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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역사신학자 박효빈 집사와 대담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6.06.15|조회수68 목록 댓글 0

평신도 역사신학자 박효빈 집사와 대담

  • 신재철 교수
  • 입력 2026.06.12 09:51
  • 수정 2026.06.12 14:33
  • 댓글 0

 

하나님의 사람은 종종 자신이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할까를 하나님께 묻는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셨을까? 사도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다(딤전 1:12). 이방인의 사도라고 불렀던 바울은 언어를 잘했고 로마 시민권자였지만 이런 점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쓰지 않으셨다. 바울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셨다”라고 고백했다.
바울은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라고 했다(딤전 3:11). 복음의 계승을 말할 때도 무엇보다도 충성된 사람들을 쓰라고 했다.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라고 했다(딤후 2:2). 여기 충성된 사람이란 바로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사람(reliable men)이란 뜻이다. 그리고는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라고 했다(딤후 2:2).

 

신재철 목사 / 초원교회 원로ㆍ부산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ㆍ본지 편집인

다름 아닌 충성된 사람이야말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이다. 복음의 계승을 말할 때 능력 있는 사람, 혹은 자격증 가진 사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단지 충성된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신실함을 요구했다.

박효빈 집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충성된 사람이다. 그는 사직동교회라는 지역교회를 섬기면서 충성하는 일꾼으로 살았다. 이에는 그의 남편 김규진 집사와 함께였고 자녀인 수람이와 은후도 함께였다. 이런 충성 속에서 박 집사는 교회 역사에 관심을 두었다. 고신의 역사신학자인 이상규 교수의 책들을 읽고 새기면서 폭넓은 교회 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주님께 충성함에 적용했다. 대담자의 스승인 이상규 교수는 “박효빈 집사님은 평신도 역사신학자이십니다.”라고 정의했다. <교회와 신앙>에서는 평신도 역사신학자를 부산에서 만나 대담했다.

박효빈 집사와 대담 모습

신재철 교수: 집사님, 오랜만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집사님의 신앙 배경과 가족 소개를 간단히 청합니다.

박효빈 집사: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 따라 여름성경학교에 간 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에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에는 그저 교회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다녔던 것 같고, 대학 졸업하던 해에 제 자신의 한계를 크게 깨닫는 사건을 마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진정한 회심과 거듭남을 경험하였습니다.


신재철 교수: 집사님께서는 부부 교사로 학원 복음화에 힘쓰시면서 교회 생활을 잘하고 계시는데 자녀인 아들 수람이와 딸 은후의 신앙교육은 어떻게 감당하시는지요?

박효빈 집사의 가족

박효빈 집사: 너무 과분한 표현인 것 같아 민망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정예배를 자주 드리고 예배 중에 시편 찬송가를 부르고 가르쳐주고자 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노래가 신앙교육과 계승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나와 있는데, 현대 CCM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가볍게 느껴져 찬송가의 영성 있는 가사와 단순한 선율을 익히면 어른이 되어도 심령 속에 오래 남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신 교인답게(?) “교회 중심”의 신앙생활을 지향하여 아이들이 예배 및 교회 봉사에 성실하게 임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 교계에서 자녀 신앙교육이 산업혁명 이후 교회로 아웃소싱 된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제기되는 것과 더불어, 개혁주의 신앙의 관점에서 신앙교육의 주체가 다시 부모로 회복되어야만 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고 되고 있지요. 여러 면에서 공감합니다만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극단적으로 현실을 바꾸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교회 중심의 신앙교육에는 불신자 가정의 자녀가 전도 받고 신앙을 가지는 순기능도 있으니까요.

