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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대해서

부활의 필요성: 부활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작성자다윗|작성시간19.04.25|조회수881 목록 댓글 0

부활의 필요성: 부활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할렐루야! 최근에 부활에 대해서 묵상하며 기도하며 공부하게 해주시고 부활의 필요성에 대해서 이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무덤에서 부활을 했듯이 우리도 역시 무덤에서 부활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늘 바울의 고백대로 죽어야 할 때 잘 죽게 하심으로 우리도 죽어야만 부활할 수 있음을 잘 깨달아서 이 세상을 살면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자랑에 물들지 않고 늘 깨어서 믿음을 지키며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충만을 늘 사모함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우리의 남은 삶이 되게 하소서!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늘 주님과 동행하며 주변을 밝히는 빛이 되고 수많은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뱀과 같이 지혜롭게 비둘기와 같이 순결하게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각자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끝까지 잘 지고 가게 하소서!

샬롬! 부활에 대해서 묵상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서 얼마 전에 여러분의 교수님의 훌륭한 글을 올렸습니다. 정말로 교수님들의 말씀과 같이 부활에 대한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늘 부활을 소망하면서 이 세상에서 자신을 절제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부활의 묵상과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더욱 힘을 내고 더욱 용기를 내고 더욱 열심을 내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또 열심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부활의 필요성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부활에 대한 구약의 예언과 그리고 구약에 나타난 부활 사상에 대해서 다른 분들의 글을 찾아서 정리를 하는 중에 우선 부활의 중요성에 대한 공부를 먼저 했고 이 시간에는 부활의 필요성에 대해서 배워보고자 합니다.

1. 두 부활과 하나님의 전능과 계획하심

부활은 먼저 주님의 부활이 2000년 전에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간 후 3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는데 이와 같이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따라서 역시 부활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즉 부활은 주님의 부활과 모든 죽은 자의 부활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이시기도 하지만 또한 성경을 통하여 밝히신 계획의 실행이기도 했습니다. 즉 주님의 부활은 구약에 이미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다음에 더 자세하게 면밀하게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로 미리 구약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내용이 있고 실제로 이 예언과 같이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으시고 죽으시고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2. 주님의 부활의 이유

이 부분은 인터넷에서 주님 나라 분의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제가 공부를 하다 보니 너무나 무지한 부분이 많아서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다고 했는데 부활에 대해서 잘 전하지 못하면 많은 올바로 아는 분들의 주장과 같이 온전한 예수님을 전하지 못함을 잘 배우고 있습니다. 이제 잘 정리된 내용을 같이 보겠습니다. 경북대를 나오시고 총신대를 나오신 주님 나라라는 분의 글입니다.

주님 나라: 총신대, 경북대 철학과


1)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무흠과 무죄를 증명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죄로 죽은 것(겔 18:20)이 되며, 이는 예수님께서 다른 죄인들의 죄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결론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은 무흠하시며 죄가 없는 분(히 4:15)이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2)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한 구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죄의 값인 사망(롬 6:23a)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후(롬 4:25a) 부활하심으로써 예수님의 대속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죄 사함 의롭다 함 구원을 베푸시는 구주(롬 4:25b, 빌 2:8-11)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3)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하여 믿는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써,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들도 부활할 수 있으며(고전 15:20-22), 부활 후에 받는 영생 내지 영벌의 내세를 믿고 바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죽은 자의 부활도 없을 것이고(고전 15:13), 성도들이 부활하여 누릴 내세의 영생에 대한 소망이나 믿음도 헛것(고전 15:17)이거나 없었을 것이며, 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들도 내세가 없는 만큼 육신의 죽음 그것으로 끝남으로써 가장 불쌍한 자들로 전락하였을 것입니다(고전 15:18-19).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박멸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사 성도들에게 부활의 내세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주셨습니다(고전 15:20-23).

너무나 잘 정리를 하셨습니다. 내용을 그대로 다 수용하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로마서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해서 살아나셨다는 부분은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하고 전한 부분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3. 우리는 왜 부활이 필요한가?

