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구약신학

시편연구

작성자임마.누엘|작성시간16.04.08|조회수86 목록 댓글 1

 시편연구



 시편의 서론:


  시편의 히브리어 명칭은 ‘세페르 테힐림’으로 ‘찬양의 책’이란 뜻을 지닌다. 보통 책이란 뜻 ‘세페르’는 생략하고 찬양이란 뜻의 ‘테힐림’으로 불렀다. 70인 역에서는 본서를 ‘프살모이’이리고 칭하였는데 그 말은 ‘성스러운 노래의 책’이란 뜻인 ‘비블리오 프살몬’이란 말로 칭하였다. 이런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시편에는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찬양이 아름다운 시로 승화되어 있다.

 

  시편의 기자: 전체 150편의 시 가운데 100편의 시는 서두에 기자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그 이름은 최소한 7명으로 나타난다. 그 중 73개의 시는 고라 자손의 시요, 12편의 시는 에스라인 에단의 것이며(89:), 그리고 1편의 시는 모세를 기자로 내세운다(90:). 나머지 50편의 시는 표제에 기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시편들이 신약에 인용된 것을 보면(행4:25)그 대부분이 다윗의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체가 5권으로 된 시편의 결집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그 편집 과정이 점진적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1권(1-41)은 다윗의 사후 솔로몬에 의해서, 2권(42-72)은 고라자손에 의해서, 3권(73-89)은 히스기야 시대에 아삽이라는 사람이, 그리고 나머지 4(90-106),5권(107-150)은 에스라, 느혜미야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편의 분류>

  그 주제와 내용에 따라 다섯(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1)국가적 시: 19개

   (14, 44, 46-48, 53, 66, 74, 76, 79, 80, 83, 87, 108, 122, 124-126, 129)

  이는 국가적 행사에서 낭송되었다.

   2)역사적 시: 이는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메시야의 통치를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

   3)왕적 시  : 이는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다. 메시야 통치를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다(2,8,20,21,45,72,89,110,132)

   4)회개의 시: 이는 죄에 대한 극한 슬픔과 하나님의 용서를 바라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는 소망이 교차되는 시이다(6,32,51,102,130,143).

   5)저주의 시: 이는 좀더 특이한 주제의 시로서 이스라엘 원수를 향한 저주의 노래이다. 저주의 시는 그 수가 많지 않으며 대부분이 다윗의 시이다(35,69,105,137)

   6)메시야 수난의 시: 이는 메시야의 수난을 예표하는 예언 시이다(22,17,35,40,69)

 

 

< 시편 1 편, 두 개의 길 >

 * 성도와 죄인의 분리

  1.의인의 길(복 받는 길): 성도의 복(의인의 생활과 그 복)

  2.악인의 길(심판 받는 길): 죄인의 심판(불경건자의 생활과 그 불행)

  올해도 모든 성도들은 축복 받는 의인의 길을 걸어서 모든 일에 형통케 되기를  축원한다.

 


<복 받을 자격을 가지려면 어떤 비결이 있나?>

  1)죄를 멀리 해야 :1, 이는 비결의 소극적 설명이다.

  2)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해야, :2 , 이는 비결의 적극적 설명이다.

  ‘복되도다’: 히, 아쉬레, 복수형으로써 󰡔많이 복되다󰡕란 뜻

   여기서 ‘복’이라는 말은 1절 서두에 있다. ‘행복’과 같은 뜻이다. 원래는 ‘걷는다’라는 동사에서 왔다. 이는 하나님의 은총이 미치는 권내(圈內)로 걸어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를 향하여 걸어가는 사람을 의미한다. 성도는 날마다 이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복됨’은 만민을 향하신 하나님의 바람이다. 하나님은 단 한 사람도 불행하기를 바라지 아니하신다.

 


<죄인의 세 가지 형태>

   1)악인: 히, 레솨임-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소극적인 죄인

   2)죄인: 히, 카타임- 하나님의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적극적인 죄인

   3)오만한 자: 히, 레침-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업신여기는 자. 성도를 괴롭히는 죄인

 


<타락의 세 가지 단계>

   1)악인의 꾀를 좇는다: ‘좇는다’=생각한다. 때 때로 악인의 생각을 따른다.

   2)죄인의 길에 선다  : 악인과 더욱 친근히 교제한다.

   3)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다: 오만한 자 가운데 끼어 든다.

  악인의 꾀를 좇는 데서 재빨리 피하지 아니하면 죄인의 길에 서게 되고, 마침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된다. 이것이 타락의 단계이다.

  믿는 성도도 외관상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고 타협치 않고 온전히 그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복된 길을 가는 비결>

  이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사귀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귀는 길이 무엇인가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묵상’=연구하는 태도를 가지고 골돌히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신앙으로 가는 조용한 탐구이지 불신앙에서 나오는 의심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고 순종해야 한다.

 ‘즐거워 함’=겁이 나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크게 달라진다. 열매를 맺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이는 목적지를 정하기에 따라서 여행의 도착지와 그 결과가 달라지는 것과 같다.

 


<복된 길로 가는 결과>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1)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3

  2)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3

  3)그 행사가 다 형통한다.      :3

  4)여호와의 인정을 받는다.     :6

 


<악인의 길은 그 결과가 어떠한가 ?>

  1)바람의 나는 겨와 같다.      :4

  2)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5

  3)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한다.  :5

  4)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망할 뿐이다.  :6

 


* 우리 앞에 놓인 두 개의 길 가운데서 우리는 어떤 길로 가야만 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명해진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여호와의 복을 받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여호와의 인정을 받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아멘.

 


  <시편 2:1-12>

 


  시편 제 2 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주권을 가진 왕으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과 그를 대적하는 열왕에 대한 예언의 시다. 행 4:25에 의하면 이 시는 다윗의 시로 알려지고 있다(행 4:25-26).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2 ‘그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사야, 그리스도(여호와로부터 특별한 사명을 받은 자)

   .그리스도는 왕,   :6 ‘내가 나의 왕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7 ‘너는 내 아들이라...내가 너를 낳았도다’

   .그리스도는 열방의 지배자,    :8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그리스도는 심판자,    :9 ‘네가 철장(鐵杖)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내용>

 1-3 열왕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반역

 4-6 여호와는 인간의 모략을 조소하신다‘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

     시리로다’.

 7-9 여호와가 선택한 왕(그리스도)의  선언

   ‘어찌하여-히,람마’라는 말을 첫머리에 쓴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경륜에 대항하는 행위가 너무나 부당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7,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이는 왕의 즉위하는 날을 의미하며, 왕은 여호와의 왕으로 새로 태어나는 사람이 된다. 예언적으로 불 때 이는 그리스도의 강탄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말씀으로 해석된다(행13:30-34, 히1:5, 5:5).

  누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가 ?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다윗왕 당시 주변 국가들의 군왕들을 가리키며 동시에 역사상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모든 나라의 통치자들을 가리킨다. 이는 세상 끝에 여러 군왕들이 동맹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할 것과 이에 대한 경고의 예언이다. 세상 끝에 열왕들이 연합하여 메시야에 대한 반역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재림하여 예루살렘에 보좌를 두시고(: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성자이신 하나님은 성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열방을 유업으로 받아 철장(엄격한 형벌)으로 여러 국민을 심판하시고 다스리실 것이다(:8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하나님의 절대적 지배를 나타낸다).

  * 그리하여 여호와께 거역하는 자는 망하고,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으리라(:12). 세상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길 수 없음을 가리킨다(마16:18)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1)지혜를 얻으며 :10

   2)교훈을 받으며 :10

   3)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며 즐거워할 것이며 :11

   4)아들에게 입마추어야 한다 :12

 <본서에 나타난 삼위일체되시는 하나님의 음성>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음성 :6

  *아들이신   하나님의 음성 :7-9

  *성령이신   하나님의 음성 :10-12

  *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의 교훈을 받고, 그의 음성을 듣고 청종하고, 그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일이 세상의 심판을 이기는 길이다.

 


  <시편 3:1-8>

 


  본 시는 환난 중에서도 확신에 차 있는 승리의 노래이다(나를 둘러싼 방패 되시는 하나님).

*표제는 삼하 15:-18:을 기초로 하여 붙여 진 것이다.

*시3:- 6:은 일련의 시로써

  3:은 아침의 시, :5 “누어 자고 깨었으니”

  4:은 저녁의 시, :8 “눕고 자기도 하리니”

  5:은 밤의 시,   :3 “아침에 들으시리로다”

  6:은 야반의 시  :6 “밤마다 눈물로...”

  본 편은 다윗 왕이 그 아들 압살롬의 반역(삼하 15:14-17)을 피하여 다닐 때 피난 중의 시이다. 그러나

 *신앙의 진전은, 대적의 포위로 곤경을 당할 때 -> 하나님을 앙망 -> 신앙 얻고(3-4) -> 안식과 평화(5) -> 담력(6) -> 확신의 기도(7-8)

  :2의 비난, 그러나 고난 중 비난에 귀기울이거나 고난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 눈을 들라. 이는 국면을 전환시키는 열쇠이다.

  :5, ‘누어 자고 깨었으니’(일역에는 ‘또 깨었으니’이는 매일 아침마다 감사를 다시 마음에 끓어오르게 하는 것을 뜻한다.......아침마다 ‘오! 나는 행복하다’고  외치며 신앙과 감사 중에 잠을 깨라.

  그리고 과거의 은혜의 역사에 감사, 신앙으로 기도하고 담대 하라!

  :6,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성령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8, ‘구원은 여호와께 있아오니’= 구원은 여호와께만 있다는 말, 대적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야말로 나를 두르시고, 나의 방패이시니(:3) 그러므로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라는 것이다.

  예) 왕하 6:15-17 엘리사의 종(게하시?-왕하 5:20)은 적군을 보고 두려워 하다가 그 눈을 뜬 후에 보다 많은 천군의 보호를 보았다.

  * 신앙인의 눈에는 환난 중에도 ’나를 에워싼 방패‘가 보이는 법이다.

  * 여호와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다. 내가 절망 중에 머리를 푹 숙이고 탄식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거기서 나의 머리를 드시며 나를 위로하시고 내게 새 힘을 주시는 이시다.

  히 13:5-6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하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할렐루야! 아멘.

 

  <시편 4:1-8, 비방을 해도 기뻐하여라>

 


 *다윗의 노래, 현악기에 맞추어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영장’=성전 음악의 지휘자. 시편 전체에 55번 나온다.

 * 본시는 기도로 시작하고 있다. :1

    . 인생에게 회개와 신앙을 권고한다. :2-5

    . 다윗은 헛된 것을 추구하는 인생들에게 전도하고 있다. 이는 기도하는 신앙인의 담대함이다.

    . 이런 담대함은 ‘주께서 그의 마음에 두신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쁨은 세상의 어떤 기쁨보다도 더 큰 것이다.

    . 주님께서는 성도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큰 기쁨을 주신다. 따라서 기도하는 성도 그러한 기쁜 마음으로 전도를 하게 된다.

 * 본시는 3편과 같이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환난을 당할 때에 씌어진 것인데 3편보다는 후에 진술되었다.

 1.다윗의 기도  :1

  “내 의의 하나님(히, 엘로헤 체데크)이여”=‘오해받고 박해받는 정의로운 자들을 옹호하시는 하나님’, 곧 내 의가 되시는 하나님이란 뜻.

  *의의 하나님은 과거 다윗에게 언제나 너그럽게 하셨다.(문자적으로 풀어쓰면,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뜻, 곧 하나님께서는 진퇴양난에 있는 다윗을 기적적으로 구원하여 번영할 수 있도록 복을 주셨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 13:8). 그러므로 우리들도 다윗처럼 어려운 일을 당할 즈음에 하나님의 한결 같은 사랑과 신실하심을 확신하며 기도해야 한다.

  다윗은 기도할 때에 자신의 약함과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서 진술하고 겸손하게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고 기도했다.

  *우리들도 기도할 때마다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시인하고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2.다윗의 인생들에 대한 책망  :2

  다윗의 책망은 그를 대적하는 자들의 행위가 헛된 것임을 지적하며,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겸손히 기도하며, 사람에게 회개를 촉구할 때는 담대하게 할 수 있게 살아야 할 것이다. 자기가 떳떳 지 못하고서는 회개를 촉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생들아-히, 베네이쉬’= 사람의 아들들이란 뜻, 이는 대중과 구별되는 뛰어난 사람을 의미한다(참조 시 49:3, 62:10).

  곧 다윗은 그의 공격의 화살을 압살롬과 그 도구가 되어버린 귀족집단을 향해서 겨냥하고 있다. 다윗은 수적으로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의의 하나님을 의지한 연고이다. 핍박자의 힘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성도의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게 하지 못한다(마10:29, 눅21:18).

  ‘허사’=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을 막으려고 하는 헛된 도모를 뜻한다.

 


 3.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택하시는가 ?  :3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다.

  ‘경건한 자’= 악하고 거짓된 행위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는 자. 다윗은 악한 일을 저지른 요압에 대하여 타협하는 자세를 취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죄악을 용납하지도 않았다(삼하 3:28, 왕상 2:5,6). 이는 자기보다 강한 위치에 있는 자에게 취하기 어려운 일이다. 경건하게 사는 자에게는 죄악에 대하여 언제나 담대할 수 있게 된다(예-광야에서 시험받으시던 예수님의 태도).

 


 4.다윗의 범죄하는 인생들에게 준 권고  :4-5

   1) 다윗은 ‘너희는 떨며 범죄 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 하라’고 권고한다.  :4

  ‘떨며-히, 리케주’=분내다. 괴로워하다는 뜻. 곧 자리에 누어 곰곰히 생각하여 지은 죄를 분해하고 괴로워하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경솔하여 섣불리 말하거나 행동할 때 범죄하기 쉽다. 자리에 누어 곰곰히 자기를 반성하면 곧 뉘우치게 될 것을 경솔하여 죄에 빠지게 되는 후회스러운 일을 저지르게 된다. 성도는 이런 것에서 자기를 경건하게 지켜나가야 한다.

   2)다윗은 인생들을 향하여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라고 권고한다. :5

    ‘의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하는 이유는 당시 압살롬의 무리들이 예루살렘을 빼앗고 제사를 드리기는 하였으나 율법의 정신에 어긋나는 헛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무 제사라도 받는 우상과 같은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마음으로부터의 ‘의의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먼저 드려야 할 의로운 제사는 어떤 물질적 제물보다 먼저 자기의 죄를 애통히 여기는 상한 심령임을 기억해야 한다(시51:16-17).

 


 5.여러 사람들의 질문과 다윗의 답변

   1)여러 사람들의 질문  :6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이는 의로운 본이 될 사람이 누구인가 ? 라는 질문이며, 또한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데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질문이다.

   2)다윗의 답변  :6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라고 말함으로써 은연중에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곧 인간의 힘만으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능력, 곧 하나님께서 은총의 빛을 비추어 주시듯이 도와 주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참조, 시42:5,11).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에 비로소 죄악의 세상에서도 빛과 소금처럼 구별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살아 갈 수 있는 기쁨을 가리켜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두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말하였다.  :7

   *이렇게 다윗의 마음속에 차고 넘치는 영적인 기쁨은 세상 사람들의 어떤 물질적인 위로나 기쁨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런 놀라운 기쁨이 있다(요15:11). 이런 기쁨은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없어지지 않는다(요16:22).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세상의 빛이 되어 선을 행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6. 다윗은 자기의 평안함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8

   1)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라고 말한다. 곧 다윗은 아무리 위험한 것이 그를 위협하고 있을지라도 전혀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침대에 눕자마자 곧 단잠에 빠질 정도로 평안함을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참조, 시 127:2).

     이러한 평안함은 성도들에게 주시기로 약속된 하나님의 복이다(요 14:27). 고난 속에서도 다윗처럼 기도하는 성도들은 모두 이런 평안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2)다윗은 자기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윗은 ‘오직’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자기에게는 하나님의 보호하심만으로 충본히 안전하다고 하는 것을 확신했다.

    하나님이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을 인도하셨으며(신 32:12)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들어가 정착할 수 있게 하셨다(시 44:2,3).

    *이와 같이 천국을 향해서 광야 같은 세상 길을 가고 있는 오늘의 성도들도 하나님의 보호하심만으로 충분히 안전하여, 결코 해를 당치 않을 것이다(23:4).   아멘.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만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원수 앞도 목자이신 하나님의 품속임을 믿고 신앙으로 고난을 승리하자.

 

  <시 5:1-1-12, 괴로움 속에서 드리는 기도>

 


  「시제」: 다윗의 노래. 지휘자(영장-히, 메낫체카)의 지휘에 따라 관악기에 맞추어서 부르는 노래(히,미즈모르=예배에만 사용된 거룩한 노래)

  *밤의 기도: 다윗은 밤에도 기도하였고, 다시 아침에도 기도하리라고 한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그의 기도는 악인의 심판에 관한 기도였다. 다윗은 많은 악인들의 횡포와 죄악에 괴로워하면서 그들의 손에서 자기(성도)를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곤란과 원수의 학대 중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대망하여 기도하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은혜로 호위되리라는 확신을 가지며(:12), 하나님 안에서 환희를 갖는다(:11).

:1-3, 여호와여 들어주시옵소서.

  *응답되는 기도: 여기서 다윗은 응답되는 기도는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그의 확신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마음과 창자(心腸)까지도 하나님 앞에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기도’여야 비로소 응답된다는 것이다(:1-3).

  그는 자기의 기도가 반듯이 응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귀를 기울이사’, ‘통촉하소서’, ‘들으소서’라는 여러 가지 표현으로 호소하고 있다.

  *성도는 입술에 발린 형식적인 유창한 기도가 아니라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1,다윗은 여기서 기도의 深度를 말하고 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사를 통촉하소서”

   1) ‘말’= 기도를 말하는 것인데, 묵상한 바 속생각을 토로하고, 소리내어 크게 호소하는 기도를 말한다.

   2) ‘심사-히, 히각’= 하나님께 쏠려 있는 마음의 묵상을 말한다. 생각하는 바를 들어내는 것을 말한다.    다윗에게는 마음 속 깊은 곳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었다.

  *성도는 기도할 때 상한 심령을 주께 가지고 나아가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3) ‘부르짓는 소리’=소리내어 큰 소리로 부르짖는 기도 소리를 말한다.

 


  :2, ‘나의 왕’= 여기에는 다윗의 신앙이 고백되고 있다. 곧 다윗은 자기가 한 나라의 왕이면서도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왕으로 인식했다. 그가 다스리시며, 보호하시고, 명령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신앙을 가졌다. 곧 다윗은 자기를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신하나 종처럼 낮추면서 하나님만이 온 세상에 있어서 유일하신 왕이 되심을 증거했다.

  *성도는 세상에서 아무리 높은 신분이 되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며, 종처럼 충성스러워야 한다.

 


  :3,“내가 주께 기도하고”= 제물을 준비하여 라는 뜻, 여기서 ‘기도하고-히,아락’라는 말은 창세기의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는 기사에서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라 했는데(창22:9) 거기서 ‘쌓고’라는 말과 ‘벌여 놓고’라는 말은 히브리 말에서 같은 말이다. 출40:33에 ‘여호와 앞에 진설하니’라는 말도 같은 말이다. 곧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아침에 제물을 가지런히 벌려 놓고 하나님께 봉헌하듯 기도를 그렇게 드린다는 말이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진설해 놓은 제물이 되게 하라!

  *히브리인에게 있어서의 아침과 저녁의 犧牲제사(민28:4)는 오늘날 성도에게 있어서 아침과 저녁기도와 같은 것이다. 성도는 주일예배만이 아니라 아침과 저녁기도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성도는 새벽기도와 저녁기도(수요기도회, 철야기도회)에 힘써야 한다.

 


:4-7,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와 긍휼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

  죄인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나갈 수 없고, 악인들이 당할 운명은 멸망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기에 죄인은 반듯이 심판되고 처벌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임재(臨在)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의 교통에 들어간다.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다.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

  :5,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한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며,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신다.

  :7, 그러므로 악에게 빠지지 말아야 하며, 동시에 은혜에도 태연하게 익숙해지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경외하고, 그에게 경배하고, 그를 섬겨야 한다.

 


  다윗은 악인들의 행동을 보고 더욱 신앙에 힘쓸 것을 결심한다.

  :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여기서 다윗은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다윗은 성전에 들어가는 것이 자기의 의나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의해서 되는 것임을 겸손히 고백하고 있다.