부모가 주체적 역할을 감당하되 교회교육과도 협력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절충적인 태도가 적절하다고 보고, 가족 모두 교회학교 교사로, 학생으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신앙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먼저 신앙인으로서 모범을 보이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신재철 교수: 집사님은 교회의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지식도 상당하심을 압니다. 고신교단의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그간에 고신 역사 기록을 많이 대하셨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박효빈 집사: 계속해서 과분한 평가를 받게 되네요. 사실 저는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고 또 출석하는 교회도 그저 동네 교회라 간 것이어서 고신교단에 대한 별다른 자의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청년 시절 저녁 예배 때 강사로 오셨던 이상규 교수님의 특강을 듣고 탁월하고 재미있는 강의에 푹 빠져 “극성팬”을 자처하게 됐고, 이것이 조금씩 교회사와 고신교단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설교 시간에 종종 신사참배에 굴하지 않고 신앙의 순결을 지킨 교단이라는 것과 이와 같은 신조를 지키기 위해 투옥 생활을 감내하셨던 한상동 목사님에 관해서 얘기를 듣곤 하였지만, 교회에서 특별한 교단 역사 관련 강의나 교육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규 교수님의 책을 조금씩 접하며 고신교단의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말로만 들어왔던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잔인함과 무도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고신이 별도의 제도적 교단을 스스로 세우고자 한 것이 아니라 총회에서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와 자숙운동을 펼침으로써 쫓겨난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분리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장로교의 대신학자라고 막연히 알고 있었던 박형룡, 박윤선 목사님이 초기 고려신학교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하셨던 것에 놀랐고 – 뭔가 늘 수도권에서 활동하신 분들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 이분들을 만주 봉천에서 모셔 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섰던 송상석 목사님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느꼈으며, 고신교단에 제법 오랜 세월 몸담고 있었는데 할리우드 액션영화에 버금가는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신교단 설립 이후의 지난한 과정들 – 교단 재산 수호 관련 분쟁, 고소/반고소 대립 사건, 합동 교단과의 결합 이후 환원, 고신과 고려 교단의 분리 등등 – 을 알게 되면서 “창업(創業)은 쉽고 수성(守成)은 어렵다”라는 고대 중국의 명언이 절로 떠올랐고 고신교단 형성의 주요 3인 – 신앙은 한상동, 행정은 송상석, 신학은 박윤선 – 중 한상동 목사님 외에는 크게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 점 또한 의아하게 여겨졌습니다.


신재철 교수: 집사님은 이상규 교수님이 저술한 ‘6.25 전쟁기 부산지방 기독교’에 목사가 아닌 집사님으로서 추천사를 적으셨습니다. 이에 관해서 들려주시면 합니다.

박효빈 집사의 추천

박효빈 집사: 이 교수님께서 이 책의 추천사를 써달라고 부탁하셨는데 저와 같은 범인에게 그런 제안을 하신 것이 너무 의외였고 결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결코, 하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담임목사님의 책에 부목사님의 추천사가 있었는데 그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와 같은 차원에서 저를 떠올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니라 저 같은 범인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받아들이고 떨리는 마음으로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추천사라는 것이 당연히 관련 분야 전문가의 몫이라 생각해 왔는데 평범한 저에게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이 교수님 인품의 깊이를 다시금 헤아려 보게 되었고, 정말 두려운 마음으로 정독하고 고민하며 추천사를 작성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 책의 추천인들 (목사, 교수) 중 유일하게 평범한 독자인 제가 끼이게 된 사연입니다. 그런데 출간 후 책의 추천사 부분을 보니 저의 평이한 언어와 표현들이 다른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아 이 부분은 고무적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백석대 석좌교수 이상규 교수와 함께


신재철 교수 : 참으로 귀한 일을 감당하셨다고 여깁니다. 이상규 교수님의 《6.25 전쟁기 부산지방 기독교》는 어떤 내용의 책일까요?

이상규 저 6.25전쟁기 부산지방기독교

박효빈 집사: 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6.25 전쟁기 부산의 기독교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에서도 이 교수님 특유의 성실한 사료 발굴의 자세가 묻어있지요. 피난 수도 부산의 실제 분위기, 피난민 교회 형성, 부산 영락교회와 한경직, 빌리 그래함 부산 집회, 군목 제도 시작, 전쟁기 의료·구호 활동, 선교사와 외원단체, 부산의 신학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부산 토박이이므로 이 책을 통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내 고향 부산이 다르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고, 그래서 “성실하게 사료를 발굴하여 잊혀진 과거를 추적하고 정성스럽게 다듬고 곱게 빚어 독자들에게 제공한 덕분에 ‘노인과 바다’로 전락해 버린 듯한 내 고장 부산이 실은 어거스틴이 말한 그 ‘하나님의 도성’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의 역사 연구는 비루한 주변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바라보게 하는 비범한 힘이 있다.”라고 추천사를 썼습니다.


신재철 교수: 집사님께서 출석하시는 교회에서 고신교단의 총회장이 두 분이나 세워졌습니다. 이에 관해서 집사님은 어떤 평가를 하시는지요?

