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수레바퀴를 굳이 세려 하는가.”
밀물과 썰물은 밤낮을 모르고
해 뜨고 달뜸은 언제나 그칠런가.
마음도 이 같이 인연 따라 흐르거늘
달리는 수레바퀴 셀 필요 있겠는가.
[덧붙임]
세월은 무상(無常)하다. 마음 또한 무상하다.
어제의 그 때가 지금도 그 때요, 내일의 그 때 역시 오늘의 그 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하는 바가 어디인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달리는 수레바퀴를 굳이 세려고 하듯이 오늘은 이러쿵 내일은 저러쿵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옛적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도 그렇고 아마도 내일도 그러할 것이 틀림없다.
산다는 것은 인과(因果)가 윤회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생로병사(生老病死)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반복일 수밖에 는 없다 하겠다.
고대시대나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를 비교한다면 엄청난 문명의 발달을 이루었고, 삶의 질 또한 엄연히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삶의 실체를 엄밀히 따져보면 옛적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왜냐하면 옛날에도 즐겁고 괴로운 것, 쉽고 힘든 것은 오늘이라 해서 달라지지 않았고, 내일이라 해서 더 좋아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외향(外向)은 엄청난 발전에 의해 말도 못할 정도로 편리해 졌건만, 마음의 평안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과의 수레바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먼 훗날에도 달라짐이 없을 것이고, 하물며 죽어서 영혼이 된다 하더라도 인과의 감정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계속 거듭하게 될 것이다.
조금 더 좋은 것을 차지하려고 싸우고 볶고 시시비비(是是非非)하며 온갖 변화가 무쌍하게 살아 간들, 그에 따른 인과의 과보는 점점 더 쌓이게 되고, 업의 모습은 더 큰 사건과 더 큰 아픔을 양산할 뿐이다.
그러니 괜한 욕심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않은 악보(惡報)의 과보(果報)를 감당하기에는 그 아픔과 고통이 만만치 않을 것이니, 이 즈음에서 인과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인연의 순리를 따르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경우에도 마음을 다잡고 탐하거나, 성내거나, 나의 아상(我相-잘난체)을 드러내거나, 알량한 이익을 위해 잔생각을 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의 작은 이익을 위해 마음을 송두리째 뺏겨서 스스로 편치 못한 과보를 범하는 행동 이야말로 지극한 어리석음이 아닐 수 없으니, 마음을 허공 같이 비워서 아무리 돌을 맞아도 아프게 부딪칠 것이 없는 항상 유연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편안함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깨침을 통하여 영원히 나고 죽는 생사(生死)의 과보가 없어져서 고통과 슬픔, 괴로움과 아픔이 없는 해탈(解脫), 성불(成佛)의 길로 나가야 한다.
기도는 진정한 마음을 찾게 할 것이고, 참선은 과보(果報)를 없애 줄 것이며, 보시는 평안한 마음을 만들어주고, 정진은 이 모두를 갖게 할 것이다.
- 진우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