  *성도는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만을 의지하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8-12, 바른 사람이 받는 복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을 인하여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9, 하나님의 영에 의해 중생 되지 못한 죄인은 그 입에 신실함이 없고, 혀로는 아첨하며(언어생활의 부패성), 심중은 심히 악하고,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아 부패와 해독으로 가득하다.

  :10, 하나님은 그를 반역적 행위로 말미암아 처벌하실 것이다.

  :11, 그러나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 할 것이다.

  :12, 여호와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큰 은혜로 저를 호위하실 것이다.

   ‘방패-히,친나’=‘마겐’보다 큰 방패로 전사의 전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제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전 생애를 큰 방패로 보호하사 악을 이기며 주안에서 항상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하게 하시기를 축원한다.     아멘.

 


  <시편 6:1-1-10, 병상에서 지은 참회의 시>

 


  *통회하는 기도 : 이 시는 이른바 시편 중 일곱 편의 ‘회개의 시’ 가운데서 첫째 것이다.

  * 7개의 회개의 시= 시6:, 32:, 38:, 51:, 102:, 130:, 143:

  詩題에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스미닛’(여덟째-eighth란 뜻,=팔현금)에 맞추어 부른 노래라고 되어있다. 스미닛은 오늘날의 테너가 아니면 베이스나 그보다 더 낮은 음계를 가리키는 듯하다(대상15:21).

  이 시에는 걱정과 절망 속에서 영혼도 떨리는 상태가 되어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 은혜에 무조건 의지함으로써 구제 받고자 하는 다윗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내용>

   :1-3,   고민 중에 하나님께 아뢰는 호소(주의 긍휼을 위한 간구)

   :4-7,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원(구원의 간구와 회개의 눈물)

   :6-10,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승리(기도의 응답과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다)

   다윗은 아마도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단장의 고통 중에서 여러 날을 한 밤 중에 일어나 기도하였다.

    :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다윗은 그가 당하는 고통은 일직이 밧세바와의 불의한 통정 때문에 당하는 죄의 징치로 알았으므로 다른 사람이나 사정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1. 고통 중에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  :1-3

  다윗은 비참과 비통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앙망하며 기도 드린다.

     1)주의 분으로 견책하지 마시기를 기도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분노가 두려운 줄 알아야 한다.

     2)주의 진노로 징계하지 마시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합 3:2).

     3)뼈와 영혼까지 심히 떨림이 어느 때까지니이까?(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기도한다.

      ‘뼈’= 인간 자체 (시35:10, “내 모든 뼈가 이르기를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요, 그는 가난한 자를 그보다 강한 자에게서 건지시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노략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라 하리로다.”)

      ‘나의 영혼’= 나의 마음에 있는 사람(요12:27에서는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라고 하여 「마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2. 하나님께 드리는 소원기도   :4-7

     1)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나를 구원하소서.

       :4,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인자’=히, 헤세드-변함없는 사랑, 은총,  자기의 가치로가 아니라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구원하소서’이다.

     2)죽기 전에 주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께 감사하게 하소서.

       :5,“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음부-히, 스올’= 죽은 자들의 영혼이 가는 지하의 장소

       *다윗은 죽음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다. 살아서(생전에) 지상에서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성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근심과 대적에게서 구원하소서.

       :6,“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죄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울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8,“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사38:5에서 히스기야 왕에서 이르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성을 보호하리라”----‘네 눈물을 보았노라’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3. 하나님이 주신 승리   :8-10

     1)하나님은 그의 곡성을 들으시고 승리를 주셨다.

     2)하나님은 그의 간구와 기도를 들으시고  승리를 주셨다.

     3)하나님은 그의 원수로 부끄러움을 당하고 물러가게 하시고 승리를 주셨다.

    *성도는 고통과 고난에 부닥칠 때 환경을 탓하여 탄식하지 말아야 하고,

     사람을 원망하지 말아야 하고,

     스스로 실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고요히 자신을 헤아려 하나님 앞에 겸비해야 하고, 주 앞에 마음을 다해 참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것이 많은 대적에게 둘러 싸였을 때 그들을 물러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며, 최선의 비결이다. 하나님은 참회하는 자에게 승리를 주시고 복을 내려 주신다.  아멘.

 


  <시편 7:1-17, 남아있는 자의 기도>

 


 * 詩題:다윗의 식가욘, 베냐민人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다윗의 시므이의 욕설에 대한 기도)

   ‘구시“=다윗이 수도를 빼앗기고 피난 중 그를 저주한 시므이인듯 ?(삼하 16:7-8),

          혹은 삼상 24:9에 보이듯이 다윗이 사울왕을 죽이려고 한다고 모함했던 인물 중의 하나인 듯?

   식가욘=哀歌 혹은 어떤 곡의 이름인 듯(열정적으로 부른 노래 ?)

          합 3:1에서는 식가욘 대신 複數形,‘시기오놋’으로 되어 있다.

*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 그러므로 그에게 구원을 호소하다.

   :1-2,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호소

     다윗은 사울왕을 섬기던 시절 사울왕과 그 신하들에 의해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많은 고생을 하였다. 다윗을 쫓는 자들은 사람을 찢고, 뼈를 부수는 사나운 사자와 같았다. 이들은 너무나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피할 수밖에 없었고 구원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 우리들도 우리를 시험하고 핍박하는 대적이 강할 수록 더욱 철저히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에게 피하여 구원을 얻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알고 그에게 모든 문제를 맡기는 다윗의 신앙적 행위는 본받을 만 하다. 그는 권력도 의지하지 않고 재물이나 친구를 피난처로 삼지도 않았다.

  * 우리가 세상을 살아 갈 때 결코 권력이나 금력이나 인력을 가지고 불의한 일을 도모하려고 하는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예)김성준 선교사(브라질, 아마죤강 유역에서 선교), 그는 불의한 방법으로 출국할 수 있었으나 그런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다.

 


   :3-5,   다윗이 자신의 결백함을 사울 왕에게 말하다.

     당시 사울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것은 주위에 아첨하는 자들이 다윗이 왕을 해치려 한다는 참소하는 말에 현혹되었기 때문이다(삼상 24:9, 16-19).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다윗은 사울왕에 대하여 꿈에도 逆賊陰謀를 도모해본 적이 없었다.(참조, 삼상 24:1-15).

     다윗의 이 같은 진실한 삶의 태도는 오늘날 음모와 모함과 비방을 방편으로 삼아 자기 출세의 길을 열려는 야비한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 자기의 양심을 속이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거짓이 없이 서는 자는 다윗처럼 언제나, 누구 앞에서나 담대할 수 있다.

   :6-10,  하나님께 재판을 청구하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를 심판해 주시기를 호소했다. 여호와께서 진노로 일어나사 대적들의 노를 막아 주시기를 기도했다. 하나님은 현 세상에 대해서 심판하지 않고 계시는 것 같으나

실상은 세상에 규정하신 심판제도와 법을 가지시고 지금도 심판하고 계시는 것이다(롬13:4).

     그리고 하나님은 무고한 자의 호소를 묵과하지 아니하시고 그 억울함을 풀어 주신다(창21:13,14-18; 눅18:7-8).

     :8, 다윗은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라고 그의 무혐의를 주장한다.

     :9, 하나님은 인간의 心腸(마음과 밸)을 감찰하시는 분이시다. 히,‘켈라요트’는 본래 ‘콩팥’을 가리키는 말로서 히브리인들은 콩팥이 감정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과 감정과 의도를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판단은 착오없이 정확하며 의로우시다.

     :10,다윗은 자기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대적하여 이길 자는 세상에 없다. 그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이 그의 방패가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11-13, 하나님께서 심판을 예비하시다.

     :11, 다윗은 하나님을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매일’이라는 말은 계속해서, 항상, 쉬지 않고란 뜻을 가진다.

     :12, 하나님은 악인에 대하여 예외 없이 심판을 예비하신다. 하나님의 진노는 감정이나 돌발적인 흥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변개 치 아니하시는 그의 公義에서 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공의로운 裁判長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가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공의는 우리의 그에 대한 신뢰의 근거가 된다.

     :13, ‘火箭’이란 불을 붙여 쏘는 화살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성을 포위하고 함락시키기 위해 사용된다.(화전은 마귀의 것으로 사용될 때는 시험이란 뜻이 되고(엡:16), 하나님의 것으로 사용될 때는 심판이란 뜻이 된다(:13).

 


   :14-16, 악인의 종말

     :14, ‘악인이 죄악을 해산한다’고 함은 악인의 마음과 생활의 결과가 죄악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악인은 남을 해하려는 殘害를 잉태하여 남을 해하려는 계획과 속임수인 詭譎을 낳는다.

     :15, 그러나 그 결과는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간다. “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자기가 만든 함정에 자기가 빠지고,

     :16, 결국 殘害와 暴虐도 자기 머리로 돌아간다(예; 에스더 9:25). 악인이 자기 꾀에 자기가 빠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있어서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악인의 詭譎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믿음의 정절과 하나님의 공의를 지켜야 한다.

   :17,  다윗의 찬송

      다윗은 감사와 찬양으로 그의 기도를 맺고 있다. 그는 여호와의 ‘義’(그의 종들을 구원하시고 지켜 주시는 데 있어서의 신실성)를 따라 감사했고,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의 ‘이름’(그 자신과 그의 영광)을 찬양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드린 기도대로 자기를 구원해 주시고 신실하게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 성도가 하나님께 대하여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이름에 찬양을 드리는 것이요, 그의 의를 인하여 그에게 감사드리는 것이다.      / 아멘 /

 

 <시편8:1-1-9, 주님의 榮光과 사람의 榮華>

 


  *詩題: 다윗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

    ‘깃딧’=불레셋 도시 가드에서 다윗이 배운 악기, 또는 노래의 분위기를 지시하는 용어

 *내용  :1,         하늘과 땅에 나타난 주의 영광

        :2,         주께서 젖먹이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시다

        :3-4,       우주와 비교된 사람

        :5-8,       사람의 영화와 존귀

        :9,         주님을 송축하다

  본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과 특히 사람을 권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드리는 찬미다.

  <신령적 해석>

   메시야와 이스라엘의 장래를 예언하고 있다. 사람 중 사람으로서 세상에 나타나신 인자, 그리스도의 출현에 의하여 이룩된 구속의 결과, 인류가 그 특권을 회복하는 미래의 영광을 말씀한 것이다.

  창1:28, 제일 아담의 왕적특권(:6)과 범죄로 인한 그 喪失

  히2:6-9,제이 아듬 예수가 인간의 본래 영화와 존귀와 특권을 회복시키심

  고후5:17,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는 재림과 심판 시 본래의 목적대로

          만물을 다스리는 자의 지위로 복귀될 것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인간은 지금도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한다. 그러나 정작 그 때에 가서야 참으로 그런 영화와 존귀를 회복할 것이다.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권고해 주시는 사랑뿐이다.

  <본문 강해>

  :1, ‘주의 이름’=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한계 내에서 인간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을 의미한다.

      특히 :1은 땅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주며 하늘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2, ‘어린아이와 젖먹이’=히,‘올렘’은 「더듬거리며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아이」, 이런 어린아이는 ‘젖먹이’라고도 부를 수 있었다. 히브리 여인들은 젖을 늦게까지 먹이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원수와 보수자를 잠잠케 하시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도 권능을 세우시는 역사를 도모하신다. 그리고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은 아무런 꾸밈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하나님께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되며 하나님의 대적들은 더 이상 대항할 수 있는 말을 잃고 만다(마21:15,16).

    * 하나님은 지금도 단순, 신뢰하는 靈界의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에 찬미를 채워주시고, 그것으로 不信의 무리를 복종케 하신다.

  :3, 여기서 ‘하나님의 손과 손가락’은 주의 능력과 권세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그의 손가락으로 하늘을  만드셨고, 달과 별을 베풀어 두신 창조자이시다. 우리는 자연과 우주를 바라볼 때 그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4, 인간은 우주에 비해 지극히 작은 존재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너무나 보잘것 없는 존재라고 다윗은 말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수밖에 없다.

      ‘人間 -히, 에노쉬’=여기서는 인간의 허약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人子 -히, 벤 아담’=인간은 ‘아다마’(흙,먼지)에서 만들어져 다시 먼지로 돌아갈 자, 아담임을 암시한다.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보잘것 없는 존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깊은 관심 속에서 저를 생각하시고 권고하신다. 여기에 다윗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관심과 사랑에 감탄하고 있다. 사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인간을 우주보다도 더 관심을 가지시고 사랑하시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5, 다윗은 여기서 인간이 천사보다 조금 못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고 말한다. 인간이 천사보다 조금 못한 것은 천사만큼 하나님을 가까이 뫼시지 못하고 있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영화와 존귀를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인간은 겉으로 보면 허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 듯 하나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만 하면 지극히 영화로운 존재요, 존귀한 존재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였을 때에 비로소 해당되는 말이다.

  :6-8, 본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창조물을 다스리고 주관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이를 신학적 용어로 「문화적 사명- Cultual Mandate, 창1:28)」이라고 일컫는다. 動物界의 왕 사자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하나님의 창조물을 모두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은 받지 못했다. 오직 인간에게만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함으로 이 권한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때로는 도리어 자연에 지배당하고, 그 위세 앞에 굴복하는 처지로 전락되고 말았다(창1:17-19). 만물통치의 권한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다시금 회복될 수 있다(고전15:25-28; 히2:8).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를 믿어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온 우주를 통치하는 왕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계22:5).

  :9, 본시의 맺는 말이다. 1절과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과 특히 인간을 통해서 알려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하기 위함에서 반복하는 말이다. 우리는 모든 사물과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껴야 하고 그것들을 통하여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한다.   / 아멘 /

 

 

  < 시편 9:1-20,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다 >

 


   詩題 : 다윗의 시, 영장으로 뭇랍벤에 맞춘 노래

     ‘뭇랍벤’= ‘벤의 죽음’이라는 뜻, 여기서는 본시의 가락을 맞출 때 사용한 당시 잘 알려진 노래의 처음 부분을 가리킨다고 칼빈은 말한다(J. Calvin).

   내용 :1-3,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다.

        :4-10,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증거하다.

        :11-12,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권고하다.

        :13-14,    긍휼히 여기기를 기도하다.

        :15-20,    악한 자들에 대한 심판을 호소하다.

  본시의 형식상 특징은 히브리어 알파벳의 踏冠體 형식으로 쓰여졌다는 점이다. 답관체란 시의 연이나 절의 첫 글자를 알파벳의 순서를 따라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詩形式을 말한다. 그 목적은 시를 읽는 이의 기억을 도우려는 데 있다. 이런 시를 ‘알파벳 시’라고 하는데 시편에는 모두 9개의 답관체시가 있다(시 9편,1 0, 25, 34, 37, 111, 112, 119, 145).

 


가. 시 9:1-3,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다.

 1. 다윗은 감사로 그의 기도를 시작하고 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1.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자비와 은총을 기억하면서 그 하나님께서 현재와 미래의 고난 중에서도 은총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써 그 같이 기도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전심으로 감사했다. ‘全心’이란 ‘두 마음’이 아니라 ‘온 마음’을 말한다. 만일 유한한 인간이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자신에게 돌린다면 그것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되지 못한다.

 


 2. 다윗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의 모든 奇事를 전하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奇事란 하나님께서 다윗을 곤경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루신 모든 기적들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본시는 법궤를 시온, 곧 예루살렘으로 다시 옮긴 후에 암몬 자손을 정복한 사건(삼하 12:26-31)에 대해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는 시인 것 같다. 이렇게 다윗은 자기의 전 생애를 통하여 나타난 모든 구원 사건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전파하겠다고 아뢰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도 수많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의 경험이 있다. 그런 것을 증거하는 것은 증거하는 자신에게나 그것을 듣는 이에게 모두 좋은 일이다.

 


 3. 다윗은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겠다고 말한다.

    찬송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신앙의 고백이다. 그런데 다윗은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찬송하리니”라고 말하고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송한다」는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찬송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에게 있다. 무엇을 즐거워할 것인가 ?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그가 주신 어떤 것보다 그를 즐거워해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세상의 소유물은 없을지라도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라고 고백하고 있다(합 3:17-19).  다윗의 기쁨과 즐거움의 원인은 오직 하나님이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주신 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늘 기뻐하며 그를 인하여 언제든지 진정한 찬송을 주께 드릴 수 있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진정 이런 믿음이 부럽지 아니한가 ?

 


 4. 다윗은 그의 원수들은 넘어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넘어지되 ‘주의 앞에서’ 넘어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원수들이 넘어지는 원인이 다윗 자신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다.

  기드온 300의 용사 앞에 미디안의 大軍이 넘어지고 만 것도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있었던 것이다(삿 7:9).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어떤 성취와 승리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능력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때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함은 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의 마땅한 본분인 것이다.

 


나. 시 9:4-10,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1.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송사를 변호하시며, 의롭게 심판하셔서 다윗에게 반기를 든 列邦은 멸망하고 만다.

   그들은 큰 군대요 많은 무리였다. 하나님은 그의 신실한 종 한사람을 변호하시고 구원하시려고 큰 군대를 아끼지 않으시고 징벌하신다는 것은 놀랍고 기이한 하나님의 경륜이다.  우리들도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생각하고 많은 무리의 패역과 핍박을 두려워 말고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2. 하나님은 심판을 위하여 예비하신 보좌에 영영히 앉아 계신다.

   하나님은 심판의 권위와 동시에 심판할 책임을 갖고 계시다. 인간이 제아무리 발악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심판의 보좌에서 끌어내릴 수는 없다. 그의 보좌는 永永한 것이다. 하나님의 불의에 대한 심판은 의롭게 살아가려고 하는 성도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로우며 정직으로 만민을 판단하신다.

   그러므로 그 앞에 불의와 횡포가 처벌되지 않은 채 묵과되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간에 「완전 범죄는 없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는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력을 두고 하는 말이라기보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두고 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당하고 잔혹하게 괴롭힘을 받을 때 우리의 억울함을 먼저 하나님께 호소하도록 해야 한다(눅 18:1-8).

 


 4. 다윗은 하나님을 ‘압제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라고 고백한다.

   ‘산성’은 堡壘<히,미시가브>를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은 환난 때(히,밧차라=대책이 서지 않는 위기)의 피난처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도들이여 억울한 자의 피난처이신 하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라. 성도가 극도의 환난을 당하여 세상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될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발동한다(합 3:1-19).

 


 5. 누가 주를 의지하는가에 대하여 다윗은 ‘주를 아는 자’가 주를 의지한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 지식’을 말하며, 신앙은 ‘하나님 지식’에서 생성된다(롬10:17).

다. 시 9:11-12, 여호와를 찬양하라.

 1. 다윗은 성도들에게 시온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찬송하고 그의 행사를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권면 한다.

   이유는 성도는 놀라운 구원과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전파하는 것이 그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찬송이란 입술의 노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사를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들은 이처럼 찬송과 전도를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 진정한 찬송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행사가 증거 되는 것이다.

 


 2. 다윗은 하나님을 ‘시온에 거하신 여호와’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은 이방의 모든 거짓 신들로부터 구별된 살아 계시며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뜻한다. 오늘날 성도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가 곧 하나님이 거하셔서 역사하시는 ‘시온’이 될 것이다. 우리 교회로 하여금 시온이 되게 해야 하겠다.

 


 3. 다윗은 하나님을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시며,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며 그에게 호소한다.

   하나님은 무고한 게 흘린 피의 호소를 들으시며, 그를 위하여 심문하시고, 그의 부르짖는 기도를 잊지 않고 응답하시는 분이다. 성도여, 그 하나님을 바라보고 낙심 말고 다윗처럼 긍휼을 호소하는 기도를 계속하라(:14).

 


 4. 다윗은 악인의 운명에 대하여 그는 반드시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질 것이요, 제가 친 그물에 걸릴 것이요, 제가 놓은 올무에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악인은 스스로 파멸을 자초하여 마침내 음부에 떨어져 영원한 멸망에 처하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17).

  :16의 ‘힉가욘’은 ‘묵상’이란 뜻인데 시를 읽을 때에 잠시 멈추고 묵상하라는 표시일 것이라고 한다(칼빈). 곧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명상하라는 뜻일 것이다.

