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삼하 1:1-10) 사울이 죽은 소식을 다윗이 듣다 “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오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는데요. 이렇게 사무엘하가 시작이 되는데 제목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가 되는 것은요. 1절에 이제 사울이 죽은 후에 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는 하나님의 때를 지금 보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때를 따른다 라는 것은 방법도 하나님의 방법이어야 된다 라는 것이죠. 우리가 나의 방법을 쓰지 않는 거, 나의 때를 내려놓는 거 이제 이런 것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데 우리들에게 필요하다라는 거거든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나눌 텐데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1.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1절)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 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오늘 말씀은 사울이 죽은 후에로 시작이 됩니다. 사무엘하가 시작되었는데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를 예, 나누는 그것이 시작하는 말이 바로 사울이 죽었다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사울이 죽었고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다윗이 새 시대를 열 때가 온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때가 오기까지 여러분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인내하면서 왔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요. 사무엘상에서 16장의 기름 부음을 받거든요. 그런데 사무엘상 31장까지 쫓겨다니는 것만 합니다.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다윗이 죽이지 않는 것이에요. 왜 그러냐면 그게 바로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르는 모습이라고 볼 수가 있는 거겠죠. 그랬을 때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광야 생활을 했는데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면서 거친 광야가요. 15 개라고 합니다. 15 개의 광야를 거치고 나는 거. 이게 사실은 고난당하는 시간이 다윗에게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요. 이건 양면이 있어요.
우리가 고난만 볼 게 아니라 그 시간은요, 하나님으로부터 훈련받은 시간이었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겠죠. 사울 왕이 죽었을 때 죽은 후에라고 나오는데 그때 다윗은 뭘 하고 있었는지 여기 1절 후반절에 나오는데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 머물고 있었을 때라고 합니다. 이때가 어느 때냐면 여러분 시글락은요, 다윗이 이 사울이 이스라엘 지역에 다윗이 있으면 너무 괴롭히니까요. 나중에 그냥 블레셋으로 가버렸습니다. 이게 하나님께 묻지 않고 그냥 가버린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랬을 때 이 블레셋의 아기스 왕이 다윗에게 준 성읍이 시글락이었습니다. 다윗은요. 이제 이 시글락을 거점 삼아 이게 블레셋의 땅이죠.
1년 4개월 동안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글락에서 이제 참 다윗이 머물다가 난감한 일을 당하게 되어져요. 그건 뭐냐면 이스라엘의 사울이 이 블레셋을 쳐들어온 겁니다. 지금 다윗이 블레셋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시글락을 땅으로 받은 상황인데 그러면 지금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다윗은요. 블레셋 편에 서서 싸울 수도 없죠. 왜냐면, 그러면 동족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일이 돼버리기 때문인 것이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다윗이 블레셋 편에 서서 싸우려고 하자. 블레셋의 신하들이 반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싸움을 피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시글락으로 다윗이 다시 돌아왔는데 이때 아말렉이 몰래 쳐들어와서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의 처자가 다 잡혀가고 약탈을 당한 상태였다라는 거죠. 다윗이 다윗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이때 막 다윗을 돌로 쳐죽이려고까지 하는 암담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다윗이 하나님께 이제 물어봐요.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했다고 성경에 보면 나와 있어요. 하나님을 의지하고 물어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아말렉을 추격하라고 해가지고 승리하고 돌아온 상황이었다 라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상황은요. 다윗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예, 그래서요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은 이때 다윗이 시글락이 있었다라는 것은 그가 왕위를 얻고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요. 내가 손 쓰지 않는 사이에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라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시는 거죠.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니까 그냥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다윗이요. 그 아말렉 사람을 따라갈 때요. 두 가지가 나와 있어요. 사무열상에 보면요. 하나님을 힘 입었다라는 표현이 나오고요. 또 하나님께 물었다라는 단어가 나와요. 그럼 이게 뭐냐? 우리로 말하자면요. 기도와 말씀 앞에 서 있었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더라는 이 고백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기도하는 거예요.
그리고 말씀에 물어보는 것이죠. 그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겁니다. 그랬을 때 청년용 묵상 간증 <하나님이 하실 일>에 보면요. 정말 이 청년이 학창 시절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했던 그 고백이 나와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저는 친구들과 오해가 생겨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너무 억울한 마음에 제 입장을 다시 설명하고 오해를 풀고 싶어. 가족여행에서 기념으로 산 열쇠고리를 친구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제 눈앞에서 그 열쇠고리를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인간적인 그런 방법들로 해결하려고 했었다라는 거겠죠. 그런데 그게 해결이 되어지지 않았던 거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그걸 인정하고서 이 청년이 그 당시에 어떻게 했냐면 그 뒤에 이런 고백이 나와요.
