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나라와 로마서 4(Kingdom of God and Romans)

작성자다윗|작성시간22.09.22|조회수595 목록 댓글 0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 나라와 로마서 4(Kingdom of God and Romans)

 

샬롬! 멋진 가을 날입니다. 하늘은 맑고 높습니다. 온 세상은 푸릅니다. 그리고 들판은 익어가는 벼로 누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공부하고 사색하고 진리를 찾기에 참으로 좋은 계절입니다. 모든 분이 진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고 죄에서 법에서 그리고 죽음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다 하는 것을 기본으로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낸 것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예수님도 그리고 성령님도 깊이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도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42년 전에 카투사로 복무하게 되어 부천에 있는 부대로 발령이 나서 소대를 배치를 받고 중장비 정비병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는데 주일날 거의 평생에 처음으로 부대에 있는 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다음 주 대표 기도에 넣어 기도를 하는 것도 그런 분위기에 가는 것이 무서워 군 생활 동안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기존에 다니던 병사들도 찾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교회 생활에 대해서 배우고 성경을 배웠으면 참 좋았을 것인데 교회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제대를 하였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이라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하늘에 계신 분이시기에 하느님이시고 하나뿐인 유일하신 분이시니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개신교 목사이니 하나님으로 적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모르고 살고 있을 수도 있고 모르고 살았던 시절도 있을 수가 있고 그리고 그 존재를 잘 믿고 경배와 찬양을 잘 드리시는 분도 계십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 우리는 그냥 우리가 아는 지식과 경험과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삽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고 또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리고 귀에 들리지도 않고 손으로 느껴지지도 않으니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하고 그렇게 믿고 사는 것입니다. 모태로부터 신앙인이 아니면 대부분 신자들도 이렇게 과거에 산 경험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는가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신 분들도 있고 이런 하나님을 다양한 방법으로 만난 분들이 예수님을 증거함으로 즉 전도함으로 이를 받아들여 하나님을 믿게 되신 분도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분들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들이 인식을 할 수 있게 나타나시면 믿지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알고 믿던 세상과 다른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상과 어떤 분이 존재하며 그분의 모습과 음성과 능력을 체험하면서 압도를 당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실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의 지식과 경험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되고 정말로 믿어야 하고 진리가 되는 하나님과 그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교회 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와 감화와 감동을 통해서 진리를 배우고 눈에 보이는 세상과 연결이 되어 있지만 과거에 아무것도 보이지도 인식도 못 하던 세상과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서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은 전도자들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과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듣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믿음이 생겨서 하나님과 교회와 성경을 믿고 또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들은 모든 분이 가상의 세계와 가상의 어떤 존재를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예수를 믿는 분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을 죽음으로 순종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틀림없이 존재하는 것들은 자연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공기도 보이지 않고 바람을 통해서 느낍니다. 전파도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전파를 통해서 영상이 우리 눈에 들어옵니다. 전기도 보이지도 않지만 전기로 우리는 많은 일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는다 하는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삼위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통해서 가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로마서를 기원후 57년 경에 쓰신 바울 사도도 역시 구약 성경은 너무나 잘 알고 잘 믿고 잘 실천을 하던 사람이었지만즉 구약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전능하시고 유일하시고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은 잘 믿었지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신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지금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의에 대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설명하는 로마서를 쓰게 된 것은 그분이 믿지 않던 예수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장사되셨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바울 사도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을 알려 주심으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분의 종이 되어 그분을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증거하는 이방인의 사도의 삶을 사시면서 많은 사람에게 전도하고 그리고 교회를 아시아와 그리스에 세우시고 로마에 있는 교회에도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데 우리가 공부하는 로마서입니다. 예수를 만났을 수도 있고 예수님에 대해서 당시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으니까 잘 들었지만 믿지도 않고 심지어 예수를 믿는 사람을 구약의 성경만 믿는 유대교에 방해가 된다고 믿고 이들을 잡아서 감옥에 보내려고 온 세상을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가장 큰 원수가 되었던 인물이 이렇게 온 세상의 크리스천이 다 읽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서를 쓰고 로마서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며 그리고 사랑이심을 예수님을 통해서 증거하고 또 성령님의 사역과 이렇게 자신과 같이 예수님을 믿은 성도가 성령을 받고서 성령의 인도로 어떻게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서 사랑을 실천하고 그리고 당시에 로마 즉 네로 황제가 살던 예수를 믿으면 이제는 유대인의 박해가 아니라 당대 지구 최고의 권세를 지닌 로마에서 박해를 견디며 어떻게 신앙생활 즉 사랑을 실천하고 그리스도 인으로서 정의롭게 살아야 함을 증거했는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2천 년 전의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온 세상의 인구가 약 2억 정도로 추산이 되는데 당시 로마 제국은 약 5천6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작은 로마가 지중해 주변의 모든 나라를 정복하고 속국으로 만들어서 거대한 제국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2천 년 전과 로마 시대는 너무나 다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2천 년 전에 고조선, 부여 등이 존재했지만 로마 시대와 같이 거대한 구조물과 철기를 사용하며 살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청동기 시대가 끝나면서 철기 시대가 시작이 되던 때에 이미 로마는 세분화된 로마법을 가지고 큰 건물을 돌로 짓고 황제가 다스리던 시기였으니 우리나라의 역사만 생각하며 로마를 생각하면 아니 됩니다. 고인돌 루트를 따라서 바다로 이동한 우리의 진정한 조상들이 인도와 동남아와 그리고 필리핀을 거쳐서 남쪽 섬들과 전라남도에 처음으로 상륙해서 약 1천 년의 에덴과 같은 삶을 누리며 중국과 일본의 침략도 없이 평화를 구가하며 살 때 북쪽으로부터 철기를 가진 민족이나 집단이 들어와서 이들을 힘들게 하던 시기로 추정이 됩니다. 3천 년이 지나도 변치가 않는 논농사 초가집 그리고 같은 성씨로 모여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죽으면 주변의 돌로 무덤을 만들어서 3천 년의 세월을 견디며 그들의 산 역사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밝히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우리의 진실한 역사입니다.

