었다. 공포는 건물의 외면에서는 쇠서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간소하게 초공으로 꾸며져 있다. 벽은 회벽을 치고 대청 주위에는 판문을, 온돌방에는 빗살문을 달아놓았다. 처음에는 대청 전체에 단청을 하였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내부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3) ​서쪽에 위치한 본채는 양지 바른 산기슭에 자리 잡았는데, 총 50칸이 넘는다. 앞면 아래서부터 동서 길이로 12칸의 행랑채가 있고, 그 뒷면에 다시 같은 길이로 두 채씩 병행시켰는데, 제일 뒤쪽 건물의 중앙에 대청을 두었으며, 그 앞면 좌우에는 앞뒤채를 연결하는 방이 있어 안마당이 세 구역으로 구분되었다.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으로서 안채와 대청은 굴도리집이고 나머지는 방주를 사용한 납도리집이다. 건축 양식상으로는 대청 종량 위의 포대공이 눈에 띈다.

4) 임청각에 딸린 정자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군자정은 ‘ㅏ’자 모양의 평면을 가진 건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정침 쪽으로 한 칸씩 온돌방을 더 내어 붙여 놓은 모습이다. 방 사이에 만든 마루는 정침으로 드나드는 출입문과 연결되며 정자형 별당답게 누마루 형식에 사방으로 계자난간을 갖춘 쪽마루를 돌려 바닥에 내려서지 않고도 난간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사방을 관망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특히 난간은 계자각에, 돌란대와 연잎의 양각을 생략한 부드러운 하엽 양식을 갖추어 그야말로 난간의 정수를 보여준다.

5) 한편 누마루는 2분합 판장문을 삼면에 달아, 문을 개방하면 주변에 꾸며 놓은 화단과 석가산을 만든 연지가 보이고, 경사를 따라 잘 꾸며놓은 모과나무와 단풍나무 정원도 보인다. 전면에서는 안동댐에서 흐르는 강물과 강 너머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을 감상할 수 있다.

6) 군자정은 4벌대 자연석 허튼층으로 쌓은 기단 위에 대청 전면에는 원기둥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네모난 방형 기둥을 덤벙주초에 세우고, 내부 천장은 무고주 5량 집으로 공간이 장대하다. 연목과 부연을 갖춘 겹처마 형식으로 주두 위에 익공을 갖춘 재주두가 없이 물익공 형식의 이익공 가구방법을 사용하였다. 건축 기준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일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으로 창방과 장혀 사이에는 화반도 설치하였다.

7) 정침 쪽으로 있는 온돌방은 2분합 덧문에 세살무늬 창과 조밀한 넉살무늬 광창을 달아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 넉살무늬 광창은 바깥 행랑채 창문의 형태로도 사용하는 형식으로, 이 가옥에서는 정침의 다락이나 군자정, 행랑채의 광창으로 사용하고 있어 창문의 다양화가 보이면서도 엄밀히 관찰하면 용도에 따라 통일성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이 집의 멋스러움으로 볼 수 있다.

8) 대청 상부에는 반듯하고 날렵한 느낌의 대들보를 사용하고 있는데 둥근기둥과 장여를 받친 첨차와 창방 위의 화반은 하얀 회벽과 함께 더욱 고풍스러우면서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팔작지붕 아래 내부의 가구구조는 충량과 만나 대들보에 얹혀 지고, 그 위로는 모서리의 연목이 모아지는 종대공과 만나는 곳을 깔끔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반자틀을 만들었다. 반자틀의 두 기둥은 종보와 대들보의 가운데로 얹혀 지고 나머지 반자의 두 기둥은 공중에 떠 있는 형태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둥그런 기둥이 천장에 들려 있는 것을 달동자라 불렀으니, 이는 천장 위에 달이 떴다는 말이다. 참으로 자연친화적이요, 상상력과 멋, 풍류가 응축된 건축이자 표현이 아닐 수 없다.

9) ​이 집 달동자의 절단면에는 연꽃을 그려 넣고, 부재마다에는 아래쪽으로 가운데 주홍을 긋고 양변에 먹을 그려 넣어 단정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고결하고 강직한 선비 사상을 느낄 수 있는 건축이다. 지금은 단청의 흔적만이 보이나 선명한 단청 색이 보이던 시절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답고 단정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특히 대청마루를 열어젖히면 사당 아래 연지에는 예쁜 배롱나무가 붉게 물들어 있고 연꽃이 활짝 피어 한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연지 가운데 있는 석가산은 맷돌이 대신 올라앉아 있는데, 약간은 어색하지만 조그만 연지 안에 커다란 석가산은 불가능하니 이것으로 가정해서 대신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또한 전면으로 있는 온돌방의 세살무늬 덧문을 열어젖히면, 지대가 높은 집의 영향도 있겠지만, 높은 산 위에서 강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후련하게 느껴져 도연명의 글귀에서 얻은 구절로 ‘임청각’이라 이름 지은 까닭을 알 듯 하다.


