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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창세기 9장 원어해석

작성자임마,누엘|작성시간18.01.17|조회수211 목록 댓글 1

창세기 9장 원어해석



(9:1)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에트 노아흐 웨에트 빠나이우)

문자적으로는 “노아를 그리고 그의 아들들을” 복되게 하셨다. 9장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만 말씀하신 것으로 묘사되었는데(6:13; 7:1; 8:15), 지금은 하나님께서 집안의 대표자인 노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들들에게도 직접 축복하신 것은 이들 각각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야’ 할 새 역사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복을 주시며(와예바레크)

히브리어 원어의 문장의 순서에는 ‘복을 주시며’가 가장 먼저 나온다. 이는 9장의 전반적 내용이 새 역사의 주역이 될 노아와 노아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임을 보여준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3: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페루 우레부 우밀르우 에트 하아레츠)

‘생육하라’의 원뜻은 ‘열매를 맺어라’(페루), ‘번성하라’의 원뜻은 ‘많아지라(레부),’ 그리고 ‘충만하라’의 원뜻은 ‘가득차라(밀르우)’이다. 이것은 아담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과 동일하다( 1:28). 한편 여기에는 아담에게 주신 축복 가운데 포함된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내용은 제외되어 있다. 이는 원래 무죄하게 창조된 인간에게는 동물 지배권이 있었으나 타락한 후에는 이러한 권세의 유형이 변형됐기 때문이다(2절 참조).


(9:2)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우모라아켐 웨힛테켐 이흐예)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그리고 너희들의 두려움 그리고 너희들의 무서움이 있을 것이다’이다. 여기서 ‘모라’(두려움)는 ‘두려워하다’는 뜻도 있으나 ‘존경하다’, ‘경외하다’의 뜻도 지니는 ‘야레’에서 유래하여 두려움의 감정과 더불어 존경과 경외의 감정까지 갖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힛테’는 ‘하트’에 변화된 형태인데, 이 ‘하트’(무서움)도 ‘야레’와 마찬가지로 ‘두려워하다’란 뜻도 있으나 더 나아가 ‘꺾다’, ‘파괴하다’란 뜻이 있는 ‘하타트’에서 유래하여 상대를 감정적으로 물론 실제적으로 제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땐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11:6-9).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뻬예드켐 닛타누)

‘뻬’는 전치사 ‘~안에’(in), ‘예드’는 ‘손’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야드’의 변화, ‘켐’은 ‘너희’를 뜻하는 2인칭남성복수 인칭대명사, ‘닛타누’는 ‘주다’(give)를 뜻하는 ‘나탄’의 수동태 완료형이다. 여기서 ‘손’으로 번역된 ‘야드’는 물론 사람의 손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단어가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능력’, ‘힘’, ‘세력’, ‘관할’로도 번역된다.


(9:3) 산 동물은(레메스 아쉐르 후 하이)

‘레메스’는 ‘가볍게 움직이다’,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뜻의 동사 ‘라마스’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움직이는 것들’이란 집합적인 의미를 지닌다. ‘아쉐르’는 관계대명사이다. 영어의 ‘which', 'what', 'that' 의 기능을 한다. ‘후’는 3인칭남성단수 인칭대명사인데 여기서 강조용법으로 사용되었고, ‘하이’는 ‘살아있는’(be living)이다.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살아 있어 움직이는 바로 그것’이다. 자연적으로 죽었거나 다른 짐승에 의해 죽은 것을 먹을 수 없도록 하신 이 명령은 후에 율법 가운데도 명시적으로 기록된다( 22:31; 22:8).


(9:4)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빠사르 뻬나프쇼 다모)

직역하면 ‘고기를(빠사르) 그것의 생명 안에서(뻬나프쇼) 즉 그것의 피(다모) 안에서’이다. 이것은 고기보다 생명되는 피를 강조하는 표현이다. 피는 생명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먹지 말 것이니라(로 토켈루)

강한 금지를 나타내는 부정어 ‘로’와 ‘먹다’란 의미가 있는 ‘아칼’의 미완료형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십계명에서 사용되는 아주 강한 금지의 명령형이다.