                                                                   고인돌의 분포도

                                                       남북 길이는 1.800km로 정정합니다.

 

다시 로마로 돌아옵니다. 이런 로마 제국 시대에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로서 속국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약 586년 경에 남아 있던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므로 나라가 없어져서 바벨론에 이은 페르시아의 종살이를 하다가 다시 그리스의 지배를 받고 이제는 로마의 속국으로 살 때 예수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려 사람의 몸을 입고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처녀를 통해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깐 예수님께서는 로마의 황제와 로마법이 통치하는 로마 제국에 그 나라에 속국이 되어 빌라도 총독의 지배를 받는 유대 땅에 오신 것입니다. 당시의 로마 황제는 아구스도라 성경에 기록된 아우구스투스입니다. 누가가 기록한 복음에 있습니다.

예수의 나심 누가 복음 2장

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구레뇨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ÆSAR · DIVI · FILIVS · AVGVSTVS, 기원전 63년 9월 23일 ~ 서기 14년 8월 19일)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7년 ~ 서기 14년)이다. 또한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조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초대 황제이기도 하다.」

누가복음을 기록한 누가는 의사였다고 하는데 AD 8-84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바울의 동역자로서 사도행전도 기록을 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에 살았고 예수님께서 어른이 되셔서 사역을 시작할 때는 20대의 청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서 그분의 일생에 대해서 잘 살펴서 의사답게 기록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보내신 성령을 받고 바울과 같이 선교를 하면서 약 58-65년 사이에 누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로마가 온 지중해 주변의 세상을 다스리면서 화폐를 발행했는데 당시에 황제의 모습과 이름이 기록된 금화입니다. 후에 로마 시대 유리 제품이 통일신라 시대에도 사용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배우면서 누가복음과 다른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온 인류에게 이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논하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지 않으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삼위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반드시 동시에 주목을 해야 하고 로마서를 이해하고자 할 때도 역시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뜻을 이루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시며 이를 위해서 성도들에게 능력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성령님의 사역을 동시에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갓 교회에 오신 분들에겐 생소한 언어들일 수도 있고 이제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싶으신 분들에겐 조금 이해가 쉽게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모습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되어 있음을 정통교회의 통일된 교리입니다. 개신교, 천주교, 그리고 정교회에서 공히 인정하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한 교리입니다.