충격을 받은 저는 그때 처음으로 하나님 저 너무 힘들어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그저 도망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도 성실히 일하신 하나님을 저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레 친구들의 오해가 풀어지고 관계가 회복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은요. 하나님의 손을 붙잡는 거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죠. 그리고 1절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고 하면요. 그것은 바로 여러분 하나님의 때가 이루어지는 방법이 뭘까요? 그것은요. 내 속의 사울이 죽어야 되는 겁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 각자 안에 사울이 있습니다. 내 속의 사울은 세상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속의 야망, 내 속의 욕심, 내가 주인 삼은 것들 이런 것들이 죽어져야 비로소 하나님의 때가 열리게 된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한 적용 질문은요. 죽어져야 하는 내 속의 사울. 이것은 세상적인 마음은 무엇입니까? 또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의 때를 내 생각대로 앞당기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것은요.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한다라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기도가 회복되고 말씀이 회복되어진 상태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두 번째로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2. 분별하며 가야 합니다.
(2-4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지금 다윗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상황이 제가 아니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다윗이 기도가 회복되었고 왜냐하면, 블레셋 1년 넘게 머물면서요. 아마 기도 생활 안 했을 겁니다. 이미 블레셋으로 간 것부터가 예 기도를 안 하고 있었다가 또 말씀을 안 보고 있었다가 이제 자기에게 위험한 일이 닥치니까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은 상황이거든요. 그러면 이제 영적으로 깨어나 있는 상황이었다라고 볼 수 있어요.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요.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있는데, 그게 바로 분별하는 일이 다른 거죠. 분별이 시작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여기 2절부터 4절에 보면요.
이제 분별하기 시작하는데 이 청년은 이제 8절에 보면요. 아말렉 청년이라고 나와 있어요. 아말렉 사람이라고 나와 있거든요. 그리고 이 사람이 지금 다윗을 찾아왔는데 10절 말씀에 보면요. 사울 왕의 왕관 활에 있는 고리를 가지고 왔어요. 그러면 이거 들고 왔으면 예 이미 다윗이는 어느 정도 눈치를챘을 거란 말이죠. 그랬는데 다윗이 여기서 지금 분별하는 내용이 나와요. 그래서 먼저 여기 2절에 이 사람이 이렇게 다윗 앞에 와서 엎드렸는데 3절의 다윗이 그에게 물어봐요. 너는 어디서 왔느냐? 이게 지금 분별해 가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죠. 여러분 언제 우리가 제일 분별이 안 되냐? 우리가 기다리던 일이 일어났을 때 그때 우리는 진짜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다윗에게는요. 사실 이 사울왕이 죽은 게 좋은 소식일 수 있잖아요. 내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때 우리는 분별하지 않아요. 그러면 그때 그냥 분별하지 않고서는 그냥 이런 식이죠. 하나님이 일하셨다. 예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들이 있는 거죠. 나에게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때 우리가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돼요. 너는 어디서 왔느냐 이 질문이죠. 이것이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면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어떻게 사용되어져야 될까?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기도 응답 받았다고 하면요. 그게 끝인 경우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정말 나에게 원하는 돈이 생겼다. 그럼 이 돈이 어디에 구체적으로 쓰여져야 되는가? 라는 부분들도 생각해 볼 수가 있고요.
내가 원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합당하게 쓰여져야 되는지에 대한 이런 질문들이 있어야 된다라는 것이죠. 정말 여기 4절에 보니까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이 이야기부터 지금 아말렉 청년이 하고 있는 것은 이 청년 생각에는 다윗에게 이 소식이 들려지면 엄청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다윗이요. 여기에 넘어가지 않아요.
(5절)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또 물어봐요. 사울과 요나단 죽은 거 그 소식만 듣고서는 기뻐하는 게 아니라. 그런데 너 어떻게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줄을 아냐 이렇게 물어보는 것을 볼 수가 있죠. 이것만 봐도 다윗이 분별력이 생겼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우리가 분별력이 생길 수 있는 방법 두 가지 있지 않을까요? 하나는 말씀에 물어보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요. 공동체에 물어보는 거. 이게 우리가 분별력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인 거죠. 또 한 가지 여러분이 묻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요. 다른 이들에 대하여서도요. 우리 물어보셔야 돼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물어봐야죠.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에 대하여서도요. 물어보지 않구요. 이미 나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여 이미 답을 내린 상태로 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라는 거죠. 저도 이번 지난주에 어떤 청년들에 대한 부분들도요. 참 많은 분별들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했던 것 중의 하나는 그 청년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본 거예요. 그렇게 나누어 보다 보니까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결정들을 내릴 수 있는지가 좀 판단이 되어지는 지점들이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도 이렇게 물어보는 것도 그렇게 필요하다라는 거죠. 이 아말렉 청년은 솔직히 다윗이 이후에 왕이 되면 이런 소식을 전해줬으니까 큰 상금을 받을 것이라고 찾아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다윗을 찾아온 목적이 야망이 목적이 되어서 찾아온 것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다윗은 이 아말렉 청년에게 있는 그 거짓을 분별해 주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도 다른 지체들에 대하여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짓된 야망, 잘못된 가치관 이런 것들을 분별해 주어야 되는 것도 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8-10절) “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이처럼요. 계속 질문을 던지고 상대방하고 대화를 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의 거짓된 것이 밝혀진다, 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청년이 나는 아말렉 사람입니다. 라고 하면서요. 사울 왕이 그 죽을 때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사울 왕이 죽을 때 내가 그에 그쳐서 그를 죽였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누가 나를 사울 왕이 죽여줄 사람이 있냐 그랬는데 자기가 죽여줬다라고 거짓말을 하거든요. 사무엘상에 보면요. 사울이요. 아말렉 청년한테 자기를 찔러달라고 한 게 아니라 자기 무기를 든 사람에게 찔러달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 무기 든 사람이 아니 어떻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내가 죽일 수 있냐고 하면서 그렇게 안 하니까 자살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을이 자살을 했는데 그런데 이 아말렉 청년은 자기가 죽였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요. 사울이 자살한 거 아말렉 청년이 자기가 죽였다고 말하는 걸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요.
