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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웅열 신부님

감사는 신앙의 첫 단추

작성자John|작성시간26.06.23|조회수1 목록 댓글 0

감사는 신앙의 첫 단추

친타📱 2026/01/18 오전 02:17 (583)

 

▪루카 23,35ㄴ-43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아멘.

제가 늘 묻는 첫 마디가 ‘이곳에 어떻게 오시게 됐습니까?’입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도 많이 들어 자동으로 ‘주님께서 불러 주셔서 왔습니다.’
그렇지만 분위기 파악을 못 하시는 분들은 차 타고 왔습니다, 하시는데,
거룩한 장소는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이 부르셔야 합니다.

성인들이 전구하시며 오늘 여러분들은 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마 이 시간 미사를 드리는 전 세계 어느 성당에서 이렇게 많은 성인이
쳐다보는 가운데 미사 드리는 곳은 유일하게 이곳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좋으십니까? (대답) 예, 아멘.
부담스러우십니까? (대답) 아니요.

오늘 일이 무슨 축일입니까?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죠.
그리스도 왕, 왕(王)자가 한문으로 어떻게 생겼죠?
땅과 하늘을 십자가가 합해져 있죠. 1획은 하늘이고 3획은 땅입니다.
중간에 십자가로 연결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땅에 알리고 땅의 청원을 하늘에 알리는 게 왕의 직분입니다.
이렇게 왕(王)자라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이 십자가로 연결이 돼 있다는 거죠.

그 십자가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 복음에서 십자가상에 있는 좌도와 우도의 이야기가 나오죠.
여러분이 들으신 대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간 인류 가운데
가장 확실히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오늘 예수님의 우편에 있었던 우도죠.
뭐라고 하셨어요?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죠?
우리들이 세상 임종할 때가 한 번은 오겠죠.
그때 우리 귀에 예수님이 이 말을 해 주시면 얼마나 편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을까?
‘너는 오늘 나와 같이 낙원에 있을 것이다.’
이 얘기를 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어요.
‘너는 조금 딴 데가 있다가 올라오너라.’ 이러면 좀 서운하겠죠.

그런데 오늘 강론과는 조금 빗나간 얘기지만 수녀님들의 옷이 있죠, 수도복.
요즘에는 사복 수녀들도 있어요.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세상과 조금 더 가까워지겠다며
수도복들을 벗어버리고 사복을 입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런 사복 수녀회는 다 망했어요. 지원자가 없어요.
지금도 지원자가 줄 서 있는 곳은 봉쇄 수도원이에요.
그런데 봉쇄 수도원은 한 사람이 죽어야만 들어가요. 그 빈자리를.
시대가 아무리 지금처럼 편리해지고 문명이 발달해도,
수도 정신의 고유한 것은 여전히 귀하게 여겨지고 있어요.
그런데 수녀님들이 수도복을 입을 때 머리를 가려요. 그게 어디서 나왔을까?
왜 수녀님들은 옛날부터 머리를 가렸을까?
그 근원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죠.
여인들은 머리를 가리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머리를 가리라고 하는 것이 여자를 무시해서가 아니에요.
여자 머리와 남자 머리는 좀 다른 거 아시죠?
여자들은 머리 모양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죠.
할머니도 되고, 아가씨도 되고, 다방 종업원도 될 수도 있고 수녀님도 될 수 있어.
그래서 거기서 나온 게 지금 쓰고 있는 미사보에요.
미사보가 바로 바오로 사도의 말에서 나온 거예요.
아까 세어 보니까 딱 반반.
반은 안 쓰고 왔는데, 미사보 없어요? 여기저기서 받으셨죠?
세례받을 때 것을 잘 모셔두는 것 아이라 써야 해요.
사제가 제의를 입는 마음으로 자매님들은 미사보를 써야 해요,

