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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두 가지 시험

작성자장진호|작성시간26.06.15|조회수31 목록 댓글 0

 

두 가지 시험

 

옛날 인도에 기파(耆婆)라는 유명한 의사가 있었다. 그는 원래 사생아로 태어나 길가에 버려졌으나, 다행히 높은 신분을 지닌 사람에게 구함을 받고 양육되어 훌륭한 스승 밑에서 의술을 배우게 되었다.

배운 지 7년 만에 모든 의술을 습득하고 스승의 후계자로 지명 받은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난치병자를 치료하는 신술(神術)을 발휘하였고, 마침내는 왕의 시의가 되어 갖가지 고민스러운 병으로 고생하던 왕의 병을 치유해 주는 명의가 되었다.

그가 스승으로부터 의술을 배우고 마지막 단계인 시험을 치를 때의 일이다. 스승은 기파에게 이르기를 ‘하루 동안 온 산야를 돌아다니면서 약이 될 수 없는 풀을 찾아오너라.’는 문제를 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파는 스승이 명한 대로 하루 종일 산과 들을 돌아다녔으나, 약이 되지 않는 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스승이 낸 문제를 풀지 못한 기파는 낙심하여 돌아와 스승 앞에 이 사실을 고하였다. 그러나 스승의 대답은 의외였다. 합격이라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약이 되지 않는 풀은 없다는 것이었다. 약을 알아보는 기파의 눈이 그 만큼 넓어져 있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여느 풀을 약초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기파와 같은 의학적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뛰어난 명의의 눈으로 보면, 모든 풀이 제 나름의 약 성분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약이 되고 안 됨은 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의 눈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가 어찌 한갓 약초에만 한정되겠는가?

사람도, 세상사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못난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다 나름대로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그것은 그것대로 다 가치 있는 삶의 지침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대하고 겪는 과정에서 그 사물의 일면만을 볼 뿐, 그것이 가져다주는 이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잘난 사람에게는 호감을 가지지만 못난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하고, 기쁜 일은 좋아하지만 슬픈 일은 싫어하게 된다.

참된 의미는 눈앞에 보이는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파 같은 지혜로운 눈에 의해 파악되는 법이다. 어쩌면 우리는 못난 사람이나 부족한 사람에게서 더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도 있으며,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에서 더 깊은 인생의 가르침을 얻어 자신을 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는 좀 다른 시험 이야기 하나를 더 해 보겠다.

많은 수행자를 지도하고 있는 고승이 있었다. 제자들의 수행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 갈 무렵, 스승은 제자들에게 그 수행 정도를 알아보기 위하여 시험 문제를 내었다. 스승은 제자들에게 살아 있는 새 한 마리씩을 나누어 주고는, 오늘 중으로 가능한 한 빨리 새를 죽여 와야 하는데, 반드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죽여 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승이 시킨 대로 제자들은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얼른 새를 죽여 오는 이도 있었고, 한 나절이 지나 죽여 오는 제자도 있었다.

저녁나절이 되자 제자들이 거의 돌아 왔다. 그런데 단 한 사람의 제자가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뜻하지 않은 사고나 당하지 않았을까 싶어 모두들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질 무렵에야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새를 죽이지 않고 산 채로 품에 안고 돌아 온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스승이,

“이놈아, 이렇게 늦게 돌아오면서 새도 죽이지 않고 왔으니, 뭐 하고 돌아다니다 이렇게 늦게야 왔느냐?”

고 고함을 지르며 꾸짖었다. 이러한 스승의 질책에 풀이 죽은 제자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하기를,

“선생님 죄송합니다.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새를 죽일 곳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였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습니다. 숲 속에 들어가니 새가 내려다보고, 굴속에 들어가니 기어가는 벌레가 보고 있어서 도저히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고 하였다.

합격은 늦게 온 이 제자 한 사람뿐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닫힌 눈에는 사람밖에 들어오지 않지만, 열린 눈에는 새도 벌레도 들어오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사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육체적인 시력에 의해 감지되는 사물만이 아니라, 열려 있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 사람살이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음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전자의 이야기가 대상을 향하는 시각에서 본 이야기라면, 후자의 이야기는 대상이 시야로 비쳐 들어오는 측면에서 본 이야기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물의 겉만 보고 속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또 안구를 거쳐 들어오고 나가는 영상만 이해하고, 마음의 망막에 굴절되어 나타나는 실상을 놓칠 때도 많다. 단 것만 좋아하고 쓴 것은 싫어하듯이, 분별심으로 한쪽만을 선택하여 보기도 쉽고, 마음의 문을 좁혀 작은 것만 보고 큰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야기 속의 기파나 수행자처럼, 치우침 없이 보고, 또 그렇게 받아들이는 눈을 가진다면, 그가 바로 진정 깨달은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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