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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주서 송광연이 전유한 뒤에 올리는 서계

작성자송대현|작성시간26.06.23|조회수15 목록 댓글 0

송자대전 제23권 / 서계(書啓)

주서 송광연이 ②전유한 뒤에 올리는 ③서계 무신년

(1668, 현종9) 11월 28일〔注書宋光淵傳諭後書啓 戊申十一月二十八日〕

소신의 형편은 행조(行朝 행재소(行在所)의 조정(朝廷))에서 직접 뵙고 말씀드리던 날에 다 아뢰었으나 오히려 위로 다다르지 못하여 다시 새로운 명이 내려졌습니다. 소신은 몹시 지치고 위축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기에, 감히 지레 돌아오는 계책을 실행하였습니다. 지은 죄가 하늘에 닿을 정도이니, 만번 죽는 것도 가볍습니다. 삼가 강 건너에서 다만 두려워하며 죄를 기다렸습니다.

삼가 받들건대, 자애로운 성상께서는 견책을 내리지 않고 도리어 사관을 보내어 ④면유(面諭)하겠다는 말씀을 내리셨습니다. 신은 몹시 감격하여 울음을 삼키며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예로부터 신하 중에 임금에게 무시를 당하여 나라를 떠나간 자는 있었으나 후한 대우가 망극한데도 머물지 못한 자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아, 신의 종적이 또한 슬프고도 슬프지 않겠습니까. 신이 이미 무거운 죄를 짊어졌는데, 어찌 감히 유사(有司)의 법을 돌아보지 않고 갑자기 대궐 문을 들어가겠습니까. 다시 왕명을 어긴 데 대한 처벌을 달게 받고 죽을죄를 용서하는 은혜를 받지 않겠습니다. 여기에서 죽어 없어지기를 바랄지언정 인간 세상에서 머리를 들고 싶지 않습니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정기 (역) | 2022

注書宋光淵傳諭後書啓 戊申十一月二十八日

 

小臣情勢。罄竭於行朝面陳之日。而猶未能上格。復有新命。小臣窮㞃蹙迫。罔知所出。敢出於徑歸之計。負犯稽天。萬死猶輕。竊伏江外。祇慄俟罪矣。伏承聖慈不下何問。而反遣史官。賜以面諭之德音。臣感極飮泣。不知所達矣。自古人臣。被君父厭薄而去國者有之矣。未聞有眷遇罔極而反不敢留者也。吁。臣之蹤跡。不亦悲且戚乎。臣旣負重罪。何敢不顧有司之法。而遽入天門乎。復甘違命之誅。未承宥死之恩。寧願滅死於此。而不欲擧頭於人世也。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3

① 주서(注書) : 조선시대 승정원의 정7품 관직.

정원은 2인이다. 고려시대 중추원의 당후관(堂後官)이 1400년(정종 2)에 승정원 당후관으로 되었다가 뒤에 주서로 개칭된 것이다. 승정원의 기록, 특히『승정원일기』의 기록을 담당하여 청요직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초기에는 사관(史官)을 겸하지 않았으나 1457년(세조 3) 7월부터 비로소 춘추관기사관을 당연직으로 겸임하게 하여 사초(史草)의 기록이나 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또, 의금부·전옥서(典獄署) 등에 중요 형옥이 있을 때에는 그 심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그 업무가 과중하게 되자 선조 때부터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 1인을 증치하여 비변사와 국옥(鞫獄)에 관한 문서를 전담하도록 하였다. 연산군 때에는 가설주서(假設注書) 2인을 더 두기도 하였으나 1506년(중종 1) 중종반정 이후 폐지하였다. 다만, 주서 2인이 모두 궐원이 되었을 때에는 가주서를 임시로 선임하기도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② 전유(傳諭) : [역사] 예전에, 임금의 명령을 의정(議政)이나 유학에 정통한 선비에게 전하는 일을 이르던 말.

③ 서계(書啓) : [역사] 조선 시대, 임금의 명령을 받은 관리가 처리한 그 일의 전말을 보고한 문서.

④ 면유(面諭) : 마주 대하여 말로 잘 타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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