미사보를 쓰는 이유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한 거도 또 하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애덕이야.
여러분들, 성당에 앉아 있으면 앞사람 머리를 보기 싫어도 보게 되죠.
남자 머리는 다 그 머리가 그 머리라, 유난히 요란 떨지 않은 이상 분심 들지 않아요.
대게는 앞에 앉아 있는 여자들의 머리를 보고 분심이 들어요.
다 보이거든.
신부님의 강론은 안 들리고 그 여자 머리 분석을 해.
‘세상에, 새치가 저렇게 많이 났는데 염색이라도 좀 하고 오지.’
‘어떻게 이 여자는 머리를 새빨갛게 하고 왔을까?’
‘아우, 치렁치렁 지저분해, 좀 자르지.’
다시 말하면 내 머리 때문에 다른 사람을 분심 들게 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미사보로 가리고 있으면 뒷사람이 내 머리를 가지고 분심 들까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한 애덕이 첫 번째예요.
두 번째는 나 자신을 위합니다.
미사보을 쓰고 있으면 앞밖에 안 보여요.
안 쓰면은 옆이 다 보여, 시야가 왼쪽, 오른쪽으로 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미사보를 쓸 때 기본 정신은 뭐냐?
미사보를 쓸 때 ‘성령의 너울이 내 머리를 덮는다’라는 마음으로 하세요.
사제가 제의를 입을 때 얼마나 거룩한 마음으로 입으려고 애쓰는지 몰라요.
마찬가지예요. 그런 마음으로 미사보를 써야죠.
좋은 전통은 지켜야 해요,
우리가 여기 정원 들어올 때 이렇게 큰 표시가 팻말이 있죠?
‘혼란스러울 때는 전통으로 돌아가라.’
지금 환난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해요.
전통으로 돌아가야 해요.
교회도 세상과 열려 있다는 핑계로 수녀들 옷도 짧아지고,
신부들도 다닐 때 사제복도 안 입고,
이게 성당인지 예배당인지 구분 안 될 수도 있어요.
외국에 있는 주교님들이 한국에 와서 미사 드릴 때,
요즘은 덜하지만 한 20년 전만 하더라도 다 눈물을 흘렸대요. 왜?
이렇게 미사보를 쓰고 있는 것이 당신 어렸을 때 고향에서 미사했을 때 모습이야.
그것을 이 한국 신자들을 하고 있는 거예요.
너무 감동 받은 거예요.
그리고 교실마다 레지오 단원들이 꽉꽉 차서 레지오 하는 것도 또 감동 받아.
그런데 지금은 점점 안 써요.
그리고 내가 분석해 보니까 잘 사는 동네 자매들일수록 미사보를 안 써.
피정 가서 왜 안 쓰는 거를 분석했더니 이유가 있어.
후까시를 주고 왔는데, 강남 후까시가 더 비싸겠죠?
한 시간 내내 쓰고 나면 부풀렸던 머리가 푹 가라앉는데요.
하지만 귀찮아도 써야 합니다.
여러분들, 신앙은 귀찮아야 해요.
편리한 건 신앙이 아니에요. 신앙은 힘들어야 해요.
만일 사제가 제의를 안 입고 미사 집전한다고 해봐요, 다르죠?
마찬가지로 오늘 안 쓰고 오신 분들은 내가 혼내는 게 아니고,
모르고 있기에 중요성을 가르쳐 드리는 거예요.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 대한 애덕이 첫 번째다.
내 머리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분심 들지 않게 하는 것도 큰 사랑이에요.
두 번째는 나 자신이 집중할 수 있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그 후까시가 좀 가라앉으면 어때요? 다시 일으키면 되는 거지.
그래서 그거는 전혀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사제가 불편하다고 제의를 벗어버리고 미사를 드리면 그게 아름답겠습니까?

오늘 강의와 상관이 없지만, 나도 할배가 돼 가니 잔소리가 많아져요.
하지만 그것은 원칙이니까.
원칙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들이 제대로 못 하는 것이 많지 않습니까?
결국에는 이 세상 살다 보면 비록 세상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 해도
그 처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에요.
사실은. 교회도 자꾸만 실용주의가 들어오고 편리 주의가 들어오고
성당마다 장궤틀 다 떼어 없애버리고 보통 문제가 아니에요.
그게 바로 교회 안에 어둠이 들어와 있다는 얘기잖아요.
마귀가 ‘나 마귀다.’ 하고서 그렇게 망가뜨리지 않죠.
너무너무 합리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게끔 하면서 교회를 망가뜨려요.
그 대표적인 게 장궤틀을 떼어 없애는 것이에요.
명동성당부터 떼기 시작했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보다 훨씬 더 문명인 나라도 성당에 다 장궤틀이 있어요.
성전 들어갈 때 성수 찍으면서 제대 향해서 반 무릎 꿇죠.
나올 때 반 무릎을 꿇고 나오고.
성체 성혈 축성할 때는 국왕이 앉아 있어도 전부 다 무릎을 꿇어요.
그래서 장궤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아주 큰 병에 걸린 겁니다.
한국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아니죠.
그걸 왜 없앴냐고 물어보면 장궤틀의 길이만큼 의자를 적게 놓는대요.
그래서 그것을 떼어 없애고 뒤에 몇 줄을 더 놓겠다는 거예요.
신자들은 무릎을 꿇고 싶어도 맨 앞줄 한 줄밖에 없어요.
여러분들, 피조물이 창조주 앞에 하는 첫 번째 경배 행위가 뭐예요?
무릎을 꿇는 것, 더 나가서 엎드리는 것이죠.
제일 큰 잘못은 신부들이 90% 잘못한 거예요. 분별 못 하는 거예요.
합리주의, 실용주의 때문에 분별 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 10%는 신자들 잘못이에요.
본당 신부가 없애려고 하면 사목회원들이 말려야죠.
‘신부님, 그건 안 됩니다. 장궤틀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요.
우리 교회도 군데군데 아름다웠던 것들, 거룩한 것들이 전부 다 사라져 가고 있어요.
저는 한평생 그 원칙을 얘기하면서 살았죠.
그러다 보니까 나를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제들도 많아요.
그 대신에 내 반대편에 쓰는 신부들도 있겠죠.
열심히 장궤틀 뜯어놨는데 피정 때 불렀더니 장궤틀 얘기를 또 하네, 괜히 불렀네.
안티가 생기는 것은 상관없어요.
사제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올바른 소리 해야죠.
사제도 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양들을 끌고 절벽으로 집단 자살을 해요.
요즘은 별의별 기도가 다 있대요.
본당 신부님이 빨리 가기 9일 기도가 있대.
어느 성당에 가면 신부님 얼굴이 어두워.
어디 아프시냐 물으면, 마음이 아프대요.
‘신자들이 말을 더럽게 안 들어요. 이제 6개월만 버티면 이동해요.’
또 신자들 얼굴은 당연히 어떻겠어요?
신자들도 똑같은 얘기를 해.
‘우리도 6개월만 버티면 돼요.’
양과 목자가 서로 떠나길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으니, 100억짜리 성당 지면 뭐해요?
이게 무슨 교회에요.
천막을 친 개척 교회라 하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있고,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살고 있는 곳이 아름다운 교회죠.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것이 바로 사제인데 그 사제는 십자가를 져야 해요.
십자가를 안으려고 하면 세상을 향하여 바른 소리를 하려고 해야 해 줘.
왕(王)자가 이루어질 수가 없죠.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무엇 하는 날이에요?
원래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추수 감사와 같았어요.
그래서 시골 같으면 그해 농사지은 걸 미사 올 때 가져왔죠.
호박도 하나 머리에 이고 오고, 쌀도 이고 와서 제대가 가득 차죠.
그래서 옛날에는 추수 감사 때 쌀이 신부·수녀들 1년 양식이었죠.
그리고 남은 것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나눠 줬어요.
그게 추수 감사의 의미죠.