 


 5. 다윗은 궁핍한 자가 결코 하나님께 잊어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가나난 자가 영영히 실망치 않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성도의 궁핍과 가난이 일시적으로 버림을 받거나 복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으나 그러나 성도가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연단 된 뒤에는 하나님께서는 더욱 강한 손을 펴서 그를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을 당할 때에 그것이 당장 없어지기를 기도하기 전에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이 승리의 날을 주시기까지 믿음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에게 승리의 날을 주시고야 만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6. 다윗은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人生과 列邦을 심판하시기를 기도한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께서 일어나시기를 간청하는 기도를 한 것은 하나님을 擬人化한 표현이며 하나님께서 마치 우리 눈앞에 앉으셔서 두렵도록 심판하시는 역 역한 사실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할진저!        / 아멘 /

 


  < 시 10:1-18, 악인의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 >


   * 남은 자의 메시아 대망의 시

 


    1-2     악인의 교만

    3-4     악인의 불경건

    5-6     악인의 형통

    7-11    악인의 强暴

    12-14   악인의 불경건을 하나님께 고발하다.

    15-18  악인의 멸망을 하나님께 기도하다.

    󰡔:1-11,   불경건한 자의 품성과 방약무인한 언행

     :12-13,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호소(:1, 12, 13)

     :14-18   하나님은 고난 당하는 자의 간구를 귀 기우려 들어주시는 하나님󰡕

 


  본시는 표제문이 없어 기자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학자들에 의해 다윗의 시로 인정되고 있다.

  본시도 역시 踏冠體로 된 「알파벳 시」라는 점에서는 9편과 같으나 다른 데가 있는 것은 9:은 이교도에 대한 승리를 노래하고 있으나 10:은 이스라엘의 악한 무리에 대한 탄원을 다루고 있다.

가. :1-2, 악인의 교만

1. 다윗은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셔서 환난 때에 도와주시기를 너무나도 간절히 바란 나머지 하나님께서는 지금 멀리 숨어 계시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라고 호소한다.

2. 악한 자는 가련한 자를 심히 군박(窘迫) 한다고 호소한다. 여기서 ‘가련한 자’는 다윗 자신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으로 「성도」를 의미한다. 악인은 성도를 군박한다. ‘군박’이란(히,달락)박해한다는 뜻이다. 악한 자가 성도를 핍박하는 이유는 「교만」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교만 때문에 무고한 자들을 박해하여 괴롭게 하면서도 가책을 받지 아니한다.

 나. :3-4, 악인의 不敬虔

 3. 貪利하는 악한 자는 자기를 자랑하지만 마침내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게 된다. 마 6:24 은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하였다.

 4. 악인은 그 교만한 얼굴로 하나님을 멸시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치 아니하신다’하며 ‘하나님이 없다’라고 한다. 즉 악인은 아무리 악을 행하여도 하나님은 없고 , 설혹 있다해도 감찰치 아니하니 아무 보응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無神論 思想의 근본이다. 곧 무신론 사상은 인간이 교만하여 극도로 그 양심이 둔해졌을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사상이다.

 다. :5-6, 악인의 형통

 5. 악인은 그 길이 언제든지 견고한 듯하게 보일 정도까지 형통한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된 듯하며 자기 적들을 멸시하고 ‘나는 요동치 않고 영원히 환난을 당치 않는다’고 장담하리 만큼 형통한다.

 6. 그러나 이러한 악인의 형통은 단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한 증표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그의 멸망은 조만간(早晩間)에 임하고 만다. 불경건한 자가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많이 이루어 성공을 하면 할수록 그는 그만큼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 다(롬2:5).

라. :7-11, 악인의 강포

 7. 악인의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여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다. 여기서 ‘저주’란 남이 못되기를 바라는 말이고,‘궤휼’은 간교하게 속이는 말을 의미하며, ‘포학’은 남을 부당하게 억누르는 중상 모략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잔해’는 악인들의 혀 밑에 있다고 하는 것은 악인의 독설로 남을 근심케 하고 해치는 말을 의미하며, 죄악은 악인의 말 자체가 죄악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8. 악인은 유벽(幽僻)한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 눈은 외로운 자를 엿본다.

 9. 사자가 그 굴혈에 엎드림 같이 저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 가련한 자를 잡는다. 본문에서 무죄한 자, 외로운 자, 가련한 자라고 한 것은 다윗 자신과 같은 성도들을 다른 말로 표현한 것이다. 성도들은 항상 이런 악인들의 술수에 대하여 항시 경각심을 갖고 일깨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10. 악인이 굽으려 엎드리니 그 강포로 인하여 외로운 자가 넘어진다.

11. 악인은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한다.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악한 자의 오만(傲慢)이다. 성도들은 이런 사상에 물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 :12-14, 악인의 불경건을 하나님께 고발하다.

12.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성도가 악한 자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손을 들고 일어나사 악한 자를 막으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다.

13.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고 스스로 마음에 이른다. 성도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14. 그러나 악인의 마음의 경영은 빗나갔고 억측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잔해’와 외로운 자의 ‘원한’을 보셨다. 그리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잡으려)하신다. 그러므로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한다. 하나님은 벌써부터(창 16:13) 고아를 도우시는 자이시다.

 바. :15-18, 악인의 멸망을 하나님께 기도하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팔을 꺾는다’는 말은 악인의 세력을 파괴하여 무력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악인의 세력이 강성하여 氣高萬丈할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파괴되고 만다.

  악한 자의 악이 없기까지 찾으소서라는 것은 악인의 뿌리를 뽑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16. 다윗은 여호와를 영원무궁토록 왕이시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을 왕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영원한 통치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그 권능에 의해서 그의 다스림을 받는 그의 백성을 온전히 구원하실 것이고, 열방은 주의 땅에서 멸망 할 것을 확신하는 말이다.

17. 여호와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고 저희 마음을 기도하려고 하는 마음을 주사 견고케 하신다. 하나님은 성도가 고통과 불행 속에 있을 때에  절망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힘을 주고 또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

18.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로 다시는 위협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본시에서는 악인의 횡포와 거짓 그리스도와 선민의 비교가 나타난다.  곧

  악한 자 :2, 15                가련한 자  :2, 9

  악   인 :3, 4, 15             무죄한 자  :8

  탐리하는 자  :3               외로운 자  :8, 10, 14

  교만한 얼굴  :4               가난한 자  :12

  세상에 속한 자  :18           겸손한 자  :17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악한 자의 일시적인 형통을 보고 놀라워하지 말라. 그것은 악한 자까지도 버리지 않으시고 마침내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인내하심에 불과하다. 그러나 끝까지 오만한 자는 반듯이 심판되고야 만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 그 까닭은 하나님은 그에게 부르짖는 외로운 자, 가난한 자, 가련한 자, 고아와 압박당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심으로 그들을 버려 두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 아멘 /

 


  < 시11: 1-7, 고난 가운데서의 호소 >

    의인의 悲觀과 확신(의인과 악인)

   :1-3,  악인이 성도를 시험하다.

          악인의 유혹에 대한 대답(“나에게는 의지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다.(확고한 신앙고백)

   :4-5,  감찰하시는 하나님

   :6-7,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징치에 대한 신뢰

 


   본시에서 다윗은 악인들이 시험하는 말을 듣고 나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피할 곳이 되셨는가를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이 성도의 피할 곳이 되는 이유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다윗이 본시를 지을 때는 사울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추격해 오던 극심한  환난 기였다. 그 때 악인들은 다윗에게 적에게 피하라는 권면을 하였으나 그것을 거절하고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을 그의 피할 곳으로 삼았다. 여호와께 피함보다 안전한 곳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도 극심한 환난과 위기를 당할 때 굳센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하겠다.

 


  :1,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이는 다윗이 여호와만을 자기의 피난처로 삼고 의지하였다는 말이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狂奔하고 있을 때 그 일이 장기간 동안 계속되고 있었음에도 다윗은 신앙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다.

  악인들은 다윗에게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다. 여기서 “새- 히, 치폴”은 참새와 같이 작은 새를 의미하며, ‘네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특정한 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발길 닿는 대로 가라는 말이다. 이는 악인들이 다윗의 처지를 끝장난 것으로 알고 그것을 즐거워하면서 놀란 참새가 도망치듯 어디로든지 망명하라는 말이다.

  이같이 우리들도 오래도록 곤경에 처할 때 신앙을 포기하고 살라는 악인들의 시험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2, 악인은 다윗을 위협하기를 마치 어두운 데서 활을 당겨 쏘려고 하는 것같이 그를 죽이려고 위협하였다. 이는 다윗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였으며 죽을 지경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윗이 이런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던 것이 도리어 그에게는 신앙을 더욱 돈독케 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구원이 매우 놀라운 것임을 체험케 했다.

  우리 성도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때 이미 앞서 간 성도들이 겪은 것을 거울로 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로 구원받은 것을 보고 격려를 받고 이겨내도록 해야 하겠다.

 


  :3,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는 말은 성도에게 있어서 신앙이 무너지면 바르게 살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윗은 아무리 악인들이 위협하고 시험하여도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의 생명을 건지려고 딴 곳으로 도망할 수는 없었다. 성도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자기의 삶의 터가 되시는 하나님과 그의 언약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

 


  :4, 성도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신앙을 지켜야 한다.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며, 그의 보좌는 하늘(=땅의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권위의 자리)에 분명히 계시어서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고 계시므로 그를 의지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켜야 한다.

  ‘통촉-히, 하자’= 쪼개다. 쪼개듯이 날카롭게 꿰뚫어 보신다는 뜻.

  ‘감찰-히, 바한’= 불로 금속을 시험해 보듯이 가장 깊숙한 본질까지를 응시하여 살핀다는 뜻.

 


  :5, 여호와는 의인은 감찰하시나 악인과 강포 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신다.

  ‘감찰-바한’은 여기서 ‘인정하다’는 뜻이 있다. 하나님은 의인은 인정하시나 악인은 인정치 않으시고 미워하신다(시1:6). 성도는 우리의 중심까지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인정받는 자가 되도록 진실한 믿음과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6, 다윗은 악인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물을 내려치실 것이고,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불과 유황을 그물처럼 내려치실 것이니 피할 길이 없도록 심판하실 것을 말하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기 전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일단 내려지면 인간에게 그것을 피할 도리는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살아 있는 한 회개할 기회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 우리의 생명이 끝날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니, 인간은 그 때를 놓치지 말고 즉시 회개해야 할 것이다.

  ‘잔의 소득’이란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할당하실 진노를 뜻한다. 악인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될 때, 한 모금씩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겔 23:34의 말씀과 같이 ‘ 그 잔을 다 기울여 마시고’ ‘그 깨어진 조각을 씹’게 될 것이다.

  :7,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일을 좋아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자신이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촉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만이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 살아야 할 것이다.

  /  아멘  /

 

 

< 시12:1-8, 악한 세대에 대한 탄원 >

 


  時題: 다윗의 시, 영장으로 스미닛에 맞춘 노래(허위로 가득한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신뢰함을 노래한 시)

  내용(진실치 못한 자들에게 둘러싸인 신앙자가 드리는 기도)

   :1-2,       악한 세대의 실상

    3-5,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언하시다.

    6-7,       하나님의 말씀의 순결성

      8,       악한 세대에 대한 탄식

 


   時題는 시6:과 같다. ‘스미닛’은 제 8음이라는 의미로 낮은 음을 가리키는 말, 낮고 준엄한 분위기로 부르라는 지시인 듯하다.

   다윗은 첫머리에서 “여호와여 도우소서”라고 말하고 있다. ‘도우소서-히, 호쉬아’는 그 자체에 목적어를 두고 있어 그 말 다음에 이유를 말하는 히브리어 접속사 - ‘키’가 나옴으로써 다음 말부터 8절까지가 모두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1.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있는 이유는 무엇 무엇인가 ? (:1-8)

   1) :1,2,8,   당시의 사회가 극도로 패역하여 견딜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성경에 있어서 이렇게 죄악의 세력이 팽대하여 극악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시 119:126).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2)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이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하게 될 때 그것을 침울하게만 바라보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다윗의 본을 따라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한다.

 


2. 당시의 부패한 사회상은 어떠한가 ?

    ①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진다.   :1

      세상이 허위(거짓, 아첨, 위선)로 가득 차 경견한 자와 충실한 자가 아침의 별처럼 적어진다.

    ②이웃에게 거짓을 말하며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을 말한다.  :2

      거짓말은 두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며 모든 악의 근원이다. 정직하지 못하다고 함은 두 마음을 품는 것을 의미한다. 두 마음을 품은 자가 하는 모든 일은 거짓되고, 위선에 찰 수밖에 없다. 정치적 풍토와 종교적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도록 이 사회의 풍조는 정화되어야 한다.

      주님은 마귀를 ‘거짓말 장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부르셨다(요 8:44). 우리는 「거짓의 중독증」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거짓은 한 번 저지르면 마약에 중독 되는 것 같아서 계속 저지르게 된다.

    ③가련한 자가 눌리고 궁핍한 자가 탄식한다.  :5

    ④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며 악인이 처 처에 횡행한다.   :8

      󰡔비루함-히, 라솨임󰡕= ‘사악한 사람들’을 뜻한다.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 사악한 무리들이 득세하여 지배하는 때

 


3. 이에 대한 여호와의 대책과 처리

    ①여호와께 구하는 자를 도와주신다.    :1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악인의 심판과 성도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련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시겠다고 친히 말씀하셨고, 다윗은 그 말씀을 꼭 믿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야말로 성도의 믿음의 근거며, 소망의 근거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곱 번 연단한 은보다 순결하다. 하나님의 약속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것이며 철저한 것이며 진실한 것이며 순결한 것이며 흑막이 없다.

    ②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신다.  :3

      󰡔자랑하는 혀󰡕= 자기신뢰의 교만이다. 우리의 확신이 자시신뢰의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은 입술로 사람을 해치기 쉽다.  :4,

      하나님은 거짓된 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방관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시고 廢하여 버리실 것이다.

    ③탄식하는 소리에 일어나사 저를 안전지대에 두신다.

      󰡔안전지대󰡕= 도로상의 안전지대(피난처, 도피성, 어깨사이, 품)

    ④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신다.

      󰡔이 세대󰡕=악한 자들의 큰 무리

      󰡔영영토록󰡕=악한 세대가 존속하는 全期間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기대하는 사람만이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의롭게 살아갈 수 있다. 세대가 불성실하고, 불경건하며,  불의하며, 비루함이 높아지고,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의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며, 혀로 사람을 해치는 악이 관영 할지라도 성도는 거기에 합류되지 말고 믿음의 정절을 지켜 의롭게 살아가야 한다.

   사회의 극악 상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런 사회상을 볼 수록 더욱 믿음에 굳게 서고 말씀에 굳게 서서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느끼면서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며, 경건생활에 힘써야 할 것이다.     / 아멘 /

 


 < 시편 13: 1-6, 암흑에서 평안으로 >

 

(시 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 13:2)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시 13:3)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시 13:4)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시 13:5)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 13:6)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사울 왕의 박해 시에 기록

  장기간의 환난. 암흑에서 광명으로.

  심한 시련 중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

  오래 계속되는 환난 중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애원,  :1-4

  신앙의 승리 확신하고 발표,  :5-6

 


  :1-2 가운데 ‘어느 때까지’란 말 4번이나, 일시적이 아닌 시련, 오랜 환난인고로 현실과 신앙과의 모순을 보고 정신적으로 많은 고민. 그러나 성도는 시련을 당할 때에 그것을 원수의 것이라 생각 말고 하나님의 섭리라 생각, 신앙의 연단이라 생각하면 인내와 오히려 감사 가능. 이렇게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기도 뿐(3-4).

  *환난 시, 불신앙에는 비관이 있으나 신앙에는 기도가 있다.

  기도= 하나님을 찾아 물음.

  <기도의 결과>

    :5, 신앙과 희열

    :6, 풍성한  은혜와 감사

  시인을 둘러싼 고난과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고난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도 신앙이 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기도의 내용>

    성도는 원수에게 질 순 없다. 1-3, 4

    기도에 응답하소서  3a

    사망의 잠을 자지 않게 하소서 3b

    요동하지 않게 하소서  4b

    환난 시에 주의 인자하심을 의지하라.

    주의 구원을 마음으로 언제나 나를 후대하시는 하나님! 그러므로 여호와를 찬송하리라.

    아멘.

 


< 시 14:1- 7, 무신론과 그 죄악 >

 

(시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 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 14:3)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시 14: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뇨 저희가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시 14:5) 저희가 거기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시 14: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경영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 피난처가 되시도다

(시 14: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하나님 없는 세대에 대한 탄식

  무신론과 죄악, 종교는 두뇌보다도 마음. 이 시편은 다소 차이는 있으나 시 53:과 거이 같은 것.

 


<예언적 해석>

세상 끝에 하나님과 그 백성에게 대적하는 배교자의 상태와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보여준 것.

 


1-4,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 사람의 죄 많은 상태(인간은 부패하였다.)

  어리석은 자= 죄와 불의로 마음이 어두워지고 시비(是非)선악(善惡)은 분별치 못하는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그러므로 죄는 마음대로...

 


1-4, 세인의 불의한 상태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가 불의 부패에 들어가는 원인.

  종교 없는 참 도덕은 불가. 하나님 경외심 없이는 정의, 참선 행치 못해(1, 3).

  종교는 두뇌의 문제가 아니다. 먼저 마음의 문제. 불신은 불원에서!

  회개는 하나님을 알게 하는 첩경.

  어리석은 자는 고통 중의 성도의 기도, 신뢰, 복종을 모멸한다. 그러나 시인은 오직 여호와는 성도의 피난처가고 고백(6).

 


<예언>

세상 끝에 불경건, 부패상. 이스라엘의 회복(7).

메시야가 성도 사이에 계심으로 세인이 성도를 두려워 함(5).

 

< 시 15:1-5, 하나님이 받아들이시는 사람, 거룩한 산에 거할 자, 하나님께 속할 사람 >

 


  (시 15: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시 15: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시 15:3)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시 15:4)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시 15:5)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24:과 유사

 ‘주의 장막’= 성막, 언약궤가 안치된 곳,

 ‘성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택정 된 시온

 ‘거하며’= 현재는 하나님과의 교통에 들어감을 뜻하고(유하고), 장래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거할)을 뜻한다.

 <거기에  유하고 거할 자 누구인가?>

 한 마디로 그는 깨끗한 자이다. 발(2), 손(행위)(2), 마음(2), 혀(3), 입(4), 눈(4)이 깨끗한 자이다.

  *적극적인 성결(2,4)

  *소극적인 성결(3,5).

 


1. 정직하게 행하며, ‘정직’= 온전하여 비난할 결점이 없는 것. 그러므로 단지 도덕적으로 온전한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앙에도 표면상 신앙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정직’은 마음속에 품고 있을 것이 아니라 행해야 할 일이다.

2. 공의를 일삼으며,

3.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4. 혀로 참소(讒訴)치 아니하고,

5. 벗에게 행악(行惡)지 아니하며,

6.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7.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그 눈은’),

8.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그 눈은’)

9. 마음에 서원(誓願)한 것은 변치 아니하며(해로울지라도)

10.변리로 대금(貸金)치 아니하며,

11.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함.

 


곧  ①자신과 이웃에 대해서 바름:- 바른 행동 자(2a), 마음이 진실한 자(2b), 말을 삼가는 자(3),

    ②하나님께 대해서 바름:- 죄를 증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4a), 하니님께 대한 약속(서원)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4b),

    ③금전에 대해서 바름:- 금전을 바로 관리하는 자(5, 출 22:25, 이자 금지)

    ④믿음에 굳게 서서 요동치 않음(5b).    아멘.

 

  < 시편 16:1-11,  부활과 영생의 소망 >     - 현세와 내세에 대한 하나님에의 신앙 -

 


  내용 : 이는 그리스도 부활의 예언시이다.(:8-11, 행2:25-28, 13:35-37)

   :1-2,        하나님께 피하다.

   :3-6,        하나님만 섬기다.

   :7-9,        하나님이 함께하시다.

   :10-11,      부활과 영생의 소망

 


  詩題: 다윗의 「믹담」= 황금, 가장 좋은 金을 의미하는 <카탐>이라는 히브리어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믹담은 「황금시」 또는 「금언시」를 의미한다. 이 말은 56-60편에도 사용된다.  앗수르어 ‘가담’은 ‘씌운다’는 뜻인데 이로 볼 때 ‘믹담’은 「죄를 가리우는 힘을 가진 시」란 뜻이다.

