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왜 비워야 하나? 그 방법은? ”
허공은 해와 달이 뜨고 짐에 걸림이 없고
물은 흘러감에 스스로 걸리지 않는구나.
허공 같은 마음은 피차(彼此)에 걸림이 없고
물 같은 행동은 스스로 걸림이 없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말과 같이 그리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우지 않으면 한 티끌이라도 걸리게 되니, 이는 인과(因果)의 섭리(攝理)상 감수할 수밖에 없는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자작자수(自作自受)라 할 것이다.
좋은 것을 탐하면 탐하는 만큼 좋지 않은 것에 걸릴 수밖에 없고, 편안함을 추구하면 할수록 불안한 마음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과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하여 걸리지 않는 것은 또한 아니니, 이래도 걸리고 저래도 걸리게 되어 그야말로 옴짝달싹 할 수도 없는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말을 하면 그 말에 걸리어 마음을 뺏기고, 생각을 하면 그 생각에 걸리어 복잡한 생각이 되고, 행동을 하면 그 행동에 걸리어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고, 건강한 몸이 되고, 진한 사랑을 하고, 천하를 호령한다 해도 그에 상응한 인과의 대가는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으니, 걱정 근심, 허무한 마음, 불안한 마음, 더 큰 욕심에 의한 조바심, 늙음과 병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조울증과 우울증, 등등의 고통과 괴로움의 마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일체의 인연을 모두 버리고 출가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동서남북 사문(四門)을 통해 이 같은 현실을 여실히 꿰뚫어 보셨다.
일체의 명리(名利)를 버리고, 가족도 여의고, 삭발 염의(染衣)한 수행자들은 어리석은 생각이나 바보 같은 마음에서 출가한 것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이나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 알다시피 해탈이고 열반이며, 성불에 목적이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일 진데,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를 실현할 것인가.
첫째, 분별(分別)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좋고 싫음의 감정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마음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현상과 형상은 인과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때에 맞추어 움직여 나타나는 것을 인연(因緣)이라 이름한다.
즉, 해가 뜨는 원인으로 말미암아 해가 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해가 지는 결과가 또 다시 원인이 되어 해가 뜨는 결과로 이어지듯이, 태어남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늙고 병들고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고, 늙고 병들고 사라지는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태어나고, 젊고, 건강하고, 살아 움직이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인과 인연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남으로부터 욕을 먹거나, 억울함을 당하거나, 불치의 병을 얻거나, 얘기치 못한 사고를 당하거나, 실패하거나, 낭패를 보거나, 등등의 것 또한, 그 어떤 과거의 원인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인과의 현상이니 만큼, 어렵더라도 좋고 싫은 감정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래서 모든 현상과 형상의 인연들은 인과에 의한 과보(果報)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좋다 싫다 라는 감정의 마음을 비워야 더 이상 인과(因果)에 걸리지 않고 자유자재(自由自在)한 마음이 된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좋고 싫은 감정의 분별을 하지 않고, 마음을 허공과 같이 비우고, 물 같이 스스로 걸림이 없게 하여야 하느니, 일상생활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기도요 참선이라 할 것이며, 더불어 흔연스런 보시(布施)야 말로 마음을 더욱 청정케 하는 보살행이 되므로, 이를 꾸준히 정진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해탈(解脫)과 성불(成佛)이 눈 앞에 다가올 것이다.
- 진우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