하늘나라에 계시면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로 죽은 인간을 구원하셔서 영생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도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겐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도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지 않고 의롭다 여겼습니다. 왜 스스로 의롭다 여겼습니까? 온 세상의 모든 인류의 민족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만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으니 기원전 약 1446년 경에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하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구원하시고 홍해를 갈라 건너게 하시고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구약 성경 모세 오경에 있는 율법을 이 민족에게 주시며 이를 지키면 복을 받고 이를 어기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나님과 체결(구약- 구약 성경에 있음) 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이 율법을 잘 지키며 만약에 죄를 지으면 짐승을 잡아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림으로 죄를 용서를 받게 하셨기에 이렇게 율법을 철저히 지키던 당대 최고의 율법자인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의롭다 생각을 한 것입니다. 바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율법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 흠이 없고 죄가 없다고 믿고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이와 같이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경도 모르면 스스로를 흠이 없고 정의롭고 깨끗하다고 굳게 믿고 살고 예수님께서 당신이 지은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오셔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당신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해도 절대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그렇게 살았던 사람으로 스스로 율법도 모르면서 의롭다 생각하고 깨끗하다고 생각하고 예수를 믿으세요 하면 나를 믿지 왜 예수를 믿어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죄에 대해서 이해도 인식도 못 하고 살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울 사도와 같이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은 저도 바울 사도와 같이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이렇게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예수님이 없이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자신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과 늘 함께 하시고 싶어 하시고 또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의 반쪽인 구약 성경을 잘 배우고 구약 성경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살던 바울에게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굳게 믿고 이런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아서 죽이고 옥에 가두기 위해서 믿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서 잡으려 다녔는데 다메섹이라는 곳에서 부활하신 너무나 밝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고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접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알던 인간 예수,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예수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도 못 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니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믿음과 경험과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던 사상들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누구나 이렇게 예수님을 직접 만나면 혼비백산하고 넋이 나가고 자신이 잘못 알고, 잘못 살고, 자신이 잘못 믿고 살며, 정의롭고 사랑이신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바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만남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 똑똑히 들을 수 있게 말씀하시고 이런 바울을 만나서 새롭게 변화를 시킬 아나니아에게도 나타나셔서 바울이 올 것이니 어떻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모든 일정을 다 포기하고 이제는 눈이 멀었고 정신이 나간 바울이 해야 되는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무서운 예수님께서 명하신 아나니야를 만나는 일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겠다 하는 생각은 그의 마음속에서 조금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면 순간에 이렇게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에게 가서 안수를 받고 눈이 회복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잡으려 다니던 예수를 믿는 사람과 똑같이 되고 이들보다 더욱더 열심으로 예수를 전하게 되어 교회를 세우며 편지도 교회에 보내어서 성도들을 세우며 교육을 시키던 중 말씀드린 데로 57년 경에 그리스의 고린도에서 로마로 보낸 편지가 우리가 배우는 로마서입니다. 아래 사도행전은 이런 경험을 바울이 전하고 있습니다.

행 21: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4.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행 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서기관으로서 즉 율법을 연구하며 율법을 잘 지켜서 율법으론 흠이 없다고 자부하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겸손히 예수님께 배웁니다. 성령님께 배웁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대로 절대로 살지 않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고 있습니다. 당시의 성도는 대부분이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첫 열매로 자신들을 표현했습니다. 혹은 성령을 받은 우리라 표현을 했으니 로마서 8장 23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에 이렇게 율법을 지키며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며 성전 중심의 삶을 살던 유대인들에게 오셨고 이들을 먼저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에 앞서서 세례자 요한을 먼저 보내셨는데 이분께서 이렇게 사는 유대인들을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요한의 말을 믿는 사람은 요단강에 나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천국이 가까워졌다고 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그분께서 하시는 병자를 고치고 물 위를 걷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신 분들은 그분의 제자가 되었으니 베드로와 요한 등이며 주로 갈릴리 바닷가에 살던 어부였으며 이들이 12제자 그리고 72제자 그리고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까지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무리가 늘어나자 유대교의 존립에 위기를 느끼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참고 볼 수가 없었던 당시의 유대교 제사장과 율법학자 그리고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게 된 것입니다. 엄연히 빌라도가 로마의 총독으로 로마법을 가장 상위법으로 온 이스라엘인이 지키면서 살기를 바랐는데 이 법으로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일이 없었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당시의 유대인들의 주장에 눌려서 십자가형을 허락했고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이를 바울 사도는 로마서 5장에서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롬 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바울 사도는 이제는 스스로 절대로 의롭다 인정하지 않고 죄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스스로 구약의 율법 즉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을 잘 지키므로 의롭다 굳게 믿던 바울이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고 아나니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되었을까요? 이제는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하셨던 말씀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아야만 소망이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사도는 율법을 잘 지키는 것으로 절대로 죄에서 벗어 날 수가 없음을 그의 서신서를 통해서 밝히고 있습니다. 과거의 자신이 알고 믿던 삶을 완전히 부정하고 자신과 같이 그렇게 사는 모든 유대인이 예수님을 믿고서 죄를 용서받고 이를 통해서 성령을 선물로 받고 거듭나게 되어서 새로운 창조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렇게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고 싶은 분이 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이요, 복음의 능력이 구약만 알고 믿던 유대인 중의 유대인 바울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알던 인간 예수가 절대로 인간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의 모습과 구약의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게 된 것입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제정신일 수 있는 인간은 지구상에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성령님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듯이 잘 배웁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이 이제는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고 자신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를 밤낮으로 기다렸는데 그분이 막상 오셔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이다 해도 절대로 믿지 않았는데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믿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게 되니 이 모든 말씀이 분명하게 되었고 베드로 등과 같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죄에 대한 인식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첫 걸음이며 이 죄를 회개하는 것이 예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시에 모든 유대인이 믿던 구약 말씀이 자신에 대한 글임을 밝혀 주셨습니다. 구약의 말씀에 즉 모세 오경 5권, 역사서 12권, 시가서 5권 그리고 예언서 17권의 성경을 당시에 헬라어로 번역을 해서 잘 가지고 읽고 공부하고 있었지만 수도 없이 기록된 예수님에 대한 글은 이해를 하던 사람이 거의 없었고 종교지도자는 더욱 드물었습니다. 이런 성경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롭지 않고 죄인으로 살던 모든 당신의 종교 지도자를 책망하고 독사의 자식으로 부르니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한 이런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을 박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제 예수님의 책망에 대해서 이해가 되었습니다. 정의로우시며 사랑이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율법은 하라는 조항 265개 하지 말라는 조항 365개로 합하여 613조문으로 되어 있는데 모세 오경에 다 있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이를 조문 조문 지키는 일에는 열심이나 이 율법이 진실로 이루고자 하는 의와 사랑과 믿음에 대해선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를 드시면서 가르치셨는데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 십계명을 지키려 양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고 작은 조항에 충실해서 가장 중요한 사랑과 의를 실천하는 데는 소홀한 이들을 책망한 것인데 이를 싫다고 한 것입니다. 사랑과 의를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을 악용해서 도리어 의와 신과 자비를 저버리고 사는 당시의 지도자의 위선을 책망한 것인데 이들은 이를 듣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자신과 같이 율법을 조문 조문 잘 지켜도, 또 스스로 흠이 없다 여기고 살아도 진실된 사랑과 정의가 없이는 절대로 의인이 될 수가 없고 자신이 이제는 정말로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1-3장을 통해서 유대인도 죄인이며, 율법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마음대로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대가가 있고 이는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죽여야만 죄를 용서받는 원리도 구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1000년의 피 흘리는 짐승의 제사를 통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이제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되는 존재임을 분명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모르고 사는 이방인들은 더욱 소망이 없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로마서를 통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다 죄 아래에 있다

