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현실에의 적용 3: 율법에 대한 기초와 성경 구절
할렐루야!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마태복음 5장 11절 말씀으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하시며 정의롭게 살면서 박해나 고난을 받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이 땅에 살면서 이 세상의 불의를 보면서 마음 아파하고 그리고 불의와 싸우면서 고난을 받는 분들이 마음을 잘 다스려서 이 말씀을 통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리고 뛰놀게 도와주시옵소서! 분한 마음, 성난 마음,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에 이 귀한 말씀을 잊고서 함부로 노나 분을 표하지 말게 도와주옵소서
샬롬! 가을비가 옵니다. 올해는 유난이 태풍이 자주 옵니다. 추수가 다 되었는데 태풍이 자주 옵니다. 재난에 기도하고 같이 대처를 해야겠습니다. 레위기를 같이 배우자고 하고 이렇게 글을 올린 지가 한 달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저도 공부를 새롭게 많이 했습니다. 레위기에 대해서 설명한 많은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제 이해도 많이 넓어졌습니다. 참으로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율법만 알고 있어서 예수님과 율법학자의 대립이 율법에 대한 부분임을 평소에 알고 있었고 이는 모세 5경과 다른 구약의 성경 조문을 가지고 논쟁을 벌였으리라 생각을 했는데 장로들의 유전(전통) 부분에 와서 다시 이 내용이 무엇인지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제가 모르는 내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다투신 부분이 단순히 모세 5경의 내용만이 아니라 이 율법을 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고 이런 과정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속이 되다 보니 율법에 대한 본문과 해석과 그리고 현실적으로 적용한 사례 등이 있었고 이들이 다양한 형태로 모세 5경과같이 이스라엘 당시 사회에서 적용이 되고 있었음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과 구전의 이해를 위해서 다른 분들의 글을 같이 올리고 그리고 율법을 공부하기 위해서 기초자료로 율법이라는 말이 들어간 신, 구약 성경의 본문을 모두 검색을 해서 올립니다. 그리고 부분 부분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구절은 더 자세하게 알도록 주변 구절을 같이 올렸고 이도 또 개역개정과 공동 번역, 그리고 영어 NIV 본문도 같이 올렸습니다.(이 글의 다음 글에 있습니다.)
제가 공부를 이렇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새로운 직장을 가지게 되어서 새로운 분들과 만남을 가지고 있고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이곳을 위해서 그리고 레위기 공부를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기도와 글을 읽어주심으로 인해서 힘을 내어서 쉬지 않고 재미있게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에 정의롭게 살려고 하다가 고난을 당하고 실망하고 낭패를 당하고 그리고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이 마음으로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불의를 보면서 분과 노를 삭히기 어려운 분도 계십니까?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산상수훈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서 위로를 받으시고 그리고 분한 마음, 노한 마음, 그리고 안타깝고 원통한 마음을 이기시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우선 율법의 기초적인 이해를 하려고 합니다. 율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율법과 복음에 대한 설명과 율법과 믿음과 행위에 대한 부분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해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모든 분들과 같이 세상에서 똑같이 일을 하고 고난과 미움과 그리고 모함도 받으면서 일하고 그리고 간절히 사정이 이러하기에 기도하고 그리고 분을 삭이려 애를 씁니다.
