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의 뜻을 지닌 방언(경상, 전남)에 ‘얼척’이란 낱말이 있다. ‘얼척’은 ‘얼’과 ‘척’이 결합된 복합어다. ‘얼’은 ‘덜된 또는 모자라는’의 뜻을 가진 접두사로, ‘얼개화, 얼요기’ 등의 어휘를 파생시킨다. ‘척’은 ‘그럴듯하게 꾸미는 거짓 태도나 모양’을 의미하는 낱말로, ‘애써 태연한 척을 하다’와 같이 쓰인다.
이 두 형태소의 의미를 종합해 보면, ‘얼척’이란 말은 ‘알맹이가 차지 못하고 불완전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임을 알게 된다.
이 ‘얼척’에 ‘없다’가 더해져 ‘얼척없다’가 된다. 이 말은 중앙어의 ‘어처구니없다’와 똑같은 뜻으로, 부실(不實), 미완(未完), 의외(意外)의 뜻을 지닌다. 얼척이란 말에 이미 알차지 못하다란 뜻이 있는데 또 ‘없다’란 말을 덧붙인 것은, 의미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엉터리없다’란 말에서도 그 예를 볼 수 있다. ‘엉터리’란 말만 해도 ‘실속이 없다’란 뜻이 되는데도, 또 ‘없다’란 말을 덧붙여 그 뜻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얼척’이란 말이 어떻게 ‘어처구니’로 변했을까? 그것은 ‘얼척’에 ‘구니’란 접사가 결합되어 생긴 것이다. 경남 방언에 ‘얼처구니’란 말이 있음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얼척’이 ‘구니’와 결합되는 과정에서 ㄱ이 탈락하여 ‘얼처구니’가 된 것이다. 이 ‘얼처구니’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발음의 간편화를 위하여 ㄹ이 또 탈락하여 ‘어처구니’로 변한 것이다.
다음으로 ‘얼척’에 결합된 접사 ‘구니’의 뜻을 생각해 보자. ‘구니’가 붙어서 된 말은 치룽구니, 발록구니, 사타구니, 더수구니, 조방구니 등이 있는 바, 그 뜻을 일별하면 다음과 같다.
치룽구니 : 어리석어서 쓸모가 적은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
*치룽 : 싸리를 채롱 비슷하게 결어 만든 그릇의 한 가지. 뚜껑이 없음
발록구니 : 하는 일 없이 놀면서 공연히 돌아다니는 사람
*발록하다 : 틈이 조금 바라져 있다
사타구니 : 샅의 속된 말
*샅 : 아랫배와 두 허벅다리가 이어진 어름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이 ‘구니’의 뜻을 보면 하나같이 ‘쓸모가 적거나 저속한 사물이나 사람’을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이 ‘구니’ 또한 ‘얼척’이 내포하는, ‘알맹이가 없고 부실하다’는 의미에 가까운 명사화 접미사임을 알게 된다. 또한 ‘얼척’과 ‘구니’가 그 의미의 유사성이 있어서 쉽게 복합어로 결합되었음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어처구니’는 ‘보잘것없고 알차지 못한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어처구니없다’는 ‘알차지 못하고 부실한 것조차 없다’는 뜻이다. 의외로 부족하거나 전혀 없다는 뜻이다. 곧 어이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현대의 사전에는 이 ‘어처구니’의 뜻을 ‘생각 밖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이라고 적고 있다. ‘보잘것없고 부실한 것’이 어떻게 이런 의미를 갖게 된 것일까? 이것은 한 말로, 반어법에 의한 쓰임으로서 그 뜻이 변하여 굳어진 것이다. ‘어처구니’도 이와 같이 통시적인 쓰임을 거치면서, 원래의 뜻과는 정반대의 뜻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어처구니가 세간에 떠도는 것처럼 추녀 위의 잡상이나 맷돌의 손잡이를 가리킨다는 말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