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8화에서는 승연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의대 입시를 둘러싼 불법 약물 오남용과 극성 학부모의 문제가 다뤄진다. 드라마 속 정연민 학생의 어머니(서영희 분)는 아들을 의사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진로가 무엇인지가 아니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아들을 의사로 만들겠다는 집착을 갖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은 분명 그녀 자신의 욕망이었다. 그래서 아들이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입한다.
“우리 현민이 의사 되면 엄마가 너무 좋겠다.”“우리 현민이 효자잖아? 엄마 말 잘 듣잖아?”
아들을 의사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위해 집까지 팔고 어려운 생활을 감수하는 그녀는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심지어 불법 약물까지 사용하며 극단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한마디를 반복한다. “내가 너 때문에 이렇게 희생하는 거야.”
드라마 속에서 그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넌 엄마 아빠 불쌍하지도 않아? 엄마 아빠가 왜 이러고 사는데? 다 너 위해서 희생하는 거야!”“엄마가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다 너 때문에 힘들어도 참는 거야!”“너만 아니면 엄마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엄마가 희생하는 거라고!”
겉으로 보면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것은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 통제의 언어이며, 희생의 언어가 아니라 소유의 언어임을 알 수 있다. 이 어머니의 모습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1.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확장된 자아’로 본다.
건강한 부모는 자녀를 자신과 분리된 독립적인 존재로 본다. 자녀가 어떤 꿈을 꾸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 관심을 가진다.
반면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녀는 자신의 연장선이다. 자녀의 성공은 곧 자신의 성공이고, 자녀의 실패는 자신의 실패다. 그래서 자녀가 원하는 삶보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더 중요해진다.
드라마 속 어머니는 아들이 의사가 되기를 원한다. 문제는 아들이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 자신이 의사를 원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아들이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어 하거나, 화가가 되고 싶어 하거나, 목회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해도 그녀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아들의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2. “널 위해서야”라는 말로 욕망을 포장한다.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좀처럼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내 욕심 때문에 그러는 거야.”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의 욕망을 사랑과 희생이라는 포장지로 감싼다.
“엄마가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나중에 다 고마워할 거야.”“엄마가 얼마나 희생했는데.”“엄마 마음도 모르고.”
이 말들은 겉으로는 사랑처럼 들린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녀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심리적 조종인 경우가 많다.
사랑은 선택권을 주지만 통제는 죄책감을 준다. 사랑은 자녀의 목소리를 듣지만 통제는 자녀의 목소리를 무시한다. 사랑은 성장하도록 돕지만 통제는 복종하도록 만든다.
드라마 속 어머니는 “내가 너 때문에 희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그 차이는 매우 크다.
3. 자녀의 성취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많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의 내면에는 깊은 결핍이 존재한다. 이루지 못한 꿈, 인정받지 못한 상처, 열등감과 실패감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녀를 통해 그것을 보상받으려 한다.
“나는 못 했지만 내 자식은 해야 해.”“우리 집안에 의사 하나는 나와야 해.”“남들에게 인정받으려면 성공해야 해.”“내 자식은 특별해야 해.”
이때 자녀는 더 이상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다. 부모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프로젝트가 된다. 실제로 상담 현장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아버지가 의대를 강요해서 의사가 됐습니다.”“평생 부모님의 꿈을 대신 살았습니다.”“나는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성공했는데 행복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성공한 인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공허함이 남아 있다.
4. 자녀의 거절을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건강한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뜻과 다른 길을 선택하더라도 존중하려 한다. 물론 아쉽고 걱정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국 선택권은 자녀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반면 나르시시스트 부모는 다르다. 자녀의 독립을 배신으로 받아들인다.
“엄마 말이 틀렸다는 거니?”“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이게 부모에게 할 짓이야?”“네가 나를 무시하는구나.”
이들에게 자녀의 선택은 단순한 진로 선택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분노하고, 죄책감을 주고, 감정적으로 압박한다. 자녀가 독립하려 할수록 더욱 강하게 통제하려 한다.
5. 그 결과, 자녀의 정신은 서서히 무너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자녀들은 심각한 심리적 후유증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첫째, 자신의 욕구를 모르게 된다. 늘 부모의 기대에 맞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무엇을 원하지?”라는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둘째, 죄책감에 시달린다. 부모의 기대를 거절하는 순간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낀다.
셋째, 완벽주의가 형성된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 한다고 믿게 된다.
넷째,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평생 부모의 허락 아래 살아왔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순종적인 자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정체성과 자존감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론: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중이다.
부모는 자녀를 낳을 수는 있지만 소유할 수는 없다. 자녀는 부모의 작품이 아니다. 부모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도구도 아니며, 부모의 실패를 대신 보상해 주는 존재도 아니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독립된 인격체다.
좋은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뜻대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자녀가 하나님께서 주신 고유한 모습대로 성장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자녀가 의사가 되든, 교사가 되든, 목회자가 되든, 기술자가 되든, 예술가가 되든 중요한 것은 부모의 꿈이 아니라 자녀의 소명이다.
드라마 속 어머니는 끊임없이 말한다. “내가 너 때문에 희생하는 거야.”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내 꿈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것이 존중이다. 그리고 그것이 건강한 부모의 모습이다.
임석한 목사(성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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