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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교회음악

찬송가 강해-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작성자임마.누엘|작성시간16.04.27|조회수194 목록 댓글 1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누가복음 22:31~32

 

 

    

오늘 다룰 찬송은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며 죄악가운데 살지만 우리 주님은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니, 이제 우리가 주님 품에 돌아와서 주님을 믿고 주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주님의 돌보심을 받을 때 참 복과 위로가 있음을 고백하는 찬송입니다. 본 찬송가의 작사는 아일랜드의 더블린 출신인 사무엘 오말리 클러프(S.O.Clough 1837~1910)목사가 1860년에 작사하였습니다. 그는 트리니티대학을 졸업하고 성공회 아일랜드교회 담임목회를 하였고, 1,000여 편의 찬송을 작사했습니다. 이 찬송의 곡은 미국 펜실베니아 주 에든버러 출신이며, 무디부흥선교단 찬송인도자였던 아이라 데이비드 생키(I.D.Sankey 1840~1908)1875년에 지었습니다. 생키는 평생 1,200편 가량의 복음 찬송을 작곡하였는데, 그는 녹내장으로 말년에 앞을 못 보며 살았지만, 같은 맹인 찬송작가인 화니 제인 크로스비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1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내 형제여 주님을 곧 따르라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항상 비시네

 



1절은 우리가 주님을 배반함에도 여전히 날 부르셔서 사랑을 베푸시는 주님을 따르라는 내용입니다. 1절 가사를 생각하다 보면 베드로가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제자 베드로의 믿음이 계속 깨어있을 것을 권면하시면서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22:31~32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이 말씀은 베드로의 배반을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사단이 밀 까부르듯 너를 흔들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베드로는 제자로서의 잘못된 행동이 별로 없었습니다. 수제자로서 예수님을 보필하며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신앙의 행로 앞에 그를 기다리고 있을 엄청난 함정을 계시하고 계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바로 누가복음 22:33에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나이다.” 사실 베드로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그의 신앙이 나의 결단과 나의 결심 때문에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는 착각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라고 상기시켜주십니다. 우리도 베드로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주의 은혜 때문에, 주의 긍휼히 여기심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는 것을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의 의도(인간의 의지적인 노력과 열심만을 가지고는 나를 따라 나설 수 없다.)를 파악하지 못한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나이다.”며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가복음 22:34에서 또 다시 예수님의 예언이 시작됩니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우리가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신앙의 여정 속에서 우리 역시 깜짝 깜짝 놀란 만한, 베드로와 비슷한 경험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느 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그분의 뜻을 좇아 살기로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안 풀리고 관계가 뒤엉키게 되고, 사업의 어려워지면 나도 모르게 될 대로 되라는 식의 행동을 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자신을 바라보며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 우리에게 터치하고자 하는 영적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왜 자꾸 내 주위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내가 아직도 완전히 거듭나지 않았다는 증거로 내가 믿고 있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장담과 열심과 의지력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속에 있다는 것을 알리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실패를 사전에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에게 실패를 허용하십니다. 이렇게 하심은 베드로가 이 같은 실패와 절망을 통해서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이란 나의 힘이나, 내 의지나, 내 노력이나, 내 결단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된다.”는 것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같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두 번 다시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전폭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자 하는 마음의 결단을 하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아직도 갖가지 혼동과 어려움과 아픔의 사건들이 계속되어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직도 내 속에 라는 자아가 나를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하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부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숙하여 주님과 나와 하나되기까지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2

주께서 풍성한 은혜를 내려 내 영혼이 나날이 복 받으니

주 예수를 너희도 구주로 섬겨 곧 따르면 풍성한 복 받겠네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항상 비시네

 



2절은 누구든지 예수를 구주로 섬기면 풍성한 은사와 영혼의 복을 받게 된다.’는 찬송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언한대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부인한 이후, 수제자로서 예수님의 얼굴에 먹칠했다는 죄의식에 눌려 예수님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이런 베드로를 찾아 예수님의 술래잡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이 바로 예수님께서 숨어있는 베드로를 찾아내는 모습입니다. 이른 새벽 디베랴 바닷가에 있는 베드로를 찾아 가셨습니다. 그리고 숯불 생선구이 조반을 준비하고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와 다시 해후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어떤 책망도 하지 않으셨고, “왜 나를 배신하였느냐?”고 따지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버릴 수 없는 제자, 그래서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 이 제자를 향한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시켜 준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복음 21:15에서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다그치는 예수님의 물음에 두려움과 애통함을 가지고 주여 모든 것을 주님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21:17)라고 고백합니다. 옛날 같으면 즉시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 말하였건만 지금은 입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고 답합니다. 베드로가 드디어 영적 눈을 뜨기 시작한 순간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 순간도 주님을 따라갈 수 없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다.”(찬송가 2)는 신앙의 눈이 뜨여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의 눈, 신앙의 확신이 주님 앞에서 좌충우돌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도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 질문하신 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여라”(15) “내 양을 치라”(16) “내 양을 먹여라”(17)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을 안 먹여 본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인간의 연약함, 무능함, 죄성을 본질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면, 오늘도 죄악으로, 절망으로,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예수를 구주로 섬겨 곧 따르면 풍성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용서하십니다. 그 겁쟁이 인격, 파탄 난 배신의 자식들을 불러 세우십니다. 내가 너희들을 보낸다. 가라 그리고 자신 있게 내 양을 치고, 먹여라. 주님은 상처받은 치유자로 우리들을 전혀 새로운 미래 가운데로 불러 세우십니다.