4. 건축미와 구조

1) 군자정(丁자 형 누정):
정면 2칸, 측면 2칸의 ‘丁’자 형태 누각. 남향의 대청과 그 서쪽에 온돌방 4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겹처마·화반·이익공 포계 등 조선 중기 목조 공예의 정수를 담고 있습니다 .

2) 종택 본채: 산기슭 남향의 이상적인 배산임수 위치에 자리하며, 원래 99칸 규모의 고가옥이었으나 일제 때 중앙선 철도 부설로 일부가 철거되어 현재 약 70칸 정도만 남았습니다.

3) 법흥사지 칠층전탑

대한민국 국보 16호. 법흥사지 칠층전탑(임청각 바로 옆)

* 법흥사지 칠층전탑은 우리나라 탑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전탑(높이 17m)
* 통일신라 때 작품으로 천년을 버티고 있답니다.
* 아래쪽에 시멘트로 발라둔 것은 일본넘들의 소행인데 일제 강점기 때 이 탑을 보수한다며 저 짓을 해 둔 것입니다.

임청각 내 연못


5. 환경 및 복원 현황

1) 입지 환경(배산임수 명당)
영남산 동쪽 기슭, 낙동강 조망에 적합한 명당 입지.

월영교
월영정 정자
낙동강 상류 안동댐
안동 헛제삿밥

2) 철도 영향: 일제가 1942년 철도를 놓으면서 안채 대부분과 마당을 가로질러 건물 일부를 허물고, 낙동강과 단절시키기도 했습니다 .

♡ 80년만에 사라지는 철로 안동 임청각 복원
https://youtu.be/2lsWlPb0wR0?si=9eHq-wS4Fino3hTt

임청각 앞 옛 기차길

3) 복원·정비 사업: 2014년부터 예산이 투입돼 주변 시설 복구 및 철로 이설, 멸실된 가옥 재현, 역사문화공유관 건립 등 2025년까지의 계획이 추진 중입니다.


6. 맺으면서

500년의 시간을 견뎌온 임청각은 단순한 고택을 넘어 조선 중기 건축과 근현대 독립운동의 교차점에 서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고택 체험과 더불어 역사적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안동 방문 일정에 꼭 포함해 체험을 권해드립니다.


7. 참고

■ 500년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철성이씨) 대종택 임청각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살림집 중에서 가장 큰 규모로 500년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안동 고성이씨의 대종택이다.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여기에 자리잡음으로써 입향조가 되었다. 이후 이증의 셋째 아들로 중종 때 형조좌랑을 지낸 이명이 지은 별당형 정자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온 것이며 귀거래사 구절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라는 시구에서 ‘임(臨) 자’와 ‘청(淸) 자’를 취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하면 ‘임청각은 귀래정(歸來亭) 영호루(映湖褸)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임청각은 건축한 조선 중기의 종택 건물과 별당형 정자인 군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99칸의 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70여 칸만 남아있다. 임청각의 별당 군자정은 목조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임진왜란을 겪은 오래된 건물이다. 군자정 대청에는 이현보(李賢輔) 등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으며, 안동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李滉)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군자정은 ‘丁’ 자형의 누각으로 된 별당 건축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대청이 남향으로 앉아 있고, 그 왼쪽에 온돌방 4칸이 연접하여 ‘ㅏ’ 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온돌방의 한 부분은 각주를 세워 굴도리를 얹은 간단한 구조로, 홑처마로 구성하였다.


■ 석주 이상룡이 1911년 1월 중국 망명길에 오르며 남긴 시

이미 내 논밭과 집 빼앗아 가고
다시 내 아내와 자식 해치려 하네.
이 머리는 차라리 자를 수 있지만
무릎 꿇어 종이 되게 할 수 없도다.


■ 석주 이상룡 선생의 아들 이준형 선생의 絕命詩 <臨絶韻>의 후반부.

♡ 이상룡 선생 순국 후 귀국해서 활동하던 이준형 선생은 1942년 2월 일제가 임청각을 반토막 내고 마당을 가로지르는 중앙성 철도를 설치하자 <석주유고>를 정리한 후, 1942년 9월 2일 자신의 62세 생일날 유서 1편과 절명시 1수를 남기고, 고조부가 초가로 지은 범계정사에서 자신의 목 동맥을 끊어 자진하였다.

♡ 이준형 선생의 절명시

아직 槿域의 새봄은 머니 하늘의 뜻이요
끝내 상전벽해의 변화를 보니 시대의 운명이다.
귀머거리 벙어리로 구차히 사는 것도 가소롭구나
원컨대 아버님 따라가 하늘에서 모시련다.

●이육사/청포도●
https://youtube.com/shorts/Q7PkAexRp50?si=AVmmHZdoqKQYw_q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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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대덕산(ㅂㅌㅇ)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7.01 https://vt.tiktok.com/ZSBYgxkFk/
  • 작성자죽성 | 작성시간 25.07.02 감사히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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