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 바울- 율법의 달인이자 복음의 최고봉
여호와 닛시! 늘 승리하시고 또 믿는 우리 모두가 늘 승리하기를 바라시는 권능의 하나님! 오늘도 새날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시고 이렇게 예수님께서 직접 선택해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의 증인으로 사용하신 우리 믿음의 선진이요, 또 본을 보이신 바울 사도에 대해서 같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전도자가 바울과 같이 구약에도 달인이 되고 복음의 증거에도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서 큰 열매를 맺는 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든 전도자 모든 역경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게 인내하는 마음과 큰 믿음을 허락해 주옵소서!
샬롬! 새날의 새벽입니다. 출근하지 전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블로그와 카페의 글을 정리하고 또 바울 사도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바울 사도는 믿는 분이면 대부분의 분들이 잘 알고 있는 초대교회의 이방인의 전도자이며 사도입니다. 바울 사도의 로마서를 비롯해서 신약의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과 성령님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 잘 배우고 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 배우고 있습니다. 신약의 서신서의 대부분을 쓰신 분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울 사도께서 처음부터 예수님을 잘 믿는 분이 아니었음도 우리가 압니다. 율법에 능통한 바리새파 사람으로서 율법의 실천에도 흠이 없을 정도로 율법을 잘 알고 또 잘 실천하면서 구약의 율법을 통해서 의를 얻고 이스라엘을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에 가득 찼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싫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하시고 또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다고 회개를 촉구하니 율법으로 의를 완성하고자 하는 바울의 입장에선 회개할 것을 찾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 후에도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늘어나자 이들이 유대교를 파괴시키는 사람들로 보고서 잡으려 다니고 옥에 가두었던 일을 했던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 신지 잘 알지를 못하고 이렇게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이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을 지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람인 줄로 알았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예수님께서 음성과 함께 빛으로 오셨는데 바울이 평소에 생각하고 믿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목소리와 밝은 빛에 눈이 멀고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를 만나라는 음성을 듣고 그 도시에 가서 만납니다. 아나니아로부터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서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이 바울의 전도여행(선교여행)과 복음 전파의 과정이 잘 설명이 되어 있고 나중에 자신이 세운 교회와 그리고 로마교회 등에 편지를 보낸 내용이 신약의 서신서로 우리에게 신약 성경이 되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과의 만남은 바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어떤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도 이렇게 하나님을 직접 만나면 변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을 이 사건을 영원토록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만나고 듣고 본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마다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예수님과의 만남이 필요하고 이 만남은 성경을 통해서도 일어나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말씀과 행동을 기록한 사복음서와 구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일도 직접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권능을 받았습니다.
모든 복음의 전파자는 성령을 받고서 전합니다. 물론 개인의 열심으로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바울과 같이 성령을 받고서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합니다. 저도 이런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우리의 차이는 바울은 구약의 달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는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에게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흠이 없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율법 교수 혹은 신학 박사에 해당하는 직위입니다. 그리고 공회의 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에 능통하고 라틴어에도 능통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이니 히브리어에도 또 능통했습니다. 로마 시민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미국의 영어에 능통하고 또 미국 시민이고 그러면서도 유대인이고 히브리 말에도 능통하고 또 다른 언어 불어나 스페인에도 능통한 분으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언어 능력보다도 우리가 주목을 해야 되는 부분은 이분이 구약을 너무나 잘 배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을 받고서 복음을 전하다 보면 기도하고 예수님을 능력있게 전하면 이에 만족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약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배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구약은 목사님이나 구약을 하는 신학자들이 깊이 연구를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늘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맺히는 열매에 만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도 바울과 같이 되어야 올바른 신앙의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구약의 말씀을 잘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영어도 시대의 언어이니 잘 배워야 합니다. 