제가 지금까지 이해한 구원에 대한 부분과 연결을 시켜서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구원에 대한 부분은 구원의 파노라마라는 코너를 통해서 조금씩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데로 첫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는 완벽한 환경에서 영생의 존재로 창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 즉 선악과를 따 먹기 전까지 죽거나 병들 염려가 조금도 없이 낙원에서 영원히 잘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서 즉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죽은 존재, 죽을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망이 들어온 것입니다. 죄의 대가로 말입니다. 그리고 땅이 저주를 받아서 엉겅퀴를 내고 에덴과 달리 이제는 인간이 땀을 흘리고 수고를 해야만 먹고살게 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의 땅과 죄가 들어온 이후의 땅은 저주로 인해서 다른 땅에 되었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이제는 죄로 인해서 저주를 받은 땅에서 수고하며 살다가 반드시 죽게 되었습니다. 누구도 이 죽음을 이길 장사가 없었습니다. 진시황도 피라미드를 세운 파라오도 그 어떤 위대한 힘 있는 인간도 이 죽음을 피하고자 애를 썼으나 죽었습니다. 공자도 죽고 석가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생명을 연장하고자 별 수를 인간이 다 쓰고 있고, 동물의 장기와 타인의 장기를 사용하고 심지어는 인간의 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방법도 행해지고 있습니다. 죽어야 할 인간이 더 살기 위해 별 수를 다 동원하고 있으니 결국은 범죄로 끝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70-80세의 나이를 더 연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는 인간에게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율법을 주시고 죄의 용서를 이 민족에게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죄의 용서가 아니라 사형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죄의 용서였고 이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을 결국 멸망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동정녀의 몸으로 오셨고 죄의 삯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다시 영원한 삶을 얻을 기회를 온 인류는 가지게 되었습니다. 죄와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고 사망에서 자유롭게 되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인간을 제외한 피조물과 땅은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리고 이 땅에는 여전히 믿지 않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런 환경 속에서 믿는 이도 믿지 않는 이와 조금도 다름없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죽음을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모든 크리스천이 반드시 불신자와 같이 이 세상에 살다가 반드시 죽게 되고 죽은 육신은 무덤에 들어가고 곧 썩게 될 것입니다. 즉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땅이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땅을 더욱더 오염시키고 훼손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세먼지는 대책이 없고 물값이 석유 값보다 더 비싸고 그리고 공기도 오염이 되어서 마시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반드시 죽고 땅도 새로운 땅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의 부활을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반드시 육신이 죽기에 그리고 환경이 점점 더 악화되기에 우리는 부활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은 이 세상에서는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새롭게 되어도 우리가 먹고 마실 물과 공기가 지금과 같다면 그리고 더 악화가 된다면 이런 세상에서의 삶은 절대로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고 이 새롭게 부활한 사람들이 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과 하늘을 창조하셨듯이 이 땅과 하늘은 사라질 것입니다. 해도 빛을 읽고 별들도 떨어지고 하늘이 두루마리와 같이 말려서 사라질 것입니다.

부활된 새로운 육체를 가진 구원을 받은 성도는 즉 마지막 심판을 견디고 의인으로 인정을 받은 성도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부활의 몸과 영혼을 가지고 이제는 주님과 사랑을 실천하고 의롭게 산 사람들과 영원토록 살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더욱 자세한 공부가 요한 계시록을 공부하면서 필요하고 그리고 더욱 자세하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믿음을 주는 다른 분의 글을 첨부해서 더 온전한 이해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


본문: 고린도전서 15:1-58

제목: 예수님의 부활의 의미

15. 4. 5 향기나무교회 주일 오전 예배 서 병안 목사


중심 주제: 복음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뿐 아니라 부활도 포함된다.


1. 오늘은 전 세계 기독교계가 정한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왜 오늘이 부활절인가는 지난 몇 년간 여러 번에 걸쳐 설명했다. 일 년에 한 번 들으니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잘 생각이 안날 것이다.


2. 부활절을 정하는 법칙은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정해졌다. 춘분 후에 오는 만월 후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삼기로 했다. 만약 만월이 일요일이면 그다음 일요일을 부활절로 한다. 이렇게 정한 법칙에 따라 부활절은 대략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정해진다. 금년의 경우 지난 3월 21일이 춘분이었고 그 뒤 만월이 지난주 금요일인 4월 3일이었으니까 만월 뒤 첫 번째 주일인 오늘이 부활절이다.


3.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이 성도인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다. 일반적으로 구령 상담을 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위주로 복음을 전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전한 복음 안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뿐 아니라 부활도 복음의 핵심으로 말하고 있다. (고전 15:3-4)


4. 오늘은 고린도전서 15장을 중심으로 부활이 성도들의 믿음 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복을 나누기로 한다.

 

 Ⅰ.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다.(vv.3-4)


1. 오늘 본문에는 한 영혼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구성요소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뿐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도 같은 비중으로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음뿐 아니라 장사 지낸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심도 이미 성경에 기록된 예언이라고 말한다.


2. 먼저 예수님의 죽으심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곳을 찾아본다. 창세기 22장과 출애굽기 12장에서는 어린양의 대속의 죽음으로, 시 22편과 이사야 53장, 그리고 다니엘 9:26절과 스가랴 12:10절에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구체적으로 예언되어있다.


3.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는 시편 16:10절과 이사야 54:7, 그리고 호세아 6:2에 기록되어 있다. (시편 16:10)“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호세아 6: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4. 예수님께서도 살아계실 때 사역 중에 스스로 자신의 부활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셨다. 마태복음 12:40에서 예수님께서는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0:18-19에서는 자신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손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지만 삼일 만에 살아난다고 말씀하셨다.


