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도(祝禱)는 성경적인가? 성경적이라면 이 ‘축도’라는 말이 성경 어딘가에 나와야 하는데, 그 어디가 어디인가? 무지 때문인지 모르지만 필자는 성경 어디에도 이 말 ‘축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것 중 가장 큰 <성구사전>에서 찾아 봐도 없다.
이에 말 자체가 아니라 그 의미를 봐야 한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꼭 ‘축도’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순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그 의미랄까 유래는 성경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구약 <민수기>에서 찾는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말씀 중의 문장부호와 줄바꾸기는 필자에 의한 것임)
그런데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이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 교회에서 축도를 하고 있는 목사들이 제사장과 같으냐는 것이다. 많은 목사들은 축도를 ‘강복선언(降福宣言)이라며 자기들 목사만이 이를 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복을 내려 주시는 일(降福)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백번 양보해서 목사가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같다 해도 강복선언은 언어도단이다. 거기에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목사들이 말로는 아니라 하면서 기실 자신을 제사장처럼 여기어 그렇게 처신하는 일이 많은 것이 우리들 교회의 현주소다. 말로는 만인제사장설의 타당성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목사만이 제사장이라는 식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목사들이 권한을 주장하며 권위로 교회를 다스리려 한다. 그러나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그게 누가 됐든 몸 된 교회의 지체이다. 목사도, 장로도, 집사나 무직분자도 모두 손이나 발과 같은 지체이다. 다만 맡겨진 역할이 다를 뿐이다. 누구도 머리일 수가 없는 것이다.
머리라 해서 물론 사람의 목 윗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손이나 발처럼 지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의 머리는 교회의 우두머리, 말하자면 사령탑과도 같은 역할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어떻든 목사가 권위로 교회를 다스리려 하는 데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교회를 권위로 다스리려 하지 않고, 그 아닌 사랑으로 섬길 때, 거기에서 저절로 목사의 권위가 나온다. 성도들로부터 존경심이 우러나와 거기에서 권위가 생기는 것이다. 힘에 의한 권위가 아닌 사랑이 만들어낸 권위가 나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축도를 ‘~지어다’로 마치는 목사가 많다. 이 ‘~지어다’는 명령형 ‘~해라’의 예스러운 표현으로 ‘마땅히 그렇게 하여라’의 뜻이다. 그런데 축도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인가. 목사가 성도들에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해라’ 보다도 더 강하게 느껴지는 명령을 한다는 말인가. 권위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아니면 ‘남이 갓 쓰고 장에 가니 투가리 쓰고 장에’ 가는 식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축도의 근거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의 고후13:13을 들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목사들은 이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축도를 한다. 그러며 이렇게 ‘~지어다’로 되어 있으니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앞에서 언급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하라 하신 축복은 ‘~지니라’로 맺는다. 그런데 ‘~지니라’와 ‘~지어다’는 그 의미에 있어 별로 차이가 없다. 이에 그 봐라, 그런데도 축도를 ‘~지어다’로 마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인가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민수기의 ‘~지니라’도 고린도후서의 ‘~지어다’도 오역(誤譯)의 산물이다. 이를 ‘~ 빕니다’로 바로잡아 번역한 성경도 많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라.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빌 때에는 다음과 같이 빌라고 하여라.
‘주님께서 당신들에게 복을 주시고, 당신들을 지켜 주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당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님께서 당신들을 고이 보시어서, 당신들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빕니다.’
그들이 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축복하면, 내가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 (표준새번역 민6:22~27)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 (공동번역 고후13:13)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니라’나 ‘~지어다’가 오역이라는 것을 목사라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축도에서 ‘~지어다’를 고집하는 이유가 뭣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하기야 이를 헌법으로 정해 놓은 교단도 있을 것인데, 이에 따른 것이라 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교단의 입장과 상관없이 그러한 목사는 뭐라 그 타당성내지 당위성을 말할 것인가. 권위 때문이라고? 그 권위가 기독교 퇴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숙고를 권한다.
여기에서 다시 축도는 성경적인가 하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 생각해 보려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왜 반드시 (주일대)예배에서 축도를 해야 하는지 필자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축도’라면 문자적으로는 ‘축복 기도’의 줄인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어다’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축도’는 기도가 아니라 선포라고 항변한다. 전술했듯이 강복(降福)의 선포(宣布)라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들의 주장이 맞다 하자. 그러나 그들이 근거로 든 민6:22~27이나 고후13:13는 이를 ‘선포’라 하지 않는다. 민수기는 ‘축복’이라 했고,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마무리인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자적으로 뿐 아니라 민6:22~27도 고후13:13도 ‘~지니라’나 ‘~지어다’가 아니라 ‘~ 빕니다’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빕니다’는 누가 뭐래도 선언 아닌 기도의 워딩이다.
어떻든 ‘축도’라는 말(표현)이 성경 어디에도 없을 뿐 아니라 그 같은 의미의 내용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나 예배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도 없다.
이상 피력한 것과 같은 이유로 필자는 예배에 동참하여 축도를 ‘~지어다’로 마칠 때면, 그 ‘~지어다’를 마음속으로 ‘~빕니다’로 바꾸어 기도를 드림으로 예배를 마친다. 축도가 시작되는 처음부터 그 축도를 기도로 드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필자를 비난한다면 달게 받겠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가 틀린 것이라는 것을 성경말씀을 들어 증명해 준다면, 그래서 필자가 그 증명에 납득한다면 당장이라도 그에 대한 생각과 행위를 바른 쪽으로 바꾸겠다. 독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의 고견을 기대한다.
- 임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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