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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의 신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작성자임마,누엘|작성시간18.06.02|조회수484 목록 댓글 1

회퍼의 신학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 글은 고려신학대학원 유해무 교수님과 화란의 아뻘도른 신학교에서 연구중인 성희찬 목사님께 보내는 이광호 목사님의 서신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세상은 어울리지 않게 분주한 제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는 듯 합니다.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엄청난 자체 위기 속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 의미도 알지 못한채 성탄절을 지킨다고 떠드는 소리들을 쉼없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 교수님께서 신학대학원에서 '본회퍼'를 강의하고 있음과 그에 대한 성희찬 목사님의 '본회퍼를 변명'하신 글들을 잘 읽었습니다. 저 또한 신학석사 과정을 하며 조직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오래전 일이기는 하지만 본회퍼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옛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저는 그 때 그의 사상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본회퍼'의 신학사상이 강의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본회퍼는 그 동안 우리 신학에서 수용할 수 있는 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신학대학원에서 '본회퍼'가 다루어질 때 그의 신학사상은 결코 우리의 모범이 되거나 본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마땅히 신학적 비판의 대상으로서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리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의 사상을 '무조건 욕하자'는 말이 아니라 그의 신학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 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유 교수님의 생각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교수님께서 지난 11월 22일자 신학대학원 홈페이지에서 '본회퍼 수강생들'에게 보내신 공개글에서는 상당히 오해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여러분이 새롭게 이해한 본회퍼가 여러분들의 말씀 이해와 신학 수업에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향되게 이해되었던 본회퍼가 아니라 충실한 성경학도요 실존적인 삶의 신학자였던 그를 본받아서 여러분 모두가 진지하고 신실한 말씀의 사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씀하신 대목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성희찬 목사님께서는 '본회퍼를 변명하며'에서 그가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하였으며 그것이 곧 그의 삶의 중심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본회퍼는 항상 그리스도를 이야기 하며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도의 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그렇게 살고자 애썼던 점 자체에 대해서 '아니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에 감추어져 있는 신학적 함정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바 처럼 본회퍼가, 종교에서 말하는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신학과 신앙의 고백인,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과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고 있는 것은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닐 것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그는 이단사상을 가졌던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을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자들은 곧 이단 아니던가요? 우리 교단 가운데 그러한 본회퍼가 가졌던 사상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우리와 분리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본회퍼의 신학을 흔히 세속화 신학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소위 기독교 복음의 편협함에서 벗어나 세속의 언어로 세속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자는 것 아닙니까?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없는 것처럼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일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에 관련된 언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세상 속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살수 있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면 그럴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인간을 위한 종교적' 언어일 따름입니다. 

 

 본회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거룩성 보다는 인간사회에서의 현상적 선(善)을 최대선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을 주관하는 신으로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의 논리에 따르게 되면 '아담으로 인한 영멸할 죄'와 '죄없는 그리스도로 인한 영생'의 개념은 편협한(?) 기독교의 교리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1960년대 이후 서구의 다양한 자유주의 신학사상이 본회퍼의 그런 사상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은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부분입니다. 

 

 본회퍼가 얼마나 인간적인 미덕을 가졌느냐 하는 것은 참된 신학을 배제한 인본주의적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다시 패망할 위기에 놓여있는 세속국가 독일에 살면서 자기의 신학적 언어를 구사했던 사람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당시 민족주의적 경향에 빠져있던 독일복음주의 교회의 오류 속에서 용기를 다했던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용기있는 윤리적 결단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인해 자기를 부인하는 그런 자세라기 보다는, 부정직한 사회적 변화에 정의롭게 반응했던 한 신학자의 인본주의적 자세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의 선배들이 본회퍼를 강하게 비판했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인본주의적인 윤리적 자세를 보며 그를 본받자고 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윤리적 입장이라면 이단이나 비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 교수님이나 성 목사님이 본회퍼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적어도 본회퍼에 대해 저보다는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듣는 분들은 아직 그의 신학사상에 대해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다수일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본회퍼를 이야기 할 때는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본회퍼가 아무리 그리스도 중심의 사고를 했다 하더라도 그 그리스도는 우리의 그리스도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가 이해한 그리스도는 죄인의 몸에서 태어난 지극히 선량한 인물이기는 했어도, 하나님께서 동정녀의 몸을 통해 보내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성경을 열심히 읽고 연구를 했다 하더라도 그의 성경은 역사적 산물로서의 성경이며 우리가 믿는 죄악된 인간세계 밖에서 들어온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신실함을 입증한다 해도 그것은 종교적 입장에서의 윤리적 평가이며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비추어 본 평가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 인물을 막무가내 비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본회퍼라는 한 인물을 아무렇게나 격하시키고자 함도 아닙니다. 저는 과연 우리가 신앙하는 바 진리가 어떻게 우리 가운데 존재해야 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본을 삼아 배워야할 내용이 어떤 사람들의 사상과 삶인지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평소에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유 교수님과 늘 진리를 추구하기에 최선을 다하는 성 목사님께 이 글을 쓰면서, 저의 부족한 생각이지만 이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현대처럼 모든 사상이 뒤엉키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본회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향방없이 떠들썩한 이러한 때 그에 휩쓸리지 않고 진지하게 사고해 보고자 하는 그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광호 목사(실로암 교회)/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orever8436&logNo=80036486693