오늘은 그리스도왕 대축일이고 연중 마지막 주일이죠.

여러분들, 세상에는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 있어요,
그런 진리가 있죠.
사람은 가능한 한 죄짓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것은 저절로 아는 진리예요.
반면 찾으려고 애쓰지 않으면 눈에 안 보이는 게 있어요.
숨이 끊어질 때까지도 그것을 못 보고 죽어요.
뭘까요? 내가 답을 조금 전에 얘기했는데, 감사예요.
감사는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찾으려고 애를 써야 해요.
왜 사람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못 사는 걸까?
그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찾아야 하는 것인데 찾으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이에요.
다시 말하면 은총을 못 느끼는 은총 불감증이나 감사 불감증이나 다 같은 말이지요.
내가 가끔 피정 때 그런 예화를 든 적이 있어요.
지금은 그 공소가 없어졌는데, 강원도에 가면 한 공소가 있었어요.
공소는 신부님들이 머물지 않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와서 미사만 하고 가요.
그래서 신부님이 안 오실 때는 공소 회장님이 공소 예절을 해요.
강원도에 공소가 하나 있는데 그 공소의 이름이 ‘감사 공소’예요.
왜 감사 공소가 됐는지 줄 압니까?
6·25 때 미국 군종신부님이 부대를 잃어버리고 산속으로 헤매다가 지쳤죠.
그러다가 어느 산 중턱에 있는 초가집을 발견했는데 불빛이 새어 나오더래요.
이제 살았구나 하고 쫓아갔지요.
찢어진 창호지 구멍으로 안을 보니 제일 먼저 벽에 십자가가 걸려 있더래요.
우리 교우 집이네!
그러면서 기도하는데 보니까 식사 전 기도를 하고 있더래요.
아버지가 기도하고 또 엄마가 기도하고 애들 둘이 또 기도하더래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놓고 이렇게 감사하다고 하는지 밥상을 보니까~
세상에! 옛날에 바가지 있죠? 바가지에다가 냉수 한 그릇.
그것 떠 놓고 감사 기도를, 식사 전 기도를 하더래요.
‘이런 시원한 물도 못 먹는 사람이 많은데 이 물을 실컷 먹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신부님은 그 모습을 보고 너무너무 감동하였어요.
감사는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느냐가 기준이 아니구나.
저렇게 물 한 그릇을 떠 놓고도 저렇게 아름다운 기도를 할 수 있구나.
신부님은 미국에 건너가서 모금해서 바로 그 자리에다가 공소를 세웠어요.
그래서 감사 공소예요.

성경에 열 명의 나병환자가 문둥이 소굴에서 내려와서 돌에 맞아 죽을 각오 하고,
예수님이 계신 마을로 내려온 얘기를 아십니까?
열 명 가운데 한 명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어요.
원래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은 서로 원수지간이에요.
그렇지만 나병이라고 하는 고통 앞에서는 사마리아든 유대인이든
벽이 다 허물어져서 한 동굴 속에서 같이 살고 있었던 거죠.
아무튼 그들은 서로 의지해서 죽을 각오를 하고 내려왔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다른 때 같으면 오히려 그들한테 찾아가
상처에 손을 대고 치유하셨을 텐데 그날은 되게 차가우셨어.
‘선생님’, ‘선생님’하고 불러도 뭐라고 그래요?
‘사제에게 가서 너희들 몸 보여라.’ 말하고 아는 척도 안 하는 거예요.
그 열 명의 나병환자는 여기까지도 목숨 걸고 내려왔는데
사제가 있는 마을 한 가운데로 가려면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이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이니 ‘우리 가자.’
그래서 사제가 있는 사제관을 향해서 가는 중에 어떻게 됐다고요?
병이 나았잖아요.
오늘 여러분들 집에서 여기를 향해서 오는 중에 벌써 다 치유가 된 거예요.
아멘. 치유된 거예요.
여러분들이 주일 예수님을 만나러 성당 가려고
신발 신고 나왔을 때부터 치유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멘.
그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이 명령하신 사제관까지 가기도 전에 나았다고 나오죠.
그런데 아홉 명의 유대인은 나았다고 신나서 다 뿔뿔이 흩어져 버렸죠.
한 사람만 예수님에게 감사하러 왔어요.
누구? 사마리아 사람.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감사를 드렸어요.
예수님께서 뭐라 그래요?
‘이상하네. 내가 분명히 병을 고쳐 준 사람은 열 명인데,
어찌 아홉 명은 어디 가고 너 한 혼자만 찾아왔느냐?’
겸손한 마음 없을 때는 감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도 못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치유받고 감사드리러 온 사마리아 사람.
여러분도 사시면서 ‘정말 감사드려야겠다. 다 치유받은 거 같아.’하신 적 있으세요?
그런데 그게 조금 다르죠.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랑 마음이 조금 다르듯이.
절벽 끝에 몰렸을 땐 ‘주님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하면서 온갖 립서비스는 다 해 놓고, 하느님이 해결해 주면,
‘때가 됐으니까 해결된 거지. 그 바쁜 분이 날 쳐다볼 여유래도 있었겠어?’
입을 싹 닦는 거죠.