5. 죄인이 모든 죄 용서받고 구원받음에 있어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은 생략할 수 없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완성은 영원한 천국에 입성함으로써 완성된다. 따라서 여러분의 죄가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용서받는다 하더라도 천국 생활을 위한 새 몸으로 부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완성된 구원이 아니다. 부활이 빠진 복음은 반쪽 구원인 셈이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주어졌는데 죽은 후 부활하지 못하면 그것을 완벽한 구원이라고 말할 수 없다.


6. 죄인들을 완전하게 천국까지 인도하는 구원의 복음은 예수님의 우리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 죽으심과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장사된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생명의 복음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1:25-26절에서 오빠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이렇게 위로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을 전할 때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뿐 아니라 장사된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부활도 함께 전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죄와 멸망에서 완벽하게 구원하는 성경적인 복음이다.


Ⅱ. 부활은 위대한 승리다.(vv.12-19)


1. 12절부터 19절까지 소리를 맞춰서 다시 한 번 읽는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기록되었고 전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거지 다시 사는 부활은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써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2. 만일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것이 없다면 예수님도 다시 살지 못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다면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구원의 복음도 헛것이고 내 믿음도 헛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한다. 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일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십자가 죽음을 통한 영원한 속죄도 거짓이며 우리는 모두 여전히 죄 가운데 그대로 있을 것이다. 만약 인생에 부활이 없어 오직 이생뿐이라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 부활하셨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예수님께서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믿는가? 아니면 고린도 교회 사람들처럼 부활은 없다고 믿는가? 다시 질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부활하실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럼 여러분은 죽은 후 다시 살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게 믿고 싶어요! 다시 살고 싶어요!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4. 내가 ‘부활은 위대한 승리’라고 말씀드렸다. 왜 부활이 위대한 승리가 될까? 그것은 예수님 이전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지 다시 사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옛날부터 죽음을 가장 무서워하게 된 것이다. 형벌 중에 가장 무거운 형벌이 사형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어디인가? 공동묘지 아닌가? 거기보다 더 무서운 곳이 어딘지 아는가? 죽은 시체 옆이다. 죽은 시체가 왜 무서울까? 자기도 그 시체처럼 죽을까 봐 무서운 것이다.


5.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똑똑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공평하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서운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은 기적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세상 사람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죽음의 권세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6. 예수님의 부활을 우리가 기뻐하고 함께 기념하고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런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본문 20-26절을 함께 읽는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죽은 사람들의 첫 열매, 처음으로 부활하신 분이 되었다. 그 부활의 사건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누구든지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된 것이다.


7. 이런 성경의 약속으로 인해 예수님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위대한 승리, 즉 부활을 보장받게 된 것이다. 42-45절을 보라. 부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부활의 몸은 영원히 썩지 않는 신령한 몸이다.


8.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다. 왜? 죽음의 권세를 영원히 물리쳤기 때문이다. 55-57절을 한목소리로 읽는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가 믿음 안에 있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찬양한다.


Ⅲ. 부활은 거룩한 소망이다.(vv.35-49)


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가 부활할 때는 이런 병들고 연약한 무언가 조금 부족한 육체로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그때는 어느 부분도 연약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도 부활에 대하여 무척 궁금한 사람이 있었나 보다. 35절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이 사람은 자기 지식으로는 죽은 자의 부활이 도저히 이해불가였다.


2. 42-44절을 보라.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믿음 안에서 죽으면 썩을 몸으로 죽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었는데 강한 것으로 다시 살고, 육의 몸으로 심었는데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된다. 이것이 부활의 신비다.


3. 성경 한곳만 더 본다. 요한일서 3:2-3을 편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장래의 우리 모습에 대하여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장차 우리의 모습을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변하게 될 것이니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라면 예수님처럼 자신을 깨끗이 하라고 권하고 있다.


4.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갖게 만들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죽음 앞에서는 꿈도 멈춘다. 장래 계획도 멈춘다. 소망도 멈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 처음으로 부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몸을 믿음으로 심었을 때 썩지 않는 신령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이다. 나는 이 소망을 거룩한 소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5.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보았다.

부활은 구원의 완성이다. (vv.3-4)

부활은 위대한 승리다. (.12-19)

부활은 거룩한 소망이다. (v.35-49)

부활을 설명함에 있어서 서론격으로 부활의 중요성과 부활의 필요성에 대해서 여러 교수님과 또 앞서가시는 분들의 글을 통해서 같이 알아보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부활의 구약의 예언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함께 구약에 있는 부활 사상도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도 사복음서를 통해서 알아보고 그리고 구체적으로 일어난 부활에 대한 내용을 역시 사복음서를 통해서 알아보고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도들의 서신서를 통해서 부활의 증거 등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리고 부활을 소망하는 우리의 현실의 삶에서의 자세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이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부활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장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이 지식과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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