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변하지 않은 것은 뭔가? 통영 앞바다, 한려수도 국립공원의 경치는 변함이 없다. 도시와 마을들이 변하긴 했어도 푸른 바다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한산사에 도착했을 때,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정정하고 부지런한 석천(石泉 84) 스님은 팔순의 고령에도 바다처럼 그대로라는 사실이 기뻤다.
“다 늙은 사람을 찾아줘서 감사합니다!”
“여전히 정정하신데요.”
“그렇게 보여요? 고맙습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요.”
한산사는 한산도와 연결된 추봉도 산허리에 위치해 사시사철 눈 시린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석천 스님의 손은 늘 거칠다. 22년 전 바랑하나 메고 찾아 온 한산사에서 하루도 일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겠다는 원력으로 기도하며 빈터에 도량을 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육지에는 한산사, 바다에는 해상법당을 띄웠다. 배 안에 관세음보살님, 용왕님, 남순동자님을 모시고 방생법회나 용왕재 수륙재 등, 기도를 하는 해상법당 보광호와 보현호등. 산에도 절이 있고 물위에도 법당이 있으니 그야말로 전천후 법당에서 정진하는 석천스님은 늘 바쁘다. 특별한 것들을 찾아다니는 TV 프로그램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그저 혼자 조용히 참선하면서 지내려고 했었어요. 혼자 기도를 하다가 포교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해상법당을 고안해 냈습니다. 종교에서 기도가 없을 수 없고, 이왕 기도를 하려면 좋은 여건 속에 진심으로 기도 정진을 결심했습니다. 바다와 관련한 기도나 법회 의식을 바다 위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해상법당이 불자님들께 환희심과 신심을 일으키는데 성공한 셈이죠.”
직접 배를 운전하며 법회를 주관 하는 석천 스님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다양한 불자들을 만난다. 한 때 1년에 5만 명 이상 찾아 온 해상법당이니, 그간 스님이 만난 불자가 얼마나 많을지 짐작이 간다. 자연스럽게 많은 불자들과 대화도 하게 되었고, 그런 가운데 스님은 오늘날 불자들의 의식 수준과 부처님 말씀의 가르침을 얼마나 이해하며 믿음의 깊이를 알게 되었다.
“요즘 불자님들은 훌륭한 불자님도 많지만 불교를 잘못 인식하는 불자님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불자님들께 부처님의 바른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는 사명감이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안경을 벗어 찻상에 내려놓은 석천 스님은 조용하면서도 힘 있는 어조로 따끔하면서도 따뜻한 부처님 말씀을 아주 쉽게 예시해가면서 말씀하신다. 요약하면 이렇다.
여기 찾아 온 불자님들은 다 바램과 목적을 부처님의 가피를 입으려고 온 정성을 다하여 용왕, 방생기도 하러 오신 불자님들입니다. 많은 불자님들이 얼른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바른 기도란 지극한 마음으로 목표를 세우고 불보살님의 명호를 반복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반복해서 부르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이 기도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정말 기도의 영험과 내가 부처님 말씀을 공감하게 되고 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자들은 대개 업장소멸 하려고 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사실은 업장이란 일상생활의 버릇(습관)이며 현재 살아가면서 습관과 과거의 살던 버릇이 포함됩니다. 그 버릇이 다음 생에도 이어집니다. 업이란 버릇이고, 장이란 쌓이는 창고 같은 뜻입니다. 그래서 업장은 버릇이 쌓인다는 뜻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다 같이 공감이 되는 것처럼 업장도 버릇의 쌓임입니다.
방생이란,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며 자신의 생명도 함께 사는 것입니다. 내 목숨처럼 다른 목숨도 귀한 것, 그러나 실천의 문제에서 불교는 매우 지극한 깨우침을 줍니다. 남의 생명을 한 번 살려주는 그 순간의 자비정신이 그 순간의 공덕이 함께 쌓여 좋은 인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생은 나와 남이 함께 사는 길입니다.
정리하자면, 업장소멸이란 나쁜 버릇을 선한 습관, 좋은 버릇으로 고치려는 서원의 실천을 다짐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불자님들은 하나의 행동으로 하나의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불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하나로 돌아갑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이 한산도 바다에서 한 마리의 물고기를 방생하는 그 마음이 지극하면 5대양의 모든 물고기를 다 살려내는 서원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성불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의 물고기를 살리는 그 순간의 마음이 쌓이고 쌓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중생에게 재수, 명, 등등을 어디에 쌓아 두었다가 중생들이 원할 때 주는 분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불자님들의 잘 못된 모습과 버릇, 욕심이 지나친 것을 착하고 예쁜 마음으로 가르침을 주시는 큰 스승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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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은 모든 중생이 불성를 갖춘 절대적인 존재임을 일깨워 주신 자비하신 스승이십니다. 누구나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깨우쳐주신 부처님이십니다. 해상법당에서 하는 기도도 본래 깨끗한 본마음을 맑게 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참다운 자기방생은 스스로 불성을 밝히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자님들과 모든 이의 생일에는 부모님께 방생하세요! 어머님은 생사의 기로에서 여러분들의 생명을 세상에 탄생시켰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내가 태어난 생일을 어떻게 보내야 옳을까요?”