롬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모든 세상은 다 죄로 물들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스스로 올바르게 살고 있고 법이 있고 법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는 하나 실상은 모든 사람은 전혀 소망이 없는 죄인에 불과합니다. 로마법이 비록 잘 정비가 되어 있고 가장 당시에 발달된 법으로 모든 로마인이 알고 있고 믿고 살고 있지만 이 법은 당시에 유대인들이 지키던 율법에 비교하면 하나님도 없고 당연히 정의도 사랑도 없던 불완전한 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가 지금 모세 오경을 읽고 살펴보면 이 세상 어떤 나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사랑과 정의와 믿음을 실천하게 위해서 인간에게 주신 율법을 능가하는 법을 갖지 못하고 살고 있음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율법은 온 세상의 최고의 법으로 지금도 글자 한자 변치 않고 전해졌고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배우고 지켜야 하는 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밝히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화려한 로마의 모습을 보면서 이에 현혹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죄로 물든 동족 이스라엘과 그리고 죄로 물든 모든 사람의 처참한 모습만 보였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 보았던 분이시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을 직접 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복음서의 내용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등과 교제를 하면서 들었으리라 믿고 예수님과 같은 시대를 예루살렘에서 살면서 예수님의 하신 일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의 창세기를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죄를 짓게 되었고, 그리고 죄를 짓기 전의 에덴의 모습과 아담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실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한 명 즉 예수님께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 바울의 변화는 놀랍기 한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자신이 알고 있던 구약의 말씀과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때에 따라서 예수님과 같이 나누어 주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이런 변화된 영생을 지닌 바울과, 당시의 황제를 비롯해서 고관과 그리고 잘났다 주장하던 유대의 과거의 자신과 같은 무리들의 영생이 없는 삶을 보면서 그들의 비참함과 그들이 죽음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를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쳐 주고 구원으로 인도하고픈 열망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나는 구원 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아무리 학대하고 핍박하고 박해를 해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화려한 삶이 다라고 믿고 살고 있는 그때나 지금의 사람에 대한 사랑이 불타 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죄를 모르고 그리고 예수님도 모르고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이 다라고 믿고 사는 사람이 곧 죽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다른 성경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바울 사도는 이런 내용을 더욱 압축해서 로마서 3장 21-26절로 설명을 했습니다.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 표현이 된 말씀은 죄를 범하기 전 영생을 누리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에덴에서 아무런 고통도 없이 살 수 있었던 죄를 짓기 전의 아담과 하와의 에덴의 꿈과 같은 생활을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 수가 있게 창조가 되었는데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어김으로 죄를 짓고 죽은 자가 되고 죽는 신세가 되었는데(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 이를 인간은 알지 못하고 오직 이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욕망으로 타인을 이기면 살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고 70-80년이 지나면 죽게 되고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사는 정말로 소망이 없는 존재임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이런 죽어있고 소망이 없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수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의 과거에 지은 죄를 바로 벌하지 않으시고 길이 참으심으로 죄를 간과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피를 흘리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수난을 받고 죽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의 의를 나타내십니다. 우리 모두가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하는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서신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 고난을 받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며 또 이런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정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의의 나타남이고 이렇게 순종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믿는 이가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함께 배우는 로마서의 주제 하나님의 사랑이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으니 앞에서 인용한 로마서 5장 6절에서 8절의 말씀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증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가 경건하지 아니 할 때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고 하십니다. 즉 우리가 죄인이 되어서 영생을 누리지 못하고 또 하나님도 모르고 날마다 죄를 짓고 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의로운 이를 위해서 죽는 것도 쉽지 않고 착하게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사람을 위해서도 죽는 이가 혹 있기도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죽으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독생자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하십니다.

