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卍 ▶…명상법어-

[명상법어]卍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의 시비(是非)의 마음은 왜 생기나.

작성자智 慧 安(지혜안)|작성시간26.06.20|조회수34 목록 댓글 0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의 시비(是非)의 마음은 왜 생기나. ”


바다는 비에 젖지 않고
바다는 뜨거운 햇볕에 들끓지 않으며
바다는 거센 풍랑 일어도 변함없이 만상(萬象)을 머금듯
내 마음 해인(海印)인줄 알면 고해(苦海)를 벗어나리.


옳다 라는 것의 정의(正義)를 주장하는 것은 대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논리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름을 주장하는 불의(不義)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논리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옳고 그름의 시비(是非)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인식과 관념에 의해 갈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자업(自業)과 공업(共業)의 인과(因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양반과 천민의 관계나, 여성의 지위, 일반인들의 인권 등은 지금의 잣대로는 옳고 그름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조선시대의 옳음과 정의, 그름과 불의는 지금 시대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는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자상하게 키우느냐 엄하게 키우느냐의 문제 또한 어느 것이 옳고 정의로우며, 그르고 불의 한 것이냐를 판단하기란 힘든 일이다.

자연의 조화나 인간과의 관계나, 어느 한 부분만을 놓고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따진다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어느 한 단면만 놓고 왈가왈부하는 꼴이다.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이 잔잔한 것이 옳은 정의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만이 옳은 정의냐, 천둥 벼락이 쳐서 고목을 쓰러뜨리는 것이 그른 불의냐, 지진이 나서 땅을 갈라지게 하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그른 불의냐 하는 시비 논란 이야말로 어리석은 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듯,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이와 같은 경우들이 비일비재 하다.

천둥 번개와 해일 지진 등이 그 자체로 우연히 일어나지 않듯이, 전쟁을 벌여 사람들이 희생이 되는 것도 책임 공방이 있게 마련이지만, 분명 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저변에는 여러가지 인연들이 얼키고 설키는 작용들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시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러한 옳고 그름의 시비에는 감정이 작용된다는 것이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듯, 옳고 그름의 시비의 대상들 또한 서로 상대적으로 의지하며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인과의 고리이기도 하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전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된다.

이를 통하여 기분과 감정이 생기는 것은, 엎치락뒤치락하는 마음의 고락(苦樂)의 업(業)이 마음밖의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시비(是非)의 모습으로 비춰지게 된다. 결국, 좋고 나쁜, 즐겁고 괴로운, 행복과 불행의 상대적인 고락(苦樂)의 업(業)이 시시비비의 모습으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비와 고락은 인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가 물고 물리며 윤회를 거듭하는 것이므로 이에 현혹되거나, 분별(分別)의 늪에 빠져서 허우적 된다면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꼴에 지나지 않으니, 분별심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중도(中道)의 무심함을 지녀야 할 것이다.

마치 바다와 같이 시비와 고락에 젖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듯, 폭풍이 일고 파도가 치더라도 바다는 그대로 고요하고 잠잠해 지듯, 삼라만상 모두가 그대로 비추어도 바다는 묵묵히 말이 없듯이, 마음도 이와 같이 해인(海印)과 같은 바다가 된다면 고해(苦海)의 풍상은 그 즉시 사라지게 된다.

여기에 무슨 고락(苦樂)의 인과(因果)가 있을 것이며,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윤회(輪廻)가 발을 붙일 것인가.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해인(海印)과 같이 고해(苦海)를 떠난 마음을 만들어 줄 것이다.

- 진우스님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