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세상에!”를 연발한다. 뜻하지 않은 경우 나오는 탄식이다. 종종 들려오는 부고(訃告)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예고도, 기약도 없이, 먼저 떠나는 일이 점점 빈번해지면서 옛사람의 말이 실감 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집 앞 개울과 같다’더니, “저런!” 한걸음에 건너가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얼마나 소문없이 떠나는지 ‘가만한 바람이 대목을 꺾는다’고, 같은 제목으로 꾸민 부고 모음집도 있다(<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헌’(智軒) 조원경 목사는 마치 초야에 묻혀 사는 처사(處士) 같아서 귀 밝은 사람조차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근래 들어 하양무학로교회 예배당이 유명해져 덩달아 이름이 떴지만, 스스로 그 이름을 자랑하는 법도 없었다. 승효상 선생이 설계했는데, 그의 ‘빈자의 철학’을 구현했다고 유명세를 탔다. 처음에 <강단과 목회>(kmc)에 쓸 예배당 답사기를 부탁받으면서 그를 찾은 것이 초행길이었다. 모모한 건축가이니 만큼 언로의 기대를 불러 모았다.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 기차를 갈아타고 하양역에서 내렸다. 2019년 5월 일이었다. 금호(錦湖)강 물길 위로 반사되는 햇빛이 어찌 아름답던지, 첫눈에 그 동네 습지에 반하였다. 동네 이름이 하양(河陽)인 이유가 실감 났다. 그리고 새 예배당을 곁눈질 한 후, 먼저 식사부터 하라는 말에 반갑게 개량한옥 지붕 아래에서 호박채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를 먹으며 말문을 트니 “오호!” 낯설지 않았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30여 년 만에 마주했는데 희미한 옛 모습이 남아 있었다. 학사원(요즘 신대원) 학생으로 학교에서 스치듯 그를 본 적이 있을 뿐이다. 그제나 지금이나 딴 세계에 사는 인물처럼 남다른 점은 변함이 없다. 추레한 양복저고리며, 검정 고무신 그리고 느릿한 말투는 빠른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인물이었다. 다음 인상도 첫 인상처럼 한결같았다.
건축 배경이나 듣자며 목사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비좁은 입구가 예사롭지 않다. ‘묵정초당’이란 현판의 뜻을 물으니 ‘잠잠할 묵’(默), ‘고요할 정’(靖),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하게 하셨다’는 한문성경 표현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가라 앉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잔뜩 머리를 수그리고 들어가니 고서를 꽂아 둔 책꽂이가 가지런하다. 가난한 선비의 방이 이렇지 않았을까.
그날 이후 죽이 맞아서 묵정실에 자주 들락거렸다. 이런저런 일로 나를 불러 내렸고, 나 역시 계절 한 번쯤 형의 초대를 기다렸다. 그의 독서대요, 겸하여 찻상으로 쓰인 개다리소반을 사이에 두고 자주 웃었다. 그렇게 웃고, 한담하며 놀았는데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조만간 은퇴를 앞두고 여러 해를 별러 장만한 사적 공간도 여러 차례 올라갔다. 세상에 둘도 없을 그만의 기도실이었다. 더 높고, 더 깊은 경상도 심심유곡이었다.
조 목사님 덕분에 경상도 나들이를 빈번하게 한 것은 복이다. 교회 맞은편에서 열린 다방물볕 음악회며, 토착 지인들과 나눈 낯선 식사 자리며, 모두 신세계를 배우는 기회였다. 그는 목회자의 세계와 마치 담을 싼 듯 거리를 두고 살았지만, 담을 쌓은 것은 오히려 목회자 세계의 우물이었다. 그는 자유를 갈망하는 자유인, 첩첩한 산조차 무람없이 넘나드는 자연인이었다.
조원경 형은 나와 수집하는 취미가 서로 통하였다. 물론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저나 나나 남의 보물을 줍는 ‘고물 인생’인 셈인데, 덕분에 세상의 문을 넓힌 셈이 되었다. 짧은 지면이니만큼 인터뷰 한 기자의 말을 빌린다(영남일보, 2011.5.13.).
“요즘 퇴계의 문집에 푹 빠져있다. 또 조선 때 각종 일기류 수집에도 열을 올린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611년 금강산 일기, 1623년 전쟁일기 등 서간류만 250여 점이나 된다. 또한 구한말 필사본, 독립운동가 문필집 등도 갖고 있다. 단순히 소장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걸 잘 분석할 수 있었던 것은 영남대 동양철학과에서 한학을 공부한 탓이다.”
그동안 나를 가은(架恩) 선생이라고 불러주며 아껴주었는데, 너무 서운하고 섭섭하다. 마지막 들은 그의 목소리는 병원에서 “다음 주 화요일이면 퇴원 여부를 알려준다”는 말이었다. 듣자니 마지막 통화 후 일주일 지나 심정지가 왔고, 그리고 훌쩍 개울을 건너갔다. 결국 자신이 꾸민 기도실 앞마당에 묻혔는데, 그곳 이름은 이전원(伊甸園)이다. 한자로 에덴동산이란 뜻이다. 더없이 고요했던 그곳에서 듣던 찌를듯한 웃음이 그립다.
- 송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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