그럼 우리가 말씀의 가치관이 없잖아요. 그러면 힘든 일이 있으면 어떨까요? 사울 왕처럼 자살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의 가치관이 없으니까요. 자살하거나 아니면 아말렉 청년처럼요. 자살을 도와주게 되어져요. 물론 이 청년이 말한 것은 거짓말이지만 이 아말렉 청년 하나님에 대한 말씀의 가치관이 없으니 힘들면 죽여줘도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이 아말렉 청년과 같은 가치관 지금 이 시대에도 있죠. 그게 뭡니까? 예를 들면 안락사 같은 것들도 될 수가 있는 것이죠. 정말 이것이 상대방을 위한다라는 것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 아말렉 청년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다윗에게 인정받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거죠. 우리도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잖아요. 이 QT도요. 누군가한테 인정받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진짜 나눠야 되는 것들을 안 나눌 겁니다. 우리가 진짜 삶에 나눠야 되는 것.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쏙 빼놓고 우리가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면 이렇게 진실을 꾸미거나 포장하기도 하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정직해야 된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에 대한 적용 질문은요. 나에게 들려온 좋은 소식과 같은 일은 무엇입니까? 그 가운데 분별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윗에게는 지금 사울 왕이 죽었다라는 것은 어찌 보면 기다리던 소식이었죠. 원하던 일이 이루어진 거죠. 그런데 그 가운데 다윗이 분별해 가잖아요. 그래서 다윗이 실제로 왕이 되는 건 사무엘하 5장에 가서 왕이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때 계속 분별해 갔다라는 뜻이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예 우리도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을 때 그때 또 분별해야 되는 게 있다라는 거죠. 그런데 그때 분별하기보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식으로 끝나는 경우들이 많다라는 거고요. 또 한 가지는 내가 인정받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에게 잘 보이려고 거짓을 꾸며낸 적은 없습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을 요약하면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첫 번째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상황이 다윗은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물어갔다라는 하나님께 말씀에 물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어요.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요. 우리 기도하셔야 됩니다. 말씀 보셔야 됩니다. 그게 진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건데 이걸 안 하고 있잖아요. 그럼 아직도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교만이 그 안에 있다라는 뜻이고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두 번째로요. 분별하며 가야 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이루어졌다고 끝이 아니에요. 시작이에요. 그때부터 분별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 일을 통해서 무엇을 하나님이 원하시는가? 또 내가 이거 이 일을 통하여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되는가 분별해 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져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오늘 말씀에 사울이 죽었습니다. 이 사울이 죽었다라는 것을 의미를 확장시켜보면 하나님의 때가 이루어지는 것은 내 속의 사울이 죽어야 됩니다. 내 속의 사울은 정말 세상적인 욕심이나 방법이나 그런 것들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내 속에 있는 이런 욕심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게 하여 주시고 다윗에게는 어찌 보면 이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지금 아말렉 청년이 들려주는데 기다리던 소식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이 영적으로 깨어나게 되어지니 분별하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늘 깨어있기 원합니다. 내가 깨어 있어야 우선적으로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들과 여러 가지 문제들을 분별할 수 있게 되어지고 또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분별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성령으로 날마다 충만하여서 이런 분별력을 가지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오늘 말씀에 정말 이 아말렉 청년이 거짓말을 합니다.
세상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아말렉 청년의 모습을 보면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거짓말까지 하는 이런 아말렉 청년과 같은 모습이 나에게는 있지 않은가를 보기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사울이 자살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자살을 생각하고 자해를 하는 모습이 있다면 돌이키게 하여 주시고, 또한 아말렉 청년처럼 다른 사람을 이 사울이 죽어가는데 자기가 죽여줬다고 말하는 인본적인 위로와 도움만 생각하는 자가 되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믿으며 살아계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산순복음아름다운교회 강성광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