구약을 잘 배우지 못하면 복음에 대해서도 예수님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할 수가 절대로 없고 이는 올바른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12사도는 모두가 유대인이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 보다 율법을 잘 배웠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평소의 삶에서 실천하면서 살던 분이셨습니다. 모두가 바울과 같이 구약을 잘 배우고 또 영어도 잘 배워야 이 시대에 진정한 복음의 바울과 같은 증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건설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분은 다윗 왕과 같이 왕으로서 혹은 대통령으로서 복음을 전해야 하고 어떤 분은 전도자가 되어야 하고 어떤 분은 또 각자의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해가 없이 신약만 이해를 하면 모두가 바울과 같이 전하는 일만 생각할 수가 있으나 구약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인, 모세와 같은 신앙인, 그리고 요셉이나 다윗 왕과 같은 신앙인,
그리고 다니엘이나 에스라와 같은 신앙인, 또 에스더와 같은 왕비의 직책에 있는 신앙인을 우리는 같이 신약의 시대에도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만을 전하던 율법학자 바울을 통해서 우리는 구약을 배워야 함을 보며 구약을 통해서 우리는 또 이런 다양한 신앙인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내용도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구약의 율법을 잘 배우는 일이 바울 사도를 통해서 우리가 본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자 또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와 믿음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약이 없이 예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의에 대한 부분도 율법의 정의를 통해서 반드시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부분도 역시 그렇습니다. 레위기의 제사 제도를 모르고서 십자가의 보혈과 대속의 사랑을 논하기 어렵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제사 제도를 비롯해서 율법의 정신이 사랑과 믿음과 정의에 대해서 아주 깊이 잘 알고 있었던 분이십니다. 그리고 율법의 개개의 조항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을 만났고 그리고 비로소 구약의 말씀들이 모두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구약의 말씀이 이제야 제대로 이해가 된 것입니다. 마치 이사야를 풀어서 예수님께서 신약의 제자들에게 설명하고 구약을 풀어서 설명할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거워진 것과 같이 바울 사도도 비로소 자신이 알던 구약의 올바른 이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과 예수님. 율법과 예수님의 관계가 이렇게 너무나 밀접합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우리가 구약을 잘 모르면 예수님도 온전히 잘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먼저 알고 즉 신약을 먼저 배우고 구약을 배우지만 바울 사도는 구약을 먼저 알고 예수님을 만나서 구약의 이해의 바탕에서 직접 만난 예수님을 증거했으니 이 말씀들이 서신서가 되어서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즉 바울의 서신서에는 구약의 내용들이 그 바탕에 다 깔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바울 사도의 구약의 이해를 중심으로 예수님을 설명한 신약의 서신서를 정말로 올바로 이해를 하고 싶다면 반드시 구약의 공부에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전도자들은 이 부분을 명심하고 성경의 이해와 공부에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됩니다. 교회도 반드시 구약에 대해서 깊이 가르쳐야 합니다. 모세 오경의 말씀도 잘 가르치고 레위기의 율법의 내용을 깊이 모든 성도가 잘 배워야 합니다. 김경열 목사님의 레위기 강의는 예수님의 이해를 참으로 많이 증가시켰습니다. 제 오천만의 로마서의 레위기 설명에 소개를 드렸습니다.
율법을 잘 배울 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할 때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을 했으니 조문 조문을 잘 배워서 나의 행동과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를 죽도록 나의 생명보다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늘 자녀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못 믿는 종교를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잘못된 길로 그것이 사랑이라고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욕망을 자녀를 통해서 성취하고자 하면서도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체벌이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자녀를 때리면 자녀와 격리를 시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우리나의 경우 체벌을 완전히 금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절대로 매를 아끼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한다고 오냐오냐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버릇이 나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 세상에서 성공을 시키려고 어릴 때부터 죽도록 공부를 시켜서 서울대 등 명문대에 넣었으나 하나님의 법 즉 성경은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을 등한시해서 하나님도 버리고 세상에 취해서 지옥으로 가게 해도 자녀를 성공을 시켰다고 율법을 모르면 착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율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습니다. 모세 오경은 성경의 기초가 됩니다. 이 기초가 없으면 모든 성경의 이해가 부실하게 됩니다. 이분만큼 성경의 이해가 온전하신 분이 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해서 큰 열매를 맺었습니다. 권능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리 천국에 가서 모든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잘 믿고 성경을 그대로 잘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율법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바울의 성경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와 그리고 우주 만물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 부족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분이 율법을 무시하고 버려도 되고 배우지 말아라라고 가르칠 이유가 1% 도 없습니다. 