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하면 우리는 모두 그것을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명승지로 떠올린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은 가볼 수 없는 북한에 있는지라, 분단의 아픔을 자아내는 하나의 대표적인 제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가슴에 밀리는 비애감을 씹으면서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고 또 듣는다.
이 노래는 1961년 최영섭 씨가 KBS로부터 금강산을 주제로 한 노래를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한상억 시인에게 작사를 부탁하여 만들어진 가곡이다. 그러면 금강산의 절경과 분단의 아픔을 표현한 이 노래의 가사를 보자.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 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 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흰 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아래 산해 만 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
기괴한 만물상과 묘한 총석정
풀마다 바위마다 변함 없는가
구룡폭 안개비와 명경대 물도
장안사 자고향도 예대로인가
(후렴)
수수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듣는 이면 누구나 첫 구절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산’이란 말에 의아해 할 것이다. 맑고 고운 이 산은 누구의 주제이던가? 퍼뜩 그 의미가 와닿지 않는다. 주제란 예술 작품에서 지은이가 나타내고자 하는 기본적인 사상을 말한다. 춘향전의 주제는 여자의 정절이고 흥부전의 주제는 형제간의 우애다. ‘A의 주제’라고 했을 때, A는 예술 작품을 가리킨다. 그런데 ‘누구의 주제’란 말에는 A의 자리에 ‘누구’ 곧 사람이 왔다. ‘춘원의 주제’, ‘김소월의 주제’라고 하면 말이 되겠는가?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알아보니, 원곡의 가사는 ‘누구의 주재(主宰)’였다고 한다. ‘주재(主宰)’는 ‘어떤 일을 중심이 되어 맡아 처리함, 또는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재(宰)’ 자는 ‘주관하다’의 뜻이다. 이 노래에 이 말을 대입시키면 ‘누가 이 금강산을 맡아 만들어 냈을까(처리했을까)’란 뜻이 된다. 그러니 주재(主宰)가 맡는 말이다.
그런데 이 ‘주재(主宰)’가 인쇄과정에서 실수로 ‘누구의 주제(主題)’로 잘못되었고 원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전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원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주체가 되는 ‘주재(主宰)’란 말이 그것을 창작한 작품의 ‘주제(主題)가 될 수는 없다.
만약에 ‘김소월의 주제런가 진달래꽃’이나, ‘심훈의 주제런가 상록수’ 라고 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전혀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그리운 금강산의 이 ‘주제’란 말은 당장 ‘주재’로 바꾸어야 마땅하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을 계기로 작사자가 직접 일부 가사를 수정하여, 2절의 첫 구절 ‘짓밟힌 자리’는 ‘예대로인가’로, 2절의 끝 구절 ‘우리 다 맺힌 원한’은 ‘우리다 맺힌 슬픔’으로, 후렴의 ‘더럽힌 지 몇 해’는 ‘못 가본 지 몇 해’로 각각 바뀌었다. 남북 화해를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마치 금강산 여행자를 살해하고, 개성지구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사태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입맛이 씁쓸하다.
♣ 수수만 년(數數萬年): 수만 년의 강조어
자고향: 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샘에도 나오지 않은 말인데, 이광수가 지은 금강산유기를 쉽게 풀어 쓴 신원문화사의 ‘중학생이 보는 금강산 유기’에 보면 ‘자고향’이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 거기에 나오는 의미로 보면 ‘스스로 말라죽은 향나무’로 보입니다. 한자로는 자고향(自枯香)이라 생각됩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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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향래 작성시간 21.09.0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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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진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9.07 조 선생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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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茶誾/김현수 작성시간 21.09.07 누구나 애창곡으로 꼽는 가곡 '그리운 금강산'' 가볼 수 없는 애달픈 심정을 노래 가사에서 느낄 수 있죠?
일부 수정된 가사도 있지만 그중에 잘 못된 첫 구절 '주제'가 아닌 '주재,란 글자를 박사님께서 지적 해 주셨네요?
북한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 했다니 그 악랄함은 언제까지 가려나 가슴을 쓰리게 하네요.
모처럼 애창곡을 흥얼거리면서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장진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1.09.07 다은 선생님 오늘도 감사 인사를 받았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