  :1, 다윗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보호를 요청하면서 그에게 피하였다. 진정한 성도라면 그는 환난 중에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피하며 그의 보호를 기도한다.

   ‘피하였다-히,카사’=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평안한 마음을 유지한 신앙의 태도를 말한다. 이처럼 성도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인간적인 방법으로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를 의지하는 신앙의 태도로 대처해야 한다.

  :2, 그는 여호와께 ‘주는 나의 주’라고 고백한다. 여호와를 자기의 「主」라고 고백함은  그가 자기의 생명까지라도 주장하는 주인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기가 그의 ‘從’됨을 고백하는 것이다.

  :3,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하면서 동시에 성도들에 대한 그의 사랑을 고백한다. 그는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의 모든 즐거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을 행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도들을 사랑함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고 성도 사랑하는 일에 우리의 즐거움을 두어야 한다.

  :4, 다윗은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 곧 우상숭배자에게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외에 딴 것에 마음이 갈리면 괴로움이 더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만이 자기의 행복이라고 깨달은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내세만이 아니라 현세에 있어서도 하나님과의 교통의 생애와 임재하시는 주 앞에서의 생애에는 충족되는 喜悅과 즐거움이 있다(:11).

  :5, 다윗은 재산이나 재물을 자기의 산업이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라고 말한다. 그 까닭은 그가 자기의 분깃을 지키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산업-히,켈렉」= 基業이라는 말과 같다.

  솔로몬은 그의 성전에 올라가는 詩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127:1)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 산업과 기업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민18:20에 의하면 아론의 분깃과 基業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우리의 基業으로 믿고 그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

  * 하나님께 자기의 모든 것이 전적으로 소유된 자는 또한 하나님의 모든 소유가 그의 것이 된는 복을 누리게 된다.

  :6, 다윗에게 있어서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예루살렘 부근을 말하는 것으로 그는 그곳을 자기에게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라고 믿고 감사하였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기업을 아름다운 것이라 믿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자는 늘 행복하다.

  :7, 우리의 인생을 바르고 가치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의 훈계를 받아 가며 살아야 한다. 밤의 고요한 시간은 하나님의 훈계를 받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이다. 밤마다 하나님의 훈계를 받는 사람은 아침마다 건실하고 희망찬 새 날을 맞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해서는 다음의 3가지 곧, 고요한 시간(quiet time), 한적한 장소(solitary place), 간절한 마음(great eagerness)을 예비해야 한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다윗은 하나님께 훈계(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심)를 받되 그 심장으로 받았다. 하나님의 훈계는 우리의 머리로가 아니라 心魂 骨髓에 새겨야 할 것이다.

  :8,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을 자기 앞에 모시고 산다고 하였다. 이는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모시고 동행하였다는 말이다. 에녹이나 노아와 같은 사람이 그러했다(창5:22,24, 6:9). 오늘날 하나님과 동행하는 길은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것을 말한다(요15:5,7). 그리할 때 하나님이 우편에 계셔 주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요동치 않게 하시는 축복이 결과로 나타난다. 「우편」이란 도우심의 자리요, 힘의 자리이며, 동행시에 권능으로 지키시는 자리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편에 모시고 사는 자는 요동치 않는다.

  :9-11, 다윗이 갖고 있는 부활과 영생의 소망은 :10-11에서 밝히고 있다.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다윗의 고백은 명백한 부활신앙이다(행13:35,“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시16:10”). 또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라’한 것은 부활 이후에 주와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리라는 영생의 소망을 말하는 것이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11).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의 생활을 보냄으로 영과 마음과 몸에 있어서 풍성한 행복을 맛보는 삶을 갖기를 축원한다. / 아멘 /

 

 

  <시편 17:1-15, 응답을 확신하는 정직한 자의 기도>

 


  내용: 이는 ‘남은 자’의 대표자로서의 메시야의 기도다.

    :1-2,      기도를 들으소서

    :3-5,      다윗의 결백

    :6-9,      원수들로부터의 구원을 호소하다

    :10-12,    원수들의 惡毒性

    :13-14,    다시 구원을 호소하다

    :15,       응답을 확신하다

 


  詩題 : 다윗의 기도 (시86:도 ‘다윗의 기도’라고 되어있다)

  본시에는 악인들의 핍박을 받고 있는 다윗이 자신의 정직과 결백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기를 호소하는 기도가 기록되어 있다.

  시편에는 많은 시들이 기도를 포함하고 있으나 특히 5개의 시만이 「기도의 시」로 분류되는데 그 중에 본시가 첫 번째로 나오는 시이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의 깊은 원리와 모범을 배울 수 있다.

 


1. 기도의 내용 (세 가지 기도의 연쇄)

  * 이 시는 다윗이 아직 王位에 오르기 전 사울 왕과 그 무리들에게 받는 근거 없는 중상과 모략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당하던 시기에 쓴 것이라고  J. Calvin은 말하였다.

  다윗은 그 때에 중상과 모략과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자신이 원수를 갚으려고 마음에 죄를 품거나 악을 도모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결백을 하나님 앞에 탄원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호소하는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은 억울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시다.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눅18:1-8).

  ① 기도의 전반부 :- 자기의 無罪를 아뢰어 기도의 응답을 거듭 간구하고 있다(:1,2,6).

  ② 기도의 후반부 :- 적의 계략을 아뢰어 그것에서 구원되고 보호되기를 거듭 간구하였다(:8,9,13,14).

 


2. 응답되는 기도

  1) 정직한 기도

    :1, “정직함을 들으소서”,  “거짓되지 않은 입술에서 나오는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부르짖는 기도

    :1중,“나의 부르짖음에 注意하소서”

    :13,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

  3) 응답을 確信하는 기도

 


  *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에는 두 가지 根據가 있다.

    첫째 근거: 언행심사에 죄악을 품지 아니함이다.

     * 다윗은 正直하였다. 곧, 그는 바르게 살았고 곧게 살았다. 「정직-히,체덱」은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것」, 「옳은 것」; 이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했고 최선을 다해 바르게 살려고 했고, 곧게 살려고 했다는 것이다.

      ① 그는 입술이 정직하였다. 그는 거짓되지 않은 입술을 가졌다. 그래서 크게 부르짖을 수 있었다. 그는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 치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② 그는 마음이 정직하였다. 하나님께서 낮에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찾아오셔서 그 중심을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밤에 나를 眷顧하시며....’ 여기서 「권고」란 말은 ‘방문하다’, ‘심사하다’라는 의미가 있다. 또한 밤은 가장 은밀한 시간과 장소를 상징하는 말로 이 때 사람의 속마음이 가장 赤裸裸하게 드러나게 된다.

      ③ 그는 행실이 정직하였다. :4-5에 의하면 그는 주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갔으므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으며, 주의 길을 굳게 지켜 실족 지 아니하였다. 사람이 범죄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행해야 한다(시 119:8).

    * 다윗은 자기의 무죄를 아뢰면서 자기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을 가지고서 거듭 간구하였다.

      :6,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는 고로 내가 불렀사오니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 기도의 확신은 무죄에서 나온다. 무죄한 자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죄인도 기도할 수는 있으나 마음에 죄악을 품고서는 응답을 확신하는 기도를 드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평소의 생활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한다.

  시 66:18, “내가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외부적 행위로는 온전하여 흠을 찾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에 품은 것이 죄 되고 악하고 더럽고 사랑에 어긋나는 마음을 품는다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지 못한다.(요9:31,“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우리도 자신을 돌아볼 때 외적인 행동이나 結果만을 내세우지 말고 우리의 마음까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잠28:9,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 가증한 기도를 드리면서 응답을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염치가 없는 것이 人間이라 하더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시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시 86:6-7에도 응답을 확신하는 「다윗의 기도」가 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 응답의 체험은 또 다른 응답의 확신을 갖게 해 준다.

 


    둘째 근거: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함이다.

      * 다윗은 言行心思에 죄악을 품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도의 응답은 자기의 경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기인되는 것이라는 것을 示唆하고 있다. 곧, :7에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仁慈를 나타내소서....”라고 부르짖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구원이 나타나게 됨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이한 仁慈」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 외에는 아무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특수한 은혜를 말하는 것이다.

 


 * 신앙인은 무엇을 보고 위로와 힘을 얻는가?(참고:- :8)

  그는 하나님의 눈(:2), 손(:7), 날개(:8), 얼굴(:15)을 보고 위로와 힘을 얻는다.

  그의 오른 손은 ‘악인’과 에워싼 ‘극한 원수’(=영혼을 대적하는 원수)에게서 건지시며, 그의 날개로는 어미 닭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악인과 원수에게서 벗어나게 하신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기를 간구하였는데

   ①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도록 기도했다. 「눈동자- 히,‘이숀’」은 사람을 뜻하는 「이쉬」에 접미사 「온」이 붙어 된 말인데 󰡔눈 속에 있는 작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눈동자를 드려다 볼 때 거울에 비친 것처럼 자기의 모습이 조그맣게 비치어 보이는데서 유래된 말이다. 곧 ‘하나님의 눈동자 속의 작은 사람’처럼 자신이 하나님께 가까이 있음을 아는 성도는 다윗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보호를 확신하며 기도할 수 있다.

   ② 병아리처럼 품어 숨겨주시기를 기도했다.

      ‘악인과 에워싼 극한 원수’는 「자기 기름에 잠겨있는 자」들이다. 이는 교만으로 채워진 영혼의 肥滿症에 잠겨있는 자들을 말한 것이다. 우리는 항상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교만에 빠지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③ 어린양을 찢으려는 사자의 이빨과 발톱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했다(:12).

 


  :14-15,  다윗은 누구에게서 구원되기를 호소하였는가?

   ① 악인에게서

   ② 극한 원수에게서

   ③ 세상 사람에게서(‘今生에서 저희 분깃을 받은 세상 사람’)

     ‘세상 사람’ 곧 「선택되지 못한 자들」은 금생에서만 분깃을 받을 뿐이다. 따라서 이들은 내세의 분깃이 없기 때문에 財物과 子女와 땅의 産業으로 만족하며, 또 그것들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그들은 단지 세상의 행복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거스려 무죄한 자를 모함하고 해함으로서 온갖 죄악을 행하게 된다.

  그러나 내세에서도 분깃을 받을 성도들은 하나님만을 진정한 분깃으로 믿고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런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때 올바르게 행할 수 있고 그 안에 영원한 생명과 복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은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올 것을 소망하면서 ‘깰 때에 주의 形像’으로 만족하겠다고 말하였다. 여기서 ‘깰 때에’란 육신의 죽음 이후 復活할 때를 가리킨다. 곧 다윗은 부활 후에 뵈옵게 될 하나님의 영광으로 만족하겠노라고 말한 것이다. 이런 부활사상은 앞장(16편)의 사상과 상통한다.

  비록 구약성경이 사후의 생명과 부활을 신약성경에서처럼 많이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나 구약성경 여러 부분에서 부활사상을 밝히 계시한다.(참조; 욥 19:25-27, 사 26:19, 단 12:2).

  사 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놓으리로다”

  단 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욥 19:25-27, “내가 알기에는 나의 救贖者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焦急하구나”

 


  사도 바울은 롬8:18에서 말하기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우리 성도들은 악인이 세상에서 형통하는 데 비해서 잠시 고난과 역경을 달할지라도 낙심치 말고 부활의 소망으로 더욱 올바르게 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아멘  /

 


  < 시편 18:1-50,  승리의 노래 >

 


  시편 8:은 거이 삼하 22:1이하의 詩와 같다. 단, 이 시편이 후자보다 후기에 기록된 것이다. 특징은 확실치 않은 표현은 설명이 붙어 있다. 또 예배에 사용하는 데 어울리도록 되어 있다.

  詩題: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로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다윗은 거이 말년에 이르러서야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을 누리게 되었으며 그 때 그는 여호와께 이 승리의 노래로 감사를 드렸다.

  內容:

  1-3,   序詩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지를 고백하다)

    :2,< 하나님을 비유한 여덟 가지 칭호와 그 뜻 >

         ① ‘반석-히,셀라아’= 岩壁으로 둘러싸인 땅,

         ② ‘구원의 뿔-히,케렌’= 승리의 능력, 뿔은 동물에게 강한 방어와 공격의 능력을 상징한다.

         ③ ‘방패’= 원수의 공격을 막는 무기

         ④ ‘엘로힘’= 모든 능력의 원천이요 공급자(창1:1) *이 세상의 악과 죄의 힘이 강하나 여호와의 힘은 더욱 강하다.

         ⑤ ‘피할 바위-히,추리’= 돌산의 봉우리로써 피난처가 된다.

         ⑥ ‘건지시는 자’= 위경에서 구원하시는 분(7:1)

         ⑦ ‘要塞-히,메추다’=높은 언덕으로 요새와 망대의 역할을 한다(삼상 22:4,5)

         ⑧ ‘산성’= 험하고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진 방어처(피난처)

 


  4-19,  하나님의 구원을 숙고하다.

     4-6,   에워싼 고난, 고난 중의 호소 다윗은 자기가 당면한 환난을 ‘사망의 줄’(사람을 죽음에 묶는 줄), 不義의 창수, 음부의 줄, 사망의 올무가 임하였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한 환난은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을 더욱  드높이는 이유가 되었다. 그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그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성전에서 들으시고 열납하셨다.

     7-15,  하나님은 부르짖는 사람의 소리를 들으시고 자연계를 자의로 주관하시듯 장엄한 역사로 악인에 대한 진노를 내리시고 죄악을 심판하신다. 여기서 심판은 부르짖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의 손길이었다. 그리고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두렵고,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다.

        :8, ‘그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분노의 상징

            ‘불’= 태워 멸망시키는 하나님의 진노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맹렬한 하나님의 심판

        :9,  ‘어둑캄캄’= 폭풍의 검은 구름

        :10, ‘그룹’= 4개의 얼굴과  4개의 날개를 가진 영물, 겔 10:21,“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네 얼굴’= 하나님의 무소부재의 상징한다.

      참고:  그 밖에도 성경에는 몇 가지 ‘영물이 출현한다.

      사 6:2에는 ‘스랍’(Seraphim):은 이사야가  성전에서 이상  중에 본  존재들로서, 스랍은 여섯 날개와 사람의 음성, 손과 발을 가지고 있었다(사 6:1-7). 또한 스랍은 하나님을 수종들고 그의 거룩함을 찬양하는 존재로 되어 있다. 따라서 때때로 스랍은 천사의 한 종류로 간주되고 있다.

       계 4:6-8의 ‘네 생물’은 모든 피조물의 대표로 간주된다(4복음을 그렇게 표시했다).

        :12, ‘우박’= 모세의 사역 중 애굽을 심판하실 때에 나타난 이적(출 9:23, 24)

        :16-19, 구원과 해방은 하나님이 그의 능력을 나타내실 때에 반드시 완수된다.

        :16,“저가 위에서 보내사 나를 취하심이여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 내셨도다”...이는 월남전에서의 헬리컵터 구출작전을 연상케 한다.

 


   20-27,  그 구원의 근거를 밝히다.

        :20-23,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 생활, 그 도를 지키고,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함.

        ‘내 의를 따라 상주시며’= 의를 따라 대우하여 주시며(內的 義),

        ‘손이 깨끗함을 좇아 갚으셨으니’= 손이 범죄치 아니한 것(시24:4)(外的 義).

        *손이 범죄한다는 것은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범행을 뜻한다.

 


  28-45,  이는 다윗의 「승리의 노래」이다.

        :24-30,  하나님은 사람을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는 원리로 심판하신다.

        :28,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지속케 하신다.

        :31-34,  여호와의 지켜주심과 비교할 수 없는 여호와의 사랑

        :33,     ‘암사슴 발’= 빨리 달릴 수 있어 적이 추적 못함을 뜻한다.

                 삼하 2:18에 나타난 스루야의 셋째 아들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빨랐다.

        :35-38,   승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다(:35-36).

        :39-45,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고, 제 국민의 머리가 되게 하셨다.

 


  46-50,  결론적인 감사의 말씀(하나님을 계속 찬양하기로 다짐하다)

  다윗이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찬송하려는 이유는 그의 모든 승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47-48). 다윗은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민족들을 굴복시켰으며, 모든 원수에게서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도 자신들의 모든 승리와 구원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은 줄을 알고 범사에 감사하며 찬송하는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시기를 ‘다윗과 그 후손’에게 ‘영영토록’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과 그 후손」이란 말씀에 留意해야 한다. 갈 3:16 말씀은 그 의미에 대하여 분명히 하고 있다. 곧,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다.

  따라서 ‘큰 구원과 인자’를 받으려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를 구주로 믿어야 한다. 거기에 진정한 승리의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     / 아멘  /

 


  < 시편 19:1- 14,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라 >

 


  詩題: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내용분해: :1-6,    자연에 나타난 말씀에 대한 찬양.

             7-10,   율법에 나타난 말씀에 대한 찬양.

             11-13,  말씀을 지키게 하소서.

             14,     기도를 들으소서.

  본시의 내용을 요약하면 자연과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면서(:1-10) 그 말씀을 지킴으로 죄를 짓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다(11-14).

  :1-6, 자연에 나타난 말씀에 대한 찬양.

  다윗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여기서 다윗은 소위 同義的 對句法을 사용하여 한 가지를 두 번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그 뜻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하늘’과 ‘궁창’은 같은 말로써 모든 우주의 전체 구조를 대표하고 있다.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 또한 식물에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게 된다(마6:24-30).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가 하신 놀라운 일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것을 「自然啓示」라고 한다.

 


  :2, 다윗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고 말한다. 이는 매일 연속되는 낮과 밤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말을 쏟아 놓고 또 그에게 대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해 준다는 뜻이다. 이처럼 낮과 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와 통치하심에 대하여 직분을 수행하고 있다.

 


  :3-4,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자연의 소리(히,‘콜’)」는 인간의 언어와 같지 못하나 그러나 그 소리, 히-‘카왐’은(:4) 「줄」 혹은 「글씨」를 의미하는 말로써 「눈에 보이는 언어」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한다. 그 소리는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은 세계 끝까지 이른다. 여기서의 「말씀, 히-‘밀라’」는 하늘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멧지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의 세계를 보는 어느 인간이든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믿지 못했다고 핑계할 수는 없다(롬1:19, 20, 10:18).  또한 하나님은 하늘을 ‘태양이 머무는 곳’으로 만드심으로 해를 위하여 장막을 베푸셨다. 이는 밤이 되면 해가 서산에 기울어 장막에 쉬러 들어가는 것처럼 본 시적인 표현이다. 태양을 비롯한 모든 천체가 하나님의 다스리심 가운데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천체의 운행은 하나님께서 맺으신 하나의 約定으로(창8:22) 그것이 변하지 않음은 하나님의 신실성을 보여 준다.

 


  :5-6, 다윗은 해를 ‘신랑과 같고 壯士와 같다’고 비유하였다. 이는  해의 장엄한 광채와 그 길을 달려가는 신속성을 나타낸 것이다. 아침해가 떠오르는 광경과 그 광채는  마치 장막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화려하고 신선했으며 그렇게 솟아난 해가 하늘을 운행하는 것은 용맹스런 장사와 같다는 말이다. 이런 해의 광채와 신속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웅변적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해의 장관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찬미의 장엄한 교향곡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다윗은 :6에서 ‘해의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다’고 말하였다. 이는 해의 영향력이 지구의 구석구석에 미쳐 생명을 유지케 하여 준다는 뜻이다. 비록 지구상의 만물이 태양빛을 피하여 숨을 수는 있어도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을 자는 없다. 이처럼 해의 열기에서 숨어 피할 수 없다면 그 해를 만드신 하나님의 영향력에서 자기를 숨길 자가 있겠는가? 아주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 모두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기동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7-10, 여기서는 율법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인 「特別啓示」를 찬양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 증거, 교훈, 계명, 道, 규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반복하여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자연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주신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하여 그 靈眼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자연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전하는 수단으로 자신에 대한 보다 완전한 계시를 주셨다. 이것이 율법이요 계명이다. 우리는 이 「말씀의 계시」, 곧 「특별계시」를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알 수 있다.

 


  :7-8,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하며 지혜롭게 하며 기쁘게 하여 마음을 밝게 한다. 하나님의 율법이 이렇게 역사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완전하고 확실하고 정직하고 순결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정결하고 확실하여 다 의롭다고 함은 그것은 인간이 고안한 거짓된 신앙방식과 독단적인 교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인간의 사고와 사색을 통하여 고안된 교훈을 따라서는 안 된다. 오직 순수하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따라야 할 것이다.