여러분들 그 얘기 아세요?
한 본당에서 열심인 회장님의 취미가 산행이야.
그런데 깊은 산에 갔다가 일행을 놓쳐 버렸어요. 길을 잃어버린 거예요.
날은 어둡고 헤매다가 어떻게 되느냐?
비탈길로 쭈르륵 미끄러져서 절벽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아이고, 사람 살려’ 하다가 손에 하나가 딱 걸려서 잡았어.
바위에 튀어나온 나무뿌리 하나가 잡힌 거예요.
대롱대롱 매달렸겠죠.
팔에 힘은 빠지고 살리라고 소리 질러도 그 캄캄한 밤에 누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살아온 날들이 막 생각이 나는 거야.
세상에, 내가 이렇게 죽으리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그래서 막 울면서 기도했죠.
‘예수님,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니까 현재 내 모습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 좀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예수님이 샤워하다가 그 소리를 들었어.
유리창으로 내다보니까 한 놈이 뭘 붙들고서는 살려 달라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려다보고서는 한 말씀 하셨죠.
‘내가 들었다. 손 놔. 손 놔.’
그리고 유리창을 딱 닫으시는 거야.
예수님의 답을 듣고 막 원망하는 거죠.
‘세상에 저러실 수가! 이거 놓으면 죽는데 이걸 놓으라니.’
나중에 혼잣말로 ‘예수님 말고 딴 사람 없수?’.
그러다가 나중에는 몸무게 때문에 썩은 뿌리가 ‘뚝’하고 부러진 거야.
‘아이고 나 죽어.’ 하고 떨어졌네.
그런데 바로 발바닥이 닿아서 놀란 거야.
세상에, 30cm 위에 매달려 있던 거야.
예수님은 그걸 봤잖아요. 그러니 ‘손 놔.’
그랬는데 나 죽으라고 한다고 원망했잖아요.
본당 총회장이 얼마나 쪽팔리고 창피했겠어.
예수님이 손 놓으라 할 때 순명하고
‘주님 목소리 들었으니,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이렇게 남자답게 멋있게 떨어졌으면 예수님한테 칭찬이라도 복을 받잖아요.

우리도 살아갈 때 보면 그런 경우가 많아요.
주님이 다 벌써 안전장치 해 놨는데, ‘혼자서 나 못 살겠다. 무섭다.’
제가 그 얘기 하죠.
좋은 결과가 있을 때 하는 감사는 30점짜리,
그런데 앞을 봐도 캄캄하고 뒤를 봐도 캄캄하고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없어도 미리 당겨서 하는 감사가 100점짜리.
해결될 기미가 1%도 안 보였을 때, 캄캄했을 때 미리 당겨서 감사해야 해요.
돈만 당기는 게 아니라 감사를 미리 당겨서 해야 해요.
기적은 언제 일어나느냐?
미리 감사해야만 기적이 일어난다는 얘기죠.

자,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감사’에 대한 것을 묵상하는 날이에요.
원론적으로 우리가 감사할게 무언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반주자 뭘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대답) 좋아하는 언니들이랑 지금 아버지 신부님이랑 미사 드리는 것이요.
또 좋아하는 언니들 얘기해 봐요.
(대답) 그냥 감사해요.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죠.
그렇죠. 그것도 기적이지.

우리가 감사할 것 정리해 드릴게요.
항상 내가 하느님과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신부님이 알려준 그 감사,
내가 안 하고 살기 때문에 요즘 요 모양 요 꼴로 산다고 생각하세요.

