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건강한 자존감
(삼상 1:26-28) 사무엘의 출생과 봉헌 “26 한나가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내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갈 6:6-10) 짐을 서로 지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열등감을 컴플렉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아들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열등감의 반대는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은 자신을 사랑하는 수준이고 능력입니다. 그리고 자존감은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초가 되는 능력입니다. 자존감이 건강하게 되면 스트레스나 비굴함이나 비교 의식이나 시기 질투나 불평불만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사울의 자존감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울의 자존감은 아주 낮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편견을 가지고 끊임없이 적대적으로 시기와 질투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성경은 자존감을 상실했다가 회복하여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게 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불임 여인
한나라는 여인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여인이었습니다. 당시 여성으로서 최고의 수치는 불임이었습니다. 임신은 여인의 자격입니다. 그렇다면 불임은 곧 여인의 최고의 수치입니다. 당시 불임여인은 남편에게 새 여자를 얻어주어야 하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한나도 불임 여인이라 남편에게 자기 몸종을 주었습니다. 이 몸종이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자 이제는 여주인을 업신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몸종이 임신하자마자 눈꼴시게 굴었습니다. 여인의 적은 여인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여기 한나라는 여인은 그때부터 두 가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는 불임 여인으로서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었습니다. 두 번째는 몸종을 남편에게 주어 임신하자마자 이 몸종이 이제는 여주인을 업신여기기 시작합니다. 그때 한나가 받았을 모멸감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수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상태에서 한나가 높은 자존감을 갖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한나는 극심한 열등감으로 고통을 토해내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한나가 매일 성전에 가서 울부짖고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 약점을 헤집어 놓을 때 사람들은 상처를 받게 되고 열등감을 느끼며 분노하게 됩니다. 자기 여종이 임신을 하자 그때 한나가 얼마나 여종을 부러운 눈으로 보라보았겠습니까. 또 그 여종이 임신하자 눈꼴시게 굴었습니다. 그동안 죽는 시늉까지 하던 몸종이 이제는 여주인을 업신여기기까지 합니다. 이 몸종이 한나의 약점과 상처를 사정없이 헤집어 파 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나의 모멸감과 수치감이 상상을 넘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다 이런 약점이 한가지 씩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하자로 작용하고 열등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의 컴플렉스이고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입니다.
제가 설교 중에 문둥병자 이야기를 본문으로 택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센씨 병을 앓는 분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왜 문둥병이라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 불찰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아픈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설교 서두에서 정중하게 사과드리고 차제에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은, 작은 일이지만 우리사회에 아픈 마음을 가진 분들을 헤아리는 개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멘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내 뱉은 내 말 한마디가 어떤 사람에게는 상당한 아픔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 예배 때마다 휠체어에 환자를 태우고 와서 예배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그 환자가 아들인데 10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로 아직도 의식이 온전치 못한 상태입니다. 이 아들이 예배 중에 감정에 변화가 오면 소리를 지릅니다.
사람들은 왜 예배시간에 소리 지르게 하느냐고 하겠지만 거기에 그런 사연이 있습니다. 그 어머니는 젊은 분인데 아들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주일마다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예배드리고 안수 받고 돌아갑니다. 사람들은 남의 이런 아픔을 모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의 이 아픈 부분을 헤집어 놓을 때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고 분노를 폭발하게 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누구든지 자기를 보이고 싶지 않은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가정문제입니다. 가정 마다 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꽁꽁 숨겨 놓고 살아갑니다. 집을 열어주지 않고 누가 오는 것을 꺼립니다. 그러니까 우울증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나가 그랬습니다. 이 한나의 모습이 곧 오늘 나의 모습입니다. 지금 내안에 이 한나의 아픔과 약점과 고달픔과 콤플렉스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알까 싶어 나를 꽁꽁 묶고 보이질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나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나의 극복
그런데 한나가 이 아픔을 결국 잘 풀고 해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로 상한 자존감을 회복시켰습니다. 세 가지 방법으로 말입니다. 이 세 가지 방법이 오늘 우리들이 본 받아야 할 성경이 주는 메시지이고 모범 답안입니다 하나는 예배자리를 지킴으로 해결하였습니다. 한나가 열등감과 서러움에 빠졌습니다. 옛날 자기의 몸종이 남편의 아이를 임신하자마자 감히 여주인을 멸시하였습니다. 온 몸이 떨릴 만큼 열등감에 빠지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사람이 이 지경이 되면 분노하게 됩니다. 그때에도 한나는 집에 틀어박혀 비관하고 두문불출하고 끙끙 않지 않고 예배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그 아픈 가슴을 안고 꾸준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삼상 2장1-2절을 보면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 내가 내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고 고백합니다. 그 말은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금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심한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두 가지 스타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으로부터 낙오되고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건전한 태도입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열심이던 신앙을 버리고 주일날도 일하러 다녔습니다. 주일도 빠지고 돈을 벌겠다고 부업에 열심이었습니다. 구역장이 그를 타이르고 충고하였지만 곗돈을 벌어야 한다며 계가 끝나면 꼭 나가겠다고 말합니다. 구역장 권사는 속이 상하여 그를 위하여 열심히 중보기도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날 계가 깨졌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순간 구역장 권사님은 낙심천만이었습니다. 이제는 이 사람이 완전히 신앙에서 멀어지겠구나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그 집에 갔더니 찬송을 부르며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나는 오늘에야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지를 알았다며 이제는 방황을 끝내고 신앙생활에 열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경우가 후자의 경우입니다. 사람이 실패하면 뒤로 물러가는 사람이 있고 어려울 때 주께로 더 가까이 나가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나가 후자의 경우입니다. 한나는 가장 어려울 때 포기하고 두문불출 하고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집안에 묻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한나에게 하나님은 안전한 기지였고 포구였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쁘고 자신의 뿔이 높아졌도다”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평상시 예배생활에 충실하십시오. 그리고 어려울 때 예배생활에 더 충실하십시오. 어려울 때는 더 예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태도입니다. 그것이 건강한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한나는 그의 인생가운데 가장 어둡고 힘들고 슬플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것이 한나가 승리한 비결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열등감을 모두 토해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하나님(삼상2:6-7)이십니다. 한나는 지금 매일 예배에 나아가 상한 심령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쏟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상한 심정을 기도를 통해서 쏟아내고 있습니다. 남편에게 쏟아내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매일 몸종의 방에서 불러오는 몸종의 배를 만지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에 한나가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한나는 오직 하나님께만 나아가 토해냈습니다. 여기 이 한나는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오늘 아내들이 이 지경에 처해서 죽네사네 하고 야단법석을 떠는 아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하나님께 나아가 내 원통함과 마음의 상처를 토해냈습니다. 우리에게 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은혜이고 축복이고 행복한 일입니다.