 


  :10에서 다윗은 말하기를 여호와의 규례는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하였다. 정금은 순수성을 나타내고, 송이꿀은 사람에게 있어서 즐거움을 나타내는 최고의 상징이다(시119,103).

 


  :11,「주의 종이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현세의 복락만이 아니라 내세의 보상이 크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님의 계율을 지켜 행하는 자는 영원히 기억될 상급을 받게 되는 데  그 상급이란 곧 영원한 구원이다(벧전1:8,9). 반면에 이 세상을 따르는 자의 자취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요일2:17).

 


  :12에서 다윗이 지금까지의 論調를 바꾸어서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 까닭은 그가 율법을 완전히 준수할 수 없는 죄 되고 나약한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Calvin은 󰡔자신의 죄악을 백분지 일이라도 아는 자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한바 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킴으로 그것으로 구원받을 사람은 없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에 의한 구원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됨을 믿어야 한다(베전1:18-19).

 


  :13,의 「故犯罪-히,‘제딤’」란 자신이 죄인 줄 알면서도 故意로 짓는 죄를 말한다(민15:3-31). 이처럼 알면서도 죄를 짓는 일은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죄를 짓지 아니하려면, 정직하고 순결한 마음을 갖고 행하는 데 있다(:13-‘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거짓된 믿음만큼 가증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고, 하나님까지 속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거짓 없는 믿음󰡕을 갖기를 기도해야 한다.

 


  :14,은 다윗의 결론적인 기도다.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는 위에서 말한 허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 입과 마음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성령의 지베를 받게 되기를 원하는 기도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아멘.

 


  < 시20:1-9, 왕의 간구와 기도의 응답 >

 


  詩題: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내용분해:

    :1-2,  환난 날에 응답하시기를 왕이 간구하다

     3-5,  기도의 응답과 승리

     6-9,  승리를 확신하며 기도하다

  이 시는 「메시야 시」라고 불리는 10개의 시(2,8,20,21,22,45,72,89,110,132)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시는 이스라엘 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환난의 날에 도와주시고 그의 나라를 견고케 하여 주실 것을 바라는 교회의 공동 기도가 담겨져 있다. 여기서 「기름부음 받은 자」는 일차적으로는 다윗 왕을 가리키나 다윗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므로 결국 이 시는 그리스도의 왕권과 통치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시는 다윗이 어떤 군사 행동(즉, 다윗이 수리아와 암몬을 공격할 때)을 앞두고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지은 시이다. 또한 이 시는 왕을 제 삼자로 하고 그를 위한 戰勝祈願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나 저작자는 왕인 다윗 자신이다. 히브리의 시문학에서는 저술자 자신을 제 3자로 일컫는 경우가 많다(시 18:).

  이 시를 저술하신 성령의 목적은 교회에게 공동 기도의 형식을 전달하는 데 있다. 이 시의 기도형식은 교회가 「화난 날」, 곧 무슨 위기에 처할 때마다 사용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들도 환난에서 면제되지 않고 환난을 당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환난 때에 낙심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 백성들을 위해서 깊은 관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1-5에서 「너」라는 2인칭 대명사가 10번이나 쓰이고 있는데 :6에서는 이 대명사가 지칭하는 사람이 설명되고 있다. 그는 여호와께 속한바 ‘그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물론 그는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다윗을 가리킨다. 또한 신령상 해석으로는 다윗이 예표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에 왕인 다윗에 대한 기도가 이루어져 다윗이 승리한 것은 곧 다윗의 백성들의 승리였듯이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는 모든 성도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1,에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은 한 번 세우신 약속은 결코 변경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란 뜻이 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지키셨을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 약속에 신실하시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을 갖고 하나님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이런 의미에서 요엘 선지자와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다(욜2:32, 롬10:13).

  :1, 「너를 높이 드시며」란 하나님은 그의 능력과 은혜로 환난을 당한 성도들을 구원하여 안전하게 이끌어 내신다는 뜻이다(시50:15).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의 날에 기도를 들으시는 야곱의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2, 하나님은 성도를 성소에서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붙들어 주신다」. 여기서 성소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신 시온 산에 있는 거룩한 처소이다. 또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 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성도를 도와주시고 계속해서 견고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붙들어 주신다.

  :3-4, 「소제」와 「번제」는 성도의 헌신을 상징하며 :4,의 「마음의 소원」과 「도모」는 성도의 기도를 가리킨다. 여기서 다윗은 먼저 제물을 받으시고 다음에 소원을 이루어주시기를 원하고 있는데 이는 기도하는 성도의 바른 자세를 지시하고 있다.

  성도는 먼저 자신의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가운데서만 하나님께 바른 간구와 기도를 올릴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한 채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약4:3).

  :5,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를 세운다’는 것은 성도의 승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짐을 믿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린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승리하고 형통할 때 이방인처럼 자만하지 말고 승리의 개가를 하나님께 드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더욱 그를 의지해야 할 것이다(참조 약5:13).

  :6,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속한 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신다고 했다. 이는 다윗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자기를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여 한 말이다. 한 편 이는 메시야(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실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7,「병거」와 「말」을 의지한다는 것은 인간과 그 수단을 의지한다는 뜻이며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강한 듯이 보이며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굽어 엎드러지고 만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는 인간이나 인간의 수단을 의지함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겠노라고 선언한다. 거기에 진정한 구원과 승리다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이나 수단을 의지하고 교만히 구는 자는 「굽어 엎드러지나」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는 일견 약하게 보이고 패하는 것 같아도 오히려 「일어나 바로 서는」 승리자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처럼 인간의 힘이나 수단이나 꾀를 의지하지거나 거기 넘어가지 말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행해야 한다.

 시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여 구원하소서, 왕은 응락하소서.(‘여호와여, 임금이 승리하게 하소서. 우리가 부르짖을 때 들으소서’-현대어 성경)

 


 1. 환난 날의 부르짖음에 도우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2. 헌신자의 마음의 소원을 허락하시고, 모든 도모를 이루시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 아멘 /

 

 

< 시21:1-13, 왕의 승리에 대한 감사 >


*대환희의 연유, 대관식, 생일의 축하시, 왕으로서의 메시야 찬미시,

  20편(출전시 왕을 위한 시)과 일연의 시 21편은 왕의 개선 후의 찬미의 시, 그러므로 여기엔 승리의 기쁨과 감사가 넘쳐 있다(:1, 6, 7).

 1-6,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호소함(전날의 승리에 대한 찬양)

 7-13, 왕을 향하여 호소(7-12, 미래의 승리에 대한 확신, 13, 맺는 송영)


*승리를 얻기 위해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7,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는 신앙과 하나님의 사랑(인자하심)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 얻은 자에게 큰 환희가 있는 이유

  1)만족하기 때문 (2a)

  2)기도가 응답되었으므로 (2b)

  3)복을 받았으므로 (3a)

  4)정금 면류관을 씌워주었으므로(힘과 세력 :3b) ‘정금면류관’= 승리를 기념하여 적국의 왕이 쓰던 관을 쓰는 관습, 여기서는 암몬왕의 완관(삼하 12:30).

  5)영생을 주셨으므로(4)

  6)영광을 주셨으므로(5)

  7)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게 해 주셨으므로(6) ‘지극한 복’= 주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심

  8)요동되는 일이 없으므로(7)

    ‘풀무’(9)= 금속 제련을 위한 용광로, 극심한 고난을 비유함(왕상 8:51).

    ‘후손’(10)= 문자적으로는 열매란 뜻.


  < 시 22:1-31,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의 심신의 고통과 그 결과, >

 본문 내용

   :1-5,       하나님께 버림 당하심

   6-11,       사람에게 멸시 받으심

   12-21,      사단과 그 무리데게 고난 당하심

   22-31,      승리의 외침

  이 시는 아마도 다윗이 사울왕 때문에 위험을 만났을 때(삼상 23:25-26)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 시는 메시아 수난의 예언임은 명백한 것으로, 사53:과 함께 구약성서 중에 십자가의 二大章으로써 유명하다.

 *메시야 수난의 예언시(십자가 전의 사정, 십자가 상의 예수와 그 주변 장면

  1-21상반절까지는 수난의 메시야의 마음을 예언한 것, 그 이하는 메시야의 수난의 결과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므로 상반은 깊은 밤 같고, 하반은 밝은 아침과 같다.

  우리는 여기서 겟세마네와 갈보리에 있어서의 주님의 심고(深痼)와 몸의 고통을 자세히 본다.

  그 몸은 피로에 지치고(:14상), 뼈는 어그러졌으며(:14중), 마음은 약해졌으며(:14하), 힘은 쇠해졌고(:15상), 혀는 마르고(:15중), 수족은 찔렸다(:16하). 실로 그는 죽음의 관을 받으시고 그 쓴잔의 최후의 한 방울까지 마심으로써 죽음을 맛보신 것이다(히 2:9)---(히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1-8, 수난자의 한탄

  :1,‘나를 버리셨나이까?’ 고난에 봉착하면 하나님이 버리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를 지키신다.

  *수난의 예언:

              1, 마 27:46

              7-8, 마 27:39, 43

              15 중, 요 19:28

              17, 눅 23:35

              18, 요 19:23, 24

              22, 히 2:11,12

  :8, 불신앙자의 신앙자를 향한 조소


9-21, 하나님께 대한 호소

  11, 사 41:10에는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화 함께 함이니라

  12, 바산- 얍복에서 헤르몬에 이르는 곳의 길리앗을 포함한 지방명. 기름진 목장이 있다.

    암 4:1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18, 겉옷을 나누며→ 요 19:23,24 마 27:35

  20, 내 유일한 것= 생명,  개= 적


22-31, 감사와 찬미

  22, ‘전도’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마음에서만 행해진다.

  25, 대회 중에 이 회중에는 우상숭배자, 무신론자들이 포함었을 것이다.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것의 지배자요 통치자이다.

  29, 회개(하나님 앞에 자기를 낮추고 예배함)



  < 시22:1-31, 고난 가운데서의 부르짖음과 찬양의 노래 >


    본시는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의 심신의 고통과 그 결과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메시야수난의 예언시」 중의 하나이다.(십자가 이전 사정, 십자가上의 예수와 그 주변 장면들)

  * 다윗이 사울의 난을 받았을 때(삼상 23:25-26)의 시로서 다윗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주님의 구원을 애소한 후(:1-21), 주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한 후 주의 이름을 전파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22-31).

  *특히 주님은 십자가상에서의 기도에서 이 시편의 첫부분을 사용하셨다(6-8,13-18).


  내용분해:

     :1-21       수난자의 마음(밤)

        :1-8,    수난자의 한탄

            1-2  고난 중에 탄식하다

            3-5  하나님의 구원을 회상하다

            6-11 가련한 처지를 진술하다

        :9-21,   하나님께 대한 호소(사망의 진토에서 주님의 구원을 애소하다)

     :22-31,     그 결과(아침-감사와 찬미)

           22-26 주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찬양하다

           27-31 온 세상이 찬양할 것을 예언하다


  * 詩題: 「다윗의 시, 영장으로 ‘아엘렛샤할’에(‘사슴’이란 곡조)에 맞춘 노래.

          「아엘렛」=암사슴.     「샤할」=‘새벽’.

          「아엘렛샤할」=새벽의 암사슴 ---> 아마도 곡조의 분위기를 지시하는 용어.

  :1, 다윗은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였다. 이 말의 히브리어는 󰡔엘리 엘리 라마 아잡타니󰡕인데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아잡타니>란 말 대신 아람어인 <사박다니>란 말을 사용하셨다. 그 이유는 평소에 주님은 아람어를 사용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시는 고통과 절망을 느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시고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성도는 누구인가? 주님처럼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을 「내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성도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는 듯한 때도 있다(:1, 10:1).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를 멀리하신 것도 숨으신 것도 아니다. 성도가 도움 받기를 원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도 도와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잠시 그 손을 늦추시는 듯한 때는 아마도 그의 성도를 단련하시려는 주님의 뜻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참고,고후12:8-10).

  :2, 다윗의 기도는 끊일줄 몰랐다. 간절하고 지속적이었다. 곧,‘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라고 하였다. 그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같은 때에도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 성도들이여 고난의 때에도 낙심치 말고 기도하라. 그 원한을 들어 주시리라(눅18:1-8).


  다윗이 어려운 환난 중에서도 낙심치 않고 믿음으로 기도한 이유 다섯 가지가 있다.

   ①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셔서 성도를 보호하셔서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다(3).

   ②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성도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4-5).

   ③ 다윗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조롱과 멸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6-8)

   ④ 다윗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종임을 확신했기 때문이다(9-11).

   ⑤ 다윗의 대적은 너무나 강하고 억센 반면 다윗 자신은 매우 연약하고 비참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12-21).


  :4-5, 이스라엘의 열조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였다. 이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자세를 말한다.

  * 기도는 이처럼 여호와를 의뢰하고 신뢰할 때 응답되는 것이다.


  :7,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다윗을 비웃었다.

   다윗은 그것을 몹씨도 괴롭게 여겼다.“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었다. 이런 행동은 당시 하류계층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모독적인 표현으로 간주되었다. 머리를 흔드는 것은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를 향한 輕蔑의 표시였다(왕하19:21,사3:22). 주님도 이런 경멸과 모욕을 받으셨다(마27:39).


  :8, 여기서 배울 교훈은 곧, 「모독을 받을 때에 침묵으로 응답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라는 것이다.


  :12-16,  다윗은 자기의 대적들을 사나운 짐승으로 비유하였다. 짐승으로 비유한 이유는 그들이 사단의 도구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우리도 사단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신앙생활을 성령 안에서 바로 해야 할 것이다.

    황소: 거칠고

    사자: 사납고(찢고 부르짖는)

    개  : 야비하고 파렴치 하다.

   * 이렇게 거칠고 사납고 야비하고 파렴치한 사단을 이기기 위한 무기는 오직 믿음의 기도임을 기억해야 한다.

   * 특히 :16-18은 십자가 상에서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에게 그대로 응하였다.

     . 그는 물 같이 쏟아졌다.

     . 그의 모든 뼈는 어그러졌다.

     . 그의 마음은 초밀처럼 녹았다.

     . 그의 힘은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 그의 혀는 잇틀에 붙었다.

     . 그의 몸은 사망의 진토에 두셨다.

     . 그를 개들이 에워싸고, 악한 무리가 둘러 그의 수족을 찔렀다.

     . 그의 겉옷은 남들이 나누며 속옷도 제비 뽑았다(마27:35, 눅23:34, 요19:24).


  :18,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고백하였다. 그 여호와의 구원의 힘이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헤서 구하시며 사자의 입에서 구하시고 들소 뿔에서 구하셨다고 고백한다.

   * 성도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어떤 사나운 짐승 같은 악의 세력도 하나님의 구원의 힘을 당할 수 없음을 믿기 때문이다.


  :22-31, 다윗은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 찬송을 자기 민족과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있다.


  :26, 여기서 다윗은 배부름을 얻을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하고 있다. 그는 「겸손한 자」이다. 남에게 양보하고 자기 이익을 구하지 않는 자가 도리어 배부름을 얻는다. 여기서 「배부름」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인하여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성도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그를 의지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위로와 기쁨을 받으며 또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한다.


  :29, 여기서는 누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豊備한 자」와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진토에 내려가는 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다. 곧 전자는 교만을 버리고, 후자는 열등의식을 버리고 거룩한 식탁에 참예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리라는 것이다(참고, 약 1:9,10-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 시편 23:1-6,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 >

  

우리들의 선한 목자, 그가 주시는 모든 은혜.


  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한 다윗의 시 가운데 유명한 시이다. 흔히 이 시를 「시편 중의 시편」이라고 일컫는다.

  다윗은 청년시절 목자였기에 목양자로서의 경험이 있어서 하나님을 목자로서 자기를 양으로서 비유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찬미하고 있다.

  구약은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 신약은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를 목자와 양과의 관계로 비유한다.

  * 양에게 있엇 목자 되신 하나님이야말로 무진장의 재원이다.

    사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목자를 지도자의 뜻으로도 사용했다.

    겔 34:11,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3은 신자면 누구나 노래할 수 있는 것

  :4-6은 거룩하게된 자만이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푸른 초장’은 양식이 풍성하고 심정이 상쾌한 곳을 말한다.

  ‘쉴만한 물가’(원어는 연못처럼 정지되고 있는 물)는 목마를 것 없고 휴식하기에 좋은 곳을 말한다. 주님은 이런 곳에서 우리를 쉬게 하신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에 있어서의 확신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들을 구원하여 새로운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그 후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를 인도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고, 시련과 고난, 죽음에 직면한 때에도 함께 계셔 격려하신다(:4a)

  징치 중에도 위로하시며 :4b

  박해 중에서도 은혜와 희락을 주신다.  :5

  그러므로 현세에 있어서 우리는 평생 은혜와 긍휼을 받고, 내세에 있어서는 영원토록 천국의 행복을 받는 것이다.

  ‘원수의 목전에서’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공개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공공연하게 사랑하신다.

  ‘기름’과 ‘술’은 성령의 모형이다(요 2:27, 엡 5:18, 시 104:15).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라는 신앙을 갖자(시23:1-6).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그 무엇이 부족하리오.

  편히 쉬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고이 쉬라 시원한 시냇가로 데려가시네.

  내게 생기 불러놓으시고,

  똑바른 길로만 이끌어 주시니

  주님이 아니고서야

  주님의 이름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리.

  나 죽음 그늘 드리운 깊은 골짜기 지난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가리라.

  주께서 내 곁에 함께 계시니

  목자 손에 드려 있는 지팡이와 막대기처럼 인도하여 주시니

  하고많은 시름 사라져 버리고

  이 마음 이렇듯 든든하여라.

  원수들 두 눈뜨고 쳐다보는데

  보란 듯 이것저것 앞에 잔칫상 차려 주시고

  귀한 손님 대접하듯 기름 발라 주시며

  잔이 흘러 넘치라 하고 부어 주시네.

  아, 그 누가 이렇듯 행복하리오.

  주님의 손길 살아 생전 끊이지 않으리니

  이 목숨 살아 숨쉴 동안에

  주님의 전에 오래도록 살으리이다.”  아멘.


   < 시24:1-10,  영광의 왕의 입성 >


   만물 위에 충만한 여호와의 영광

   본시는 68:, 132:과 더불어 법궤 호송을 기릴 때 부르던 노래(대상 13:8)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시로서

   :1-2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

   :3-6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의 자세

   :7-10      영광의 찬양(하나님께서 들어가실 문)

   이 시는 다윗의 시로서 공중예배의 서곡에 어울리는 간결함과 장중함의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이 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그에게 예배하는 자의 자세를 설명하고, 하나님께서 들어가실 문을 열도록 촉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시온산에 준비한 장막에 옮기기로 결단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다(삼하6:12-19).

   이 때의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따라서 본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성도들 가운데 임재하실 때에 성도들이 마음문을 열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들어오시려고 할 때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그분을 영접하고(요1:12) 그분과 함께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계3:20).


   :1, 여호와의 것은 무엇인가? 다윗은 이에 대하여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에 믿는 자의 세계관이 나타나 있다. 우리도 이런 사상에 굳게 서서 살아야 한다.


   :2,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게 하신 사실을 가리킨다(창1:9).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그 무든 것들을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요1:3). 우리도 이 진리를 인식하고 우리의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겸손히 믿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욥1:21).


   :3,  다윗은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라고 질문한다.

   「여호와의 산」이란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시온산을 가리키는데 신약시대에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장소를 상징한다(요4:19-24).

   유대인일찌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면 버림을 받을 것이고, 이방인일찌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 이런 원리에서 이방인인 우리들까지라도 하나님의 친 백성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낮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롬11:20).  과연 우리는 이 높으신 하나님을 올바르게 경배하고 있는가?

   :4,  여기서 다윗은 :3에서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곧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는

   ① 「손이 깨끗하며 ---- 행위로 범죄치 아니함

   ② 마음이 청결하며---- 속 마음이 청결해야 함

   ③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뜻을 하나님의 규범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음

   ④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 말에 있어서 진실함을 잃지 않음

      * 이런 완전한 정결함음 인간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만 가능하다(히9:14). 곧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5,  하나님을 옳게 경배하는 자는 복을 얻는다.

      그가 얻는 복은 곧 구원이며 또한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다.

      「하나님께 의를 얻는다」는 것은 구원받아 영생에 들어가는 사실을 가리킨다(사45:25).