로마서 등을 잘 보시면 율법이 없으면 우선 죄를 절대로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양심의 법이 있지만 율법이 죄에 대해서 깨닫게 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데 과연 무엇이 죄인지 모르고서야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이 정부와 헌법재판소는 낙태의 금지의 법을 없앴습니다. 그리고 간음이 서로가 동의가 있으면 죄가 되지 않는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성경의 율법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를 모르면 한국의 법 즉 헌법이 허용하니 나도 해도 되겠지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고 이 둘의 죄는 모두가 돌에 맞아서 죽은 죄, 즉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그리고 죄를 우리가 지으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회개를 하면 된다고 알고 있으나 회개가 불가한 죄도 있고 또 죄가 반복이 되면 용서도 불가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율법은 중요하니 절대로 바울 사도께서 율법을 잘 배우지 말라 율법을 버려라라고 말씀을 드렸을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율법은 폐기가 되었다라는 이야기도 듣고 낡은 조문이다라는 이야기도 듣고 또 율법이 아니라 믿음이다라는 말도 듣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오천만의 로마서의 로마서 강의와 사복음서의 강의와 모세 오경의 강의에서 이 의미에 대해서 많이 자주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인이 율법에 너무나 충실한 유대인이 예수님을 이제 믿어야 하는데 복음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배척을 했습니다. 율법으로 의를 이루고 또 죄를 지으면 돌에 맞아서 죽거나 혹은 짐승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런 것을 버리고 이제는 예수님을 믿으세요 하는 말입니다. 짐승의 제사가 이제는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제물이 되셨기에 이제는 모든 유대인이 율법의 방법에 따라서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지 않고 용서를 한 것과 같이 이제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하고 용서를 받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과거의 율법의 방법에 의한 의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서 죄를 용서받고 깨끗게 됨으로써 이제 하나님의 의를 이런 방법으로 얻으라는 절규가 로마서요, 다른 바울의 서신입니다.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이해가 아닙니까? 회개는 이 모든 과정에서 늘 필수로 따라다닙니다. 회개가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을 것으로 저는 믿습니다. 왜 바울 사도는 로마서 와 다른 서신에서 이렇게 율법을 설명을 했습니까? 당시의 모든 교회는 모든 교인이 유대인이 중심이었고 유대인이 없는 교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 교인이 이런 예수님을 통한 믿음의 의를 추구하는 것이 우선인데 이들이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받은 후에 의롭게 인정이 되고 또 성령도 받아서 자신과 같은 능력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무시하고 율법을 여전히 가르치고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고 이를 또 이방의 율법을 모르는 신자에게 가르치니 이를 바로잡으려고 그의 모든 편지에서 그렇게 율법을 설명한 사실을 꼭 아셔야 합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 모든 문제가 그대로 다 풀리는 것입니다. 오백 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보시가 바랍니다. 이 바울의 서신서를 읽는 우리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아예 율법이 없고 또 율법의 삶도 없는 이방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음을 받아들이고 또 예수님을 믿고 또 회개도 하고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이 세례를 받고 이를 통해서 의롭게 되고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통해서 능력을 얻을 뿐만 아니라 합격 도장(인)이 찍히고 이제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믿는다고 말만 하고 예전의 우리의 모습대로 그대로 살아야 합니까?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절대로 아니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로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그대로 살면 절대로 문제가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의 뜻에 절대로 부합하게 사랑하며 살게 하실 것이요. 정의롭게 살게 하실 것이요, 그리고 또 신실하게 살게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사시면 법도 없이 올바로 살 수가 있으니 바울 사도께서도 이렇게 사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의 고백대로 또 죄가 나를 주장합니다. 육신의 정욕이 안목의 정욕이 나를 주장합니다. 나의 주장이 나의 의도가 올바른지 분별을 또 해야 됩니다. 역시 율법이 없으면 이에 대한 분별이 없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의 기능에서 죄를 깨닫게 한다고 하셨는데 자신은 율법의 대가이니 모든 욕구나 욕망에 대해서 율법과 비추어 곧 죄를 깨닫게 되고 이에서 떠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배운 바 없는 우리는 죄를 절대로 깨닫기 어렵습니다. 제가 위에서 어떤 어머니의 사랑을 빙자한 죄와 간음의 죄와 낙태의 죄에 대해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율법을 모르면 죄를 짓는 길로 속히 갈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율법을 잘 배우고 늘 율법에 맞게 살아야 천국에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신학자, 목사, 그리고 모든 성도가 500년의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로 율법을 무시하거나 배우지 않거나 하면 아니 됩니다. 우리는 이렇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성경을 배우는 일에 올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나 죄를 쉽게 짓게 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법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풍요는 우리 모두를 잡아서 삼켜서 죄로 이끌고 있습니다. 묻지 마 관광, 골프 관광, 부부의 이야기라는 최근의 김희애 주연의 연속극, 그리고 유튜브 등 하루 종일 죄로 인도하는 광고와 미디어의 폭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육체의 육망을 따라서 자신의 몸을 맡기려 합니다. 어디를 가도 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고 우리의 자녀가 자라고 있습니다. 율법이 없다면 우리 모두는 지옥으로 속히 갈 것입니다.