저도 처음 배우는 부분이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도 역시 많이 있습니다. 이미 많이 공부하신 분들의 글을 통해서 저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 편의 글을 보시고 율법과 유전을 이해하시고 제가 정리한 율법에 대한 성경 본문을 보시면서 또 새롭고 폭넓은 율법의 이해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과정이 성경의 에베레스트 먼 에베레스트, 성경의 마리아나 해구면 해구인 레위기를 이해하고 정복하는 길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 인터넷에서 옮겨온 글들
율법과 유전
이스라엘은 모세 이후로 율법을 항상 지녀왔다. 그러나 에스라 시대(B.C 5세기, 선지자들의 율법에 대한 백성의 불순종이 초래한 직접적인 결과로 보았던 바벨론 포로생활이 풀려 고국으로 귀환하던 시대) 이후로는 율법의 연구에 더 큰 강조점을 두었고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학자 백성"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 철저한 율법 연구는 "유전"의 목록이 점차 비대해져가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그 유전들은 율법 못지않은 구속력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는 데까지 나아갔다. 율법과 유전의 직업적인 연구생들이자 전문가들인 서기관들은 모든 경우들에 대한 규례들을 정하여 둘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 금지된 행위에는 39가지의 형태가 있었는데 추수하는 일과 타작하는 일이 여기에 포함되었다.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는 것도 역시 금지사항에 해당되었다(눅 6:1-2).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행 1:12 ,3분의 2마일 정도)은 허용된 최대치였다. 애석하게도 유전의 세목에 지나치게 열중한 나머지 서기관들은 때때로 율법 자체의 보다 더 중요한 부분과 관심사를 잊어버리곤 하였다(막 7:1-13,3:4-5, 마 23:23 )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미드라쉬) - BigMouth님께| 종교와 사회
나그네 | 조회 309 |추천 0 | 2007.01.09. 14:14
1. 율 법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을 연결해 주는 것은 율법, 즉 "토라"라고 생각했다. 토라는 "율법"보다 더 광범위한 용어로서 종교적 가르침, 계시 그리고 교훈까지를 포함한다. 이 용어는 시내 산에서 주어진 모든 계시를 말한다. 이 토라는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가) 전체 율법의 핵심적 부분인 십계명
나) 일반적으로 토라라고 부르는 모세 오경
다) 구약 전체-그들은 구약 전체를 거룩한 율법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 중에서도 모세 오경을 가장 중요시하였으며, 이 책은 장차 있을 세계에서도 유효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라) 구전 율법-이스라엘은 율법을 변화하는 환경에 적용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으며, 이러한 노력이 신약에서 "조상(장로)들의 유전"(막 7:3-그들은 '미쉬나'를 이렇게 불렀다)이라고 부르는 구전 율법을 발전시키게 하였다.
이 구전 율법은 율법을 보호하는 "울타리"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면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을 구전 율법에서 39가지로 규정해 주고 있다. 이 구전 율법의 목적은 주어진 율법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전 율법이 모세 때에 율법과 함께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이 율법의 권위를 기록된 율법보다도 더 높이려는 사람도 있다.
* 참고: 구전의 발생과 발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스 7:6)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기로 결심한 자"(스 7:10)였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다(느 8:8). 그리하여 에스라의 뒤를 이은 서기관들은 율법의 해석을 통해 특별한 관습, 의식, 교훈 등을 연관시켰으며, 이것은 뒤에 랍비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 미드라쉬: 랍비들은 문서화된 율법을 해석하고 응용했으며, 이를 통해 복잡한 생활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법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규례들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을 "다라쉬"(해석)라고 불렀으며, "미드라쉬"(주석)는 성문화된 본문에서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의미하였다. 이 미드라쉬에는 두 부분이 있었다.
- 할라카: "할라카"(걷는다)는 시민법과 종교법에 관한 규례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율법을 따라 걸어갈 것인가(할라크)를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서 할라카는 구약 성경의 율법을 해석한 일종의 주석으로서 유대교의 구전, 즉 성문화되지 아니한 율법이었다.
- 학가다: "학가다"(말하다)는 율법과 관계없는 랍비 문학이다. 이는 구약의 설화를 발전시킨 것으로서 많은 전설과 민속문화들로 되어있다. 미드라쉬는 스룹바벨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는 랍비들의 관심사였으며, 그 이후로는 그들의 점유물이 되었다.
* 미쉬나: 랍비들은 구전과 함께 성문화된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이 연구 과정, 즉 구전과 성문화된 율법을 반복하는 것을 "솨나"(암송)라고 불렀으며, 이것을 "미쉬나"라고 불렀다. 미쉬나란 "그 이전 세기들 동안에 랍비들이 토론하고 결정한 것들을 조직적, 즉 주제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일종의 법전"이다. 미쉬나는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후에 요하난 벤 자카이와 얌미나에 있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 후 2세기 초에 랍비 아키바는 할라카를 보다 치밀한 형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그의 제자인 랍비 메이어가 다시 세밀하게 정리하고 불분명한 부분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200 직후에 사망한 랍비 유다(족장)가 미쉬나의 마지막 교정본을 만들었다. 미쉬나는 주로 그의 업적의 결과였다. 현재 미쉬나는 주제에 따라 여섯 분야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분야는 많은 소책자(전체적으로 63개)로 구성되었다. 그 연대는 대략 200-230년으로 추정한다. 미쉬나는 구약 성경 다음으로 가는 유대 문학의 기본 작품이며 탈무드의 기초가 되었다.