첫 번째 감사해야 할 것은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걸 감사해야 해요.
아주 원론적인 것이죠.
바퀴벌레로 창조되었다고 해봐. 얼마나 무서워.
모기로 창조 안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해요. 그죠?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창세기에 보면 자세히 나오지 않았어도, 세상 다른 것은 전부 말씀으로 창조시켰죠.
‘별이 되라, 하늘이 돼라.’
그런데 유일하게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서 만들고, 그때까지는 그냥 진흙 인형이야.
그다음에 하느님이 어떻게 하셨어요?
코에 숨을 불어 넣을 때를 상상해 보세요.
땅바닥에 누워 있는 진흙 인형에 ‘후’ 이게 안 돼.
하느님이 무릎을 꿇었어요. 뺨 가까이 대기 위해서.
하느님이 무릎을 꿇으시면서까지,
피조물 가운데 숨을 불어 놓은 건 우리 인간밖에 없어요.
우리들은 그렇게 해서 창조된 귀한 존재들이에요.
발에 밟히는 지령이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에요.
인간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저는 은퇴 후에 굉장히 그 생각이 더 강해져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생명 존중이 아주 강해졌어요.
특히 이런 시골에 살다 보니 막 벌레들이 들어올 수 있죠.
전 절대 안 죽여요. 유일하게 죽이는 건 모기.
모기는 내가 볼 때 실패작이야.
그 모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요.
모기가 옮기는 게 많잖아.
그렇지만 그전에는 가차 없이 내리쳤던 파리도 난 안 죽여.
몰아서 내보내요.
가끔 보면 문이 열려 있으면 지네도 들어와.
그전에는 발로 밟았죠. 지금은 딴 데 가서 살라고 내보내요.
걔들도 생명이고, 우리 인간은 그 생명을 함부로 죽일 권리가 없어요.
전부 다 피조물이죠, 저절로 생겨난 거 아니잖아요.
생명이 있잖아요.
하루살이도 날아다니면서 하루를 살려고 기를 쓰고 살잖아.
재미 삼아 죽이거나 불편하다고 죽일 그런 권리는 없다고 봐요.

우리 식복사가 점심, 저녁 챙겨주러 화목토, 일주일에 세 번 와요.
그런데 파리만 들어오면 파리채로 잡으려 해 죽이지 말라고 했어요.
‘신부님, 왜 안 죽여요?’ ‘죽이지 마라. 내가 살살 내보낼게.’
은퇴하고 시골에 살다 보니까 살아 있는 게 다 그렇게 귀하고 이뻐요.
나무도 그렇고, 이런 모든 것이,
그래서 걸어갈 때도 땅을 잘 보게 돼. 혹시 내가 밟아서 죽이는 게 없을까 하고.
점점 착해지는 거 같아.
아무튼 우리가 감사해야 할 첫 단추는 뭐라고요?
사람으로 태어난 것, 아버지 엄마의 몸을 빌려서 만들어 줬잖아요.

두 번째로 감사해야 할 게 뭐냐?
천주교 신자로 선택받았다는 거예요. 아멘.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고 사이비들이 많잖아요.
세례받는 게 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죠.
부모님이 신자기 때문에 어릴 때 유아 세례받은 사람도 있고,
결혼하려고 보니까 시댁이 천주교 집안이라 세례받은 사람도 있고,
친구 따라서 세례받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병원에서 중병을 앓다가 간병인의 사랑을 보고 계기가 되고,
어떤 사람은 우연히 평화방송을 보다가 세례를 받은 분들도 있죠.
여러분들, 신부님들 집안이 전부 다 구교 집안은 아니에요.
우리도 구교는 아니에요.
우리는 할아버지 때까지는 아주 엄격한 유교 집안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거의 99%가 친가·외가 다 천주교 신자예요.
하느님이 그 집안에 역사하시는 걸 뒤돌아보면 성경 역사처럼 재미가 있어요.
그런 것 보면 천주교 신자로 선택받았다는 게 얼마나 큰 감사 거리냐,
감사하신 적 있으세요? 아멘.
안 하셨다면 오늘부터라도 감사하셔야 해요.
절대로 내가 선택해서 천주교 신자가 된 게 아니에요.
누구를 통해서 나를 부르시거나, 부모님을 통해서 부르시거나,
어떤 사건을 통해서 나를 부르시거나,
어떤 고통을 통해서 나를 부르시거나 선택받은 것에요.
이 세상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주님이 나를 부르셨어.

부르심에 대한 것을 생각하면 우리 쉽게 냉담 못 하죠.
냉담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뭔 줄 알아요?
부르심에 대한 것을 못 느껴요.
어쩌다 천주교 신자 된 거고, 들어와 보니 재미도 없고, 꼴 보기 싫은 사람만 잘되고.
냉담자들의 심리 상태가 ‘내가 천주교를, 하느님을 선택했다’라고 착각해요.
그게 아니죠.
선택받았기 때문에, 선택받은 자들은 함부로 못 해요.
감히 나를 불러 주셨어. 열심히 살 수밖에 없죠.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 예수님의 이름으로 수많은 교회가 있죠?
그런데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기준이 되는 게 뭐예요?
사도신경에 나오죠.
‘하나이고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온’ 거예요.
그 사도신경은 개신교회에도 있어요.
사도 시대 때부터 그 기도문은 내려오는 거예요.
예수님이 세우시고 성령이 지켜 주시는 교회가 되려면, 네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해.
첫 번째 뭐예요? 하나여야 돼.
영국의 성공회는 헨리 8세가 결혼 문제로 천주교를 버리고 자기가 만들었잖아요.
그래서 성공회는 겉으로는 신부도 있고 수녀도 있지만 내용은 다 개신교회예요.
신부들도 결혼하고 그래요.
아프리카의 가톨릭은 여기와 미사가 똑같아.
그래서 ‘하나’라는 말뜻은 ‘단일한 교리와 똑같은 경신례’가 있어야만 하나예요.
우리 한국 신자들 영어 못 해도 미국 성당 가면 미사 드릴 수 있잖아요.
아! 지금이 이거 하는 때구나.
신부님 강론은 못 알아들어도 좋은 얘기 하고 계시구나.
성체 받으러 나가는 시간이구나. 다 알아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아프리카 미사를 가도 다 할 수 있어요.
이게 하나라는 뜻이에요.