세 번째는 미래의 확신입니다. 한나는 미래에 하나님께서 어떤 섭리를 주실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을 유지하고 품위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한나는 성전에서 기도하는 일로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미래에 하나님은 큰 위로를 주시고 반드시 응답을 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한나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장10절을 보면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미래에 반드시 하나님이 자신의 자존감에 기름을 채우실 것이라는 기대를 고백한 것입니다. 신앙인에게는 이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불평이나 불만이나 원망하지 않게 되고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그 상황에서 절대로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미래에 주어질 회복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주어질 응답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존하는 일을 매일 쉬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의 소원을 토해냈습니다. 앞으로 내 삶에 어려운 일도 있을 수 있고 어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이 어두움을 자신 있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고백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러니까 한나가 마침내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기도
한나가 날마다 성전에 나와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한나가 기도하는데 음성은 없이 입술만 움직였다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엘리가 보니 기도를 얼마나 간절히 하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요즘 임신하지 못해서 속상한다고 하더니 분명 술을 마시고 취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술을 끊으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때 한나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나는 슬픈 여자입니다, 나는 아이를 임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한나가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엘리 제자장이 한나를 불쌍히 여겨 안수기도를 해 줍니다. 그리고 다음해 아들을 낳게 되는데 그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한나가 드디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순간 한나는 잃어버렸던 자존감이 회복되고 상한 마음이 순간에 다 회복하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한나가 성공하게 되고 기도 응답받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한나의 상한 자존감을 찬란하게 회복시켜 주시고 상한 마음을 치유하게 하셔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한나가 가지고 있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한나를 참고하십시오. 한나는 예배를 통해서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했습니다. 사람으로부터가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상한 마음을 치유 받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지 않고 예배를 통해서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한나의 결단
그런데 문제는 기도 끝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것으로 다가 아닙니다. 한나는 결국 기도응답을 받고 아들 사무엘을 낳았다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나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 약속을 하였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내게 아들을 주시면 그 아들을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드리겠습니다” 나실인이 어떤 사람입니까. 나실인에게는 3대 금기가 있습니다. 시체를 보면 안 되고 머리에 삭도를 대면 안 되고 독주를 마시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 말은 장차 어머니가 죽어도 그 아들이 어머니 장례식에 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한나는 그래도 좋다고 서약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나에게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바치겠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마침내 아들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와 응답받은 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원기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한나도 그런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말입니다. 여기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말은 아이가 젖을 떼면 제사장에게로 보낸다는 말입니다.
한나는 아들이 젖을 떼자마자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 버렸습니다(삼상 1:28). 그리고 일 년에 한번 아이 옷을 지어 가지고 가서 아이에게 직접 입혀 보지도 못하고 제사장을 통해 옷을 전해주고는 자신은 멀찍이 서서 “저게 내 아들이지, 저게 내 아들이야”하고 눈물짓고 돌아 왔습니다. 아이의 마음에 혼란이 올까봐 가까이가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는 이 어미의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이야기 속에 이런 한나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멀찍이 서서 저게 내 아들이야 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한나의 모습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모습을 엘리 제사장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마음에 불같은 한나에 대한 불쌍한 마음이 솟구쳐 올라옵니다. 그래서 돌아가는 한나부부를 세워놓고 엘리 제사장은 안수기도를 해 줍니다. 삼상 2장20절을 보면 “엘리가 엘가나와 그의 아내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다른 아들을 주사 여호와께 기도하여 얻어 바친 아들을 대신하시기를 원하노라”하고 안수기도를 하였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 기도는 뜨거운 기도였을 것입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습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의 마음에 감동의 불을 질러 놓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안수기도가 얼마나 뜨겁고 간절하였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셔서 한나가 임신하게 하셔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다고(삼상 2:20)하였습니다. 결국 한나는 아들 사무엘을 얻어 하나님께 바치고 그 결과 자존감이 회복되었고 믿음도 온전히 회복되었고 최고의 제사장의 어머니가 되었고 평생 사무엘의 후원자가 되었고 그를 위한 중보자가 되어 한나는 마침내 든든한 어머니로 회복되었던 것입니다.
갈 6장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문제는 내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 자존감의 회복은 예수 안에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와 만나게 될 때 예수 안에서 건강한 자아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자존감의 회복 그것이 최고의 은혜이고 축복이며 나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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