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나르시시스트와 대화를 하다가 답답함을 느낀다. 분명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고,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해도 말을 바꾸며,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엉뚱한 주장으로 맞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억지를 부릴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사실이 확인되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거나 생각을 수정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오히려 더욱 강하게 자신의 주장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스트의 억지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내면 구조와 깊이 연결되어 있는 심리적 방어기제이다. 억지를 부리는 이유를 이해하면 그들과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고 보다 현실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완벽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로 여기고 싶어 한다. 문제는 현실의 자신과 이상적인 자기 이미지 사이에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부족할 수 있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만약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면 "나는 완벽하다"는 자기 환상이 무너질 위험이 생긴다. 그래서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억지를 부리게 된다. 객관적인 증거가 있어도 인정하지 않고,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도 계속 우기며, 심지어 자신이 한 말을 스스로 부정하기도 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다. 자신의 우월한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보다 체면이 우선이고, 사실보다 자존심이 먼저이다.
한 교회의 장로는 회의 중 자신이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전달받은 내용이 그랬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이해했을 것이다", "본질은 그게 아니다"라며 논점을 바꾸었다.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권위가 무너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둘째,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나르시시즘의 핵심 감정 가운데 하나를 수치심이라고 설명한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열등감과 불안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도 존재 자체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실수가 곧 자신의 가치 상실로 연결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작은 비판도 견디기 어렵다.
억지는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한다. 잘못을 인정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열등감이 드러나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면서도 자녀가 문제를 제기하면 "너는 너무 예민하다", "다 널 위해서 한 말이다", "내가 언제 그랬냐"라고 반응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좋은 부모라는 자기 이미지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셋째,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책임은 성숙한 사람의 특징이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는 책임보다 통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억지 논리를 만들어낸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어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고, 상황의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 피해자의 탓으로 돌린다.
이러한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투사와 책임전가라고 부른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는 대신 타인에게 덮어씌우는 것이다.
교회나 직장에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서 갈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데도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떠난 사람도 문제, 남아 있는 사람도 문제, 지도자도 문제, 조직도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언제나 피해자의 자리에 서 있다.
억지는 책임으로부터 도망가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넷째, 관계를 지배하기 위해서이다.
억지는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통제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관계의 중심에 서기를 원한다. 자신이 옳다고 인정받고 자신의 기준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논쟁이 시작되면 사실 여부보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데 집중한다. 목소리를 높이고, 논점을 바꾸고, 과거의 이야기를 끌어오고, 감정적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결국 상대방은 지치게 된다.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고, 아무리 증거를 제시해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래, 네 말이 맞다"며 포기하게 된다.
이 순간 나르시시스트는 승리감을 느낀다. 실제로 옳아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굴복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르시시스트와의 논쟁은 종종 진실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힘겨루기가 된다.
다섯째, 현실을 왜곡해서 보기 때문이다.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만든 왜곡된 현실을 실제 사실이라고 믿기도 한다.
자신에게 유리한 기억은 크게 확대하고 불리한 기억은 축소한다. 자신이 받은 상처는 오래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는 쉽게 잊어버린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자신의 기억 자체가 왜곡된다. 결국 객관적 사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진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말이 계속 바뀐다"고 느끼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나르시시스트와의 대화가 더욱 어려운 이유이다. 단순히 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이 아니라 서로 다른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나르시시스트의 억지를 논리로 이기려고 하면 대부분 지치게 된다. 그들은 진실을 찾기 위해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논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설득하려는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대신 사실을 기록하고, 경계를 세우고, 감정적으로 휘말리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교회나 가정, 직장에서 나르시시스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왜 저 사람은 저럴까?"라는 질문보다 "나는 어떻게 건강하게 대응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맺음말
나르시시스트가 억지를 부리는 이유는 단순히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완벽한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욕구,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 책임 회피, 통제 욕구, 그리고 왜곡된 자기 인식이 존재한다.
그들의 억지는 진실을 향한 싸움이 아니라 무너질 것 같은 자아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나르시시스트를 이해하는 것은 그들을 변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에 휘둘리지 않기 위함이다. 진실은 억지보다 오래가고, 건강한 관계는 통제보다 존중 위에서 세워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임석한 목사(성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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