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26년 1월 2일 금요일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작성자John작성시간26.01.03조회수3 목록 댓글 02026년 1월 2일 금요일
(백)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2,22-28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9-28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찬미예수
오늘 우리는 교회의 큰 두 기둥인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를 기념합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 속에서 두 성인은 서로의 우정을 바탕으로 교회를 지키고, 삼위일체 신앙을 변함없이 선포하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신앙인은 무엇을 따라가야 하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코린토 1서에 대한 해설을 읽었습니다. 코린토 공동체는 여러 질문 속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혼인과 독신에 관한 문제, 우상에게 바친 고기, 전례와 성찬례의 질서, 영적 은사의 사용, 그리고 몸의 부활 문제에 대해 분명한 식별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혼인을 하든 독신을 살든, 중요한 것은 사라질 세상에 마음을 두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일임을 선언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고기는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않기 위해 그가 보는 앞에서는 먹지 말라고 합니다. 자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며, 지식보다 앞서는 것은 형제에 대한 배려임을 가르칩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는 성찬례가 세속의 만찬과 결코 섞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희생을 기억하는 신비이며, 남녀평등의 원리는 강조하되 무분별한 무질서를 경계합니다.
영적 은사는 개인의 명예나 자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 은총임을 설명하며, 그 모든 은사 위에 ‘사랑’이라는 최상의 은총을 구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몸의 부활을 분명히 확인합니다. 썩을 몸이 불멸의 몸으로 변화할 것이며, 그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다고 가르칩니다.
얼마 전 AI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보다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AI는 인간의 지식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가질 수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인간에게서 배웁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예수님의 황금률입니다.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농업혁명 시대에도, 산업혁명 시대에도, AI 혁명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계명입니다.” 결국 시대가 변해도 신앙인의 기준은 사랑이며, 사랑은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세례자 요한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요한의 가르침은 충격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에게 새로운 질서를 이야기했습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권력을 이야기했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변화를 꿈꾸는 사람에게 혁명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희망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질서를 보았습니다. 하느님의 다스림을 보았습니다. 신세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있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알았습니다. 우리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앙인에게 필요한 것은 ‘식별’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과, 악의 세력을 따르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려 주신 길을 충실히 걸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안개가 자욱한 길을 운전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우리들의 삶에도 식별하기 어려운 안개가 끼게 됩니다.
좋은 것과 가치 있는 것이 함께 할 때는 식별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것 중에서 가치 있는 것을 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좋아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좋아하지만 가치가 없는 것을 식별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은 비록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좋지도 않고, 가치도 없는 것은 식별하기가 쉽습니다. 당연히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식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기도 습관이 필요합니다.
둘째는 오늘 복음에서 본 것처럼 ‘주님의 길을 곧게 내며,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없는 활동은 공허하고, 활동 없는 기도는 관념에 빠지기 쉽다고 합니다. 2026년에는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기꺼이 따라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