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어 두고
맛둥 도령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신라 향가 서동요薯童謠의 내용이다. 선화공주가 백제의 왕자 서동[맛둥]과 몰래 정을 통하고서, 그를 밤에 몰래 자기 방으로 안고 간다는 뜻이다. 여기 나오는 ‘얼어’ 곧 ‘얼다’는 말은 ‘남녀가 교합하다[성교하다]’의 뜻이다. 이 말에서 파생된 ‘얼우다’도 ‘시집보내다, 혼인하다’의 뜻이다.
얼다와 얼우다에 관형사형 어미가 붙으면 각각 ‘얼은, 얼운’이 되는데, 이 말이 변하여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까 어른은 ‘남녀가 교합한/ 혼인한’ 사람이다. 또 ‘얼우신’ 이가 어르신이다.
‘물이 얼다’ 할 때의 얼다도 이와 같은 뿌리다. 물이 어는 것도 액체가 한데 합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얼다[凍]가 남녀 교합의 상징으로 쓰인 예를 옛말에서도 불 수 있다.
고려속요 동동動動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정월의 냇물은 얼었다 녹았다 하는데
세상에 태어난 이내몸은 외로이 홀로 살아가누나
냇물도 서로 합해져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는데, 홀로 사는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탄하고 있다.
조선의 호걸 임제林悌가, 시서에 능하고 명창으로 이름 높던 기생 한우寒雨 찬비에게 준 시조에도 이러한 예가 보인다.
북천北天이 맑다커늘 우장雨裝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잘까 하노라
이에 한우는 즉시 이렇게 화답하였다.
어이 얼어 자리 무슨 일로 얼어 자리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을 어디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 잘까 하노라
그런데 임제는 ‘얼어’ 자겠다고 하여, ‘얼어’에 넌지시 ‘교합’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데 비하여, 이에 답한 한우는 ‘어이 얼어 자리’라고 하여 ‘얼어’를 교합이 아닌, 단순한 결빙의 뜻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니, 임제보다는 아무래도 한 수 아래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떻든 여기서도 얼다가 역시 남녀 교합의 뜻을 품고 있다.
‘교합하다/혼인하다’의 뜻을 지닌 ‘얼다’는 현대어에 ‘어르다’로 남아 있다. “엄마가 아이를 어르고 있다.”고 할 때의 어르다가 그것이다. 몸을 움직여 주거나 또는 무엇을 보여 주거나 들려주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거나 기쁘게 하여 주는 것을 가리킨다. 이 ‘어르다’는 원래의 ‘교합하다’란 뜻은 사라졌지만, 상대방과 기쁨을 나눈다는 점에서 의미상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또 ‘어우르다’의 준말로 쓰이는 ‘어르다’도 마찬가지다. 둘 다 관계가 밀접하거나 합쳐짐을 나타낸다.
‘어우르다’의 고어는 ‘어울다’인데, 이 말은 어불다>어울다로 변한 말이다. ‘어불다’는 방언에서 아직까지 그대로 쓰이고 있는 말인데, 이는 ‘얼(다)+붇(다)’로 이루어졌다. 즉 서로 합해져 불어난다는 뜻이다. 곧 어울리는 것은 여러 개가 합해져서 수량이 불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교합하다는 뜻의 ‘얼다’가 다른 말과 어울려 된 말에는, 얼러먹다, 얼러붙다, 얼러치다, 얼싸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