죄는 명령을 어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해서는 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명하셨습니다. 이 중에서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따 먹으므로 아담은 죄를 짓고 낙원에서 추방을 당하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같은 곳에서 수고하고 땀을 흘리면서 살게 된 것이며 영원토록 살 수 있었던 몸이 죄로 인해서 죽는 신세가 되었고 이렇게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인류에게 죄가 전가가 되었고 또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우리의 양심을 어기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을 어김을 통해서 죄인이 되는데 모든 사람이 이렇게 죄인이 되어 있으니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일을 쉬지 않고 하고 하나님께서 하라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니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와는 완전히 원수가 된 것입니다. 심지어 이렇게 된 인간이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의 생명보다 훨씬 못한 자연이나 혹은 악한 신을 우상으로 삼고 섬기고 경배하며 살면서 온갖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고 입을 열면 악을 행하고 몸을 움직이면 죄를 지으면서 이스라엘을 제외하곤 모든 인류가 서로 정복하고 죽이고 멸망을 시키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즉각 즉각 개인이 죄를 범하면 바로 죽음으로 혹은 다양한 징계로 벌을 내릴 수가 있었지만 오래 참으시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우리들이 지은 모든 죄를 간과하셨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시고 이 아들 예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서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 돌아가게 하십니다. 이제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게 되는데 이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가능하게 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이에 대해서 잘 말씀하시고 있는데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복음의 구절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의를 로마서는 이렇게 세밀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잘하는 사람도 사랑을 잘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우리에게 해를 행하는 사람은 바로 미워하며, 우리를 원수로 대하면 우리에게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바로 원수를 갚고자 합니다. 이 지구상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반응을 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고 사는 대부분의 자녀는 자녀를 위해서 희생을 하는데 자녀를 자신보다 더 사랑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을 어떨 때는 용서할 수가 있지만 자식을 괴롭히는 사람을 용서가 어렵습니다. 자식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사랑을 일생을 쏟는 존재입니다. 자녀가 부모보다 더 먼저 세상을 떠나면 가장 마음이 아프며 일생 동안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내어 주셨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가장 큰 고난을 받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피를 흘리시고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이 박히시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조롱을 당하면서 운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도 힘드신 일이지만 직접 감당하시는 예수님께서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감당하셔야 하셨고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이셨으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잔을 옮길 수만 있으면 옮겨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을 사랑하시는 확실한 증거라 하셨습니다. 어떤 유명한 장관이 20살이 된 아들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죄인인 우리에게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아픔과 사랑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큰 아픔을 참으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시고 고난을 받게 하셨습니다. 아들 되신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의 중한 짐을 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3일 만에 예수님을 부활시키시고 살아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받으라 명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그리고 이 세상을 심판하려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주가 오심을 늘 준비하고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속성이 사랑이시기에 늘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렇지만 또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를 미워하시고 심판을 하십니다. 죄인을 반드시 심판을 하시고 죄의 대가는 피를 흘림과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만 오직 택함을 받고 짐승의 제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도 역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고 멸망을 당하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비록 자신들은 선민으로 율법을 지키며 의롭게 산다고 했으나, 이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이들에게서 의인을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서 죽음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가장 귀한 아들을 내어주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고 그리고 자신과 원수가 된 우리를 건지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위대하고 크신 사랑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측량할 수가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이를 다 표현할 길이 절대로 없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작은 사랑도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변화가 되어서 이제 세상에서 사랑을 하고자 주변에 친절과 사랑을 베풀면 그냥 감사하게 받으면 되는데 우리가 사랑한 이들이 이런 우리의 행위가 사랑에서 비롯됨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이렇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자신은 이렇게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는 위대한 존재이고 우리는 사랑을 해야 되는 부족한 사람으로 종종 인식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작은 사람의 사랑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측량할 수가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이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하트와 검으로 나타내었습니다.

