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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가정의 복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6.06.12|조회수54 목록 댓글 0

여호와(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가정의 복

  • 기자명 정이철
  • 입력 2026.06.11 18:07
  • 수정 2026.06.11 18:18
  • 댓글 0
  •  조회수 175

 

 

다시 본문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하고 그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냥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돌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율법이 그렇게 정해 놓았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진짜로 누리고 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궤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져 있었는데, 다윗이 아비나답의 집에서 법궤를 모셔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옮기는 과정에서 웃사가 즉사하는 무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어 인근의 오벧에돔의 집으로 급하게 법궤를 모셔두었습니다. 법궤를 잘못 모시면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화를 당하는 것을 경험하고, 다윗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으로 모셔지고 3개월이 지났을 때, 놀라운 소식이 다윗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다 같이 사무엘하 6장 12절을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모셔진 시간은 벌과 석달이었는데, 하나님께 그의 집에 복을 넘치도록 주셨습니다. 누가 보아도 하나님이 그 집에 복을 주셨다는 것이 환히 보이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더 잘 믿는 복은 기본이고 눈에 보이는 물질의 복, 질병 치유의 복, 가정이 잘되는 복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다윗에게 법궤를 바르게 모시면 복을 받는다는 비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이 자기의 임재를 두시는 거룩한 성물입니다. 법궤가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법궤를 합당한 믿음으로 잘 모시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을 다윗에게 확신시키고, 법궤를 나라의 중심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가는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범궤를 잘 모신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둘째는, 오벧에돔과 그의 가족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진실되게 잘 모시고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그 가정의 귀한 믿음을 받으시고 누구나 볼 수 있는 방식으로 복을 그 집에 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 법궤 사건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확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들이 소수였을까요? 온전하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가 되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개념의 기본은 “하나님을 가까이 한다!” “하나님을 친근히 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영어 성경에서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fear the Load”입니다. Fear라는 단어의 일차적이고 가장 대표적인 Meaning은 “두려워한다!” “무서워한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서 동시에 사랑하고 친근히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하는 올바른 믿음입니다.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면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하나님 섬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불신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것은 보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무서워하지않으면서, 그냥 하나님을 사랑하고 친근히 하는 자세, 쉽게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만하게 여기는 마음의 자세는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두 가지 복을 노래합니다. 첫째는 손으로 수고한 만큼 열매를 얻는 형통한 삶입니다. 다 같이 본문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수고한 대로 거두면서 사는 복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은 일확천금이 아니고 수고한 대로 거두게하시는 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손으로 수고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양식과 재물의 복을 주실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주목해야 한 부분은 무엇이 성도의 형통이냐 하는 것입니다. 수고한 대로 거두게 하시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입니다.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위도식을 당연하게 여기고 늘 쓰기만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섬기는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혹 그런 사람이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을지라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경외하는 사람에게 손으로 수고한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왜 복일까요? 창세기 3장 17절을 보겠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우리 조상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를 범함으로 땅에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땅을 갈아도 땅이 인간에게 필요한 소산을 넘치도록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때문에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를 믿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연합되어 죄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달라집니다. 인간의 원죄로 인해 임한 땅의 저주가 그 성도에게서 해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받은 성도는 손으로 수고한 대로 거두면서 하나님이 매일 동행하며 형통을 누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4:11절을 보겠습니다.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아담의 후손들을 모두 처음부터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디폴트(Defalt) 값이라는 것 아시지요. 아무것도 안 해도 기본적으로 셋팅되어 있는 것이 디폴트 값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땅의 저주로 인해 수고한 대로 양식을 얻지 못하고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는 것이 인류에게 정해진 디폴트 값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옵니다. 살면서 스스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못된 죄들을 범합니다. 자기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땅이 더욱 저주한 것처럼, 우리의 죄가 우리의 인생을 더욱 괴롭게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들에게 땅은 항상 가혹한 것입니다. 필요한 양식을 쉽게 얻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에 우리 마음과 영혼이 연합되면, 아담이 지은 원죄와 우리가 살면서 직접 지은 자범죄들이 용서됩니다. 