두 번째, ‘거룩하다’라는 뜻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다 천사 같다는 뜻은 아니에요.
밀과 가라지가 다 섞여 있어요.
사기꾼도 있을 수 있고 별별 사람 다 있어.
교회가 거룩하다는 뜻은 성령이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교회를 지켜 주신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사이비는 교주가 죽으면 다 없어지죠.
재산 싸움하고 난리 치잖아요.
그렇지만 하느님이 세우신 교회는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존재해요. 맞죠?
그리고 여러분들, 성당 짓다가 못 지은 성당 있는 것 같아요?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하느님이 세우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짓다가 부도가 나는 성당은 없어.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거룩하다’라고 하는 의미는 ‘성령이 함께하신다’라는 뜻이에요.

세 번째는 ‘공번되다’는 뜻이 뭡니까?
보편적인 교회다는 겁니다.
높고 낮음이 없다는 얘기예요.
옛날 군종신부 할 때 미사를 드리러 가니, 맨 앞자리에 푹신한 의자 두 개가 있어.
뒤는 일반 성당 의자이고.
그 자리에 누가 앉는가 봤더니 사단장과 사단장 사모님이 앉는 자리야.
얼마나 속에서 부글부글 끓든지, 그 미사 끝나고 나서 다 치워버리라고 했지.
그다음 주에 사단장이 자기 자리에 있는 줄 알고 앞으로 오니까 없단 말이야.
내가 ‘앞자리부터 채워 앉아라.’ 그랬거든.
군인들 뒤에 서서 미사 드렸죠.
끝나고 난 다음에 인사도 안 하고 씩씩거리며 갑디다.
상관없어, 뭐. 자기가 한평생 별로 살 것도 아니고 언젠가 제대할 거고.
그래서 술 한 병 들고 가서 얘기했죠.
당신이 여기서는 사법, 입법, 행정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사단장이지만,
교회 안에서는 그게 뭐냐? 앞에 앉고, 좋은 의자에 앉는 것 창피해야 한다.
솔선수범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똑같이 나무 의자에 앉으시라 했죠.
나중에는 본인이 좀 건방졌다면서, 제 말을 들으셨죠.
그러니 별 넷까지 달고 열심히 한 신자가 되었어요.
이것이 ‘보편적이다.’, ‘공번되다’라는 뜻이에요.

마지막으로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온’
지금 레오 14세 교황님이 267대죠.
베드로 사도부터 쭉 내려오잖아요.
사도로부터 이어 내려온 교회.
로마 바티칸에 계신 교황님의 칙서도 순식간에 공소까지 전부 전달되잖아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조직이 가톨릭 조직이에요.
원래 공산주의도 가톨릭에서 나온 거예요.
왜? 공산(共産)이라는 말뜻이 뭐예요? 똑같이 나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공산주의가 생긴 제일 큰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한테도 책임이 커요.
우리 신앙인들이 나누고 살았다면 공산주의라는 괴물이 안 생겼을 거예요.
안 나누기 때문에 무력을 써서라도 뺏어서 똑같이 나눠 먹자는 거거든요.
공산 유물론이고 계급 투쟁이란 말이죠.
크리스천들이 올바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공산주의거든.
공산주의 이론 자체는 정말 좋아요. 평등하게 잘 되는 것,
우리 가톨릭 교리 밑바탕에 깔린 것과 비슷해요.
높고 낮음도 없이 천주교 신자로 선택받았다는 것 감사하십니까?
아멘.

오늘 이게 지금 주일 강론이 아니라 피정하시는 거예요.
교리 공부 새로 하시는 거예요.
지금 생방송으로 듣는 분들도 잘 들으세요.

세 번째 감사해야 할 것은 뭐가 있냐?
우리 교회에는 칠(七)성사가 있죠?
그중 특별히 우리 구원과 직결이 되는 게 뭐예요?
세례 성사. 그다음에 고해성사. 성체성사.
칠성사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게 무슨 성사예요? 성체성사.
여섯 개 성사는 이 성체 사를 중심으로 빙 둘러 벽을 치고 있어요.
세례를 받아야 성체를 영하잖아요.
그리고 죄 사함을 받아야 성체 모독을 안 하고 성체를 영 할 수 있잖아요.
신품 성사를 받아야만 사제가 미사 때 예수님의 몸과 피를 만들잖아요.
제일 중요한 성체성사예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 성체성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감사 거리인데,
미사가 있다고 하는 것이.

