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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소쩍새는 소쩍소쩍 접동새는 접동접동 

작성자장진호|작성시간18.07.08|조회수707 목록 댓글 0

소쩍새는 소쩍소쩍 접동새는 접동접동


접동새는 고래로 수많은 시가의 소재로 등장해 왔던 새다. 고려 때 정서(鄭敍)가 뭇사람들의 무고를 받아 동래로 귀양 가서, 임금을 그리워하며 지어 부른 정과정곡(鄭瓜亭曲), 어린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어 자기의 억울한 처지를 노래한 자규사(子規詞), 모두가 접동새를 자신에 비유하고 있는 시다.

 

내님이 그리워서 울며 지내니

산에서 우는 저 접동새 나와 같구나

나를 모함하는 말들이 사실이 아니며 거짓인 줄을

! 지는 달과 새벽 별은 알 것입니다.

넋이라도 임과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 나 보고 헐뜯는 이 누구입니까?

잘못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뭇사람들의 말은 다 참소입니다.

슬프고 슬프도다.

! 임께서는 벌써 나를 잊었습니까?

마소서 임이시여! 부디부디 마음 돌려 사랑해 주소서.

정서의 <정과정>

이러한 접동새의 이미지는 현대시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소월의 접동새나 미당의 귀촉도(歸蜀途)가 모두 그러하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미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은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서정주의 <귀촉도>

 

그런데 이 새에 대하여 혼동하는 예를 많이 본다.

어느 어원사전에 접동새와 소쩍새는 같은 새이고, 접동새와 두견이는 다른 새라고 적혀 있는데, 그 설명은 과연 바른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이다. 소쩍새와 접동새는 다른 새이다. 그리고 접동새는 두견이의 방언이다. 접동새는 뻐꾸기 비슷한데, 뻐꾸기처럼 딴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생육을 떠맡기는 새다. 소쩍새는 올빼밋과에 속하는 부엉이 비슷한 여름 철새로 주로 높은 나무에서 산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그렇게 실려 있고, 두시언해나 훈몽자회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그런데 소쩍새와 접동새를 혼동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라, 오랜 옛날부터다. 시조(時鳥), 제결(鶗鴂), 주연(周燕) 등의 풀이를 보면 어떤 데는 소쩍새, 또 다른 곳에서는 접동새라 하고 있음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접동새는 잘 알다시피 촉나라 임금 망제(望帝)에 얽힌 애달픈 전설 때문에 그 이칭도 많다. 꾸꾸기, 두견(杜鵑), 두견이, 두견새, 망제, 망제혼, 두백(杜魄), 두우(杜宇), 불여귀(不如歸), 자규(子規), 촉백(蜀魄), 촉조(蜀鳥), 촉혼(蜀魂), 귀촉도(歸蜀道) 등이 그것이다.

 

소쩍새 접동새

 

자규는, 천성이 착한 어린 망제가 자기가 구해 준 별령이란 자에게 도리어 쫓김을 당하여 그 원통함을 가슴에 품고 죽어서 새가 되었다는 전설을 가졌다. 너무나 억울하여 밤새도록 피를 토하며 운다는 새다. 토해낸 붉은 피가 변하여 진달래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기에 쫓겨난 단종이 유배지에서 남긴 시도 자규사다.

 

달 밝은 밤 두견새 울 제  月白夜蜀魂啾(월백야촉혼추)

시름 못 잊어 누 머리에 기대어라. 含愁情椅樓頭(함수정의누두)

네 울음 슬프니 내 듣기 괴롭구나. 爾啼悲我聞苦(이제비아문고)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없을 것을  無爾聲無我愁(무이성무아수)

세상에 근심 많은 이들에게 이르노니  寄語世上苦勞人(기어세상고로인)

부디 춘삼월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愼莫登春三月子規樓(신막등춘삼월자규루)

 

우리나라에도 접동새에 대한 애달픈 전설이 있다. 소월의 시 접동새에 얽힌 바로 그 전설이다.

 

어머니를 잃은 열 남매가 새로 들어온 의붓어미 밑에서 살게 되었는데, 큰누이가 부잣집 도령과 혼약하자, 의붓어미가 이를 시기하여 그녀를 장롱에 가두었다가 끝내는 불에 태워 죽였다. 동생들이 슬퍼하며 타고 남은 재를 헤치자, 거기서 한 마리 새가 날아올랐는데, 그 새가 접동새다.”