하나님의 본성을 가진 거룩하신 사람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목숨을 우리의 죗값으로 하나님께 다 갚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의 죗값으로 받으시고 완전히 만족하셨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죄를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처음부터 죄가 없었던 것처럼 대해주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죄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에게는 땅의 저주가 풀립니다. 손으로 수고한 대로 거두면서 살게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동행해 주십니다. 그래서 형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복있는 인생이 된다는 말을 그냥 종교적인 말로 흘려들으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경외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두번째 복은 가정의 복입니다. 다 같이 본문 3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이셨던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경외하고 그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에게 임하는 복이 또 있습니다. 안방의 아내가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고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이 어린 감람나무와 같아지는 복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옛날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내를 안방에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과 한국 사람들이 자기 아내를 “안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아주 유사한 정서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에서 남편이 있는 여성이 양을 치거나 농사일에 직접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잃어버린 여성들은 룻처럼 남의 밭에 가서 이삭이라도 직접 주워야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남편을 일찍 잃어버린 여성들은 정말 불행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로 경외하는 자에게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잘 익은 포도송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고 즐겁지 않습니까?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 같게 해 주신다는 것은 아내와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이 어린 감람나무” 같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감람나무는 우리가 마트에서 사 먹는 올리브 오일을 생산하는 나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감람나무는 하나님이 주신 풍요와 번영과 평화를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제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람나무가 어떤 것이었는지 잘 몰라서 컴퓨터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감람나무는 수 명이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달해 대를 이어가며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고의 재테크 수단이었습니다”라고 답을 주었습니다. 감람나무에서 생산되는 올리브 오일은 식용으로, 의료용으로, 등잔불에 불을 밝히는 용도로, 그리고 성전에서 성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리브 오일을 생산해 주는 감람나무는 우리 나라의 시골 집에 단감 나무, 살구나무 ... 이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대대로 가문을 살리는 귀한 것이고, 아주 도움되는 재택크 재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람나무가 그 정도로 귀하고 도움되는 나무였다는 것을 몰랐지요? 저도 설교를 준비하면 더 알게되었습니다. 알고 나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셔서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이해되었습니다. 자식들을 어린 감람나무와 같게 하신다는 것은 부모에게 기쁨이 되고, 가정과 가문의 미래의 보장 보험이 되는 귀한 자녀들을 선물로 주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건강의 복, 물질의 복, 존귀와 명예를 누리는 복 ...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복들이 많고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가정의 복을 여호와를 진실로 경외하는 사람에게 주시기를 원하실까요? 사람에게는 가정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육체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다 알지만, 제가 정리하기 위해 컴퓨터 인공지능에게 가정과 우리의 육체의 건강이 어떻게 연관되어지는지 아는 대로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가정의 행복과 인간의 건강은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정환경은 스트레스를 줄여 면역력을 높이고 질병을 예방하는 등 신체적·정서적 건강의 든든한 기반이 됩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느끼는 소속감과 안정감은 뇌의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고, 우울증을 예방하며 면역계를 강화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정과 우리의 육체의 건강에 관한 인공지능의 이 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에게 같은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한 번 더 물어보았습니다. “가정 불화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와 체내 염증을 유발해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생물학적 노화를 가속합니다. 전문가들은 가족 간의 지속적인 갈등이 주는 건강 피해가 흡연이나 음주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인간관계 갈등은 노화 속도를 빠르게 하며, 여러 인간관계 유형 중에서도 특히 가족에게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장 해롭다고 밝혀졌습니다. 관계를 피하기 어려워 만성적인 스트레스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인공지능은 다 알려진 객관적인 자료들을 취합하여 대답합니다.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왜 이렇게 이혼이 많고, 왜 이렇기 독거노인들과 고독사가 많은지 아십니까? 옛날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가정의 환경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여자들이 더 그랬습니다. 홧병이 뭡니까? 옛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운명으로 여기고 자기의 건강과 수명을 포기할 때 생기는 병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교육받고 성장한 현대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건강과 수명을 위해 그 불행한 운명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이혼이 많고, 그래서 지금 고독사가 많고, 자식이 있는 독거노인들이 많은 것입니다. 독이 흘러나오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가족 관계를 지속함으로 건강과 수명이 빨리 소모되는 불행을 현대인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진리를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가정을 통해 임합니다. 가정이 하나님의 복을 그 속의 가족 구성원들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수단이 되지 못하면, 진정으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복을 주실 길이 없습니다. 복이 임하는 통로가 가정이고 가족들인데, 가정과 가족들이 서로 하나님의 복의 통로가 되지 못하면 하나님이 어떤 경로를 통해 우리에게 행복과 은혜를 주실 수가 있을까요?