부산 사직동교회

박효빈 집사: 사실 저는 일개 신자로서 교단 행정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총회장의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정판술 목사님, 김철봉 목사님 두 분을 존경하고 신앙 지도를 받은 것에 크게 감사하고 있지요. 저의 존경은 단지 설교를 잘한다거나 지도력이 탁월하다거나 등의 기능적 차원을 넘어서 두 분이 각각 하나님 앞에 한 사람의 신자로, 예수의 제자로 바로 서고자 부단히 자신을 치며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본 데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두 분의 설교를 들을 때 신자의 입장에서 종종 가지게 되는 불순한(?) 생각, 즉 설교자의 설교와 삶의 괴리에서 느끼는 혼란과 불신이 거의 부재하였고 설교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만 강의와 설교는 형태는 비슷할지라도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서, 설교는 제아무리 탁월하고 유려하여도 설교자의 삶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울리는 꽹과리(고전 13:1)처럼 느껴지는 것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유튜브 명설교를 잘 듣지 않는 편입니다.) 두 분 다 고신 목사로서의 품위와 자부심을 대쪽과 같이 지키며 목회하시고자 노력했던 장면들이 기억나는데, 요즘 다소 이런 모습이 희석된 듯한 시대에 자주 두 분의 모습이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교단의 행정을 잘 모르지만 아마도 이런 차원에서, 즉 고신의 스피릿을 지키며 실력과 연륜을 갖춘 지점에 이르렀기에 두 분이 교단의 총회장으로 추대된 것 아닐까요?
 

신재철 교수: 고신교단은 설립 초기부터 소송 문제로 내홍을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 교단 분열까지 했다가 2015년 65회 총회에서 고신과 고려 양 교단이 통합했습니다. 이에 관한 집사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박효빈 집사: 어려운 주제입니다. 우선 이와 관련된 역사를 대하며 소송이라는 것이 거칠게 표현하면 ‘싸움’인데, 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순결을 지켜온 교단”과 같은 지극히 퓨어한(?) 얘기만 들어오다가 이토록 복잡한 소송 문제가 있었다는 자체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초량교회 예배 중 난입한 무리에게 순순히 자리를 내어주고 걸어 나온 한상동 목사님의 신앙과 소송이 반성경적임을 신학적으로 설명한 박윤선 목사님의 시도는 굉장히 숭고하고 아름답게 보였지만, 만약 송상석 목사님께서 교단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실질적이고 행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과연 고신교단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솔직히 떨쳐내기 어려웠습니다. 그분들의 치열한 분투와 노력을 지금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 분이 추구하는 것(신앙, 신학, 행정) 모두 어렵게 태동시킨 고신교단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고, 교단 유지와 발전에 다 필요한 요소들이었는데 소통과 대화가 부재하였고 이 과정에는 단순히 세분만의 의지와 노력보다 관련자들의 교권 다툼이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교단 분열 과정도 주도적 역할을 한 세력이 내세웠던 “반고소의 가치”는 사실 표면적인 것이었고, 진짜 반고소를 외치며 양심을 걸고 노력했던 분들은 고초와 비난을 겪으며 사실상 교단에서 사라진 모습을 보며, 과연 고신이 내세우는 “순교자의 정신”이 무엇인지 모종의 회의가 들기도 하였습니다. 고신과 고려 두 교단이 통합한 것은 과정과 시기를 떠나 그 자체로 합당한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결별하여 각자 지내오는 동안 당연히 이질성이 발생하였을 것이고 재결합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기에 통합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여러 부작용과 저항이 당연한 것임을 인정하면서, 이런 부분들이 제대로 다루어지고 서서히 하나의 공동체로 빚어져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재철 교수: 한국교회가 성장이 멈추고 미래를 걱정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집사님이 보실 때 그 이유와 해결책이 있다면 무엇으로 보시는지요?

박효빈 집사: 우선 학령인구 자체의 감소가 원인이겠지요. 그리고 경제 발전과 소득의 상승으로 자연스레 세속화가 이루어진 결과라고 봅니다. 해결책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해결책이라기보다 오히려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한국교회의 성장이 대한민국의 개발 중심시대와 궤를 같이하여 달려온 결과라면, 이제는 경제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학력이 신장이 된 데다가 정보화 시대가 되었으니 종교의 필요성과 매력이 감소 되는 것이 필연적인 결과라고 봅니다.

교회 사역자들께는 이상적이고 힘 빠지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70~80년대의 교회 성장에 대한 로망과 아쉬움은 접어두고, 소위 선진국에서의 종교 쇠퇴 현상기에 접어들었음을 인정하며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교회관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오히려 지금이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때가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물질이 풍부해졌기 때문에 과거처럼 쉽게 전도가 되고 사람들이 물밀듯 교회로 오지는 않지만, 인간이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전 3:11)로 지음을 받았기에, 여전히 물질이 채워줄 수 없는 근원적인 갈망이 있음에 천착하며, 그들이 어떻게 기독교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지 고민하거나 혹은 물질은 번영했지만,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복잡다단한 상황에 처한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성경의 변치 않는 진리를 전할 수 있을까? 이런 질적 접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재철 교수: 집사님은 고신에서는 꽤 성장한 사직동교회에 출석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분립개척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개척 및 미자립교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편이 낫다고 보시는지요?

