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돌아보기
인사와 인사말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인사말의 쓰임에 대하여 혼란스러워 할 때가 있다. 손위 사람에게 드리는 새해 인사나, 문상 때 상제에게 드리는 인사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그러한 예다.
그럼 먼저 새해 인사말부터 생각해 보자.
새해 인사로 가장 적당한 인사말은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이다. 이 말은 집안이나 직장 사회 등 어디에서나 무난히 쓸 수 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웃어른께 세배를 드릴 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라는 말을 먼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절하는 것 자체가 인사이기 때문이다. 절을 하고 나서 어른의 덕담이 있기를 기다리면 된다.
또 절하겠다는 뜻으로, 어른에게 “절 받으세요. / 앉으십시오.”와 같은 말을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가만히 서 있다가 어른이 자리에 앉으면, 말없이 그냥 공손히 절을 하면 된다.
다만 나이 차가 많지 않아, 상대방이 절 받기를 사양하면, “절 받으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어른에게 대한 인사말, 즉 “만수무강하십시오. / 오래오래 사십시오.”와 같은, 건강과 관련된 말은 피하는 것이 좋다. 늙음을 의식하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저희들 많이 돌봐 주십시오. /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쓰십시오.”와 같은 인사말이 좋다.
문상(問喪) 가서 예의에 가장 맞는 인사는 전통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어떤 말로도 슬픔의 뜻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는 의미다. 굳이 인사말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슬프십니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등과 같이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상이란 말을 지금 조상(弔喪), 조문(弔問)과 구분 없이 섞어 쓰는데, 이것은 원래 조금 다른 말이다. 조상은 죽은 이에게 예를 표한다는 말이고, 조문은 상주에게 인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두 말은 부모상이나 남편 상에만 썼다. 조위(弔慰)는 상을 위로한다는 뜻으로 아내 상, 형제 상, 자녀 상을 당한 경우에 써 앞의 두 말과 구분했다.
또 추도와 추모라는 말은 장례절차가 끝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뒤에 쓸 수 있는 말이며, 그 대상이 국가 사회를 위해 헌신한 공적이 있거나 인품과 덕성이 우러름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 사용한다. 아무데나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근조(謹弔)라는 말은 ‘삼가 조상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면서 산소나 위령탑 앞에 ‘근조’라고 써 붙인 화환을 놓는 것은 맞지 않다.
다음으로, 자기가 부탁한 일을 처리해 준 사람에게나, 직장에서 먼저 퇴근할 때 흔히 쓰는 ‘수고 하십시오’에 대해 알아보자.
일을 하는데 애를 쓰고 힘을 들이는 것을 가리키는, 수고라는 말은 순수한 고유어로 사전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아무래도 한자어 수고(受苦)에서 온 것 같다. 옛 문헌에 한자어 受苦로 적혀 있다. 글자 그대로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수고라는 말의 쓰임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이 말의 뜻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므로, 직장에서 먼저 퇴근할 경우에 윗사람을 보고 “수고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인사말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또 볼일을 다 마치고 일을 봐 준 상대방에게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도, 예에 어긋나는 말이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생하라는 말이기 때문에, 높임말을 써야 할 상대방에게 쓰는 것은 격식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는 듯도 하나, 그것은 말의 속뜻을 잘못 짚은 데서 나온 주장이다. 이것은 마치 제자(弟子)란 말은 아우와 아들을 가리키는 말이니 자기가 가르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수고하라는 말의 뜻이, 표면적으로는 고통을 받으라는 뜻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내면적인 뜻은 진정으로 상대방이 고통을 받으라는 저주나 미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받을 것이니 미안하다는 심정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나온 표현이다.
몸과 마음의 고통을 받는 데 대한 미안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위로 삼아 전달하려는 데 그 본래의 의도가 있는 것이지, 진정 상대방이 골탕을 먹으라는 뜻으로 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수고 하십시오.” 하는 말을 쓰는 것은, 상대방에게 결례가 되는 말이 아니므로, 그런 말을 쓰는 것은 합당하다.
“욕보시겠습니다.”란 말도 마찬가지다. 욕도 몸과 마음의 수고로움을 뜻하는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욕보다’란 말이 ‘강간을 당하다’는 뜻의 말이므로, 아무데나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들이 있으나, 이것도 그렇지 않다. ‘욕보다’란 말에 물론 그런 뜻이 있는 것은 맞지만, 이 말에는 ‘곤란한 일을 겪거나 수고를 하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