개신교회의 소위 창시자인 마틴 루터도 신부였던 거 아시죠?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수사 신부였어요, 지금 교황님이 같은 수도회 출신이고,
옛날부터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는 주홍 글씨가 쫓아다녔어요.
너희 수도회에서 마틴 루터가 나왔다.
그래서 요번에 그 수도회 신부님이 교황이 됐을 때 깜짝 놀랐어요.
이게 무슨 의미일까?
아마 마틴 루터의 그것을 기억하기 위한 하느님의 섭리가 아닌가?
그런데 우리에게서 갈라져 나간 개신교는 성체성사가 있어요? 없죠.
그러니까 반만 가지고 하는 거야.
말씀의 전례만 가지고 되풀이하는 거예요.
찬송가 부르고 성경 읽고 목사가 설교하고 다시 기도하고 그것만 반복이 되죠.
우리는 일부가 말씀의 전례죠.
이렇게 강론까지 사도신경까지가 말씀의 전례예요.
그다음에 2부는 제대에서 이루어져요.
주님의 몸과 피가 만들어지는 성찬의 전례죠.
그래서 개신교나 천주교나 다 예수님을 믿기에 구원의 문 안으로는 들어와 있지만,
문제는 구원에 대한 보증에 대해 우리 쪽에서는 자신이 있어요.
왜? 성체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님의 유언 중에서 가장 큰 유언,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영생을 얻지 못한다.’
요한복음 6장 51절에서 57절에는 무려 일곱 번이 나와요.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일곱 번 같은 얘기한 적은 거기밖에 없어요.
예수님의 3대 유언이 뭡니까?
서로 사랑하여라,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세 번째가 성체성사.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
그래서 개신교 신자들 가운데 성경 읽고 깊이 묵상하는 사람 중에는
그것 때문에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꽤 많아요.
‘우리는 왜 이 성체성사가 없을까? 이렇게 예수님이 이토록 강조하셨는데.’
성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셔야 합니다.
미사도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것으로는 좀 부족해요.
매일 못 하더라도 평일 미사 한두 번은 더 나가셔야 해요.
여러분들, 고혈압 약은 매일 먹잖아요.
육신을 살리려고 약은 매일 먹으면서, 왜 천상의 약은 일주일에 한 번만 먹어요?
요즘 시대가 너무 힘들기에 천상의 약, 성체를 일주일에 두세 번은 영해야 해요.
직장 끝나고 나서 저녁 미사 드리고 좋고, 새벽 미사도 좋죠.
성당에 가려면 차로 몇 시간을 갔던 시절도 있었잖아요.
전국에 신부님 한 분밖에 없어서 그 신부님을 만나러 자식들한테 요청했지요.
아버지가 병이 들었어요.
최양업 신부님이 지금 경상도에 계시는데, 신부님을 마지막으로 보게 해 달라고 하면
자식들은 달구지에 아버지를 뉘어서 걸어가는 거야.
그래서 신부님을 만나면 얼마나 눈물이 나고 행복해.
마지막으로 신부님이 주는 병자성사와 성체 영하고 신부님 품 안에서 잠들고.
그런 시절에 비하면 엎어지는데 다 성당이잖아요.
동네마다 성당 없는 데가 없잖아.
그래서 죽은 후 냉담자들의 변명거리 중 성당이 멀어서 냉담했다는 말은 안 통해.
옛날 같을 때 통할지 몰라도. 그렇죠?

여러분. 생각해 보면, 주일만 성체를 영하면,
내가 90까지 산다더라도 성체를 영한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러나 한 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성체를 영하겠다면, 횟수가 세 배로 되는 거죠.
천상의 약인 성체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기적이 있었습니까?

네 번째로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성모 어머니가 계시는 것. 성모님이 계신다는 것.
엄마가 없는 집은 추워요. 맞죠?
엄마가 없는 교회는 차가워요.
어렸을 때 집에 문 열고 들어갈 때 우리 ‘엄마’하고 들어가잖아요.
아빠하고 들어갔던 사람도 있나요.
엄마는 그런 존재잖아요.

어떤 불량아가 산적이 되고 싶었대요.
산적한테 가서 어떻게 하면 여기 들어올 수 있냐고 물었어요.
산적이 농담으로 ‘너는 어려서 산적이 될 재목이 안 돼.
네 엄마 심장을 꺼내오면, 산적 만들어 줄게.’
그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을 걸 알기 때문에.
그런데 이 아이가 가서 엄마한테. ‘엄마 나 부탁이 있어. 엄마 심장을 줘.’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죠.
그런데 왜냐 물으니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엄마 심장이 있어야 할 수 있대.
엄마는 아들의 그 얘기를 듣고 수면제를 먹고 깊은 잠에 들었어요.
그리고 편지를 써 놓았어요. 심장 가져가라고.
아이는 칼을 들고 엄마의 배를 갈라 펄떡거리는 심장을 꺼냈죠.
보자기에 싸서 신나게 산적이 있는 대로 뛰어갔어요.
가다가 개울에서 미끄러지며 보자기를 놓친 거야, 엄마 심장 들어 있는 건데.
그 보자기가 떠내려가면서 뭐라고 그랬어요?
‘얘야, 안 다쳤어? 괜찮아? 괜찮아?’
그때야 그놈이 땅을 치고 통곡했다는 거 아니에요, 내가 미쳤구나.
엄마는 그런 존재예요.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 그런 존재.

