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절차(사도행전 2장 38절)가 곧 법이다
할렐루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함께 제자훈련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볼 기회를 주심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함께 하시며 가르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 구원의 위대한 사역을 죽음으로 행하시고 부활하셔서 다시 제자들을 만나 이 가르침을 온 세상에 전하여 지키게 명하시고 그리고 성령을 기다리게 하시곤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께서 임하셔서 능력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해서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우리도 실천을 해서 중국의 14억, 인도의 13억, 그리고 일본의 1억, 러시아의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과 그리고 북한의 동족을 모두 다 구원하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해서 모두가 성령을 받고서 이들과 같은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샬롬! 어제 원룸 입주 청소를 밤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받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절차를 지켜서 성령을 받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참으로 어렵게 보이는 일도 너무나 쉽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이 수 년 수십 년 죽도록 매일 훈련을 하고 공부를 해도 절대로 알 수도 행할 수도 없는 일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할 수가 있으니 성령을 받고 주님의 인도를 받는 삶이 그 삶이 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떡하든지 관계없이 가장 성공한 삶이요, 복된 삶이요,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삶이 됨을 굳게 믿습니다. 같이 제자훈련에 대해서 이렇게 절차적인 면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한국의 일반적인 제자훈련 vs 성경에서 예수님의 제자훈련
1). 한국의 제자훈련들
제자훈련으로 가장 뛰어났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코스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따라갔고 지금도 비슷한 훈련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내용은 모든 성도가 대부분 이해를 하고 들어도 보고 또 교육을 받은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훈련의 방법에 대해서 이제는 또 많은 분들이 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과정을 정해놓고 교재를 만들어서 수년을 훈련을 시켜도 이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전도도 아니하고 그리고 선교도 아니가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 방법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딱히 또 다른 훈련의 과정도 이를 대체할 만한 훈련이 없기에 이와 비슷하게 교회들이 성도를 훈련을 시켜서 움직이게 하려고 합니다.
한국의 제자훈련은 우선 잘 정리되고 요약된 교재가 존재하고 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교재의 내용도 성경 전체를 망라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합숙으로도 공부하고 교재를 여러 권으로 나누어서 차례로 공부를 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교육을 받은 성도는 이제는 자신이 이 교재를 중심으로 제자를 교육을 시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제자교육 과정을 모두 마친 사람과 마치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어지고 그리고 과정에 따라서 위계질서와 같은 것이 생겨서 더 많은 교재를 배운 분이 더 못 배운 분의 선생이 되기에 성도들은 교회에서 제시하는 교재와 방법대로 그냥 열심히 배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새로운 목사님이 오셔서 이 과정을 실시하면 늦게 배우면 장로나 권사가 이 과정을 먼저 배운 집사에게 배울 수도 있기에 무비판적으로 그냥 열심히 해서 목사를 정점으로 이 과정의 교재를 배운 순서로 성도의 새로운 서열이 정해지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과정이 보통 수년이 걸립니다. 모든 과정을 마스터하는데 수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경비도 너무나 많이 듭니다. 이렇게 이미 세례도 받고 장로나 권사의 직분을 받은 성도를 다시 교육을 시켜놓으면 이제는 이분들이 모두가 능력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세상에서 전도도 하고 선행도 하고 그리고 선교도 알아서 가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이지 자신들의 서열은 잘 정했는데 여전히 교육을 받지 않은 과거와 같이 세상에선 별로 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참으로 이상한 일에 이렇게 훈련을 시킨 교회도 교육을 받은 사람도 이 교육 방법에 대해서 회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성경의 내용이 정리가 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수차례 가르침을 통해서 성경의 내용이 이해가 잘 됨은 이 교육의 큰 장점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은데 이는 제자훈련과정이라고 표현해서는 아니 되고 단계적 성경공부라고 함이 맞습니다.
