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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고백은 성경봉독 혹은 설교 뒤에, 봉헌은 사도신경과 성찬 사이에 한다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26.06.16|조회수43 목록 댓글 0

사도신경 고백은 성경봉독 혹은 설교 뒤에, 봉헌은 사도신경과 성찬 사이에 한다 예수는 테너일까 베이스일까 (53)

  • 김성대 목사
  • 입력 2026.06.15 06:45
  • 수정 2026.06.1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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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 목사 / 예린교회 은퇴목사ㆍ전 부산장신대 교수ㆍDrew University(예배학박사, Ph. D. in Liturgical Studies) 

주일예배 순서에는 사도신경 고백이 들어있다. 사도신경을 고백한다는 것은 곧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도신경은 예배순서 중 언제 고백해야 할까?

믿음의 고백은 말씀을 들음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성경에서 말씀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 10:10,17)

이 말씀에 따르면 사도신경은 말씀을 듣고 난 뒤에 고백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기독교 교회의 예배전통은 말씀을 들은 뒤에 사도신경 고백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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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도신경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도신경의 원조인 니케아신조(Nicene Creed)는 니케아공의회(325)에서 채택되었으며, 개혁교회에서 사용하는 사도신경(Apostles' Creed)은 404년에 확정되었다. 그 이후 5세기부터 나라별, 교회별로 예배순서에 사도신경을 포함하기 시작하였다.

트렌트공의회(the Council of Trent, 1570)에서 확정된 로마미사에 ‘복음서-강론-니케아신조-성찬’1) 순에서 보듯이 신앙고백은 말씀 뒤에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종교개혁가 중심의 예배에서도 이 원칙은 지켜졌다. 루터의 독일미사(German Missa, 1526)에는 ‘복음서봉독-사도신경-설교’2) 순으로, 칼뱅의 스트라스부르크 예배(1537)에는 ‘성경봉독-설교-(2부 성만찬)-헌금-성물(사도신경 노래)-성찬기도(주기도문)’3) 순으로, 칼뱅의 제네바예배(1542)에는 ‘성경봉독-설교-(2부 성만찬)-헌금-성물준비(사도신경 노래)-성찬기도(주기도문)’4) 순으로, 스코틀랜드 죤 낙스(John Knox)의 장로교 개혁교회 예배(1556)에는 ‘설교-(성만찬)-헌금-중보기도-성물봉헌(사도신경)-성찬제정’5) 순으로, 영국국교회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 1662)와 국교회 전통을 이은 영국성공회 예배(1928)에는 ‘복음서-니케아신경-설교-성만찬’ 6)순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기독교 교회의 예배역사를 살펴볼 때, 사도신경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나 강론(설교)을 들은 후에 고백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앙의 고백이 있은 뒤에 주님의 만찬을 나누었다. 신앙의 고백을 한 사람만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주기도문은 성찬기도에 포함되어 있다.

예배순서 하나하나에는 순서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meaning)와 기능(function)을 가지고 있다. 예배를 집례하는 목회자는 예배순서의 의미와 기능을 인지해야 한다. 개인 취향에 따라 새로운 순서를 삽입한다든지, 기존 순서를 삭제한다든지 순서를 임의로 바꿔서도 안 된다. 예배 순서의 삽입, 삭제, 변경은 깊은 연구와 토의를 거치고 공론화시켜 교단 최고회의에서 결정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초대교회로부터 개혁교회 신학을 이어받은 한국 개신교회는 이제부터라도 신학적으로 정확한 순서에 따라 사도신경을 고백하기를 바란다.

사도신경은 성경봉독 혹은 설교 뒤에! 그리고 성찬!

필자의 의견으로는 성경봉독 뒤에는 말씀 주심에 감사해서 (성가대) 찬양을 올려드리고 사도신경은 설교를 듣고 난 뒤, 확신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하기 권면한다.

