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신유) 맑음. 박 조방장은 수색하고 토벌하는 일로 배를 탔다. (아침에 청혼서와 사주단자采文를 썼고, 더불어 조카 해의 혼례 비품을 구비했다. 이영남이 '임금님께 보고하는 글에 대한 회답啓回下'을 갖고 내려왔는데, "남해현령을 효시梟示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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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진 작성시간 26.06.19 공께서는 조카들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도, 음식을 먹이는 조그만 일에서부터 모든 집안의 물건을 사용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자식들보다 조카들을 먼저 사용하게 하고, 결혼을 시킴에 있어서도 조카들을 먼저 다 장가보내고 자기 자식들을 혼사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이순신의 행실이 집안에서 돈독하였으니, 집안에서의 내행(內行)이나 집밖에서의 외행(外行)이나 크게 벗어남이 없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조카 해(荄)를 혼인시키며 준비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둘째 형님 요신(堯臣 1542-1580년 38세 졸)의 첫째아들은 봉(菶)이고, 둘째아들 바로 해(荄1566-1645)의 모습입니다. 무과급제하여, 훈련원 주부를 지내신걸로......
일기초의 글입니다. "아침에 닙채(納采, 采文, 육례(六禮) 중 하나로 남자집에서 혼인을 하고자 예를 갖추어 청하면 여자집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혼례의식.)하는 글을 쓰고, 조카 해(荄)의 합근(合巹, 신랑과 신부가 서로 술잔을 주고받는 일) 용품을 함께 갖추었다." 숙부였지만 아버지 같은 공의 모습입니다.^^ -
작성자도체찰사 작성시간 26.06.20 청혼서와 채문은 죽을 때까지 장농에 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