   :6,  구원받아 영생에 들어갈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하여 말한다.

      ① 성도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어야 한다.

      ② 성도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여야 한다.

          * 창32:에 보면 야곱은 얍복강에서 씨름하고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다고 하였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말이다. 야곱은 그 때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고백했다.

      * 성도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뵈올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런 일이다.

   :7, 「문」은 성전의 문을 가리킨다(擬人化). 그러나 진정으로 열어야 할 문은 우리들의 마음의 문이다. 비록 우리가 성전에 들어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지 아니하면 아직도 문은 닫혀 있는 것이다.

       「영원한 문」이란 뜻은 여호와께서 영원히 성전에 임재하실 것을 언약하신 것을 의미한다(시132:13-14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8, 영광의 왕은 강하고 능한 여호와, 전쟁에 능한 여호와, 만군의 여호와(:10)시다.

   :9, 이 왕을 향하여 모든 문들은 들려야 한다. 여호와 그가 들어오시도록....!


   :10 영광의 왕, 여호와께서 성도의 마음에 坐定하실 때에 성도는 온갖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또한 세세토록 왕노릇하게 되는 것이다.   / 아멘 /


 

예배에의 부름

여호와의 집 우리 하나님의 전정에 섰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시 135:2).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 107:1)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107:4-9).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시135:2-3).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 시25:1-22, 환난에서의 기도 (보호와 인도를 구하는) >


  다윗의 시(다윗의 시 중 본시처럼 저작 시기가 확실치 않은 시는 모두 18개인데 그 중에서 3개가 제 1권에 등장한다.

  본시는 히브리어 알파벳 답관체 형식으로 쓰여졌다. 약간의 예외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각행의 첫 글자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르고 있다. 이런 시들은 시편 전체에 9개가 있는데 이것들을 「알파벳 시」라고 부른다(9, 10, 25, 34, 37, 111, 112, 119, 149).

 <내용분해>

  1-3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다

  4-7   하나님의 인도를 구하다

  8-14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원리

  15-22 하나님의 보호를 다시 간곡하게 청하다


  :1, 이는 다윗의 신앙이 어떤 경우에도 부동하고 있음을 보인다. 그의 마음과 뜻은 하나님을 향해서만 집중시키고 있다. 직역하며 「우러러 볼 것이라」라고 미래시제로 되어있는데 이는 계속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 성도는 세상의 유혹에 이끌리지 말고 다윗처럼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진지하고 성실한 기도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나.

    기도에 있어서 가장 큰 방해소요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로도 도움을 받을 줄 알고 두 마음을 품고 요동하는 것이다(약 1:6-8).


  :3, 주를 바라는 자와 무고히 속이는 자

     주를 바라는 자(히,코웨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에게만 소망을 두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않는다. 그러나 무고히 속이는 자(= 남을 해하려는 목적으로 거짓말을 만들어 퍼뜨리는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는 수치를 당한다.

  *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며 결국 누구 앞에서도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사49:23).


  :4, 주를 바라는 다윗이 알기 원했던 것들

    ① 주의 도

    ② 주의 길

    ③ 주의 진리 이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다.

  *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발견된다. 성도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도록 해야 한다(행 17:11).

  :6-8, 다윗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성품

   그것은 긍휼(矜恤)하심, 인자하심, 선하심, 정직하심이다.

   「仁慈-히,헤세드」= 인간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죄인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미 영원부터 있었음을 알고있었다(6).


  :7-8, 그래서 소시의 죄(히,하타)와 장년기의 허물(히,파샤)을 용서받으리라 믿고 용기를 내어 기도하였다.

  * 성도는 죄와 허물에 대하여 민감한 마음을 갖고 곧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12-14, 여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는 4가지 축복을 말하고 있다.

   ① 그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심

   ② 영혼이 평안히 거함

   ③ 그 자손은 땅을 상속함

   ④ 여호와의 친밀함이 그에게 있고 그 언약을 보여주심


  :15-19, 다윗이 처하여 있던 환난을 말한다.

   ① 외로움과 괴로움이다.

   ② 많은 마음의 근심이다.

   ③ 원수들에게 미움 받음이다.

   * 성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할 수록 지금도 이런 환난을 겪는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20-22 다윗의 환난 중의 기도

   ① 영혼을 지키소서

   ② 수치를 당치 말게 하소서

   ③ 성실과 정직으로 보호하소서

   ④ 이스라엘을 모든 환난에서 구속하소서

     ‘구속하다-히,파다’는 포로 된 사람의 몸값을 치르고 자유롭게 해준다는 뜻.

     이는 당시의 백성들이 사울 왕의 포악한 정치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음을 보인다.

  / 아멘 /


   < 시 26:1-12,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기도 >


   다윗의 시, 다윗 왕은 이 시를 통하여 자신의 결백함을 고백함과 동시에 자기의 적들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자신과 대조시키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적들에 대한 묘사는 압살롬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부합한다. 그들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왕을 배반할 정도로 허망하고 간사했으며 그 손의 뇌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도적질하기를 잘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지경에서도 주의 성전만을 사모했다. 본시는 이런 상황에서의 다윗의 심혈을 기울인 확신에 찬 기도다.

  - 내용분해 -

    :1-2,      나를 판단하소서

    :3-5,      주의 진리 중에 행하였나이다.

    :6-7,      서원을 세우다.

    :8-11,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2,       확신을 갖다.


   :1, 「나를 판단하소서」라는 기도

     다윗은 어떠한 신앙생활을 했기에 하나님께 “나를 판단하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을까?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에 있어서 완전함에 행하였다고 했다. 그는 믿음에 있어서 요동치 않았으며,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했다.

   여기서 「완전함-히,톰」은 깨끗한 성품, 성직 함, 순수함 등의 뜻이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처럼 완전하여 무죄하다는 말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에 성실하고 진실하게 지켰다는 뜻이다.

   :2-3,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피시고 자기의 뜻과 마음을 단련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살피다-히,바한」= 깊숙이 있는 본성을 날카롭게 꿰뚫어 본다.

    「시험하다-히,낫사」= 마음에 있는 것을 들어내어 증명한다.

    「단련하다-히,차랍」= 녹인다. 다윗은 금속을 녹여서 불순물을 제거하듯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과 마음을 살피셔서 잘못된 것이 있는지 확인하시기를 아뢴 것이다.

    이런 기도는 :3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목전에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평소부터 경건한 생활을 힘쓴 자만이 할 수 있는 기도다.

   :4-5, 다윗은 진리(말씀) 중에 행하고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고 간사한 자와도 동행치 아니하리라고 하나님 앞에 언약한다. 그렇게 하는 까닭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상과 같이 다윗이 힘쓴 3가지 일 곧 허망한 사람, 간사한 사람, 행악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경건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애썼는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6, 다윗은 여기서 자기의 영적 순결을 고백하면서 진심과 열심을 가지고 예배드리는 삶을 힘쓰고 있음을 말했다.

   :7, 여기서 다윗은  그의 2가지 서원을 아뢴다. ①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②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감사하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소극적인 삶의 표현이고, 감사한 그 일들을 남에게 증거함은 적극적으로 행해야 할 본분이다.

   :8,에서 다윗은 그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임을 고백한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이다. 곧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이로써 그의 예배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다시금 확증하고 있다. 그는 외형적인 예배에 참예하기 위하여 성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존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를 뵙고 그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나온 것임을 확증하고 있는 것이다.

   :9,을 보면 다윗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위급한 상황에 처하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자기는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죄인이나 살인자처럼 종말을 맞이하지 않을 것을 믿고 자기 생명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사특할 특

   :10,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손에는 악특(惡慝)함이 있고 뇌물이 가득하다.

    「악특-히,짐마」= 악한 꾀. 그들은 그들의 악한 꾀를 실행하는 수단으로 뇌물을 사용했다. 뇌물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다(출 23:8, 신 16:19).

   :11, 다윗이 ‘완전함에 행한 것’은 일종의 처세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그의 신앙적인 신실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신실하게 살면서도 그는 겸손하게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하고 있다.

   :12, 다윗은 자기의 발이 평탄한 데 서 있다고 확신한다. 즉 지금까지는 깊고, 기도 없는 험곡(險谷)에 갇혀 있었으나 지금은 그의 앞에 넓게 열린 평탄(平坦)한 곳이 있고 자기는 지금 그곳에 서 있음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 그가 기도한 것이 하나님께 열납되고 응답되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중 가운데서 여호와를 송축하리라고 하는 것이다.

   * 성도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그를 영원히 찬송하는 것이다.   / 아멘 /


  < 하나님을 바랄지어다, 시 27:1-14 >


  다윗의 시

  내용분해

    :1-3,       하나님을 향한 확신

    :4-6,       하나님과의 교제와 안전을 구하다.

    :7-9,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탄원

    :10-12,     유일한 보호자이신 하나님

    :13-14,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다윗이 여러 환난 중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① 여호와는 나의 빛         : 빛은 공포와 위험을 몰아내는 것(요12:46), = 안전.

     ② 여호와는 나의 구원       : 삶의 풍요와 성공

     ③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  : 문자적으로는 「요새(산성)」를 뜻(시31:4). 모든 공격으로부터의 승리.

  * 하나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자에게는 아무리 극악한 세력이 밀려와도 그에게 두려움이 되지 못한다(시 118:6).

  * 롬 8:31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2. 다윗의 대적, 원수 된 행악자는 실족하여 넘어졌다(:2).

    이는 다윗이 그들보다 월등한 힘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힘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렘 36:26)--- (렘 36: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를 명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삼상 17:   다윗과 골리앗(불레셋의 거인 장수)과의 엘라 골짜기에서의 싸움.


 3. 다윗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3

    군대가 진을 쳐도, 전쟁이 일어나도 두려워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안연(晏然)하다.


 4. 다윗의 간구와 안전에 대한 감사찬송  :4-6

    ① 하나님과의 교제  :4, 여기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이란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얻는 은혜로운 계시의 우아함을 뜻한다. 곧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 그의 모든 은혜, 그의 거룩하심 등이다. 이런 아름다움은 영혼의 눈을 뜬 구원받은 자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를 벗고 보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② 안전에 대한 확신 :5,

       다윗의 환난의 날에 안전에 대한 묘사를 보면

       (1)초막(= 광야생활에서의 안식처)속에 비밀히 지키심

       (2)그의 장막(= 여호와의 임재하시는 곳) 은밀한 곳에 숨기심

       (3)바위 위(=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제한된 곳)에 높이 두심  *주의 능력의 장중(掌中).

    ③ 승리의 기쁨과 하나님께 대한 즐거운 제사와 감사 찬송  :6,

     *성도는 환난의 날에 패배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여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제사하고 찬송할 것부터 생각한다.


 5. 다윗의 자비를 구하는 탄원  :7-9

    ① 내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②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③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④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결코 구제 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는 ‘죄 인식’ 곧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51:1,14; 대하7:14; 단10:12).


 6. 유일한 보호자이신 하나님   :10-12

     * 다윗은 그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였는가 하는 것은 그의 말에 「자기를 낳아 준 부모가 비록 자기를 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만은 영접하여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여기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라는 표현은 성경 중에 실제로 다윗의 부모가 그를 버렸다는 기록이 없으므로 그의 환난의 고통이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만큼 극심했다는 것과 부모의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있는 그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다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의 길로 나를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인하여 평탄한 길로 인도하소서’ ‘내 생명을 위증자(僞證者)와 악을 토하는 내 대적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라고 부르짖었다.


 7.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3-14

  다윗은 자기는 지금 ‘산 자의 땅’에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그는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노라고 했다.

  이제 다윗은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에게 스스로 말하는 고백이며 타인에게 말하는 권면이며, 인간의 연약함을 아는 자의 지혜다.

  「바랄지어다-히,카웨」= 기다린다, 고대한다는 뜻.

  * 성도는 세상의 가난과 역경과 고난을 보고 놀라거나 낙심하지 말고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시리라고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한다(31:24, 사29:9, 30:18).       / 아멘 /


  < 시 28:1-9,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간구와 감사 >

 

  내용분해:

    1-2,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다

    3-5,        약자에 대한 보응을 간구하다

    6-7,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사하다

    8-9,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송과 기원


  본시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쫓기고 있을 때의 기록이다. 물론 본시를 다윗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큰 환난에서 구출된 후에 고난의 때에 했던 기도를 추억하며 기록했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 서술된 내용이 너무도 실제적이고 사실적이므로 오히려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급박한 상황에서 썼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 주시리라는 믿음에 찬 확신을 가지고서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에 미리 감사를 하였다.

  성도는 어려움을 당하여 고통 가운데 있을 때 낙심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붙들고 간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1, 「나의 반석이여」 ‘반석-히, 츄리’= 힘과 부동을 암시하는 말. 다윗이 하나님을 반석이라 부른 것은 험난한 생을 보내는 동안 하나님은 변함없이 줄곧 자기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셨기 때문이다(참고: 시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이 같은 표현은 그가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성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영원한 보호자이시다. 이 같은 사실은 현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무엇에 근거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잘 제시해 준다.

  * 하나님이 반석이시라는 것을 확신하지 않고서는 결코 ‘반석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없다.

  「내가 부르짖으오니....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기도에 대한 교훈

   1)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외에 사신우상(詐神偶像)에게 기도하는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신 17:2-5).

   2) 기도의 응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우리가 바르지 못한 간구를 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나, 그렇지 않은 바른 기도라도 그 응답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기도하는 자는 그 응답까지 좌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응답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기다리고 따라야 한다. 기도에 있어서 곧 응답되리라는 것을 믿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리라’하는 신앙이 더 귀하다.

   3) 기도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이다. 그러나 인간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도 기도하라. 왜냐하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지혜로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4) 기도의 생활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야말로 우리의 생활에 최우선적인 습관이어야 한다. 그렇게 여기지 않고 기도하지 않을 때 시험에 들게 된다.

    *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 데살로니가교회에 이르신 하나님의 말씀은 권고나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5) 「주께서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 하나님이 외면하시는 인간의 삶은 비참과 고통과 절망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그리스도의 절규를 생각해 보라. 어찌 그렇지 않을 건가?

   6) 기도를 드리는 태도 : 그것은 「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부르짖어....」였다.

     성소에는 하나님의 궤가 있음으로 그 곳을 향함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신앙적 행위이다.

     「부르짖음」은 그 신앙의 진지함을 뜻한다.


  :3, 여기서 ‘악인과 행악하는 자’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는 자’를 말한다. 그는 이중적 인간이다.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자이다. 입으로는 화평을 말하고 있으면서 속으로는 칼을 품고 있는 것이다. 가인이 그러했다. 이러한 자에게서 돌아서야!

    「끌지 마소서」 ‘끌다-히마샤크’= 뽑아내어 관찰하다, 여기서는 멸망시키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4-5, 기도의 응답과 그 결과

   1) 「악한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 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그러나 이는 복수심에서 나온 감정이 아니라 죄악에 내려지는 하나님의 공정한 판단과 심판을 믿었기에 거기에 의지했던 것이다.

   2) 그들이 저지른 죄악의 내용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세상의 향락에만 관심을 쏟았고 하나님을 경멸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 인생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

    「손으로 지으신 것」= 인생을 세상에 생존케 하셨다는 것.

    그러므로 행악자의 행위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살게 하시는 인간에게 악을 행하고 해를 끼침을 말하고 있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3)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


  우리가 자기의 신앙이 미미하다고 낙심치 말아야 한다. 신앙의 성장(Maturity)는 겨자씨의 성장처럼 점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엡 4:13).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6-7,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사하다.

   1) 여기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현실로 나타나기 이전의 것이었다. 곧 응답의 확신이었다. 찬송은 응답된 뒤의 것이 아니라 응답될 것을 믿기 때문에 응답 이전의 것이다. 다윗은 완료형의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은 언제나 그 백성을 도우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언하고 있다.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는 표현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하며 노래로 저를 찬송하였다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그 자체가 벌써 도움이 되었으므로 저를 찬송하리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8-9,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다.

    여기서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은 곧 이스라엘, 하나님의 선민을 말한다. 그러므로 다윗은 자기 개인의 행복을 추구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 된 미래에 있었던 것이다.

   *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증거다. 여기에 위대한 다윗의 신앙이 있다.  / 아멘 /


  < 시 29:1-11, 자연현상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엄을 찬양하라  >


  내용분해

        :1-2,  세상의 권능 있는 자에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권고하다.

         3-9,  우뢰와 번개와 뇌성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다.

       10-11, 온 세계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과 주의 백성에 대한 은총을 찬양하다.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 히,베네 엘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너희 권능 있는 자의 아들들’리란 뜻, 따라서 많은 주석가들은 ‘거룩한 천사들’로 해석한다. 그러나 ‘땅에서 권세 가진 자들’, 또는 ‘이교도들’로 보는 것이 좋다.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능력)을 잘 활용하여 얻게 되는 칭송(영광)을 겸손하게, 그것을 주시고 얻게 하신 하나님께 돌려보내야 함을 뜻한다.

      「돌리고 돌릴지어다」라고 반복한 것은 강조법으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함을 뜻한다.


  :2,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 곧,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이름에 합당한 최고의 영광을 말한다.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거룩한 삶과 정결한 마음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배 그 자체보다도 예배자의 마음과 삶을 더 중시하신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위에 있도다」, 「여호와는 많은 물위에 계시도다」= 여호와는 창조자시요 섭리자요 통치자이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시인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뇌성을 ‘여호와의 소리’로 보았다. 우뢰와 뇌성은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큰 능력이다. 하나님은 우뢰로 말씀하셨고(출19:16; 신5:22), 대적들을 심판하셨다.


  :4, 여호와의 소리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1) 힘이 있고 위엄이 가득하다. 이는 하나님 전능하심과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2)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신다.  :5

       여기서 ‘백향목’은 인간의 교만과 나라의 오만을 풍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통, ‘레바논의 백향목’은 이스라엘의 영광(시80:10, 민24:6), 그리스도의 영광(겔17:22,23), 의인의 번영(시92:12), 강대한 나라(암2:9), 교만한 자(사2:13) 등으로 비유된다.

       교만이나 거만은 약한 자들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세상적은 권세를 자랑하고 그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자에게 하나님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꺾고 부수듯 쳐서 그 교만을 꺾으신다.

    3) 그 나무와 산을 송아지같이 뛰게 하신다.  :6

       레바논과 시룐= 갈릴리 북쪽의 레바논 산과 레바논 동쪽의 헤르몬 산

       * 산이 송아지 같이 뛰니 그 나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이 위대함을 말하는 시적인 과장법이다.

    4) 화염을 가르신다.  :7

       이는 시적인 표현으로 갈라지는 벼락불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이렇게 묘사한 것이다. 또한 ‘화염’이란 말은 흔히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인다(시104:4, 사30:30).

    5)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신다.  :8

       가데스는 가데스바네아를 말하는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광야의 오아시스다(민32:8, 신1:2) 가데스바네아는 시내 반도의 ‘신 광야’(민20:1)에 있으며 팔레스타인의 최남단에 있다.

       「가데스」=‘거룩한’, ‘성별 된’이란 뜻.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이런 이름의 도시가 많았는데 그곳에는 가나안의 성소가 있었다. 따라서 「바네아」란 다른 가데스와 구별하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었을 것이다.

    6)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신다.  :9

       삼림을 말갛게 벗기신다. 이런 표현들은 하나님의 권능의 위대함과 공의로 인한 징계의 두려움을 말한다. 하나님은 선과 악에 대하여 반드시 보응하신다.

       * 그러므로 「그 전」에서= 여기서 ‘전’은 하늘나라, 그가 창조하신 천지, 예루살렘 성전.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한 의무다.


  :10-11, 온 세계에 미치는 하나님의 주권과 주의 백성에 대한 은총을 찬양하다.

       여호와는 홍수 때에도 좌정하셨고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신다고 그의 주권을 말하였다. 여기서 「홍수-히,라마불」= 유독 창6:~11:의 노아 홍수 사건에만 쓴 단어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홍수는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자비를 동시에 나타낸다.

       *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영원한 시간 속에서 왕으로서 인간들을 지배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알게 된다.

       그리고 :11에서 언급한대로 여호와는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시고, 평강의 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성도는 누구인가? 여호와를 통하여 힘을 얻고 여호와를 통하여 평강을 얻는 사람이다. 그 밖에서는 힘도 평강도 얻지 못한다.