* 탈무드 : "탈무드"(배움)는 미쉬나로 구성된 편집물, 혹은 전통적인 율법을 인수한 것이다. 여기에 유대교의 학파들에게 제기된 토론과 전통들("게마라"="완성")이 추가되어 있다. 탈무드에는 "팔레스타인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의 두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탈무드라고 할 때에는 바벨론 탈무드를 말하며 이는 그 내용에 있어서 팔레스타인 탈무드보다 더 충실하다. 이것이 오늘날의 형태로 되기 위해서는 500년까지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들은 이러한 율법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것이며,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비록 메시아 시대에 새 율법이 주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는 하였지만, 그들에겐 이 율법은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기는 기독교의 바른 신앙을 위한 성경공부와 친교와 자유로운 대화방입니다. 성경과 기독교를 왜곡하는 사이비 신앙인들과 이단들의 글과 동영상과 광고는 보고 읽고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과 정신을 혼미케 하여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가정과 사회를 혼란케 하며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들의 글과 동영상이나 광고는 임으로 삭제하고 차단합니다. 바른 신앙을 위한 성경공부 자료는 매일 새벽에 올려놓으니 누구든지 어디서나 기도문까지 읽으시고 아멘, 하시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아멘+++
[유전의 논쟁: 마태복음 15 : 1-20]
본문의 내용은 예루살렘으로부터 파견된 서기관들 및 바리새인들과 예수님과의 유전에 대한 논쟁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제시된 원리만으로써는 복잡한 현실 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문법 외에 구체적 생활과 관계되는 세세한 규례들이 구전(口傳)으로 전해져 왔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로들의 “유전”,이요 “전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부터 유명한 랍비들에 의해 정비되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유전은 성문 율법 못지않게 강한 구속력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외형상으로는 별문제가 없는 듯이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을 하나님의 특별계시와 동일 수준으로 만들었다는 점과 율법의 정신을 망각하고 외형적인 세부 규칙의 준수에만 골몰케 하므로 결과적으로는 위선만을 주장하게 했다는 점에서 이 “유전”은 치명적 해악(害惡)을 초래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마 15:1.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유전)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 하나이다.
1), 이 본문에 등장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직접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종교회의로부터 갈릴리로 파견된 종교 조사단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예수님의 병 고침과 가르침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의 소문에 대한 실제를 조사하기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을 모해(謀害)하려고 하는 목적을 띠고 그 모함(謀陷)의 구실을 마련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의 교권주의자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심각한 갈등이 날로 더해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후반기로 가면서 이러한 갈등은 격렬한 신학 논쟁을 통해서 더욱더 첨예화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파견은 예수님에 대한 예루살렘의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으며 예수님에 대한 박해가 공공연히 모의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본문에서 바리새인 등이 들고 나오는 “장로들의 전통(유전)”입니다. 여기서 “장로들의 전통(유전, 파라도시스)”, 이란. 나이가 많은 어른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율법에 능통한 자나 랍비 등의 종교지도자들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율법해석의 권위를 공적으로 인정을 받았는데 이들의 해석은 구전으로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그러한 해석은 기록된 율법보다 더 존중이 여겨졌던 것이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장로들의 전통(유전)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3),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 하나이다”...“손 씻는 규정(1, 2절)”도 한 유전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이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유전에 대한 신학적 논쟁의 계기가 되는 말입니다. 식사를 할 때 손을 씻는 예법은 먼지가 많은 팔레스타인의 풍토와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풍속에 대해 위생적 필요에서 마련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한편은 이방인들과의 모든 접촉, 예를 들어 길이나 시장에서 이방인들과 스치거나 이방인의 물건에 무의식적으로 닿는 일 따위는 성전이나 회당에서의 예배에 외식적인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장로들의 유전이었습니다.
+++오늘의 기도+++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하셔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으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복음을 온 세상 모든 민족과 땅 끝까지 전파하게 하시오니 감사합니다. 온 세계 모든 민족과 나라와 우리의 가정과 이웃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과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온전히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우리 주님의 십자가와 보혈과 부활과 성령의 내주 교통 충만 축복하심이 이 나라와 모든 교회 공동체와 가정과 이 말씀을 보고 읽고 전하는 사람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하시옵기를 우리를 사단과 죄와 악의 시험을 이기게 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고 축원합니다. 아멘. (목).
요즘 인터넷의 활성화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성경적으로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분들이 글을 올리면서 혼란이 과중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율법과 복음에 관한 부분은 목회자분들도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경우들이 많이 있을 정도로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올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경에는 두 가지 용어가 혼용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율법이 폐하여졌다는 표현도 있고 완성되었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또한 이루어가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표현 중 한 가지의 본문을 가지고 마치 전체인 양 말하는 데 있습니다.
1) 율법 폐함.