*관련자료


                         디트리히 본회퍼 (1906-1945)와 세속화 신학



본회퍼는 인간적인 매력과 신학적으로 다양성을 지닌 특이한 신학자이다. 그는 오늘날까지 급진신학의 맹주로 불린다. 그의 생애는 그의 신학만큼이나 다채롭다. 튀빙겐 대학,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였고, 초창기부터 리츨학파의 자유신학에 만족하지 못하고 칼 바르트의 위기신학에 관심을 가졌다. 

  

1930년 본회퍼는 24세의 나이로 베를린대학 조직신학 교수로 발탁되었다. 당시 미국 유니온 신학교 연구교수로 도미하여 뉴욕의 흑인들의 비참한 생활에 충격을 받았고 멕시코, 쿠바를 방문하여 미국과 이웃나라들의 비교하면서 미국사회의 깊은 상처를 목격하였다. 독일로 돌아온 그는 반(反) 나치 입장 때문에 점점 더 고립된 길을 걷게 되었고 이후 영국에 머물며 1년여 독일인 교회 목회생활을 한 후 다시 독일로 귀국하였다.

  

독일 고백(告白)교회의 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하여 1940년 나치에 의해 신학교가 폐쇄될 때까지 근무하였다. 본회퍼는 반(反)나치 지하운동에 가담하여 활동 중에 체포되어 1945년 처형되었다. 그의 과격한 신학의 형성은 1944년 히틀러 암살 기도 실패 이후, 거대한 악의 세력과 투쟁을 그의 사명으로 삼았던 특수 현실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a) 본회퍼의 신학사상

 

 본회퍼 신학은 1942년 투옥된 시기를 계기로 그 이전을 전기, 이후를 후기로 나눌 수 있다. 그의 후기 신학사상도 어떠한 학문적 논문을 통해 발표된 것이 아니라 옥중에서 친구(베트게)에게 보낸 서간문을 통해 알린 신학적 내용이 전부이다. 

그가 옥중에서 명상으로 얻은 신학적 결론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성숙한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성숙한 세계에 사는 성숙한 인간들에게 성서적 개념에 관한 비종교적인 해석을 토대로 하는 비종교적인 기독교를 확립할 것을 제기하였다. 즉,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세상적인 복을 주시고 인간의 육체적 요구를 모두 들어주시는 만능의 방망이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 회퍼에 의하면, 계몽시대 이후 서구인들은 하나님 없이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성숙된 사회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함에도 현실 교회는 하나님을 여전히 초월적인 하나님으로 보고, 그 절대적 초월자를 인간의 모든 문제 해결사로 받아들이는 과오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 회퍼는 하나님은 죽음, 고통, 죄악 등 인간 한계상황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만능의 해결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이 체험되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이 다른 세계(死後 世界)에서나 존재한다면 그런 신은 이미 이 세상에서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성숙하여져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살아가므로 이제는 신의 존재가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신이 요구된다면, 삶의 한계적인 상황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삶의 중심에 놓여지면, 그 다음 과제는 구원의 의미를 재검토하는 일이다. 과거처럼 타계적(他界的) 구원관은 별로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이 세상의 삶을 건설하는 일을 돕는 현세적(現世的) 구원관을 확립하여야 한다. 그는 출애굽의 구원을 철저히 현세적 구원의 결정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본 회퍼는 이상과 같은 새로운 신학의 초안을 남긴 채, 집필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처형되었다. 그의 신학의 방향과 성격은 그의 옥중 서간문에 충분히 남아있다. 그의 신학적 성격은 존재론적 입장에서 보는 기존의 신관을 외면하고, 실용적 입장에서 보는 그리스도관(기독론)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그의 신학의 방향은 수직적인 면보다 수평적인 면, 즉 남을 위해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인간을 강조하는 “인본주의 기독론”을 강조하였다. 믿음이란 남을 위해 산 예수의 존재에 참여하는 새로운 삶이라고 술회하였다. 