 

소쩍새는 그 이름에는 익숙해도, 실제 이 새를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쩍새는 야행성의 새이기 때문이다. 소쩍새는 외양만 보면 부엉이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에는 4월쯤에 날아와서 10월까지 머문다. 낮에는 나뭇가지에 앉아 자고, 저녁 무렵부터 곤충이나 작은 새 따위를 잡아먹으며 활동한다. 이 새는 주로 해질녘부터 새벽까지 운다. 그 우는 소리가 너무나 처량하고 애처롭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전부터 이 새에게는 슬픈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에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소화라는 소녀가 있었다. 소화는 성격이 착해서 부잣집에 시집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밥을 많이 하면 찬밥이 생기니 꼭 한 번만 하라고 하였다. 시어머니가 시킨 밥솥은 매우 작아서 시부모님과 서방님, 시누이 것을 푸고 나면 밥이 떨어졌다. 늘 자기 밥은 없었다. 솥이 작아서 항상 다섯 공기밖에 할 수가 없었으나, 시어머니의 명을 어기고 밥을 두 번 할 수는 없었다.

소화는 부잣집에 시집보낸 부모님을 원망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가 굶어 죽고 말았다. 한이 많은 소화는 죽어서도 저승에 가지 못하고 한 마리 새가 되어 솥이 적다고 솥적 솥적하고 울고 다녔다. 그래서 그 새를 솥적새라 불렀다.”

 

그런데 수많은 시의 소재로 등장한, 밤새워 슬픈 울음을 우는 새는, 실제로는 접동새가 아니라 소쩍새라는 사실이다. 쉬지 않고 온밤을 같은 소리로 목이 터지도록 우는 그 소리는 바로 소쩍 소쩍으로 들렸던 바로 그 소리인 것이다. 또 소쩍새가 그토록 목이 메어 우는 것은 무슨 한이 쌓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수컷이 짝을 찾기 위해서, 또 어린 새끼와 먹이, 장소를 지키기 위해서 울어 대는 것이다. 이쯤 되면 왠지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우리가 소쩍새와 접동새(두견이)를 혼동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화원악보에 전하는 옛시조를 보면 이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산 밑에 살자하니 두견이도 부끄럽다.

내 집을 굽어보며 솥 적다 우는구나

저 새야 세사간(世事間) 보다가 그도 큰가 하노라

 

이처럼 소쩍소쩍 우는 새를 두견이라고 쓰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소쩍새와 두견이를 구분하고 있었던 듯하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이런 기록이 있다.

 

중국 사신 주지번이 왔을 때 마침 소쩍새가 울었다. 그때 같이 있던 사람이 저것이 무슨 새냐고 물어봤더니, ‘중국에도 저 새가 있는데, 이 새는 원금(怨禽)이지 두견이는 아니오. 소쩍새는 모습이 비둘기 같은데, 양 날개가 조금 붉습니다.’ 하였다.”

 

또 허균의 성수시화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관동지방을 자주 유람했는데, 그곳 사람들은 다 두견이와 소쩍새는 같은 종류라고 하였다. 그때 마침 절강 사람 왕자작과 사천 사람 상방기가 함께 강릉에 와 있어서, 내가 그들에게 물어보니 두 사람이 모두 두견이가 아니라고 했다. 소쩍새가 두견이와 다른데도 우리는 흥취를 거기에 기탁하여 시에다 끌어와 쓴 것이다.”

 

그러니 중국 사람들은 소쩍새와 접동새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이를 혼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소쩍새는 밤에 울고, 두견이는 낮에 우는 새로 인식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승려 원경 충지와 서산 휴정의 시를 보면, 이를 알 수가 있다.

 

홀연 들려오는 두견이 소리에 창밖을 보니 忽聞杜宇啼窓外(홀문두우제창외

봄 빛 물든 온 산이 모두 고향이구나 滿眼春山盡故鄕(만안춘산진고향

 

발을 걷으니 산빛 눈에 가득 들어오고 捲箔引山色(권박인산색)

홈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 귀를 흠뻑 적시는데 連筒分澗聲(연통분간성)

하루 종일 문 앞에는 사람 기척 하나 없고 終朝少人到(종조소인도)

접동새만 저 홀로 제 이름을 부르네 杜宇自呼名(두우자호명)

 

이들은 다 같이 접동새(두견이)를 밤이 아닌, 낮에 우는 새로 알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소쩍새 소리를 접동새 소리로 오해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두 새는 서식지가 비슷하다. 다 같이 높은 나무 위에서 산다. 그런데 소쩍새는 야행성이라서 낮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낮에 보이는 것은 두견이 즉 접동새뿐이다. 사람들은 낮에 두견이를 보았던 그 위치에서, 밤이 되면 울어대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듣고, 이를 혼동하게 된 것이다. 즉 야행성인 소쩍새는 낮에는 잘 발견되지 않는데, 낮에 보면 두견이가 그 자리에서 발견되므로, 사람들이 두견이가 소쩍 소쩍하며 밤새워 우는 것으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소쩍새 소리를 들으면서, 접동새가 그토록 피나게 운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접동새는 뻐꾸기처럼 딴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생육을 떠맡기는 얌치없는 새인데, 사람들도 이러한 접동새의 수법에 속아 넘어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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