(9:5) 찾으리니... 찾으리라(에드로쉬 ... 에드로쉔누...에드로쉬)

‘에드로쉬’는 ‘내가 찾으리라’, ‘에드로쉔누’는 ‘내가 그것을 찾으리라.

한글 성경에는 ‘찾는다’(다라쉬)는 표현이 두 번만 반복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 원어 성경에는 이 말이 세 번 반복된다. 그리고 ‘찾는다’는 말은 모두 ‘힘쓰다’, ‘탐구하다’, ‘신원하다’로도 번역되는 ‘다라쉬’의 미완료형으로 쓰였다. 미완료형으로 사용된 것은 쉬지 않고 계속 찾으셔서 결국 신원(伸寃)하여 주심을 보여 준다.


(9:6)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빠아담 따모 잇솨페크)

직역하면 ‘어떤 사람에 의하여 그의 피가 흘려지게 될 것이다’이다.


이는()

‘왜냐하면“


(9:7) 땅에...그 중에서(바아레츠 ...바흐)

‘바아레츠’는 ‘그 땅 안에서’ 뜻이고, ‘바흐’는 ‘그것 안에’란 뜻이다.


(9:8) 하나님이 ...말씀하여 이르시되(와요메르 엘로힘...레모르)

9:1절이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란 표현으로 시작했고, 8절에 다시 ‘하나님이 ... 말씀하여 이르시되’란 표현이 나오는 것은 이후 주어질 언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 양식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됨을 선포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9:9)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와아니 히느니 메킴 ...뻬리티)

‘와아니’는 ‘그리고 내가’의 뜻인데, 인칭대명사로 시작되는 문장은 그 인칭을 매우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 직역하면, ‘바로 내가’ 이다. 그리고 ‘히느니’는 ‘보라’는 뜻의 동사에 1인칭대명사 어미가 붙어 있는 표현, 즉 ‘나를 보라’ 이다. ‘메킴’은 ‘일어나다’란 뜻이 있는 ‘쿰’의 사역형으로서 ‘세우다’, ‘일으키다’란 뜻이며 또한 이 본문에는 분사형으로 쓰여서 ‘지금 일으키리라’는 하나님의 현재의 의지를 나타냄과 함께 지속적으로 견고히 세워가리라는 의지까지 내포되어 있다. ‘뻬리티’는 ‘언약’, ‘계약’을 뜻하는 ‘뻬리트’에 ‘이’라는 1인칭단수 인칭대명사 어미가 결합되어 ‘나의 언약’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문장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바로 내가 나를 보라! 내가 지금 나의 언약을 세울 것이다’이다.


(9:10) 모든 생물(웨에트 콜 네페쉬 하하야)

‘네페쉬’는 ‘숨’, ‘생기’란 뜻이며, 연계형으로 사용되었다. ‘하하야’는 정관하 ‘하’와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하는 ‘하이’가 결합된 형태이다. ‘콜’은 ‘모든’, ‘전부’란 의미로서 본문을 직역하면 ‘숨쉬는 살아 있는 모든 것’ 이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하여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이 홍수로 인하여 멸절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모든 피조물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것이다.


(9:11) 너희와 언약을(에트 뻬리티 잇테켐)

히브리어 단어의 어순을 생각하면서 직역하면, 나의 언약을 너희와 함께이다.


다시는...아니할 것이라 ...다시...아니하리라(웨로 ...오드...웨로...오드)

절대 부정을 나타내는 ‘로’와 반복을 의미하는 ‘오드’를 각기 2회식 사용하여 온 세상을 멸절시키는 홍수는 절대 다시 없을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홍수로(밈메 함맘불)

전치사 ‘민’(~에 의해서)과 ‘물’을 의미하는 ‘마임’의 연계형인 ‘메’와 정간사 ‘하’, 그리고 ‘홍수’, ‘범람’을 의미하는 ‘맙불’이 합해져서 직역하면 ‘그 범람의 물에 의해서’이다여기서 특히 정관사 ‘하’가 사용된 것은 일반적인 홍수가 아니라 바로 노아 대홍수를 가리킨다.