부산 사직동교회 예배 모습

박효빈 집사: 저는 분립개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교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교회의 본질과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자주 받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사직동은 평범한 주택가였고 자연스레 사직동교회도 “동네 교회”였지요. 그런데 종합운동장이 들어서고 명문 학군지로 이름이 나면서 계속해서 재개발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소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직동교회에도 타지인들(기존 신자들)이 많이 유입되었지요. 이분들이 사직동교회를 선택할 때 정말 고신교단의 순교자적 신앙의 가치를 선택하고 따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이사를 와보니 마침 크고 좋은(?) 교회가 있어서였을까...

교회의 구성원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을 여러 해에 걸쳐 경험하면서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었고, 이것이 진정 고신이 외치는 개혁주의에 부합하는 방식인지 아니면 현시대의 자본주의에 물들어 버린 상황인지에 대해 고민도 하게 되었습니다. 조심스러운 분석이지만 제가 표면적으로 볼 때는 큰 교회는 타지역에서 이동해 온 이들에게 현시대 신자들의 필요와 요구 – 적당한 거리를 둔 소극적 교회 생활, 자녀 신앙교육, 주차장을 비롯한 편리한 환경 등 – 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시설에 투자하게 되고... 이와 같은 양상을 띠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교회의 성장이 이와 같은 외부적 요인 때문인지 아니면 진정한 새신자의 증가인지에 대해 정직하게 직면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후예배 찬양대 지휘

오전예배 반주하는 박효빈 집사


신재철 교수: 집사님은 현재의 <교회와 신앙> 혹은 <기독교보>와 같은 기독 언론의 기능에 관해 어떤 평가를 하시는지요? 고언과 제언을 청합니다.

박효빈 집사: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고신의 역사에 대해 알고 나서 기독교보를 보니 역사적 기록에 관한 기술이 다소 치우쳐 있다거나 혹은 특정 인물 중심의 행사가 열린다거나 하는 등의 느낌을 조금씩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단 언론의 한계인가 생각해 보기도 하고요. 우리가 믿는 성경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뿐 아니라 추하고 부끄러운 것까지 다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른 분야는 두고 현대의 목회자에 비유될 수 있는 제사장 관련 기록만 봐도 사사기 레위인의 첩 사건이라든지 엘리의 아들들 사건 등의 기록을 보면 어떻게 이런 것까지 다 기록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교단 언론은 소위 교단 내 힘 있는 세력의 영향을 받는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늘 경계하며 언론 본연의 객관성과 중립성에 충실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라지요.


신재철 교수: 장시간 감사드립니다. 집사님께서 소속한 고신교단과 한국교회에 남기시고 싶은 고언 한 말씀 주시는 것으로 대담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대담을 마친 후 박효빈 집사와 함께

박효빈 집사: 제가 고언을 남길 자격은 없고 그저 한 사람의 신자로서의 바램을 표현해 보겠습니다. 고신교단은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순교적 신앙을 지킨 분들에 의해 태동 된 교단입니다. 그것은 그 시대에 요구되는 시대 정신이었고 참으로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늘 변화하는 것이기에 시대 정신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변화하지 못한 채 과거에 시대정신에 충실했던 모습에만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자칫 비난과 조롱을 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시대의 시대정신이 무엇일까요? 자본주의의 극단까지 가버린 듯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맘몬주의의 극복이 아닐까요? 적어도 고신교단만큼은 자본주의라는 시대정신을 극복하고 성경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운영해 나갔으면 합니다. 고난받는 소수의 자리에 서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믿음의 선배들의 자세를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십자가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에 비호감과 혐오의 정서를 표현하는지, 왜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슬프고 불명예스러운 표현을 얻게 되었는지 정직하게 대면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겸손하고 가난한 교회가 되어 진정한 부요함(고후 6:10)을 누림으로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은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겼다. 주인이 책망할 때 했던 말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칭찬할 때 했던 말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였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시는 관점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을 쓰시는 기준은 그 사람이 얼마나 탁월한가, 그 사람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가? 이런 문제가 아니다. 이런 학력이나 능력이나 자격증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유용한 자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충성됨이 없으면 별 의미가 없다. 충성됨과 함께 그런 자질을 갖추었다면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충성 곧 신실함을 요구하신다.

‘신실함’이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실하다는 것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 면 전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신실하지 못한 것은 사람을 의식하고 살기 때문이다. 사람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사람이 보든 보지 않든, 사람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변함 없이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신실해야 하는데, 그것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평신도 역사신학자인 박효빈 집사는 그런 신실함의 충성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박 집사는 고신교단의 자산을 넘어 한국교회의 귀중한 자산이다. 귀한 성도이다. 이런 집사와 대담함은 귀중한 가치와 교훈을 남긴다는 점이 <교회와신앙> 편집인과 부서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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