나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생일에 대한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진정한 불자라면 생일 하루만이라도 고기를 안 먹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태어 난 날, 부모님이 자신을 태어나게 해 주신 날 하루라도 진정으로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함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부모님께 특히 어머님께 따뜻한 마음으로 큰 절 한번 하며 손을 잡아드리고, 어머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결심하도록 노력합시다. 내가 어머님께 하는 모습을 본 내 자녀들이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대를 이어서 행복한 삶을 할 수 있음을 명심합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 생일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내가 출생되는 과정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고 내가 잘 먹고 즐겁게 보내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생일날 절에 가서 “부처님 우리 부모님 극락세계로 인도해주시고 저희들도 부처님 말씀 잘 듣고 배워서 올 바른 불자가 되겠습니다” 라고 발원하고 잠시 생각에 잠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 시간이 아주 아름답고, 평소에 스스로 보지 못한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꼭 해보세요!
사람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유익한 만큼 해로운 면도 있으니, 지혜롭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말은 크게 나누면 좋은 말, 예쁜 말, 덜 좋은 말, 덜 예쁜 말(나쁜 말들)을 구별 할 수 있습니다. 그 많은 말들 중에는 해서는 안 될 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 많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고는 언뜻 아무 뜻 없이 내 뱉는 말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고란 말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애곡(哀哭)을 하는 소리입니다. 무엇이 잘 안될 때 ‘아이고’하면 그만큼 슬프다는 뜻이지요. 그런 말을 일상에서 자꾸 쓰면 어떻겠습니까? 점점 더 좋지 않은 일들이 생깁니다. 그 말의 기운이 몸에 스며들고 마음에 젖어들어 자꾸만 아이고 소리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자꾸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살면 정말 슬프고 비통한 일이 생기게 됩니다.
팔자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입만 열면 팔자타령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팔자타령만 안 해도 그 팔자는 망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팔자라는 것은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자작자수의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타고난 팔자를 망가뜨리지만 않아도 불행해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팔자타령을 하고 무엇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삶을 꽈배기처럼 꼬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은 능력으로 살고 업력으로 살고 덕력으로 살고 복력으로 사는 겁니다. 능력은 현생에서 배운 기술을 발휘하여 살아가는 것이고 업력은 전생부터 지어온 업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또 덕력은 인품을 닦아 형성된 덕의 힘으로 사는 것이고 복력은 자신이 알게 모르게 쌓아온 공덕의 힘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복력입니다. 예부터 ‘능력 있는 장수는 덕 있는 장수를 이길 수 없고, 덕 있는 장수라도 복 있는 장수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지고 온 복을 다 쓰면 고갈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복을 지을 행위를 자꾸 해야 합니다.
복은 지으면서 쓰는 것입니다. 복을 짓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복을 까먹고 팔자를 망가뜨리는 말이 입에서 지나치게 자주 나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죽겠다’는 말도 그 섬뜩한 뜻은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게 많이 씁니다. 걸핏하면 ‘힘들어 죽겠다’ ‘배불러 죽겠다’ ‘우스워 죽겠다’ 등등 죽겠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는 겁니다. 이래도 죽겠고 저래도 죽겠으면, 왜 살고 있습니까?
‘미치겠다’는 말도 습관처럼 쓰고 ‘환장한다’는 말도 습관처럼 씁니다. 미치는 것은 정신줄을 놓치는 것이고 환장하는 것은 창자가 뒤틀려 버리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길 원하는 겁니까? 자꾸 ‘미치겠다’ ‘환장하겠다’ 하면서 살면 정말로 미치고 환장하여 입원하고 수술할 일이 생깁니다. 스스로에게 불행을 자초하는 주문을 거는 것이니까요.
부정적인 말, 비관하는 말, 남을 낮추고 멸시하는 말, 나를 타락시키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입만 조심해도 스스로 갖추고 있는 불성의 밝은 빛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은 진리입니다. 사람의 말에는 영적인 힘이 있어서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가는 말 오는 말이 고와야 사람 사이도 좋은 것입니다. 결국, 말 한 마디에도 지옥과 극락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천구경>의 맨 처음이 ‘정구업진언’인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불교를 바로 믿고 바르게 살기위해서는 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 했듯이 업은 버릇
을 말합니다. 버릇은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 이치만이라도 부디 명심하여 좋은 버릇을 길러야 합니다. 기도하는 버릇, 말하는 버릇, 생각하는 버릇 등등 모든 것이 버릇들이기 나름입니다.
석천 스님은 “모두 정각(正覺)의 삶을 추구해야 하는데,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착각(錯覺)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의 일상은 거의가 착각에 매몰되어 있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단순한 이치를 잊어버리고 엉뚱한 곳에서 부처를 구하고 보살을 들먹이며 잘난 체 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며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섬들을 에돌아 뭍으로 돌아왔다.
석천 스님은...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동화사에서 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동화사에서 9하안거를 성만하고 김룡사에서 서암스님을 모시고 정진하는 등, 전국의 선원에 방부를 들여 정진하다가 제주도에서 토굴생활을 하기도 했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한산도를 찾아가 한산사를 세우고 기도 정진하다가 해상법당을 건조해 기도와 전법도량으로 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