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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라도 죽는날은 ‘오늘’

작성자함께 가는길|작성시간26.06.17|조회수39 목록 댓글 0

정 우 스님
10년 뒤라도 죽는날은 ‘오늘’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네 가지 이치에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선지식을 가까이 하십시오. 
세 사람이 걸어가는 데 좋은 사람은 귀감으로 삼고 
모진 사람은 경계로 삼으면 두 사람 다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내 아내, 내 가족, 내 자식, 내 이웃이 스승이고
 선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한 마음으로 바른 법을 들으세요. 
세 번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법을 생각하십시오. 
네 번째는 여실한 이 법을 닦아 행하는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신해행증’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입니다. 
믿고 이해하고 행동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얻어진다는 말입니다.

죽는 날은 오늘입니다. 우리는 오늘 죽을 겁니다. 
10년, 20년, 30년이 있더라도 가는 그날이 오늘이라는 겁니다. 
내일 죽을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수업』이라는 책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생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일까? 내가 원하는 가정일까?
 내가 원하는 부부간일까?’

저는 출가해서 지금까지 스님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힘든 적은 있었습니다.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인생에서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숨이 넘어가려고 할 때 이러쿵저러쿵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려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묻는 다면 ‘인생’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불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인간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처님이 어떤 분이냐고 물으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고 포근하고 
온화한 분’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면 
스스로부터 가족들에게 따뜻하고 편안하고 넉넉하고 
포근한 이가 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렇게 짧은 인생, 그 시간 속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치고 피하고 받아들이면서 열두 고개를 넘듯이 여기까지 왔다면, 
절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가 잘나서 통도사 주지가 되었다는 소리는 어림없습니다. 
벽안 스님이 그 자상한 글로 보내 주신 편지, 
천리 길을 마다않고 제가 살고 있는 곳까지 오셨던 월하 스님, 
많은 어른 스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그리고 많은 불자들의 자양분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은사인 월하 스님께서는
 ‘염염 보리심이면 처처가 안락국’이라는
 말을 써서 보내 주신 적이 있습니다.
 ‘마음에 보리심을 여의지 않으면 있는 그곳이 편안한 곳이지 
편안한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탐, 진, 치 삼독심을 지니고 있는 한 
극락에 갈 입구도 삼악도가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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