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마지막 회) - 연재를 마치며
오늘로써 ‘산골작가의 솔직한 귀촌 보고서’ 연재를 마칩니다.
지난 3.16일부터 저는 오늘까지 정확하게 3개월 동안 이틀에 한 번 글을 올렸습니다. 그 와중에 여러 독자뿐만 아니라 현직 작가님(동고비 97등)들이 찾아와 댓글 달아주셔서 행복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문학이 어려운 가운데 흔쾌히 이 좋은 지면을 제공한 ‘밀리의 서재(밀리 로드)’ 관계자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재차 밝히지만, 이번 연재 글들은 귀촌 후 2017년부터 올해까지 여러 언론사(부산 국제신문, 경남신문, 서부 경남신문 등)와 매체(경남 공감, 경남문화예술진흥원, 부울경의 올곧은 소리 ‘시민 시대’ 등)에 게재한 칼럼 형식의 산문과 짧은(손바닥) 소설 등이었습니다. 당시엔 원고 마감 시간에 쫓겨 급히 작성한 것도 있고, 여러 객관적인 사실을 검증할 시간이 없어 그냥 쓴 것도 있기에,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팩트(fact)에 기반하여 재차 수정과 교정을 거쳐 올렸습니다.
그러기에 이 연재 글들은 귀촌 후, 저의 제2의 삶과 맞닿은 문학적 기록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기록의 중요성은 누차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2025년 ‘기록의 날’의 메인 주제가‘기록하는 오늘, 기억되는 내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글들을 읽어보신 독자분께는 과연 산골작가의 ‘귀촌 살이’가 진짜 행복한가? 아니면 그때 행여 잘못된 결정을 잘 내려 불행한가, 하는 궁금점이 생길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 너무도 성급한 결정이라 초기엔 솔직히 저의 빠른 귀촌을 후회했습니다. 당시 늦게 낳은 아이들이 중2, 초등2였거든요. 아무리 시골이라도 교육비 부담이 컸고(특히 대안학교 중2 아들), 초등2였던 딸아이가 “아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산골로 와야 해?”하는 말이 무척 가슴 아팠습니다.
-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이런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중고교 대안학교 과정을 다니면서 농사짓기, 흙집 짓기, 밥하고 빨래하기 등‘혼자 살아가는 법’을 완전히 마스터한 후 인근 도시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에 앙탈 부리던 딸아이는 어느새 착하고 예쁜 대학 4학년이 되어, 인근 도시에서 재미있게 살고 있답니다.
- 아무런 준비 없이 산골로 왔기에 초장기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일 년 내내 비닐 하우스에서 상추, 치커리, 고추 등 키워 읍내 식당에 판매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수입은 연 300~500만 원에 불과하였습니다.
-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이제 저와 아내는 각각 도시에서 잘했던 일 - 즉 아내는 간호사, 상담사 자격으로 현재 지자체에서 일하며 텃밭을 가꾸면서 만족하고, 저 또한 지역에서 제법 입소문이 난 소설가, 스토리작가, B급 통기타 가수, 프리랜스 기자로, 도시에서 꿈꾸던 깨끗한 자연에서 잘살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니 연재 중 모든 게 감사한 나날이었습니다.
모쪼록 지금도 ‘밀리의 서재’에 열심히 글 올리는 작가분들의 무운을 빕니다. 저는 다음 기회에 더 좋은 글(아마 장편소설이 될 듯)로 재차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리산 산청, 창작실(구들장)에서
소설가 이인규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