 

이제 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예수님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을 믿는 사람에게 어떤 변화와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확실한 증거를 살펴보았으니 그 사랑을 받아들인 우리의 위상은 과거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와는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로마서 5-7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율법이 오기 전에도 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죄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죄가 존재했지만 무엇이 죄라고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전에 모든 인류는 죄의 상태에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죄인지는 규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즉 죄형 법정주의가 실행이 되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서 무엇이 죄가 되는지 죄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지 명확하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었기에 이제는 명백하게 모든 인간의 죄를 율법에 따라서 판단할 수가 있게 되었고 어떤 인간도 유대인을 포함해서 완벽하게 율법을 지킬 수가 없기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입니다. 이는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비롯이 된 일이라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망이 왕 노릇 하게 되어 모든 인간이 영생의 본래 모습을 잃고 죽게 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진시황의 지하궁도 죽음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두가 불순종해서 죄를 범하고 사망의 종이 되었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즉 보혈과 십자가 대속으로 이를 믿는 자는 의롭게 되어 생명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됨으로써 새 생명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영생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의로우신 행위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만 이렇게 먼저 예수님께서 의로운 행위를 하셨으며 그 행위를 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서 우리의 의롭게 되는 과정을 설명을 하면서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이렇게 된 사람에게 성령께서 오시며 거듭나게 하시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절차적인 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앞 강의에 있습니다.

제가 좀 길게 설명을 드렸지만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은 대부분 교회에서 이런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듣고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성경을 배우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되기에 이런 절차를 대부분 거칩니다. 그렇지만 세례자 요한의 외침과 예수님께서 오셔서 곧바로 외친 회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제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이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사망으로부터 즉 죽음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영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다른 서신에서도 죽음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믿는 사람도 반드시 한 번은 죽는데 이는 바로 부활로 이어지기 때문에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잠을 잔다고 하셨고 우리가 수술을 위해서 마취를 할 때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마취가 깨면 바로 깨어나서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죽은 후에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그 죽은 시간의 간격을 절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바로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죽지도 늙지도 않는 완벽한 몸으로 이제 부활을 하게 될 것이기에 이제 죽음은 우리가 완전히 멀어졌고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를 굳게 믿고 우리의 육신을 위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고 죽음에 대해서도 담대히 맞이하고 우리를 죽음으로 위협하는 어떤 불의도 단호히 거절하고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은 온 인류가 쉬지 않고 추구해 온 가치입니다. 모든 태어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영원토록 살고자 했지만 죽음을 피할 길이 없었고 이렇게 시간이 지속이 되자 사람들은 죽음을 숙명으로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죽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죽음을 이길 꿈도 꾸지 못하고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이 세상이 다인 줄 알고 먹고 마시고 잘 사는 문제에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이웃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살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런 죽음으로부터 해방이 되어 영생을 누리가 되었으니 그 은혜를 어찌 말로 다 표현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영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굳게 믿고 이 짧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주님과 함께 정의롭게 사랑을 실천하며 굳세게 살아야 할 줄로 굳게 믿습니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새롭게 된 우리는 세상의 사람과 달라도 한참은 다른 삶을 추구하며 살게 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경지의 삶입니다. 공자도 부처도 마호메트도 실천하지 못한 죄에서 해방된 삶을 살게 되었으니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우리는 앞에서 배웠습니다. 죄가 무엇이며 어떻게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죄의 무시무시한 사망의 결과를 보았습니다. 사대 성인이라고 자부하던 공자도 이런 죄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고 홀로 도를 닦았다고 주장하며 진리를 깨달았다 하는 부처도 이 죄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죽었고 마호메트는 칼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이런 무서운 죄의 문제에서 해방이 된다고 합니다. 죄가 모든 인간의 문제를 일으키고 우리를 속이고 빼앗고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이 죄를 이길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는데 우리가 의로우신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이 죄를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과 로마서 3장 21-22절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하고 여기에서는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과 그 세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흔히 죄를 씻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엔 위의 구절과 같은 의미도 있음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합한 세례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세례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이 되고 하나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도 달리고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이 박히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으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죄의 몸이 죽어서 다시는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고 의의 종이 되게 하려고 하신다 하십니다. 예수님과 합한 세례 혹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그렇게 된 성도에게 의롭다 인정도 있고 또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는데 성령의 선물로 인해서 거듭나게 되고 이제 새로운 피조물 즉 새로운 창조물이 되고 새 생명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지은 죄가 없어졌습니다. 사라졌습니다. 그 죄로 인한 벌도 저주도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완전히 해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새로운 창조물로 즉 새 생명을 지닌 사람으로 이 죄 많은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데 과거와 같이 옛사람의 모습대로 죄의 종이 되어 즉 죄를 지으면서 살아서는 절대로 아니 되고 새 생명을 지닌 우리는 죄와 맞서며 죄와 싸우며 죄를 멀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죽었기에 죄의 유혹이 왔을 때 반응하지 말고 죽은 자로 여기고 믿고 죄를 극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6장 10-11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를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또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새 생명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제 나는 새 생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버리신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도 사랑이시고 이렇게 예수님도 역시 사랑이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속성이 사랑이시고 또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지만 늘 죄와 싸움이 불가피한 우리의 모습을 바울 사도는 7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율법으로부터 자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더불어 좀 더 세밀한 관찰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좀 더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롬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4.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 죽음으로써 율법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른 분 곧,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고 하느님께 유용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5. 전에 우리가 육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는 율법 때문에 우리의 온몸에 죄스러운 욕정이 발동하여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7. 그러면 율법이 곧 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었던들 나는 죄를 몰랐을 것입니다.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더라면 탐욕이 죄라는 것을 나는 몰랐을 것입니다. (위 개역개정 아래 공동 번역)