2. 예수님의 제자훈련: 사복음서 전체의 내용임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킨 방법을 모르는 성도는 거의 없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아기 시절에 애굽으로 헤롯의 유아 살해 명령에 피신을 가셨다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 정착한 곳이 모두가 아시는 나사렛입니다. 이 나사렛에서 30세가 되실 때까지 아버지 요셉의 일을 도우시며 사셨는데 왜 이곳에 사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제자들을 부르기 위해서 가신 곳이 갈릴리 바다입니다. 이곳과 나사렛은 아주 가까운 곳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적어도 6-7명은 어부였습니다. 어부들이 있는 갈릴리 바다 부근에서 사시다가 베드로 등을 부르시고 이들과 함께 들판에서 기거하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능력을 주시고 파송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훈련의 방식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제자훈련과 비교를 해 보면 우선 예수님은 현장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교육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전에서 그리고 선생님과 배우는 사람만 있는 방에서 공부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를 부르신 경우도 있고 제자들이 자신의 친구나 형제나 이웃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경우도 있습니다. 소문을 듣고서 모인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아온 경우도 있습니다. 모두가 예수님이 계신 곳에 나갔습니다. 즉 예수님이 계신 곳 즉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에 제자들이 나갔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고 가르치심을 받고 그리고 복음 전파하는 것을 직접 보고 그리고 병자를 치유하는 것을 그리고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배우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문제도 없고 대상도 없는 교실에 앉아서 성경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과정을 시범을 보이신 예수님께 제자들은 천국의 모습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일일이 다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4복음서의 내용이 모든 것이 아니고 이보다 더 많은 일들이 있었음을 요한 사도는 그의 요한복음에서 적기를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난 일을 다 기록을 하려면 세상의 책을 다 동원해도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으니 얼마나 많은 질문과 대답이 있었고 대화가 있었으며 더 많은 가르침과 사건들이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계셨으니깐 당연하지 지금도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시면 온 세상의 사람들이 다 갈거야 누군 모르니? 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고 육신으론 계시지가 않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또 조금 더 성경을 보면서 생각을 해 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은 과연 어떻게 제자를 삼았을까? 이들은 우선 100% 예수님께서 약속하시고 당부하신 성령을 받고서 성령의 능력과 권세로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제자들을 부르고 훈련을 시켰습니다. 어디에서 그러면 교육과 훈련을 시켰습니까? 예루살렘 교회당에서 당연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당에서 당연히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답게 바울은 온 세상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면서 가르쳤고 그리고 베드로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다른 지역에 복음을 전하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능력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과 같이 행하면서 가르쳤습니다. 모든 분이 이런 가르침과 우리가 알고 있는 제자훈련의 차이를 금방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제자훈련의 프로그램이 아니고 그냥 성경교육이며 단계적 성경공부일 뿐입니다.
3. 올바른 제자훈련
제자훈련은 반드시 예수님의 방법을 그대로 실천을 해야 합니다. 누가 합니까? 월급을 받지 않는 장로가 합니까? 배울 대상인 성도가 합니까? 당연히 양 무리를 책임지고 있는 그리고 합당한 사례비를 받고 있는 목사가 해야 될 일입니다. 어디에서? 세상에 나가서 직접 전하면서 병자를 치유하면서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욕과 핍박을 받으면서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합니까? 성전에서 성도들에게 가서 이렇게 하라고 명령만 내리시고 자신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바친 물질로 성도보다 더 좋은 집과 차를 몰고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누가 말도 없고 이런 분들에게 또 나아가서 모든 것을 바치고 살면서 세상에 나가선 선도 행치 않고 그리고 복음도 전하지 않으면서 사시지는 않습니까?