성경에는 율법을 폐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엡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
엡 2:11. 이방인으로 태어난 여러분, 지난 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단지 몸에다 사람의 손으로 행하는 할례를 받은 소위 할례자들로부터 할례받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12. 그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고 이스라엘 시민권도 없는 외국인으로서 약속의 계약에서 제외된 채 이 세상에서 희망도 하느님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13. 이렇게 여러분이 전에는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14.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15.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16.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고 원수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던 여러분에게나 가까이 있던 유다인들에게나 다 같이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18. 그래서 이방인 여러분과 우리 유다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같은 성령을 받아 아버지께로 가까이 나아가게 되었습니다.19. 이제 여러분은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같은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20.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잇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21. 온 건물은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22. 여러분도 이 모퉁잇돌을 중심으로 함께 세워져서 신령한 하느님의 집이 되는 것입니다.
11. Therefore, remember that formerly you who are Gentiles by birth and called "uncircumcised" by those who call themselves "the circumcision" (that done in the body by the hands of men) --12. remember that at that time you were separate from Christ, excluded from citizenship in Israel and foreigners to the covenants of the promise, without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13. But now in Christ Jesus you who once were far away have been brought near through the blood of Christ.14. For he himself is our peace, who has made the two one and has destroyed the barrier,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15. by abolishing in his flesh the law with its commandments and regulations. His purpose was to create in himself one new man out of the two, thus making peace,16. and in this one body to reconcile both of them to God through the cross, by which he put to death their hostility.17. He came and preached peace to you who were far away and peace to those who were near.18. 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 to the Father by one Spirit.19. Consequently, you are no longer foreigners and aliens, but fellow citizens with God's people and members of God's household,20. built 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 with Christ Jesus himself as the chief cornerstone.21. In him the whole building is joined together and rises to become a holy temple in the Lord.22. And in him you too are being built together to become a dwelling in which God lives by his Spirit.(중요한 내용이기에 성경본문을 다 옯겼습니다.)
2) 폐할 수 없다는 말씀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율법을 폐할 수 없다는 말씀과 함께 다양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다 이루리라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굳게 세우느니라.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특정 부분의 말씀만 이해하게 되면 신앙과 신앙생활에 문제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전체적인 입장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이 서로 반대되는 것 같은 말씀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율법의 구성과 당시에 사용하던 율법에 대한 문제입니다.
2. 율법에 대한 혼란.
율법에 대한 혼란은 아래의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연관된 많은 내용들이 있습니다만 최소한 두 가지는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에 나오는 율법이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성경에 나오는 율법과 신약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용어인 율법에는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이라는 용어가 나오면 마치 구약성경에 나오는 율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율법에 대한 이해와 용어 사용.
일반적으로 율법 하면 모세 오경에 기록된 율법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말하는 율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말하는 율법에는 모세오경에 나오는 율법과 율법의 시행세칙과 같은 많은 법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계명만 하더라도 약 1500가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모세오경에 나오는 율법과 함께 구전 율법을 포함하여 많은 시행세칙과 같은 법들을 전체적으로 율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율법과 서로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2) 율법의 구성.
율법은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① 율법의 구성.
ㄱ 의식법(제사법). ㄴ 시민법(국가법). ㄷ 도덕법. 크게 분류하면 위와 같이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② 율법의 폐한 부분.
율법의 세 가지 부분 가운데 폐해진 부분은 의식법(제사법)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의식법(제사법)이 폐한 것은 오실 메시아를 보여주는 그림자에 해당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는 오신 메시아를 믿는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배(제사) 자체를 폐한 것은 아닙니다. 그림자에 해당되는 부분만 폐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국가법은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하였던 성민들에게 주신 법이었기 때문에 우리와 상관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원리들이 현실에 적용된 경우는 있지만 국가법에 해당되는 부분은 우리와 상관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부분의 율법은 폐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율법 이해의 입장에서 볼 때에 많은 시행 세칙과 구전 율법과 유전 등에 관한 부분 당연히 폐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덕법이 폐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3. 율법에 대한 자세.
이미 살펴본 것과 같이 도덕법이 폐해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율법이 완전히 폐하여졌다면 이제는 다른 신을 섬겨도 될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십계명이 폐하여진 것이 아닙니다.
1) 도덕법은 폐하여지지 않았습니다.
도덕법은 폐하여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도덕법은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기준으로 영원토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 말입니다.
2) 율법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도덕법은 사랑으로 이루어가야 하는 법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복음과 율법에 대하여 명확하게 정립하시고 혼란한 시대를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으로 승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무엘 신학원 홍샘 목사
이상의 글은 인터넷에서 옮겨온 글로 제 생각과는 다른 부분도 있지만 그대로 올립니다.