       평강의 근원은 성부 하나님(빌4:7)이요, 그리스도(요14:27)요, 또한 성령(갈 5:22)이시다.

       *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찬양하라!      / 아멘 /


   < 시 30:1-12,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 > 다윗의 시, 곧 성전 낙성가


(시 30: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시 30:2)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시 30:3)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시 30:4)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시 30:5)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 30:6)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시 30: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시 30: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시 30:9) 내가 무덤에 내려갈 때에 나의 피가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어찌 진토가 주를 찬송하며 주의 진리를 선포하리이까

(시 30:10) 여호와여 들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돕는 자가 되소서 하였나이다

(시 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시 30:12)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


  내용:

   :1-3,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다.

   :4-5,        다른 사람들에게 찬양을 권면하다.

   :6-7,        과거의 방황에 대해 자책하다.

   :8-10,       환난 가운데서 했던 기도를 회상하다.

   :11-12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다.


   :1, 하나님을 높이는 이유: 대적으로 자기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아마도 질병으로 인해 죽을 뻔했던 것 같다. 만일 그가 죽었더라면 대적자들(그를 시기하고 모함하고 질투하며 넘어뜨리기를 좋아하는 안팎의 원수들)이 그로 인하여 기뻐하였을 것이다.


   :2-3,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 그의 영혼을 음부에서 끌어내어 그를 살리셨고 그를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다(:2-3).

  그가 겪은 질병은 아마도 그가 인구조사를 한 탓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신 역병을 가리키는 듯하다(삼하 24:, 대상 21:).

  「끌어내사-히,딜리타니」= 물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사

  하나님은 다윗을 고난의 깊은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셨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부끄러움을 면케 하시고 고난에서 다시 구원해 주신다.

  「고치셨다-히,라파」는 일반적으로 질병에 한정된다. 그러나 이 말이 때때로 ‘회복하다’ 혹은 ‘다시 세우다’를 의미하기도 하므로 여기서는 어떤 종류의 구출 사건으로 봄이 적당하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약5:13-15.

  *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찬양하였다. 우리가 당하는 위험이 급박할수록 받는 구원은 더욱 귀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음부-쉐올, 헬,하데스」= 죽은 자가 사후에 가서 거하는 곳, 영역 ‘무덤-the grave’,‘지옥-hell’, ‘구덩이-the pit';  본 절에서처럼 비유적으로 ‘절망의 구렁’으로도.

  신약에서는 ‘하데스’라는 단어가 10번 사용됨.


  :4,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가담할 것을 권면한다. 곧 역병에서 살아난 사람들은 다윗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깨우치고 있다.


  :5,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의 속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1) 그 노여움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며,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온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범죄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진노하시지만 그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영원히 그 노를 품지 아니하신다.

  사26:20,”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2) 하나님의 은혜의 속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6, 이는 다윗이 형통할 때에 한 말이다.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라”였다.

    다윗은 나라가 평온하고 번영하는 때에 인간적인 자신감으로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어리석었고 무분별한 말에 지나지 않았다. 지나간 일을 다시 회상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회개의 성격을 띤 고백이다.

    본문은 형통할 때에 감사치 아니하고 교만한 것은 작은 죄가 아니라 큰 죄악이며 그 결과는 재난이라는 것을 다윗의 경험으로 우리를 교훈한다.

    역병으로 인하여 7만이 죽음을 당했다. 죄에 대한 대가였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롬 11:20).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7, 다윗은 자신의 왕권이 주의 은혜로 굳게 설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자기에게서 그 얼굴을 돌이키실 때에 자기에게는 근심밖에 돌아오는 것이 없었음을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다.


  :8-10, 환난 가운데서 했던 기도를 회상한 것이다.

    다윗은 징계의 매를 맞고 나서야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여 부르짖었다. 이것이 성도와 불신자와의 차이점이다. 성도는 징계를 통하여 진리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나 불신자들은 그것을 인하여 더욱 마음이 강퍅케 된다.

    이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라!


  :10, 여기서 다윗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두 가지였다.

    1) 하나님의 긍휼; 자기의 잘못을 용서하시는 긍휼이다.

    2) 하나님의 도우심; 이것이 없이는 사단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다.


  ;11-12,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다.

    1)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간구하는 부르짖음에 응답할 줄 모르는 신은 하나님이 될 수 없다.

    2) 주를 찬송케 하시는 은혜

       찬송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제일의 목적이다(

    3) 영영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다.

       감사는 곧 그가 하나님께 속하여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 성도의 삶은 기도, 찬송, 감사로 이어질 때 가장 안전지대에 있는 것이다.     / 아멘 /


  < 시 31:1-24, 환난 중에서의 신뢰와 기도 >  -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다 -


(시 31: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로 영원히 부끄럽게 마시고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시 31:2)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시 31:3)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시 31:4) 저희가 나를 위하여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어 내소서 주는 나의 산성이시니이다

(시 31:5)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시 31:6)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를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시 31:7) 내가 주의 인자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은 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시 31:8)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시 31:9)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시 31:10)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시 31:11)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시 31:12) 내가 잊어버린 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시 31:13)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시 31:14)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시 31:15)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 31:16)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시 31:17)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시 31:18) 교만하고 완악한 말로 무례히 의인을 치는 거짓 입술로 벙어리 되게 하소서

(시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 31:20) 주께서 저희를 주의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

(시 31:21)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시 31:22)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시 31:23)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시 31:24)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내용:

  : 1-8,     환난 중에서의 부르짖음과 신뢰

       1-4,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회고하다

       5-8,  확신을 근거로 하나님께 간구하다

  : 9-14,    가련한 상태에서의 고백과 신뢰(고난당하는 자신의 상태를 소상히 밝히다)

  :15-18,    원수의 손에서 구원을 구하는 기도(하나님의 자비와 악인에 대한 보응을 간구하다)

  :19-24,    과거의 구원을 감사하고 하나님의 자애를 찬미하다.

     19-22,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다

     23-24,  온 백성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권고하다

  다윗이 사울의 박해 중 마온 광야에 있는 그일라에서 사울의 손에서 구원된 때 지은 시(21:,삼상23:7,13)

  다윗은 여호와가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구속주이심을 알아(:5) 신뢰(1a,6b,14a)와 헌신(:5a)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9-13에서는 얼마나 불행한 상태에 있는가를 아뢰고

  :14에서는 “그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라고 한번 더 신앙을 고백했다. 고난 가운데서 다윗이 피한 곳은 하나님의 품이었다. 환난이 닥칠 때마다 우리의 피할 곳은 하나님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기 때문이다(시46:1, 142:5, 삼하22:3, 잠14:26).

  ‘피하였다’= 전적으로 의지했다.

  * 사면초가 중에서도 우러러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는 자는 복되다!

  * 성도여 작은 환난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1,2).

  *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돌보시며 재난을 아시는 분이시다(:7,“주께서 나의 곤란을 감찰하사 환난 중에 있는 내 영혼을 아셨고 나를 대적의 수중에 금고치 아니하셨고 내 발을 넓은 곳에 세우셨음이니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때에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구하면 응답된다.

  * 기도는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열어주며, 흑암에 광명을 비추어주며, 환난을 기쁨으로 바꾸어 준다.

  * 믿음과 기도만이 승리를 얻는 길이다.

 - 다윗의 소원과 기도 -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1

   구원하는 보장이 되소서      :2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

   비밀히 친 그물에서 빼내소서 :4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5  

   *이는 죽음을 앞 둔 유언이 아니라 그의 생명(‘영’-영혼과 육체)을 하나님의 보호에 엄숙히 맡기는 것이다.

   내가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6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저희를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구설의 다툼에서 면하게 하신다. 또한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는 ‘견고한 성에서 그 기이한 인자를 내게 보이셨음이로다’라고 밝히고 있다.

   * 성도는 누구인가?

     어디서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다.

     언제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을 믿고 바라는(사모하는) 자다.  / 아멘 /

 

   < 시 32:1-11, 회개하는 자의 행복(용서받은 자의 행복과 고백하지 않는 고통) >


(시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3)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시 32:4)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셀라)

(시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시 32: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시 32:7)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 (셀라)

(시 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시 32: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시 32:10)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

(시 32:1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참회의 시, 마스길= 교훈(훈계 :8) (시 32: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 의해 큰 죄를 범한 수 나단의 책망을 듣고 죄를 고백하여 사죄의 은혜를 받은 행복의 노래. 시51:은 고백전의 심경.


  내용:

    :1-2,       사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3-4,       죄를 자복하지 않을 때의 고통

    :5-         죄를 자복하는 기도

    :6-7,       회개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

    :8-11,      시인의 권면과 훈계


    1. 복이 있는 자

      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

      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


    2. 죄의 종류   (시 32:1)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2)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

      1) 허물-히,페샤= 하나님의 금한 것을 범하는 것, 하나님께로부터 이탈한 반역(배반), 롬 4:11-‘불법’

      2) 정죄-히,하타아 = 표적을 벗어나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계명을 어기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하나님과의 계약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3) 간사-히,아온   = 악을 행하다(형식적 측면보다 내용적인 측면으로)

      4) 불의= 도덕에 어긋나는 행위, 습관.

    *이처럼 구약에 있어서의 죄는 주로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으나 신약에 있어서의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로 간주된다.

    *죄는 연대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여기서 예외일 수가 없다(원죄). 곧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죄는 늘 하나님과 인간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이것을 용서받지 못하면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가 없다. 반대로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켜 주시고 생명과 위로를 주신다.

 <사죄의 3가지 은혜>

  ①사함 받고= 하나님이 마음에 두지 않으심 ②가리움을 받고= 칭의(稱義)의 은혜, 곧 심판주 앞에 가리움 받아 죄 없는 자로 간주되는 일(義認) ③정죄 되지 않고= 형벌의 면제(롬 4:5-8) *그러나 여기에는 대신 정죄 된 대속자(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실한 회개자는 사죄의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고백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징치는 가중된다.

  ‘주의 손이’= 죄를 지적하시는 손.

  *사죄는 고백으로 얻는 은혜이다.(2, 5, 요1서 1:9, 잠28:13)

  *지금이야말로 구원의 날, 은혜의 날, 심판 전의 날이다.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한다(사 55:6, 고후 6:2).

  *하나님은 사죄하시는 구주(5), 보호주(7), 인도자(8)이시다.

  *범죄보다 더 나쁜 것은 죄를 여전히 품고 있는 것이다.

# 호흡(신앙의 호흡= 죄의 자복과 은혜 사모)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토설치 않음’= 자복치 않음.

  ‘자복’= 알리는 것. *자복의 단계: ①죄 반성 ②잘못을 인정 ③참회


    3. 죄를 자복하지 않을 때의 고통

      1) 뼈가 쇠하도록 종일 신음하였다.

      2) 주의 손이 나를 눌러 나의 진액이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다.

  *죄를 회개할 때 고통이 따르는 법이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며 소망적이지만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에 받는 고통은 더욱 심각하며 계속적이며 절망적이다.


    4. 죄를 처리하는 방법(참회의 방법)

      1)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과자로 남는다.

      2) 하나님께 심판 받고 용서받는 것이다.


    5.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

      1)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미치지 못하게 하신다.

      2) 은신처가 되셔서 환난에서 보호하시고

      3) 구원의 노래로 그들을 에우신다.

    * 이는 죽음의 깊은 소용돌이가 아무리 사방으로 우리를 에워싸더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게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6. 체험자가 주는 교훈

      1)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8)

      2)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체험을 가진 자는 남을 교훈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신앙자에게 요청되는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 서로간의 신앙 경험들을 나누면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교제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3)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여야만 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도록 살아야지 짐승처럼 대우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악인에게 훈계하지 않으신다. 오직 택한 당신의 백성을 의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훈계와 권면하시고 안 되면 강제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하신다. 성도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곧 징계는 하나님의 교훈의 수단이기도 하다(히 12:11).

    *하나님의 훈계를 받지 않으면 짐승 취급을 받으며(잠 12:1), 자신의 길을 그릇가게 되며(잠 10:17), 궁핍과 수욕(羞辱)을 당하며(잠 13:18), 하나님의 여러 가지 형벌을 결코 면하지 못하게 된다(렘 6:8).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라도 육욕과 정욕에 급급하여 올바른 훈계와 권면을 무시하거나 저버리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듣고 굳게 지켜야 한다.

      4)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즐거이 외칠지어다

    *믿음이 살아있는 곳에는 거룩한 기쁨이 뒤따른다. 마음속에 죄가 있거나 위선자들은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없다.


    7. 택한 백성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1) 성도들에게는 인자를 베풀어주시지만 악인들은 많은 슬픔을 당하게 하신다.

         악인의 슬픔은 자신의 범죄 결과이다. 따라서 죄가 많을수록 슬픔도 커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들에게 멸망의 보응을 하시기 때문에 그 속에는 평강이 없고(사 57:21) 소망이 없다(잠 10:30).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한결같은 사랑으로 보호를 해주신다. 때로 징계의 채찍을 들기도 하시지만 그것은 사랑의 징계이다(히 12:5-8).


    8. 결론: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마음이 정직한 너희들아 다 즐거이 외칠지어다”

/아멘./

 

  < 시33:1-22, 여호와의 구원의 역사(말씀과 여호와의 도모, 대망과 신앙 >


(시 33:1)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시 33:2)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시 33:3)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시 33:4)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다 진실하시도다

(시 33:5) 저는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시 33:6)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시 33:7)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

(시 33: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시 33:9)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시 33:11)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 33:12)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33: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

(시 33:14) 곧 그 거하신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을 하감하시도다

(시 33:15) 저는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저희 모든 행사를 감찰하시는 자로다

(시 33: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시 33:17) 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시 33:18) 여호와는 그 경외하는 자 곧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시 33:19) 저희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저희를 기근시에 살게 하시는도다

(시 33:20)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저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시 33:21) 우리 마음이 저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 성호를 의지한 연고로다

(시 33:22)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본시는 저자를 알 수 없는 시에 속한다. 예) 29, 37, 47, 49, 66, 81, 107, 136 등

  대부분의 시들이 다윗, 솔로몬, 아삽(50,73-83), 헤만과 같은 사람들임을 명기하고 있는데 이 시는 그 같은 언급이 없다.

  이런 시는 대개 그 내용 전개에 있어서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①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 ②하나님의 권능과 그 속성 ③하나님의 사역 ④하나님께 대하여 취할 인간의 태도와 그로 말미암은 축복 등의 순이다.

 *다윗이 수리아와 암몬을 정복한 때(삼하 12:26-31)의 시.

  용사와 말을 의지하는 이방 백성을 하나님이 초자연적 능력으로 멸하신 것과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와 그 권능이 선민의 구원과 보호 위해 일하심을 노래한 것.

  내용:

        :1-3,   여호와를 찬양하라

        :4,     여호와의 속성

        :5-9,   여호와의 창조 사역

        :10-11, 여호와의 도모

        :12,    선민의 복

        :13-15, 여호와는 인생을 감찰하신다

        :16,    인간 스스로 구원을 얻을 자는 없다

        :17-19,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를 도우신다.

        :20-22, 성도의 바람은 여호와, 또 그 여호와께 대한 바람.


  :1, ‘너희 의인들아, 히,차디크’= 행동이 올바른 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창 6:9, 욥 17:9, 잠 28:1). 본 절에서는 「정직한 자」(시 32:11--‘마음이 정직한 자’).

  * 합2: 의인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으로  인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이 세상에 의인은 단 한 사람도 없으나(롬 3:9,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어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죄인임에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함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의 의를 힘입기만 하면 ‘의인’으로 불리는 은총을 입는다(롬 5:).

  :1,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의인들이 하는 마땅한 일이며,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자가 그를 찬양하게 된다.

  :2-3, 찬송을 ①노래로(즐거운 소리로) ②악기로(수금, 열 줄 비파) ③공교한 연주로 한다.


  :4-11,  여호와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실 이유 4 가지

   1)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 행사는 진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15:29)라고 했다.

   2)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3) 여호와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개신교요리문답」=‘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므로 :8,“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라고 했다.

   4)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자신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도록 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롬 1:16). 이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셨으며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그의 속죄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예비되어 있으므로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고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12, 선민의 복.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음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이 민족이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야!


  :13-15, 여호와는 인생을 감찰하신다.

     ‘일반의 마음을 지으시며’= 여기서 ‘짓다, 히,야차르’= 형성하다, 만들다, 고안하다. 이 뜻은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항상 감찰하심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앞에 그 마음속의 은밀한 것까지도 숨길 수 없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의 선악을 감찰하신대로 갚으신다면 그 앞에 구원 얻을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의 속죄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16-22, 본시에 나타난 구원에 관한 언급

   1)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많은 군대나 말을 의지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16-17).

   2) 인간이 구원 얻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인자하심을 바래야 한다(20-22).

    *인간적 방편이나 공로로는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없으며 다만 하나님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앙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신앙’= 경외, 인자를 바람, 여호와를 기대, 여호와를 기뻐함(마음으로), 성호를 의지, 여호와를 바람(20).

  *그러기에 신앙은 여호와‘를’ 바라는 것이며, 또한 여호와‘께’ 바라는(22) 것이다.



  < 시 34:1-22, 여호와를 경외하라 >


  본시는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갔다가 왕 앞에서 미친 체 하여 위기를 면하고 난 후에 지은 시이다(삼상 21:10-15).

  그런데 본 詩題에는 아기스 대신에 아비멜렉이란 이름이 나오는데 「아비멜렉」이란 이름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가사, 가드, 아스글론, 아스돗, 에글론과 같은 불레셋의 왕(방백)들을 가리키는 호칭임을 알 수 있다(수 13:3). 또한 본시는 25:, 145:과 같이 알파벳 시편으로서 ‘알렢’으로 시작하여 17번째 ‘페’에서 끝나고 있다.


  내용:

       :1-2,   여호와를 송축하며 자랑하다.

        :3,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세.

        :4-7,   여호와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를 구원하시다.

        :8-1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받을 복

        :11-14,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악을 버리다.

        :15-17, 의인을 감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18-22,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를 구속하신다.


  :1,   여호와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다윗처럼 고통을 통해 겸손과 인내를 배운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함께 여호와를 높이세

  :4-7, 여호와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를 구원하시다.

       구하매 응답하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건지신다.

  :5,   ‘저희’= :17,에 나오는 ‘의인’,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입었으니’= 의인이 여호와를 경외(敬畏)함으로써 그의 은혜를 입었다는 뜻.

  :6,   그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다.

  :7,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신다.

        ‘여호와의 사자-히,말라크 예호와’= 여기서 말라크는 천사를 뜻. 구약에는 이 말이 40여 회 나오며(창 16:7, 출 3:2, 민 22:22, 사 37:36) 신약에는 「주의 사자」, 「하나님의 사자」란 말이 10여 회 나온다(마 1:20, 눅 1:11, 요 1:51, 행 5:19). 그러나 더러는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되고 있다(창 16:7, 창 22:11, 출 3:2).

  이런 여호와의 사자가 맡은 바 사명은 일반적으로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집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신 뜻을 전달하는 일과 그의 심판을 집행하는 일도 한다(삼하 24:16, 대상 21:15).

  :8-1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받을 복

    1)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은 그가 경험한 체험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가지려는 간절한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충직한 신앙을 갖고 있었다. 체험을 통하여 터득한 지식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이 되기 때문에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환난이나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온전히 그의 뜻을 준행하였을 때 자신에게 내려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지극히 크고도 선하다는 것을 맛보아 알았던 것이다.

   2)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부족함이 없다.

   3)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다.

     ‘젊은 사자가 궁핍하여 주리는 한이 있어도’


  :1-10, 여호와를 송축해야 할 이유

   1) 곤고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환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시니 여호와를 송축해야 한다고 했다.

     ‘곤고한 자’= 고통을 통하여 인내와 겸손을 배운 자. 다윗 자신도 포함되는데 그는 사울 왕에게 쫓김을 당하는 고통 중에서 자신이 ‘죽은 개’나 ‘벼룩’과 같음을 고백할 정도로 낮아졌고(삼상 24:14), 그 같은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고 인내하는 가운데 마침내 구원을 이루었었다(삼하 1:2-2:4).

   2) 주를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기 때문에 마땅히 여호와를 찬송하여야 한다고 했다(시17:8, 신32:10).

   3)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게 되리라는 것이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에는 영적인 복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복까지도 포함된다(신28:).


  :11-14, 생명을 사모하는 자가 버려야 할 악

   1) 혀를 악에서 금하여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하라.