6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할 때 즉 예수님과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따라서 우리도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죄에 대해서도 죽게 되었고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도 죽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살아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께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하십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있을 때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죄를 늘 짓던 때를 말합니다. 이때에는 율법이 존재함으로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정욕에 대해서 바로 죄에 대해서 인식이 되고 죄로 재빠르게 정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마음속에서 생기더라고 죄로 규정이 되지 않기에 정죄가 더디게 될 수가 있는데 율법이 어떤 경우에는 어떤 죄가 된다고 명백하게 규정을 해 놓았기에 우리의 정욕에 따른 어긋난 행위는 바로 죄로 판단이 되며 이를 통하셔 죄의 삯인 사망이 이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므로 죽은 자에게 더 이상 율법이 작동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낡은 조문으로 섬기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죄가 되는 것입니까? 절대로 아니며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밝혀 준다고 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기능을 율법은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합니다. 즉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예수를 믿지 않던 바울 사도와 같이 율법을 배우고 익히고 지키는 것이 정의롭게 사는 유일한 길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제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이 있기에 이를 가지고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잘 이해를 해야 되는데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우선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가 체험한 성령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라고 당부하신 성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 2: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사도행전 1장 4-5절은 성령에 대한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구약의 요엘서에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성령께서 오심을 2장 1-4절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2장 37-38절로 어떻게 성령을 받는지에 대해서 당시에 모인 무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절차를 따라서 바울 사도도 아나니아에게 성령을 받게 되었던 것을 사도행전 21장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들은 과거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고린도 전서 5장 17절의 새 피조물입니다. 새 창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이렇게 새롭게 창조를 하십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새롭게 창조를 하십니까? 우선 죄인을 부르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된 사람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이제 이 사람은 죄가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신 분께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고 거듭나게 하십니다. 이 사람을 물로 즉 물 세례로 그리고 성령으로 성령 세례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자 우리의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시고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지은 죄를 대신 지시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선물로 오셔서 거듭나게 하십니다. 새로운 피조물 즉 창조물로 만드십니다. 이렇게 된 새롭게 된 창조물을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부르는데 성령의 인 도장이 찍힌 작품입니다. 이 새롭게 된 사람은 이제 어떻게 산다고 합니까? 거듭나지 않았을 때 따르던 율법의 인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제 누구의 인도를 받습니까? 이 사람의 행동의 기준과 원리는 성령님이십니다.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과거의 육신의 사람은 이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새롭게 된 새 창조물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행동합니다. 어떻게 행동을 합니까? 첫째는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됩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둘째는 선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선한 삶은 미가서 6장 8절에 정의가 되어 있는데 정의를 행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겸손히 주와 동행을 하는 삶이라 했습니다.