직장 생활을 마치고 해가 지면, 모든 사람들이 가정으로 돌아가서 쉽니다. 그런데 가정에 독이 고여있고 스트레스가 가득하면 사람이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까? 가정이 불행해지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을 보내실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사업은 잘되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사람도 해가 지면 어김없이 자기 집으로 들어가겠지요. 그런데 집에 들어가면 항상 같은 스트레스와 괴로움과 어둠이 있습니다. 육체와 정신의 피로가 풀리지를 않습니다. 계속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많은 경우에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흘러나오는 독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알콜 중독이거나 분노 조절 불능자인 경우에는 매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독을 매일 한 사발씩 마십니다. 분노조절 장애, 알콜 중독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통로가 부모이고 가정인데, 그런 경우에는 혹 부모가 용돈을 넉넉히 준다고 해도 자녀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할 수가 없습니다.

가정이 망가지면 하나님께서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가정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진실로 경외하는 자들에게 손으로 수고한 대로 거두게 하시는 복과 가정의 복을 주시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님들께서 가정이 복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원리 또 하나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복된 가정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신천지가 아니고 복음의 은혜로 내가 변함으로 만들어집니다. 가정의 복을 훼방하는 주범은 바로 우리의 옛사람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혈기부리기 좋아하고, 입술로 저주하기 좋아하고, 작은 것으로 분노하기를 좋아하고, 조금 기분 상하면 여지없이 화풀이하기를 좋아하고, 고마운 것을 모르고 배반하기 좋아합니다.

그것이 바로 가족들에게 흘려보내는 독입니다. 그 독으로 인해 가족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죽어갑니다. 그래서 이혼하고, 자녀들이 집을 나가고, 자식이 있어도 독거노인이 되고, 고독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죄, 여전히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죄의 힘이 가정의 복을 막습니다.

성도는 옛 사람으로 살지 않고 새 사람으로 살기를 소원하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연합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내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나도 죽은 것으로 하나님이 간주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죽은 것으로 간주하시고 죄없는 것으로 믿어주시는 것으로만 구원을 얻었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실제로 우리 속에 여전히 옛 사람을 물리칠 수 있는 도움을 주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효력을 적용해 주시기 위해 오신 성령입니다.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옛 사람의 행실이 변합니다.

에베소서 4장 24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거룩함으로 지어진 새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금식하고, 노력하고 결심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죄를 위해 그리스도가 흘리신 보혈의 권세를 나에게 적용하여 주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새 사람이 삽니다.

로마서 8장 1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의 성품과 언어와 행실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적용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속의 죄악된 마음을 고쳐주심으로 일어납니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을 빨리 깨닫고 회개하면서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의의 은혜로 고쳐주시기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가정이 복되지 않고서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누릴 길은 없습니다. 가정이 복되지 않고 가정이 독의 웅덩이가 되면, 하나님이 어쩔 수 없이 이혼을 시키거나, 다른 가족들을 위해 하늘로 부르시거나 ... 더 이상의 손상을 막기 위해 하나님이 비상수단을 동원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들이 아무하고나 결혼하지 말고 바르게 믿는 가정에서 자란 자녀와 결혼하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먼저 말씀과 복음으로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져야 가정이 복되어진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이철 cantonc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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