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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쌀 팔러 가다

작성자장진호|작성시간21.07.03|조회수598 목록 댓글 2

 

‘팔다’라는 말과 관련지어 어떤 이야기를 해 보라면,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팔러 가는 당나귀’라는 동화를 떠올릴 것이다. 티 없이 맑고 곱던, 아련한 어린 시절의 그리움과 함께.

‘팔다’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돈을 받고 물건을 남에게 주다의 뜻이다. 그런데 땔감이나 당나귀, 소, 말 등을 사거나 팔 때는 그냥 ‘사다, 팔다’라고 하는데, 쌀을 살 때나 콩을 살 때는 사러 간다고 하지 않고 ‘팔러 간다’고 한다. 사러 가면서 왜 팔러 간다고 할까?

이에 대해서 어떤 이는 ‘팔다’라는 말이 원래 ‘흥정하다’라는 뜻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견은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양식을 사는 경우에만 그 말을 사용하겠는가? 흥정의 과정 때문에 그렇다면, 흥정을 거치는 다른 물건들의 경우에도 가끔은 ‘판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는 것을 판다고 하는 품목을 살펴보면, ‘양식을 판다, 콩을 판다, 쌀을 판다’ 등 곡식류의 거래에만 적용된다. 돈을 주고 벼를 사들이는 일을 ‘벼팔이’라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계열이다.

아마도 이것은 가난과 굶주림에 따른 부끄러움을 감추고자 하는, 우리의 의식에서 표현되는 하나의 아이러니라 생각된다.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살아왔던 우리의 치부를 가리고자 했던 넋두리이기도 하다. 가난의 극단이 굶는 것이며, 양식이 없는 것보다 더 서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체면을 중시했던 문화 속에서, 그것은 한없는 부끄러움이기도 하였다.

우리 민족은 대대로 가난을 이고 살아왔다. 조선 시대에서 가장 안정된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세종 때에도, 먹을 것이 없어 어린애나 늙은이를 내다 버리는 일이 수없이 벌어져,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지방관의 상소가 실록에 빈번하게 보인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지금의 나이 많은 세대는 다 안다. 민초들이 보릿고개를 넘으며 얼마나 굶으며 살았던가를.

이렇게 체질화되었던 가난 속에서, 그들은 속으로 울면서 겉으로는 부끄러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양식이 떨어졌을 때 근근이 모은 얼마를 가지고 양식을 사러 가면서, 없이 사는 그 서러움과 부끄러움을 겉으로 덮기 위하여 팔러 가는 척했던 것이다. 자인 장에 쌀 팔러 간다고 하고, 영천 장에 콩 팔러 간다며, 밀려오는 서러움과 부끄러움을 가슴에 묻고 그것을 가렸던 것이다.

‘팔러 가는 당나귀’의 주제는 남의 이러저러한 이야기에 귀 얇게 흔들리지 말고 자기의 줏대를 세워 가라는 것이다. 세상은 원래가 남의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기 마련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소신대로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일찍이 공자도, “뭇사람이 좋아해도 자기가 살펴서 해야 하고, 뭇사람이 싫다 해도 자기가 살펴서 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한비자도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왼손으로는 네모를 그리려면 둘 다 못 이룬다.”고 경계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이치대로 되지 않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남이야 뭐라 하건 내 방식대로 살면 그만이겠지만, 어디 그것이 말대로 쉬운 일인가? 그뿐만 아니라 체면 문화가 힘을 발휘하는 우리 민족은 남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식량을 사러 가면서, 팔러 간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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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茶誾/김현수 | 작성시간 21.07.03 어린 시절 늘 듣고 긍금했던 바뀐 말 곡물등을 사러가면서 팔러간다.가난의 서러움과 부끄러움에 요즘말로 자존심 상하기는 싫어서 전해져 온 바뀐 뜻을 알게되었습니다.
    박사님 오래된 숙제를 푼 기분이네요.ㅎ
    고맙습니다.
  • 작성자장진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1.07.03 다은 선생님 오늘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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