 

 

3

무거운 짐 지고 애타는 인생 주 예수께 돌아와 곧 쉬어라

내 주 예수 너희를 돌보실 때에 참 복락과 안위가 넘치겠네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주 널 위해 비네 항상 비시네

 



3절은 내 주 예수 나를 돌보실 때 주 예수께 다 돌아와 참 복락과 진정한 안식을 얻으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초청을 받고 교회에 나왔지만 안타까운 것은 교회 안에도 구원받지 못한 크리스천이 많습니다. 또한 율법적인 그리스도인, 제도가 중심이 된 종교, 성공의식에 사로잡힌 목회자로 인하여 오히려 종교의 짐을 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참 신앙은 만남과 감격이지 의식과 제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도화된 종교와 종교인들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대표적인 종교인이었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마태복음 23:4에서 이렇게 비평하셨습니다. 저들은 (율법의)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 위에 지워 주고 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진리를 깨달음으로 오는 기쁨과 감격에 의한 자발적인 순종과 헌신이 아니라, 제도화된 여러 율법으로 인간의 삶을 얽어매는 형식화된 종교를 비평하신 것입니다.

 

종교는 우리를 제한합니다. 짓누릅니다.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두렵게 합니다. 그래서 집에 못 하나를 박으려 해도 날짜를 봐야하고, 아무 날에 이사를 갈 수도 없습니다. 손 없는 날을 봐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일어서게 합니다. 죄책감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기쁘게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갖는 다는 말은 어떤 제도와 형식 속에 가입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인격이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찬송가 3절 가사에서 무거운 짐 지고 애타는 인생 주 예수께 돌아와 곧 쉬어라 내 주 예수 너희를 돌보실 때에 참 복락과 안위가 넘치겠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통의 짐을 지고 계십니까? 슬픔의 짐을 지고 계십니까? 실패의 짐을 지고 계십니까? 고독의 짐을 지고 외로워하고 계십니까? 염려와 근심의 짐을 지고 애타하고 있습니까? 주님께로 나오십시오. 우리를 받아 주시기 위해서 넓게 손을 펼치고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신 주님의 품에 안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품에 안기시면 그가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가 임하는지 아십니까?


 

첫째, 죄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는 사죄의 은총을 받게 됩니다. 이사야 1:18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예수님 앞에 나오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손가락질 받던 세리장 삭개오도,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끌려온 여자도 다 용서 받았습니다. 요한일서 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용서를 구하는 자는 다 받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정말 피곤하게 하고 위축되게 하는 죄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 예수님께 나아와 용서를 구하므로 다 해결 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을 소유한 자에게는 모든 날이 안식일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비밀을 아십니까? 안식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와 허물에서 해방되면, 용서를 경험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우리는 날마다 안식을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삶의 폭풍우가 몰려오는 고난의 한복판에서조차 마음의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셋째, 평안의 주님을 증거 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처음에는 실패하고 배반하였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더 나아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사도행전 2:38~39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베드로가 회개의 복음을 선포할 때 일시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구원함을 받는 대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참 회개를 통하여 성령의 산 체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성령의 체험이 없었다면 이처럼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일으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패와 절망의 어두운 밤에 들어갔을 때 이것이 은혜 받은 기회라고 여기고 철저한 회개 속에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만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신앙 속에 주님을 좇을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외에도 복음을 증거 하다가 세 번씩이나 감옥에 투옥되는 고통과 아픔을 당하였지만 조금도 물러서거나 후퇴하지 않고 담대하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는 순교의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시간 무거운 짐 지고 애타는 인생이 있습니까? 참된 쉼과, 평안과 복락과 안위가 넘쳐나기를 희망하십니까?”(찬송가 3) 실패한 베드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고기잡이 떠났던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품으신 그 넓으신 은혜의 풍성함, 사랑의 풍성함을 맛보기를 원한다면 주님을 만나보십시오. 성령의 깊은 내면의 소리에 응답해보십시오. 그리할 때 자유의 복음, 생명의 복음, 긍휼과 자비의 복음을 느끼며 전하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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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겨울파도 | 작성시간 16.04.29 귀한자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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