엡 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 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개역개정 공동 번역)

미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여기서 인자는 긍휼 혹은 인자함으로 사랑임)

이 두 가지 삶을 하나로 표현하면 사랑의 실천이다 로 요약을 할 수가 있습니다. 전도만큼 큰 사랑의 실천은 세상에 없습니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모든 것을 다 바쳐서 부양하고 가족을 위해서 온몸을 바쳐서 희생을 한다 해도 가족을 구원하지 못하면 참으로 그 가족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믿지 않는 이가 받을 이 세상 가장 크고 시급한 축복이 예수님을 통한 영혼의 구원인데 이를 외면하고 아무리 사랑을 해도 부족한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것이 부족해도 가족에게 이웃에게 예수님을 잘 전해서 그 이웃이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면 가장 큰일을 하고 사랑을 실천한 것이라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산다고 했는데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선한 삶은 정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이 삶은 곧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과 완벽하게 일치를 합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랑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 사랑의 실천과 완벽하게 똑같은 일이 있는데 이는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마 22: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우리는 바울 사도가 율법의 낡은 조문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율법은 이제는 신경도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잘못 이해할 수가 있는데 이 표현은 절대로 이런 의미가 아니라 예전에 성령을 모르고 새롭게 창조가 되기 전에 오직 율법이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정의의 실천 방법인 줄 알고 살던 때와 달리 이제는 새롭게 창조가 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으니 성령의 인도로 먼저 예수님을 전하고 그리고 선한 삶을 살면서 도리어 예전에 하지 못했던 율법을 완성을 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절대로 율법이 없는 막 나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기준도 없는 내 마음대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언제나 율법은 나의 행동이 죄를 행하는지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살피고 있습니다. 절대로 율법을 폐기가 된 것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이 아니라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법입니다.

롬 7: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바울 사도를 종으로 부리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단호한 말씀이십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완성)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율법을 완전(완성) 하게 하십니까? 여태까지 우리가 이야기한 내용 그대로 그 방법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십니다. 우리가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는 것에서 해방이 되고 도리어 전도하고 선한 삶을 삶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사랑을 실천함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고자 하면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일은 율법에 대해서 잘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성령의 인도가 있다 해도 언제나 그 인도가 정말로 성령의 인도인지 혹은 선한 길인지 율법에 비추어 분별을 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의 내용을 모르면서 사랑을 실천하기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정말로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의 로마서를 통해서 혹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기게 됩니다. 이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도 바울 사도의 뜻도 아니라 우리가 바울 사도의 글을 올바로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욱 결정적인 율법에 대한 성경 말씀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하시는 일에 대한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겔 11: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20.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겔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와 로마서에서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결과로 우리 믿는 사람이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사망으로부터, 죄로부터, 그리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잘 이해를 해야 하고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으며 그리고 그 사랑으로 우리는 사망에서 영생으로 죄에서 의인으로 그리고 율법에서 해방이 되어 성령을 따름으로 율법을 완성시키는 존재가 되었으니 그 은혜를 절대로 잊지 말고 늘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찬양하고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온 천하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렇게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아직도 이 사랑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정욕대로 사는 사람은 속히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죄와 죽음과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두 파워포인트 자료는 같은 내용인데 한 자료는 예수님께서 나타나 있고 한 자료는 예수님에 대한 설명이 제목으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 아래와 같이 예수님을 빼고 설명을 하려고 했는데 주님께서 제게 증인아! 증인아! 하시고 부르시는 음성에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을 드렸는데 우리가 로마서를 잘 보면 모든 로마서 16장 중에 한 장도 예수님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장은 없습니다. 한 마디로 로마서도 예수님에 대한 사도 바울의 글이라 아니 할 수가 없는데 아무리 어디에 치우쳐 주제를 놓친다 해도 성경을 배우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잊게 되면 이는 모든 그 사람의 가르침이 헛되게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흉악한 죄인에게 실로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믿고 불순종으로 징계를 받아서 가정이 박살이 난 후 참으로 불면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4년의 지옥과 같은 삶을 살기도 했고 목회를 하려고 신학을 하고도 주일 날에 고물을 주우려 밭에 갔다가 길고 뾰족한 유리에 허벅지를 찔려 놀랐고 재활용일을 주일도 없이 친구와 그리고 제 처와 같이 하다가 제 처가 피가 갑자가 사라져서 죽기 직전까지 간 적 있고 최근에는 교회 세계사를 공부하려고 하다가 아침에 갑자기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아내의 기도로 살아나 그 공부를 포기하고 부활을 중심으로 전도지를 만들었고 책을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산에서 일을 하다가 미끄러져서 인대가 끊어져서 5개월을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기도하지 않고 다른 일에 열중하고 전도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렇게 쉬지 않고 불순종하고 온전치 못한 자에게 오래 참으시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게 하시고 전도하게 하심으로 성령의 깨우침으로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으니 모든 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요 십자가 대속의 사랑 덕인 줄 굳게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한령없으신 사랑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 생각이 들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으나 오직 예수님께서는 증인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모든 유혹을 견디며 늘 전도하고 살아야 될 운명입니다. 이런 저를 위해서 잡생각 말고 전도를 잘 하게 기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모든 삶이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중심이 되게 기도해 주시기를 다시 부탁을 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는 8장의 내용 중에서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늘 승리하시고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