율법이 희망입니다. 율법이 예수님입니다. 율법이 우리를 살리는 등불이요 빛입니다. 돈도 있고 건강도 있고 그리고 시간도 있는 정년의 우리의 베이비 부머는 어디로 갈지 몰라서 허둥대고 있습니다. 바람을 피우려고 안달을 합니다. 무언가 몰두해야 되는 일이 있어야 하는데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곳에 기웃거리고 또 이상한 곳에 가봅니다. 그리고 가정도 버리고 자녀도 버리고 황혼의 이혼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속이고 멸망시키고 죽이려고 환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몰두하고 즐겁게 하고 또 정성을 다해서, 매일매일 쉬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율법을 잘 배우는 일입니다. 율법은 크게는 모세 오경입니다. 그리고 구약입니다. 성경을 배운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배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일이요, 상대방 배우자를 사랑하는 길이요, 그리고 자녀를 사랑하는 길이요, 우리나라를 최고로 사랑하는 길입니다. 나의 내 가장을 지키는 일이요, 못다 푼 나의 한을 푸는 길이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하고 가장 귀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절대로 어렵지가 않습니다. 그리고 재미가 넘칩니다. 내 영혼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육망도 끊어지게 하고 욕심도 사라지게 하고 배우자를 사랑하게 되는 길입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행복이 넘칩니다. 나날이 더욱 새롭게 됩니다. 천국이 그리워집니다. 죽음이 절대로 힘든 일이 아님을 알게 되는 길입니다. 미움에서 벗어나고 용서가 가능해지고 그리고 천국의 모든 성도가 기뻐하고 축하하며 지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늘 함께하시고 좋아하시고 지지해 주시는 일입니다. 이렇게 율법을 배우는 일이 좋고 또 좋은 일입니다. 마귀가 이 율법을 배우는 일을 막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큰 기쁨의 속으로 모든 분이 속히 들어오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늘 초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일, 그리고 성경을 정리를 하는 일, 그리고 올바른 곳에 가서 성경을 겸손한 자세로 배우는 일이 모두가 예수님께서 재촉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이단엔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천만의 로마서의 모든 글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분에게 큰 소망을 주십니다. 저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같이 하고 싶습니다. 모두가 복음을 전하고 한국을 세우고 모든 세계의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들입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또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큰 죄인을 용서하시고 이렇게 복음의 도구로 삼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총을 찬양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과 인내와 복을 주심을 찬양합니다. 성령님의 내주와 감동과 충만을 찬양합니다. 인내도 부족하고 세상을 따라서 늘 살고자 하고 목이 곧아서 순종을 잘 못하고 믿음 생활도 너무나 못하는 모든 면에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입니다. 저는 누구에게 잘 한다고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부실한 세상에서 살기가 너무나 부족한 인생입니다. 이런 인생을 오래 참으시고 격려하시고 제 주변에 모든 면에서 저보다 나은 사람들로 기도하고 돕게 하셔서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이 모든 분께 넘치시길 기도합니다. 성경을 사랑하고 배우는 일에 몰두하시길 기도합니다. 힘을 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