우리 천주교에는 그런 엄마가 계시잖아요.
우리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께, 아들한테 부탁하고 부탁하죠.
천국의 유명한 의사들 다 동원해서 ‘제가 아프다 그러는데, 어떻게 좀 살려 주세요.’
그게 바로 성모님이에요.
우리는 의지할 수 있는 성모님이 계세요.
우리가 늘 성모님과 통교할 수 있는 수단이 뭐예요?
로사리오 기도잖아요. 묵주기도 해야죠.
5단 가지고는 부족해요.
메주고리에 성모님께서 얘기하셨잖아요. 전부 다 하라고!

2002년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정말 아름다운 훈령을 발표하셨죠.
빛의 신비를 발표하셨어요.
그때 정말 눈물을 펑펑 흘렸어.
왜냐면, 신학생 때 성경 읽으며 왜 묵주기도에 예수님의 공생활 부분이 빠졌을까?
환희의 신비 다음에 바로 고통으로, 영광으로 넘어갔잖아요,
교수 신부님한테 물어봐도 옛날부터 세 가지밖에 없었는데 나도 몰라~.
그런데 난 그걸 건너뛰는 게 너무 이상했어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얘기 못 하고 성경에서 다섯 개를 찾아 혼자 했어요.
그런데 2002년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빛의 신비를 발표했을 때,
다섯 개 가운데 세 개가 맞은 거예요.
지금은 비로소 전체 신비가 연결되죠.
완벽한 관상 기도가 됐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관상 기도는 로사리오 기도예요.
그래서 교우들한테 가끔 그래요.
‘묵주기도를 안 하면 천주교 신자가 아닙니다.’
그 정도로 강조해요.
그런데 묵주기도 안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1년 내내 한 번도 안 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본당에 간부 역할을 하면서도 묵주기도는 안 해요.
차에는 대롱대롱 매달고 다닐지언정, 장식으로 갖고 다닐지언정 안 해요.
성모 엄마가 계신다고 하는 게 얼마나 감사해야 할 것인가?

다섯 번째로 숨 쉬고, 움직이고, 아침에 눈 뜨고 그런 것 자체가 다 감사 거리예요.
그죠? 우리는 뭔가를 잃어버려야만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요.
손가락 다치고 깁스해야 그때 처음 깨닫죠.
‘이거 내가 손가락 움직였을 때 감사한 적이 있었나?’
우린 항상 뭔가 고통을 당하고, 뭔가 상실했을 때 감사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에요.
미리 당겨서 감사하는 것 참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은퇴 사제가 월정리에 이런 공간을 마련해
신자들이 와서 기도하고 미사 드릴 수 있고,
또 와서 쉬고 머물고 자고 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감사 거리 중의 하나죠.
게다가 성모님 성지 근처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을 수녀님들이 참 좋아하세요.
저기서 휴가 보내면서 너무너무 행복하대요.
왜냐하면 요즘 수녀님들은 휴가여도 갈 데가 없대요.
부모님들은 다 돌아가셨지. 피붙이한테 가서 하루 이틀 있는 것도 눈치 보이지.
돈이 있어야 펜션을 빌려서 어디라도 가서 쉬죠.
그러니까 나이 든 수녀님들은 아예 휴가를 반납한대요.
그전부터 여러 수녀님이랑 지내면서 그걸 알았어.
신부님은 그래도 차가 있고 하니 휴가 때 마음대로 동창들이랑 다닐 수 있잖아.
수녀님들은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은퇴해서 여력이 된다면 수녀님들이 와서 휴가하고 개인 피정할 수 있는 - 물론 신자들도 마찬가지지만- 쉴 장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얼마 전에도 80이 다 된 수녀님이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신부님 여기 너무 천국 같아요.
가면서 내년 것도 예약하면 안 되냐, 해서 예약하시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주변 수녀님께 많이 알리라 그랬어요.
먹을 것만 본인이 알아서 챙겨오면 돼요.
올 때는 수녀님들은 차가 없으니까, 신자들이 데려다줘요.
입 무거운 신자들이 갈 때도 모셔가요.
여기는 봉쇄 수녀님들도 많이 와서 머물다 갔어요.
그래서 내가 저 집은 참 만들기 잘했다고 생각해요.

꽃동네 들어가는데 보면 바위에 뭐라고 크게 적혀 있는 거 아세요?
‘얻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그 표현은 약해.
내가 내 손가락에 묵주를 걸고 묵주 알을 굴릴 수만 있는 것도 주님의 은총이고,
내가 내 두 다리로 성당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총이고,
아침에 눈을 떠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총이고,
산소호흡기 꽂지 않고 내 힘으로 숨 쉴 수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총이고,
뒤돌아 내 삶의 역사를 보면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었겠지만
감사할 게 훨씬 더 많아요. 맞죠?

그래서 오늘은 감사의 날이에요.
1년 동안 추수한 것 제단 앞에 놓은 눈에 보이는 감사도 있지만
내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신 많은 아름다운 일들
또 양심을 통해서 내가 빗나가지 않게끔 나를 잡아 주셨던 어려운 순간순간.
또 내 가족에게 내리신 여러 가지 일들, 이런 모든 것들을 감사하는 날이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미사 봉헌합시다.
아멘.

♣2025년 온 누리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11/23)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 강론

출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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