      ‘너희 소자들아’

      잠 18: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욥 41:1,“낚시로 악어를 낚을 수 없듯이 노끈으로 혀를 맬 수 없다”

      잠 10:19,“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 12:18,“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잠 17:20,“마음이 사특한 자는 복을 얻지 모하고 혀가 패여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잠 21:23.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에서 보존하느니라”

      잠 25: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남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약 1:26,“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

   2)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르라(:14).


  :15-17, 의인을 감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1)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2) 그 귀는 저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신다.

   3)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시고 그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신다.

   4)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이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다.


  :18-22,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를 구속하신다.

   1)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마음이 상한 자’= 자신만을 신뢰하던 교만과 자신만을 위하던 이기심이 깨어진 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의 통회함을 들이시고 가까이 오시어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곧 ‘상한 마음’이다(시 51:17). 여호와께서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

     * 성도들이여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2)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

   3) 의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0,의 이 말씀은 주님에게 그의 십자가상에서 온전히 이루어졌다. 로마 군병들은 주께서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였다. 주님은 흠 없는 제물로서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져야만 했다(신 15:21).

   4)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죄를 받으리로다.

   5)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   / 아멘 /

 

  < 시 35:1-28, 여호와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기도 >


 다윗의 시

  내용:

        :1-8,   악인의 궤계로부터 건져 주시기를 간구하다.

        :9-10,  여호와 같으신 분이 없음을 노래하다.

        :11-13, 고통 중에서의 기도

        :14-16, 선을 도리어 악으로 갚는 무리들

        :17-19,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하여 더 이상 관망하시고 만 계시지 않기를 간구하다.

        :20-21, 악인의 행위

        :22-28, 공의로 판결하시기를 간구하다.


 :1-8,

  다윗은 하나님이 언제나 자기편이심을 확신하고 악인의 궤계로부터 건져 주시고 악인을 진멸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무조건 자신의 원수를 진멸시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원수들이 병들었을 때에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며, 친구와 형제처럼 대하였다(:13,1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다윗이 환난 중에 빠지는 것을 즐거워하였다. 다윗이 염려한 것은 의인이 이러한 악인의 궤궤로 인하여 고통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잠잠히 계시는 것을 뭇 사람들이 보고서 의의 길을 떠나 실족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악인들에 대하여 공의로 심판하시어 자신의 의를 드러내 주시기를 간구하며 이로써 의인들이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27).

  다윗의 생명을 해하려던 자들:

   1) 사울 왕

   2)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 일지기 자신의 누이인 다말을 강제로 욕보인 후 후환이 두려워 예루살렘을 떠났던 그는 다윗의 은전을 입어 다시금 궁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궁전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무리들을 만들고 그들을 규합하여 반역을 꾀함으로써 다윗의 선대에 대하여 도리어 악으로 보응하였다(삼하 15:). 이에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보존키 위하여 피난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 성경은 이 두 악인의 말로는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밝힌다(삼상 31:, 삼하 18:). 우리는 이로써 큰 교훈을 받아야 한다.


 :9-10, 기도한 것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확신하고 ‘여호와와 같으신 이가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10, ‘내 모든 뼈’= 인간의 전인격을 의미한다. :9,의 영혼이란 말과 같은 뜻이다.

  뼈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나 몸 속에 들어 있어 온 몸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됨 같이 인간의 영혼도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인간의 사상을 지배하며 전인격을 통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내 모든 뼈가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것은 곧 나의 전인격이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말이 된다.

  한편,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위하여 하와 즉 여자라는 인격체를 만드신 것과 연관하여 생각해 볼만하다.


 :13,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눅10:5,6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 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연관된다.

  그러나 남을 위해 비는 축복이 자신에게 복이 임하게 하는 수단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15 󰠆󰠏‘匪類’ 히,네킴=‘치다’, ‘때리다’라는 동사 「나카」에서 온 말이다.

     󰠌󰠏천하고 의롭지 못한 무리


 :17-19,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하여 더 이상 관망하시고 만 게시지 않기를  간구하다.

  ‘무리하게 나의 원수 된 자’= 다윗 자신이 상대방에게 원한을 살만한 행위를 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 악감을 품고서 대적하고 있는 자들을 말한다. 사울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브넬, 사울의 집 족속 시므이를 꼽을 수 있다.


 :23, ‘나를 公判하시며’=공의로 판단하여 주시기를 바랄 만큼 다윗은 결백하였다.


 :28,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의 다급함을 아뢰는 중에도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 아멘 /


  < 시36:1-12, 악인의 실상과 여호와의 인자하심 >


(시 36:1) 악인의 죄얼이 내 마음에 이르기를 그 목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하니

(시 36:2) 저가 스스로 자긍하기를 자기 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시 36:3) 그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이라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시 36:4) 저는 그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불선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아니하는도다

(시 36: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시 36:6)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

(시 36: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시 36:8) 저희가 주의 집의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시 36:9)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시 36:10) 주를 아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하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푸소서

(시 36:11)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미치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시 36:12) 죄악을 행하는 자가 거기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詩題: 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영장’=chief musician= 성전에서 봉사하는 악사들의 대장(지휘자)

  내용:

   :1-4,       악인의 실상

   :5-8,       여호와의 인자하심

   :9-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다.

   :10-12,     의인과 악인에게 보응 해 주시기를 간구하다


1. 악인의 실상(:1-4).

    악인의󰠆󰠏죄얼(罪孼)-히,‘페야’= 허물, 죄과, 위반, 범죄, 침해, 방해

          󰠌󰠏죄악에 대한 재앙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함.


    그 이유   ①자긍함

              ②죄악이 드러나지 아니하리라하고

              ③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생각함.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큰 착각이며 무지의 소산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모든 인생을 감찰하시며 죄악과 마음을 감찰하신다. 그러므로 악인들이 은밀하게 지은 죄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낱낱이 드러나 심판을 견디지 못하게 된다. 악인들이 어리석다고 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 속이고 심판을 자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두움이 무엇이며 빛이 무엇인가? ---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어두움이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이 빛이라.

    악인의 입의 말은 죄악과 궤휼임.--- 지혜와 선행을 그치고,

    악인은 그 침상에서 죄악을 꾀함.--- 불선한 길에 서고 악을 싫어하지 않는다.


2. 여호와의 인자하심(:5-8).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다. 이는 그 인자하심을 인간이 도저히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한하다는 뜻이다.

    시 57:10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이같이 큰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으로도 부인될 수 없다.

    예) 가죽옷을 입히신 에덴 동산에서의 하나님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다.

    ‘산들과 같고’= 하나님의 산, 시내산, 바산산, 시온산 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하나님의 변개치 아니하시는 의로움을 비유한 ‘산’이란 말에 하나님이란 말을 더하여 강세적인 효과를 꾀한 것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5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성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다’는 말과 같은 표현법이다.


    여호와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신다.

    주의 인자하심은 인생에게 있어서 말할 수 없이 보배로운 것, 인생은 그 날개 그늘에 피할 수 있다.

    인생은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실 것이니 주의 집의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다.

    “주의 집”= 하나님께서 인간 가운데 거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상징적 거소. 족장시대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던 제단, 출애굽 당시에는 성막, 왕국시대에는 성전, 신약시대인 오늘날은 교회가 바로 ‘주의 집’이다. 따라서 ‘주의 집의 살진 것’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전을 사모하여 나오는 성도들에게 특별히 내려 주시는 은총을 의미한다. ‘주의 복락의 강수’도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은총의 풍성함 곧 다함이 없는 복을 의미한다. 요 7:38에서는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키고 있다.


3. 생명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9).

    인생은 주의 광명 중에 광명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기 때문이다.


4. 보응을 위한 간구(:10-12)

    보응은 의인에게나 악인에 함께 있다.

    의인 곧, 주를 아는 자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하신다.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의를 베푸시고, 교만한 자의 발이 미치지 못하게 하시고, 악인의 손이 쫓아내지 못하게 하신다.

    그러나 죄악을 행하는 자 곧, 악인은 거기 넘어진다.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이다.

    ‘거기-히,‘암’= 이는 특정한 자리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 악인이 넘어진 자리, 혹 의인이 주의 인자하심을 받는 자리, 악인은 어디 넘어지든지 그 자리에서 아주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욥은 8:20-22에서 ‘하나님은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신 즉...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리라’고 했다. 사 3:11에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인이 넘어지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겔 18:23에서 이르시기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고 하셨다. 또한 겔 18:27에서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그러므로 악인이 「아주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인간은 타락하더라도 회개하지 못할 만큼 아주 타락해서는 안 된다.    / 아멘 /


  < 시 37:1-40, 의인의 화평과 악인의 멸망 >


   1-2,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라.

   3-8,       여호와께 맡기라.

   9-11,      행악하는 자와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의 차이

  12-15,      악인의 특성

  16-26,      의인의 특성

  27-33,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34-40,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 세상이 운행된다고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악인이 부를 누리며 쾌락에 탐닉하는데도 그들이 멸망치 않고 있다는 사실이 헤어날 수 없는 신앙적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윗은 본문에서 이런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는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1-2, 다윗은 신앙인들을 향하여 행악자와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 대한 불평과 투기를 멈추라고 권면한다. 다윗은 부당한 번영을 목격한 자들이 그 마음에 실의와 방황으로 낙담해 할 때 그들을 향하여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악인의 번영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정의를 사모하는 사람의 심정이다. 그러나 그런 일로 인하여 겉으로 불평하거나 내심으로 투기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악인의 번영은 우리가 생각할 정도로 그렇게 길지는 않기 때문이다(욥 20:5).

  적어도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라면 그는 악인의 번영을 목격할 때에 조용히 하나님의 정의로우신 판단에 맡기며, 끝내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3,  성도는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고 여호와의 성실로 식물을 삼는 자’여야 한다. 비록 악인의 번영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의 마음을 혼미케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거나 선을 행하고 성실로 식물을 삼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런 일로 마음이 혼란할 때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하나님의 듯을 순종해야 한다.


 :4, 성도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통하여 기쁨을 누려야 한다. 성도의 내면에 솟아 나는 기쁨은 외면적 상황에 만족할 수 없는 때라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함없는 기쁨을 잃지 않는 자에게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채워 주시며 참된 행복을 안겨 주신다.---하나님은 그를 찾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꺼운 마음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신다.


 :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라’---이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다함이 없는 기쁨을 나타낸 말씀이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라면 불의한 자가 일시 번성하더라도 불평을 삼가 하고 대신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려야 한다.---악인들의 번성에 대하여 불평하거나 노를 발하는 것은 오히려 악인들의 계획을 성공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악인들의 번영을 초조하게 바라보거나 분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불건전한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된다.---하나님의 사람은 악인이 번영하더라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기다리며 침묵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사사로운 계획을 억제하여야 한다(롬 12:19).


 :9-11, 악인은 잠시 잠간의 영화를 누리다가 영원히 멸절 될 것이지만 하나님을 기대하는 자는 잠시 후에 악인들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때에 땅을 차지할 뿐 아니라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게 될 것임을 말한다.


 :12-15, 악인의 특성은 무엇인가?

  ①악인은 의인에 대한 음모 꾸미기를 즐기며 ②자신들의 힘이 그를 압제하지 못할 때는 맹렬한 분노를 간직하게 된다.  또한 ③악인은 자신의 온갖 무력을 동원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압박하고 ④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자를 넘어지게 만든다.---이처럼 악인의 특징은 항상 파괴적이며 비인간적일 뿐 아니라 경건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최후의 날을 이미 정해 놓고 계시며(:13), 그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실 뿐 아니라 남을 해치려는 그 계획이 자신에게 함정이 되게 만드신다.


 :16-19, 의인의 특성은 무엇인가?

  1)‘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더 가치가 있다’(:16). 왜냐하면 악인의 불로소득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곧 없어지지만, 의인의 소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2)의인은 여호와께서 안전히 보존하신다(:17).

  3)의인은 그 삶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께서 아실 뿐 아니라 그 기업을 영원케 하신다(:18).

  4)의인은 환난 때에도 부끄럽지 않고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다(:19).---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은 의인에게도 환난과 기근이 찾아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과 다른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소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20, 이에 악인의 운명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고 만다. 악인의 멸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그 흔적은 도저히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패망하고 만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의인을 위하여 악인의 멸망을 유도하신다.


 :21-22,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준다. 악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이웃의 것을 꾸지만 갚아야 한다는 당연한 의무감은 망각한다.


 :23-24,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가 넘어질지라도 영원한 실망과 죄악의 늪에서 방황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 그래서 그의 능력과 펴신 팔로 그 백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25-29, 다윗이 체득한 것은 먼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후원자가 되셔서 필요를 공급하시기 때문이다. 둘째로 체득한 것은 의인들이 종일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어 결국 그 자손이 복을 받게 되는 사실이다. 이는 시편 전체를 통하여 흐르는 진리이다.---그러므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즉 악인이 비록 번성하고 권모 술수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일이 주위에 산재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삶의 모법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의를 사랑하시며 정의를 위해 온갖 고난을 감수하는 자들을 외면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전리가 거부당하며 정의를 사랑하는 자가 외히려 고난을 받는 오늘날 성도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하여 날마다 정의를 위해 땀흘려야 할 것이다.


 :30-31,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의인은 그 성격상 도덕적으로 정당한 말과 때에 맞는 적절한 말을 한다. 이는 인간의 마음을 흔쾌히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활이다. 또한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바른 법도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빗나가거나 허탄한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32-33, 그러나 악인은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는다. 그 까닭은 의인이 이 땅에 살아있는 한 악인은 자신이 의도한 대로 악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악인의 기세가 거세다 할지라도 그의 백성을 모호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는 꺾지 못한다. 더욱이 하나님은 악인이 그의 백성을 모함한대로 그 백성을 심판하지 아니하신다. 비록 의인이 악인의 도모로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예화) 순교자들의 죽음, 그러나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그를 기억하고 그의 죽음을 통해 많은 교훈을 받고 그를 추앙한다. 그러나 그들을 죽인 자들의 이름은 영원히 무지한 자로 남는다.


 :34, 다윗은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는 자’에게 땅을 차지하는 약속이 주어지고, 악인은 그의 멸망을 목격케 할 것이라고 말한다.


 :35-36, ‘본토에 선 푸른 나무’= 레바논의 소나무(제롬)---이는 악인의 세력이 어떤 힘으로도 제거할 수 없게 될 만큼 확장, 견고해져 감을 의미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렇게 팽창한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그 세력이 흔적을 감추는 것이 악인과 그가 소유한 세력이다.---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은 악의 세력이 이 세상에서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을 때때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악의 세력에 아부하지 말라.


 :37-38, ‘완전한 사람’은 마음에 불순함이 없는 도덕적으로 순결한 자.

         ‘정직한 자’란 하나님을 향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 이런 자들의 삶을 끝까지 지켜보면 그 결국은 평안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화평한 자의 결국은 평안이로다’=평화한 자는 그 이름을 남길 후손을 남기게 된다는 뜻. 그러나 악인은 자신의 멸망 뿐 아니라 그 후손의 멸망도 감수해야 한다.


 :39-40,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로부터 유래한다.---비록 의인이 극한 시련과 환난 가운데서 방황하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그가 있는 곳을 찾아내셔서 그와 더불어 계실 뿐 아니라 그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

  하나님만을 유일한 소망이요 피난처라는 사실을 자신들의 삶을 통해 표현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외면치 않으신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간직하고 날마다 그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아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아멘/



  < 시 38:1-22, 참회의 기도, 안팎의 고통, 박해에서의 기도 >


(시 38:1)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시 38:2)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시 38:3)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시 38: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시 38:5)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시 38: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시 38: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시 38: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시 38: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시 38: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시 38: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시 38: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

(시 38:13) 나는 귀먹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시 38: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시 38: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시 38: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妄自尊大) 할까 하였나이다  *망자존대(妄自尊大)

(시 38: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시 38:18)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시 38: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시 38:20)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시 38: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시 38: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다윗은 ‘우리아’와 더불어 큰 죄를 범한 후 자복, 회개함으로써 죄사함을 받았으나 그 죄의 징치로 가정에 비참사가 생겨 그의 아들의 반역을 받는다. 본시는 그 직전에 지은 시이다.

시제= 죄를 기념키 위한 시.

참회의 시: 이처럼 처절한 고통의 호소와 회개로 일관한 시는 드물다. 회개와 호소로 점철되어 있다.

*참회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받을 귀한 일(손)이다. 죄 중에 큰 죄는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죄이다.

 참회하려면, ①죄의 인식(시인)이 필요하다 ②죄를 잊지 않고 슬퍼함(18)이 필요하다 ③죄에는 형벌 따름을 기억해야 ④죄는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일임을 알아야.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임을 기억해야 하는데... ⑤죄를 고백하면 용서받음을 믿어야.


<세 종류의 죄를 말함> ①‘나의 죄’(3,18) ②내 죄악’(4,18) *불의 ③‘나의 우매’(5)

<죄의 결과> ①병(3) ②큰 물(4a‘넘쳐서’) ③무거운 짐(4b) ④상처가 썩는 병(癩病?)(5a,7,11)



1-8, 죄의 징벌

  2, ‘주의 살’= 하나님의 진노, 징벌, 심판(신 32:23)을 의미하는 은유적 표현. 고통과 병고를 비유해서 하나님의 ‘살(矢)’이라고(욥 6:4, 애 3:12).

    ‘주의 손’(시 39:10)= 회개케 하시는 주의 손길.

  4, ‘무거운 짐’= 심각한 죄를 비유한 것(사 24:20).


9-14, 고민 중에 그에게서 떠나가는 친구와 적의 비방을 슬퍼함.

  11, 나의 상처= 히, 원어에는 문둥병에 걸리는 재난을 표시(레 13:3)

  13,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하나님 앞에서 죄 된 인간은 항변할 말을 잊는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순종, 반성, 침묵,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15-22, 재차 하나님께 호소함.

  16, 내가 실족할 때= 발 밑이 요동한다(시 13:4). 왜냐하면, 불행과 재해로 인해서...


  하나님의 회개체 하시는 은혜의 손길에 순복하여 입으로 죄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뉘우치며, 생활로 새롭게 된 자에게는 사죄의 은혜(대하 6:36-39, 욥 11:13-15)와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은총과 성령의 내주하심과 새로운 정신과 영혼이 주어진다.


  우리들은 이런 은총 속에서 살아야겠다.  /아멘./

 

  < 시 39:1-13, 침묵과 기도, 인생의 무상, 슬픔의 노래 >


(시 39:1) 내가 말하기를 나의 행위를 조심하여 내 혀로 범죄치 아니하리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 내가 내 입에 자갈을 먹이리라 하였도다

(시 39:2)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시 39:3)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묵상할 때에 화가 발하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시 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 39:5)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시 39:6)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시 39:7)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 39:8) 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시 39:9)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시 39:10) 주의 징책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시 39:11) 주께서 죄악을 견책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 먹음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각 사람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시 39: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시 39: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여두둔’= 예루살렘 성전의 성가대 창시자. 단 이것이 후에 성가대의 이름이 되었다(대상 16:41), 25:1,3).

  이 시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치를 받아 아마도 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지은 시일 것이다.

  시 37: 악인의 멸망(일시적 번영 불구하고). 의인의 목과 영광을 확신하고 위로 받기를 권면.

  이치로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이 극심할 때 미혹되기 쉽다.

  #약한 정을 가지고 있는 인생, 그 누가 유혹되지 않을 자가 있을 것인가!

<말로 짓는 죄>

  *불평 않으려고 선한 말까지도 함구 (:1-2).

  #사람은 입으로 가장 쉽게 범죄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 141: 3,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언행 조심: 잠 16:17, --- (잠 16:17)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고통과 시련 가운데서 말하려면 기도를... 기도는 유혹에서 피하는 안전지대이다.

 7-13, 고난 중 하나님의 사죄와 구원을 기도하다.

  4-6, 인생의 무상함을 생각하고 자기에게 종말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를 구함.

   #인생은 그림자= 원어에는 ‘손 넓이’. 손의 가로의 길이.

       징치는 자기의 죄 때문임을 깨닫게 되어야 겸비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을 구하게 된다.

  7,   하나님 없이 하는 모든 것은 허사이다. 오직 소망은 하나님 뿐.

    요 17:3,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행.

  12, 인생은 객, 기류자(일시적 기류자)

 영과 육의 건강을!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겨울파도 | 작성시간 16.04.12 귀한 자료 고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