 

교회론에 대하여, 현대교회의 사명이 영혼구원이 아니라, 사회개혁에 있다고 보았다. 교회란 인류복지, 즉 이웃을 위하여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현대교회의 활동은 교회가 가야할 방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대해, 사회적 각성에서 시작되며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세속적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완성되어진다고 확언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영적 차원에서 내려와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차원을 가지고 대중 속에 깊이 파고들어가야 하며, 지금까지 세상을 교회로 이끌려던 방향을 바꾸어 교회를 세상 속으로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본 회퍼의 입장은 교회를 철저한 세속화 운동만을 뒷받침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며, 정통적인 구원관을 신화적 구원관으로 몰아세우는 것이다. 

 

구원관에 대하여, 본회퍼는 부활의 소망에 근거하여 인간이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어 무덤 저편에서 영생구원을 얻는다는 종래의 구원관은 아주 잘못된 것이며 위험한 사상이라고 비판하였다. 

 

기독교인의 부활소망은 신화적인 내세(來世)에 관한소망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재탄생 하는것이며, 이러한 구원을 “역사적인 구원”이라 말할수있다.

 

그는 교회의 세속화 운동을 통한 역사적 구원을 위해서는 모든 교리적 논쟁을 지양하고, 전통적인 사도신경도 재검토해야 하며, 기독교 속에 깃들여있는 모든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b) 본회퍼의 신학사상 비판

 

     그의 옥중서간에 나타난 그의 신학은 인본주의 신학에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그는 오늘날 만연된 급진주의 신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1) 본회퍼의 신관(神觀) 

   그는 하나님을 객관적인 그리스도의 모범성과 연관시키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객관적인 인격적 존재를 대체하여, 주관적 사랑을 말함으로써 결국 무신론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을 인격적 대상으로 믿으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나타낸 십자가 사랑에 감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된 것이므로, “이웃을 향한 자아 희생적인 사랑 그 자체”가 하나님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요일 4:8)라고 한 것은 “사랑이 곧 하나님이다”라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은 사랑이란 속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의 표현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사랑 그 자체가 한 인격이라는 말이 아니고, 사랑은 그 인격을 이루는 하나의 본질 또는 속성에 불과하다는 뜻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려면 그리스도의 인격을 알아야 한다고 본회퍼는 말한다. 

 

또한 하나님 없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립되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인격적 존재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에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인격적 존재로서 아버지로 부른 곳이 400회 이상 등장한다고 밝혔다. 

 

(2) 본회퍼의 구원론과 교회론 

   본 회퍼의 생각대로 교회가 개인의 구원문제를 무시하고 사회개혁만을 위해 활동한다면 이는 성서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 영혼의 가치를 온 천하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으로 여긴다. 

 

개인의 영적구원 없는 사회구원은 진정한 기독교 정신과 상치되는 것이다. 복음을 통한 인간의 구원과 회심이 없는 곳에는 진정한 사회개혁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 회퍼는 교회와 사회의 명백한 분리선을 인정하지 않는다. 성서(요17장)에 근거한 교회는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은 구별된 백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와 일반적 의미에서 동일시 할 수 없다. 

 

교회의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본 회퍼의 신학사상은 교회의 신령한 성격을 오해한데서 생긴 것이다. 사회참여는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들의 구주가 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어야 한다. 

 

(3) 기독교인의 비종교화 운동 

   본 회퍼의 비종교화 운동은 하나님의 편재성만을 중시하여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인하는 잘못에서 온 것이다. 그가 말하는 기독교의 비종교화 운동은 교회의 세속화를 표방하므로 비성서적이다. 

 

그의 신학의 방향은 그리스도가 세상을 향해서 보인 모범된 생활면을 더 중시하는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기독교 교리를 경시하고, 생활에 치중하는 오류에 빠지고 말았다. 


[출처] 3. 디트리히 본회퍼 (1906-1945)와 세속화 신학 |작성자 마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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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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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임마,누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6.02 후원이 꼭 필요합니다
    카페지기의 어려운 형편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자발적인 후원으로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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