‘멸하지’(익카레트)

‘자르다’를 의미하는 ‘카라트’의 수동태 미완료형이다. 직역하면, ‘잘려지지’ 이다.


(9:12) 대대로 영원히(레도로트 올람)

‘레도로트’는 ‘~을 위하여’를 뜻하는 전치사 ‘레’와 ‘세대’, ‘시대’를 뜻하는 ‘도르’의 복수형 ‘도로트’가 결합된 형태로, 직역하면 ‘세대들을 위하여’, 또는 ‘세대들 동안에’이다. ‘올람’은 ‘세상’, ‘창조’, ‘시대’를 뜻하는 ‘알람’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앞으로 영원히’란 의미와, 어떤 민족, 국가, 국민이 망할 때가지의 모든 시간‘을 나타낼 때도 쓰였다. ‘올람’이 나타내는 영원성은 피조 세계 내에서의 지속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피조 세계 넘어에 계속되는 ‘영원’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약의 증거는(오트 합베리트)

‘증거’로 번역된 ‘오트’는 ‘징조’, ‘표징’, ‘표적’, ‘기호’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객관적으로 뚜렷이 드러나는 어떤 물증을 가리킨다.


(9:13) 내 무지개(카쉬티)

‘무지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쉐트’는 일차적으로 ‘활’을 뜻한다.


나와 세상 사이의(뻬니 우벤 하아레츠)

‘뻬니’는 ‘~사이’를 뜻하는 전치사 ‘뻰’에 1인칭단수인칭대명사 어미가 결합된 형태이며, ‘우’는 ‘와’(and) 를 뜻하는 접속사이다. 그래서 ‘벤우벤 B’ 는 ‘A B 사이’를 뜻하는 관용어이다. 그래서 ‘뻬니 우벤 하아레츠’는 ‘나와 세상 사이에’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이 세상이 언약의 체결자가 됨을 보여 주고 있다.


(9:14) 구름으로 ...덮을 때(뻬아느니 아난)

여기서 명사 ‘구름’(아난)과 동사 ‘덮다’(아난)는 동일 어근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덮다’로 번역된 ‘아난’의 어원적인 의미는 ‘드러내가’, ‘나타나다’이며 특별히 ‘장애물로서 개입하다’란 뜻이 있기 때문에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리우기 위해) 구름을 나타나게 하실 때’로 이해할 수도 있다.


(9:15) 내가 ...기억하리니(웨자카르티)

‘기억하다’(자카르)는 원래 ‘새기다’, ‘표시하다’는 말에서 유래하여 마음에 깊이 새겨 절대 잊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9:16) 내가 보고(우레이티하)

‘레이티하’는 ‘보다’(라아)를 뜻하는 동사의 변화형태 ‘레이티’(‘내가 보다’) 3인칭목적격 조사가 결합된 것으로서 직역하면 ‘내가 그것을 보고’이다. ‘보다’(라아)는 ‘주목하다’, ‘탐지하다’로도 번역되는 단어로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세밀히 살펴보는 것을 의미한다.


(9:17) 언약의 증거(오트 합베리트)

8절부터 17절 사이를 보면 ‘언약의 증거’라는 말이 3(12, 13, 17)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언약의 구체적인 증거가 되는 ‘무지개’(케쉐트)란 표현 또한 3(13, 14, 16) 사용되고 있다.