그리고 성경봉독 혹은 설교 뒤에 사도신경 고백이 이어지는 것처럼, 봉헌 또한 사도신경과 연관된다.

초대교회부터 봉헌은 성찬에 필요한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성찬은 사도신경 고백 뒤에 갖는다. 그래서 봉헌순서도 성찬을 나누기 전, 설교 뒤에 갖는다.
 

“있을지어다.”와 “축원하옵나이다.”로 끝나는 축도, 어느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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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Benediction)는 예배 마지막에 목사가 하나님의 복이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선포하는 순서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개신교회가 사용하는 축도의 내용이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있을지어다.”로 끝맺고, 다른 하나는 “축원하옵나이다.”로 끝난다.

사실 이 두 개의 축도문구는 축도가 기원인지 강복선언인지를 결정하는 문구이다. “있을지어다.”는 하나님의 복을 목사를 통해 선포하는 강복선언 문구이고, “축원하옵나이다.”는 목사가 하나님의 복을 기원하는 문구이다. 강복선언의 주어는 하나님이지만 축원의 주어는 목사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맞는 축도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의 복을 목사를 통해 일방적으로 선포하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목사가 하나님께 복을 기원하는 것이 나은지 생각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강복, 곧 복의 선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전달된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목사의 입을 통해 성도들에게 선포될 때, 말씀의 은혜는 목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는 성도들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과 같다. 똑같은 말씀을 받는 데도 은혜 받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하나님의 복을 목사의 입을 통해 선포하지만 받는 사람에 따라 복이 임하기도 하고, 비켜가기도 한다.

그런데 목사가 복을 기원하게 되면 순전히 목사의 능력이고 목사와 하나님과의 문제이다. 목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받으면 그 축도가 성도에게 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축복의 기도가 응답받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결론적으로 목사의 축복기도(축도)는 목사의 정결 여부에 달려있고, 목사를 통한 강복선언은 받는 성도의 자격에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도의 입장에서 볼 때, 목사가 축원 기도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목사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선포하는 것이 좋을까?

원래 해방 후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있을지어다.”로 끝맺는 축도를 하였다. 그런데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74회(1989) 총회에서 축도 문구를 “축원하옵나이다.”로 끝맺는 것으로 결의함에 따라, 예장통합 교회들이 이 결정을 따랐고, 뿐만 아니라, 마치 예장통합 총회에서 ‘성가대’를 ‘찬양대’로 바꾸는 결의를 하자, 깊은 고민도 해보지 않고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를 따랐던 것과 마찬가지로, 축도 문제도 일부 교단들이 “축원하옵나이다.”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사실 예장통합 제64회(1979) 총회에서는 축도문구를 ‘있을지어다’로 결의했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제74회에서 ‘축원하옵나이다’로 다시금 수정 결의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2007년에 개정된 예장(통합)「헌법」, 제4편 ‘예배와 예식’ 제3장 ‘예배의 배열’ 3항에 보면 공중예배의 배열에 관해 언급하면서, “(예배의) 끝 부분은 찬송과 위탁의 말씀과 축도이다. (중략) 하나님이 내리시는 복을 목사가 선언한다. 이때의 축도는 성경대로 한다 (민 6:24-26, 고후 13:13, 히 13:20-21, 살후 2:16-17).”라고 되어 있다.

성경대로라면, 예를 들어, 민수기의 ‘아론의 축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혹은 ‘바울의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를 인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논쟁할 것 없이 ‘성경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축도는 강복선언이 되어야 한다. 축도는 기원이 아니다. 기도와 강복은 다르다. 기도는 올려드리는 것이고 강복은 내려주시는 복이다. 방향이 다르다. 그래서 ‘축원하옵나이다.’가 아니라, 성경대로 “있을지어다.”라고 해야 한다.

1) William D. Maxwell, 99.
2) Ibid., 111. 
3) Ibid., 156.
4) Ibid., 156~7.
5) Ibid., 166.
6) Ibid.,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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