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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과 믿음

작성자인생공감|작성시간26.06.16|조회수36 목록 댓글 0

서원과 믿음전생 또는 금생의 습관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업이라고 한다.

불교는 이 업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서

이상적인 세계를 이루라고 가르친다.

이상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량겁을 닦아 나가겠다는 다짐이 서원(誓願)이다.

해탈 또는 열반은 업의 세계에서 서원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불교를 서원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먼저 〈무량수경〉에서 법장비구가

무량겁 전에 수행할 때 세운 48대원을 보자.

 

고통은 그 명칭까지도 없는 세상, 못생긴 이가 없는 세상,

장애자가 한 명도 없는 세상, 누구나 좋은 이름을 드날리는 세상,

원하는 대로 성취되는 세상, 건강한 몸을 가진 세상,

말을 잘하는 세상 등을 꿈꾼다.

한 마디로 좋은 것 원하는 것은 다 성취되는 이상세계를 그린다.

그 18번째에 “간절히 염불한 이는 누구나

반드시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세상”을 그리는 원이 나온다.

 

지극 정성으로 염불했음에도 불구하고

극락에 태어나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성불하지 않겠다는 것이 법장비구의 서원이다.

그런데 법장비구는 자기의 서원을 성취하고

이미 아미타불이 되어서

지금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있다.

 

우리가 염불을 함으로써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는 근거는

저 법장비구의 서원과 수행 완성에 있다.

법장비구가 무량겁 전에 수행할 때에 염불하고도

극락에 못 가는 이가 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미 부처가 되었으니,

우리가 염불하면 법장비구의 서원대로

누구나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불경은 무조건적인 믿음을 요구한다.

첫째 법장비구가 48원을 세우고 수행했다고 하는 것,

둘째 법장비구가 성불을 해서

자기의 원이 모두 성취되었다고 하는 것,

셋째 우리도 염불하면 법장비구의 원에 의해서

극락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믿어야 할 사실적 또는

논리적 근거를 대라고 하면 아무것도 없다.

만약 어떤 이가 불경의 이야기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으니 믿을 수 없다고 하면,

여기서 대화는 끝이 난다.

불경은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답답한 것은 너희 중생들이다.

극락세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이리 저리 알음알이를 굴리지 말고

무조건 믿고 따라 보라고 말이다.

 

어떤 이는 전적인 믿음을 요구하는 서원을

미혹한 중생들을 어떤 경지로 이끌기 위한

교육적인 코스라고 설명할는지도 모른다.

마치 진리를 설명할 때, 유치원생에게는 사실 여부보다는,

그 수준에 맞추어 단순화해서 일러주듯이 말이다.

그러나 서원을 방편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그런 식으로 풀이하면 방편이라고 하더라도

방편의 효과를 잃게 되고,

참된 가르침이라면 더욱이나 불도로부터 멀어진다.

〈천수경〉의 끝에 나오는

부처님의 열 가지 서원, 사홍서원,

그리고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열 가지 서원도 아주 큰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을 요구한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삼악도와 탐진치를 멀리하고

깨달음의 지혜를 얻으려는 원을 세우라고 한다.

중생도 건지고 번뇌도 끊고

마침내 불도를 이룰 원을 세우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중생의 마음은 어떤가.

금은보화로 만들어진 저승보다는

철로 만들어진 환경이더라도

이승의 나를 더 지키려고 한다.

보현보살의 원 가운데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찬탄하고,

공양을 올리고,

오래 오래 머물라고 부탁하는 내용이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 같은 원은 성취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작은 나가 불보살을 본받아

큰 원을 세우려면 참으로 큰 믿음이 필요하다.

불교는 서원과 믿음의 종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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