(9:18)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웨함 후 아비 케나안)

직역하면, ‘그리고 함, 바로 그는 가나안의 아비이다’이다. 이스라엘은 그 땅에 거하고 있는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들인 가나안 족속들과 계속 투쟁하게 된다. ‘가나안’은 ‘엎드리다’, ‘낮아지다’를 뜻하는 ‘카나’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가나안의 의미에 대해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천한 자’, (2)‘낮은 곳에 거하는 자’이다. 첫째 견해는 25, 26절에 나오는 노아의 예언에서도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나안의 신분이 종이란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고, 둘째 견해는 후에 가나안 족속이 저지대인 팔레스틴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9:19) 온 땅에 퍼지니라(나페차 콜 하아레츠)

‘퍼지다’(나페차)의 원형 ‘나파츠’는 ‘산산히 조각나다’, ‘흩어지다’란 의미가 있다. 마치 토기 그릇을 던져서 깨뜨렸을 때 산산히 조각나 흩어지는 것처럼.


(9: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와야헬 노아흐 이쉬 하아다마)

직역하면 ‘그리고 노아는 시작하였다. 즉 그 땅의 사람’이다. 여기서 ‘그 땅의 사람(이쉬 하아다마)은 ’농업에 종사하는 자‘를 가리킨다.


(9:21) 포도주를(민 하야인)

‘포도주’를 뜻하는 히브리어 ‘야인’ 앞에 정관사 ‘하’가 붙어 ‘그 포도주’로 번역될 수 있다는 사실은 노아가 이미 포도주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앍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23:29, 30).


마시고 취하여 ... 벌거벗은지라(와예쉐트 ... 와이쉬카르 와이트깔)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마셨다... 그리고 그는 취하였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벌거벗었다’이다. 접속사가 연속되는 이 문법적 형태는 동작의 연속, 그리고 그 동작의 결과과 점층적으로 심화되고 있음을 표현한다.


그 장막 안에서(뻬토크 오호롤)

‘오홀로’는 ‘텐트’를 의미하는 ‘오헬’에 남성3인 단수 어미가 붙어 ‘그 장막’, 즉 개인용 장막이란 뜻이다. ‘뻬토크’는 ‘~안에’란 의미를 지닌 전치사 ‘뻬’와 ‘중앙’이란 뜻을 지닌 ‘타웨크’가 결합된 형태이다. , 장막 깊숙이 틀어박혀 술을 마셨음을 보여 주기 위한 의도가 이 표현에 있다.


(9:22) 하체를 보고(와야르 .. 에트 에르와트)

‘하체’(에르와)는 ‘벌거벗다’(아라)에서 유래하여 벌거벗은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나, 본문에서와 같이 특별히 벌거벗었을 때 드러나는 성기를 가리키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보다’(라아)란 말은 단순히 쳐다보다는 의미를 넘어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면밀히 살피며 더 나아가 즐기면서 보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함이 아비의 하체를 우연히 보고 지나친 것이 아니고 마음 속으로 부정한 생각을 가지고 즐기면서 이를 보았던 것이 분명하다. 홍수를 지난 노아는 스스로 절제하지 못할 지경에 빠지고, 또한 아들이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의 잘못을 즐기고 조롱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알리매(와약게드)

이 형태는 ‘와우 연속법’이라 하여, 앞에서 이루어진 동작의 연속을 표현한다. 따라서 함은 아비의 하체를 보고, 즉각적으로 그것을 형제들에게 공개했던 것이다. 특히 ‘알리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약게드’는 ‘선언하다’, ‘누설하다’ 란 의미와 더불어 ‘배반하다’, 꿈이나 수수께끼 따위를 ‘해설하다’란 의미를 갖는 동사 ‘나가드’가 변화된 형태이다. 이처럼 당시 함은 아비 노아에 대한 존경심이나 인간적인 연민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더 과장하여 형제들까지 동참시키려 했다.


(9:23) 덮었으며(와예캇쑤)

‘덮다’(캇싸)는 말은 물론 ‘덮어서 가리다’란 뜻이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때로 ‘죄를 가리워서 용서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셈과 야벳이 한 행동은 노아의 수치를 가리워 준 것이며 또한 허물을 덮어준 것이기도 하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17:9)


(9:24) 알고(와예다)

‘알다’(야다)는 봄으로써 알며, 들음으로써 아는 것을 모두 가리킨다. 그리고 이 단어는 ‘익숙하다’로도 번역되고, 부부가 ‘동침한다’로도 번역될 만큼 철저히 아는 것을 가리킨다. 노아는 술에서 깨어난 후 모든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했던 것이다.