예수님께서 이천 년 전에 오신 땅이 구약의 약속이 이루어진 이스라엘 땅입니다. 이스라엘은 약 예수님 우시기 700-600년 전에 멸망을 당하고 당시의 지배국인 로마의 속국이 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로마법이 다스렸지만 이스라엘의 자치권도 동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나 정치적인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배우고 이를 백성에게도 실천하게 했으나 섬기는 자의 자리에서 희생하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속국의 치하에서도 특권을 누리며 가난하고 힘이 약한 사람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로마의 지배에서 건져줄 전능한 권력을 가진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가난하고 포로 되고 병든 자들에게 오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고 그들 중에서 제자를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의 보통의 백성은 로마의 압제와 이스라엘 지배층의 지배를 동시에 받고 살고 있었으니 이는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사랑하며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게 모든 것이 온전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불의하게 보시며 당시의 이스라엘 지도층을 책망한 것입니다.
이 시대를 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지가 또 2천 년이 지났습니다. 이 땅에 오만의 교회가 십만의 목사와 그리고 천만의 성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온갖 불의를 자행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또 많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천국의 법이 아닌 세상의 국법을 준수하며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산다고 하는 사람도 또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크리스천 부자가 있습니다. 수십억 수백억 수천억 수조를 가진 크리스천 부자가 있고 너무나 큰 부자인 목사도 많이 있고 장로도 또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믿지 않는 수많은 사람과 믿지만 또 가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데 땅이 한 평도 없는 사람이 3천5백만이나 되고 자신의 집도 없이 지하에서 그리고 세를 주면서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듯이 가난한 자에게 오셔서 지금의 부자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하시면 예수님도 또 부자 크리스천, 부자 목사, 장로에게 핍박과 괴로움을 당하셔야 할 것입니다. 주인도 몰라보고 짓는 개와 같이 짓어댈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에 정의를 외치고 불의한 세상에 정의를 실천하고 불의한 세상의 것들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싫어하면 가장 먼저 공격을 하고 미워하고 왕따를 시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제가 목사가 되어서 약 8년을 세상일을 하면서 여러 직장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정말로 부족하지만 가는 곳마다 믿는 이들을 살피고 믿는 이들을 돕고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사사로움은 정말로 취하지 않고 정의롭고 공평하게 그리고 정말로 지혜롭게 이들을 불신자와 차별 없이 대하며 사랑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움도 받고 수도 없이 잘리고 하면서 제 자신의 잘못과 불찰을 먼저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일이 반복이 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는 이들이 가는 곳마다 있는데 어떤 곳에서는 먼저 믿는 이가 하나가 되어서 저를 싫어하고 배척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하셨던 고난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약 이제 8만 명 이상이 읽었고 외국에서도 약 80개국에서 읽고 있는데 비판을 하시는 분도 한 분도 만나지 못했지 공개적으로 환영을 하시는 분도 보기가 어렵습니다.
정말로 의를 실천하고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면서 이 때문에 고난을 받고 있고 이 고난이 참기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오심을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지금 나는 누구를 바라고 누구를 기다리고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 자신이 자신을 보면 가장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에 대한 이해에 목이 몹시 마르고 그리고 이를 전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리고 이 세상의 불의를 척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큽니다. 물론 일을 하고, 쉬고 싶고 그리고 오락도 즐기고 싶고 때론 류현진의 투구를 잘 보고 있습니다. 속된 부분과 못된 부분도 많이 있고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삶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성경의 이해와 정리와 전하는 것입니다.
일을 하기에 틈틈이 합니다. 지난 8월 28일부터 약 40여 일 동안에 약 20편의 글을 이곳에 이렇게 올렸는데 전부 레위기에 대한 글들입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데 즐겁고 어렵지가 않습니다. 제가 우선 많이 배우기에 기쁘고 그리고 많이 않은 분들이 읽어주시기에 기쁩니다.
그리고 일반인과 똑같이 일을 하고 일을 하면서 기도하고 일을 하면서 성경을 묵상하고 그리고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쉬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대부분 글이 길고 그리고 영어도 많아서 쉽지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격려하시고 배우는 기쁨을 주시고 전하는 기쁨을 주시고 그리고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심으로 힘이 들지 않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해서 합니다.
다음에는 레위기의 이 세상에서의 적용에 대한 선행의 이해로 율법이라는 말이 들어간 성경의 구절을 다번역 성경 검색에서 찾아서 그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늘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저도 틀림없이 쉬지 않고 모든 분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비 오는 가을날 태풍의 피해가 없도록 그리고 성경의 즐거운 이해를 위해서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