우선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본을 보일 선생님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렇게 복음을 직접 전하면서 가르치는 선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바울과 같이 신구약의 성경의 말씀에 통달해서 때에 따라서 구약도 나누어주고 신약도 나누어주면서 가르칠 선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바울에게 배운 아굴라와 브리스 길라는 천막을 만드는 일에 종사했던 사람으로 지금의 직업으로 예를 들면 비닐하우스 제작을 하시는 분으로 이해를 하셔도 될 것입니다. 이 들판에서 비닐하우스를 세우는 일을 하던 노동자가 성경을 잘 배우고 가르치던 아볼로를 만납니다. 아볼로는 성경을 너무나 잘 배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학자이고 선생입니다. 지금으로 보면 신학자요, 목사요, 성경연구가입니다. 자신에게 배우는 사람도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천막을 만드는 노동자에게 오히려 성경을 배웁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직 아볼로는 절차에 있어서 온전하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성령세례에 대해서 아직 모를 뿐만 아니라 성령의 세례에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배우고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된 후에 아볼로는 더욱 능력 있는 복음의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집사에게 그렇지 못한 목사가 배웠다는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당시에 아볼로가 이들을 무시했다면 아볼로는 능력 있는 복음의 전파자로 성경에 그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것이고 우리는 이 분이 계셨는지 아니 계셨는지도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제자훈련의 절차
간단하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제자훈련의 절차는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순서입니다. 사복음서와 같이 모든 성도가 예수님께 배우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그다음은 사도행전과 같이 성령을 받고 능력 있는 제자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차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제는 천국에 계시니 사복음서의 내용을 잘 배우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다음에 성령을 받고 그리고 제자로서 능력 있는 삶을 살면 됩니다.
먼저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먼저 회개를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당시에 구약의 박사들이 즐비했고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구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먼저 하신 말씀이 회개입니다. 첫 번째 절차입니다. 회개는 간단하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박사도 사랑을 하지 않고 있으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장로도 권사도 목사도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저도 마찬가지로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는 자신이 죄인이고 자신이 잘못 살고 있고 자신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며, 죄로 인해 죽은 사람임을 인정하고 이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신 분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순종하고 말씀을 잘 배우는 것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예수님을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성인으로 믿는 분도 있고 사람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드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또 믿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이 자신에게 있냐 없냐는 자신이 가장 잘 압니다. 이렇게 고백과 믿음이 없으면 반드시 이 절차를 또 지켜야 합니다. 반드시 이 부분을 예수님께 기도하면서 해결을 보아야 합니다.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 성경의 박사가 되고 성경을 강의하는 학자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다음은 이렇게 알고 믿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입니다. 세례에 대해선 교회에서 그 의미를 잘 배우고 또 목사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으면 됩니다. 이미 받으신 분은 또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절차를 잘 지키신 분은 반드시 하나님으로부터 과거에 지은 모든 죄가 용서를 받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용서입니다. 사형수가 사면을 받고 사형을 면한 것입니다. 이제 세상에서 똑바로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또 죄를 지을 것이니 모든 죄를 용서해 주세요 하고 사면을 절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면권자도 그런 사람에게 절대로 사면을 해 줄 이유가 없습니다. 사형수가 나가서 또 살인을 할 것이 뻔한데 누가 그 사람을 살려주겠습니까? 물론 회개와 또 용서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죄의 용서에 대해선 이렇게 믿어야 한다고 저는 믿고 생각을 합니다. 다르게 생각하고 가르치는 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죄의 용서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의 대상이 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께서 선물로 오십니다. 그러면 능력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시고 성령을 받게 하시고 또 세상에 나가서 이렇게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신지 2천 년이 지나면서 이렇게 제자를 삼고 가르치는 방법을 우리는 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큰 교회와 여러 교회의 목사들이 성전에서 성도들이 가져다 놓은 하나님께 바친 예물로 좋은 집에서 좋은 차를 타고선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고 오직 성도들만 세상에 나가서 바울과 같이 베드로와 같이 살라고 오늘도 강단에서 목을 높여 소리치고 있습니다. 누가 할 일을 하지 않고 누구에게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본을 보이는 목자가 없어서 그냥 성전에서 설교를 듣고는 세상에선 이리저리 시달리며 돈을 벌고 또 성전으로 가져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얼마나 성전에서 대접을 받는 것이 좋은지 은퇴를 하고도 여전히 그렇게 사십니다. 가진 것은 점점 늘어만 갑니다. 세상이 비난을 해도 막무가내로 그렇게 사십니다. 자신이 병이 들고 자녀가 낭패를 당하는 신호를 받고도 여전히 그렇게 삽니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예수님은 이미 버렸고 따라 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목자 앞에서 어려워하고 이런 목자의 설교를 또 들으려고 교회에 갑니다. 그리고 설교시간에 좁니다.