(9:25)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아루르 케나안)

‘저주를 받아(아루르)’는 분사형으로서 앞으로 계속 저주받는 상태가 지속될 것을 보여 준다.


종들의 종이(에베드 아바딤)

이는 종들 가운데 가장 낮고 천한 종을 가리키는 히브리어의 관용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장 거룩한 장소인 ‘지성소’를 가리키는 표현인 ‘거룩들의 거룩’을 의미하는 ‘코데쉬 학코다쉼’이라든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가리키는 ‘아가’란 표현인 ‘노래들의 노래’를 의미하는 ‘쉬르 핫쉬림’ 등도 최상급을 표현하는 관용어법이다.


되기를 원하노라(이흐예)

‘있다’, ‘존재하다’라는 뜻을 갖는 ‘하야’의 미완료형인데, 특별히 이것은 화자(話者, speaker)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명령법의 일종이다. 그래서 ‘되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고( 9:23), 솔로몬 시대에도 노예가 되었으며, 역사 가운데서도 페르시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의 종들이 되었고 근세에 이르러서도 흑인 노예로 엄청난 시달림을 당했다.


 (9:26)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예호와 엘로헤 쉠)

‘여호와, 즉 셈의 하나님’ 으로 번역할 수 있다.


찬송하리로다(빠루크)

사람에게 적용될 대는 ‘축복하다’(bless)는 뜻이 있으나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찬양하다’, ‘기원하다’란 뜻이 있는 ‘빠라크’의 수동분사형이다.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야프테 엘로힘 레예페트)

셈에 대한 축복이 기록된 앞절에서는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는 명칭인 ‘엘로힘’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고 신실히 지키심을 강조하는 명칭인 ‘여호와’가 함께 쓰였다. 반면 야벳에 대한 축복이 기록된 본절에서는 ‘엘로힘’이란 한 가지 명칭만 쓰였다. 이러한 차이는 셈에 대한 축복은 영적 측면이 강조된 반면 야벳에 대한 축복은 육적이고 세속적인 측면이 강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창대하게 하다’로 번역된 ‘야프테’는 ‘크게 하다’란 뜻을 갖는 ‘파타’의 미완료형으로서 계속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야프테’는 야벳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예페트’와 자음이 동이랗며 ‘확장’이란 의미를 갖는다. 이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어 야벳의 후손이 백인종은 인도 유럽인이 되어 인도에서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매우 강대한 세력을 갖게 되었다.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웨이쉬콘 뻬오홀레 쉠)

‘장막에 거한다(이쉬콘 뻬오홀레)’는 표현은 ‘정복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축복을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이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가계에서 메시야가 태어났다( 1:1). 그러나 후에 사도 바울이 셈의 후손이 주로 사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여 했으나 성령이 막으시고 야벳의 후손이 거하는 마게도냐로 건너가게 하심으로 기독교는 유럽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16:6-10). 결국 야벳 계열이 셈의 장막에 거학 하실 것이라는 노아의 축복 예언은 야벳이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여 그 축복을 향유함으로써 성취되었던 것이다.


(9:28) 노아가 ... 살았고(와예히 노아흐)

직역하면 ‘그리고 노아는 있었다’이다.


(9:29) 죽었더라(와야모트)

노아는 ‘죽었다’(모트)란 간단한 말로 생애를 마감하고 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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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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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임마,누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1.17 후원을 부탁,드리는 글
    카페지기는 건강문제로 돈을 못벌어 난방비,치료비.공과금.주거임대료
    먹거리장만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후원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달 치료약값 30만원 공과금30만원 임대료 먹거리등을 사야 합니다
    추운 동절기엔 더 춥고 힘들게 보냅니다 난방도 맘대로 못하고요...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카페후원계좌-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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