큰 회복이 필요합니다. 성도가 우선 분별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 분은 교사이지 목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교사의 월급과 대우를 받으시면 됩니다. 교사가 목사의 대접과 월급을 받으면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성도가 모두가 이렇게 잘 배우면, 이렇게 배우지 않고 이렇게 배운 성도를 감히 강단에서 월급을 받고 가르치려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도 배우지도 못한 목사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절대로 어려운 사람을 보고서 지나칠 수도 없고 사랑이 있으면 절대로 타인의 희생으로 호의 호식을 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랑의 대상이 있는 현장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남자가 하면서 여자의 몸만 탐을 내어서 시도 때도 없이 덤비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곤 여자가 처한 현장에 가지 않으면 이 사람이 정말로 여자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렇지만 롯의 아내가 세상을 버리지 못해서 여전히 뒤를 볼 때 나도 같이 세상을 바라보는 문제는 또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세상에 계셨습니다. 제자를 훈련하시기 위해서 계셨지만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어려운 분들과 함께 들판에서 잘 곳도 없이 쉴 곳도 없이 지내신 것입니다. 123층 롯데타워의 주인이 롯데타워를 방문했지만 잘 곳이 없어서 아무도 주인을 알아보지 못해서 밤이 되어도 재워주지 않아서 그래서 롯데 타워 주변의 들판에서 늘 노숙을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주님은 그렇게 어렵게 사는 성도와 들판에서 함께 계십니다. 모든 어려운 성도와 함께 하시고 고난을 받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이렇게 살기가 어려운 것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하루에 많은 사람이 우리와 같이 이 세상을 도무지 살 수가 없어서 스스로 죽고 이 죽은 영혼이 날마다 주님 앞에 가서 이런 현실을 낱낱이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렵지 않으면 절대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더 잘 살고 더 벌려고 하는 것이 대세요, 추세요, 희망이요 삶의 목적이 되어서 너무나 바쁘게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5. 회개하는 것이, 절차를 거쳐서 성령을 받고 사는 것이 너무나 쉬운 삶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예수님께 잘 배우고 사도행전 2장 38절에서 제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를 잘 설명하셨습니다. 반드시 이 절차를 모든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성도가 거쳐야 합니다. 제가 가장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제 글에는 이 내용이 대부분 다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모두가 암송을 하시고 반드시 이대로 절차를 지키시어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개역개정)
38.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39. 이것은 우리 주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곧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공동 번역)
38. Peter replied,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And you wi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Spirit.
39. The promise is for you and your children and for all who are far off -- for all whom the Lord our God will call."(NIV)
어떤 이는 회개가 하려고 해도 잘 아니 된다고 합니다. 저도 잘 되지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서 잘못이 보이면 즉시 하나님께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구하고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회개는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요구하는 대로 사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모든 삶의 영역에서 고전 13장 사랑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인내하고 절제하고 그리고 자신을 죽이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마음에서 우러 나오도록 기다리다 간 일생을 다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을 하고자 하면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가장 잘 도와 주심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작은 부분부터 하시면 됩니다. 바로 순교를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면서 실천을 하면서 사랑도 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랑하고자 하는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시고 사랑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을 절대로 그냥 두시지 않고 도우시고 기뻐하시고 함께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니 사랑이 있는 곳에 늘 계시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절차를 지켜서 성령을 받으면 능력을 받게 됩니다. 능력은 하나님을 일을 쉽게 하게 하고 모든 문제를 작게 만들며, 자신이 하지 못하던 일을 하게 하고 그리고 세상에서 어떤 상황에서도 견디게 합니다. 회개가 어렵게 느끼어져도 어떻게 어떻게 힘을 내어서 하면 주님도 반드시 회개를 도우시고 이렇게 해서 성령을 받으면 남은 삶은 성령께서 다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고시에 합격하고 나면 공부할 때 어려워도 여생은 비교적 평안하게 인정을 받으면서 살 수가 있는 것과 같이 이보다 더 훨씬 더 성령을 받으면 좋은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잠시 정말로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삶이 너무나 안전하고 쉽고 그리고, 성령세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일생을 사는 것보다 회개가 너무나 쉬운 일임을 믿고서 회개를 우리 모두가 힘을 내어서 같이 해 봅시다. 사랑을 해 봅시다. 오늘부터 주변에 작은 사랑을 시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