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장 17절: 하나님 나라의 특징-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Romans 14:17: The characteristics of the kingdom of God)
할렐루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면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셔서 건설하고자 하셨던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신 후 2000년이 지난 지금 온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지구 인구의 1/3인 20억이 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나라가 드물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꿈을 꾸시고 이 땅에 건설하고자 하시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관심을 가지고 잘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지혜와 열심을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 배우게 하소서!
샬롬! 오랜만에 로마서로 왔습니다. 오천만의 로마서에 벌어진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일들이 여러 코너를 통해서 진행이 되고 있는데 우리 주 예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기쁨인 줄 믿습니다. 성경을 통한 세계사를 배우는 코너에는 청동기 시대의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모든 분이 새롭게 이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고 이를 통해서 한국의 역사 교육이 다시 새롭게 될 것이 분명하고 온 세상의 강 중심의 문명에 대한 제고가 있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강의도 이제는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장 근본으로 삼고 이를 바탕으로 갈라디아서를 먼저 공부하고 그리고 하박국서를 또 올바로 이해한 후에 비로소 로마서 공부로 들어가야 바울과 예수님의 대립이 없이 올바른 로마서를 이해하게 됨도 우리 모두가 함께 배움으로 이는 최근 3년의 공부의 결실이요,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역시 기쁜 일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가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 복음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니 예수님께서 오셔서 천국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너무나 많이 전하셨고 그리고 바울 사도를 비롯해서 사도들도 사도행전에서 역시 예수님께서 전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많이 전했습니다. 저는 30년 동안 거의 예수님만 전했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성경도 예수님에 대한 글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자 제가 전해야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해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따로 공부도 한 바도 없었고 그리고 교회의 분위기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이해하고 그렇게 전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 배우고 그리고 전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는 김세윤 박사님과 다른 두 분이 쓴 책도 구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결국은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인간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시고자 한 것이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인간의 구원에만 오랫동안 그리고 집중적으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원만 받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되는 것처럼 전하고 가르치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이제는 어떻게 살든지 잘 살고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축복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의 반만 아는 것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없는 구원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구원받은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똑같이 물질을 밝히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둔다면 도대체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진실된 뜻은 이 땅에서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 우리 모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은 로마서 14장 17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롬 4: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
바울 사도께서 예수님만 증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늘 전했음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8:12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그들이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사도행전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사도행전 20:25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사도행전 28: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사도행전 28: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예수님께 잘 배운 12사도도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예수님과 같이 잘 전했고 바울 사도도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예수님과 함께 잘 전하고 있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사역을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잘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깊은 관련이 있고 또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심도 맞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잘 증거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예수님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잘 전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만큼 반드시 잘 이해를 해야 됨을 또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배웁니까? 어떤 분은 바울과 같이 천국을 보고 온 간증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들의 책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나중에 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도 또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정확하게 배울 수 있는 자료가 성경 말씀으로 사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이를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가르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여러 앞서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두시고 배우고 가르치는 분들과 같이 성경을 통해서 이 땅에 세워야만 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잘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천만의 로마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런 공부에 대한 비전과 열망과 그리고 함께 함을 주시고 우리 모두를 이 귀한 공부로 인도하시고 그리고 잘 가르쳐 주실 것을 믿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을 보면
마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33. But seek first his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to you as well.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명령이기도 합니다. 먼저 해야 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에 대한 순서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의에 대해서 먼저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내 집과 땅을 사고 돈을 벌고 하는 일이 먼저 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게 되면 다른 모든 것은 더하여서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먼저 다른 모든 것을 구하고 그리고 하나님 나랏일을 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순서를 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전이 낡아서 비가 새고 있습니다. 이를 수리하지 않고 비가 오면 늘 비가 새는데 나의 집과 아파트는 온갖 비싼 가구와 집도 비싼 집으로 그릭 차도 외제차로 타고 다니며 그 비가 새는 성전에 오십니다. 그리고 개척교회들은 지하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합니다. 순서가 너무나 틀렸습니다. 예수를 믿고서 구원을 받고서 이 세상에서 먼저 잘 먹고 잘 살고자 하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라고 하셨습니다. 가난한 교회를 외면하고 가난한 믿는 형제를 외면하고 그리고 교회에 와서 또다시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교회를 세우는 일도 가난한 형제를 돕는 일도 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 유익이 될까에 대해서도 판단이 불가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라 즉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나라를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희락은 평안한 상태에서 오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안정이 되지 않은 사람이 기뻐하기 힘이 듭니다. 어떤 상태에서도 평안한 사람에게 희락은 오는 것입니다. 공황 장애를 가진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어떻게 희락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평화 혹은 평강은 어디에서 옵니까? 질서에서 옵니다. 질서가 없는 무질서한 곳에서 절대로 평화가 없습니다. 이 질서가 다른 말로 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정의 혹은 공의에 대한 논의는 철학적으로 혹은 성경적으로 오랫동안 전개가 되어 왔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정의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없고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지도 잘 논의가 되지 않고 우리는 오직 잘 사는 문제에만 매달려서 살고 있습니다. 이를 이제는 바로잡아야 될 것입니다. 의 혹은 공의, 혹은 정의는 한 마디로 율법에 규정이 되어 있고 율법을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역사를 통해서 모든 인간이 정의롭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정의를 실천하려고 율법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정의를 어긴 것이 죄가 되고 이에는 반드시 벌이 있었습니다. 우선 사형에 해당하는 벌이 있었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것이 부정이고 이것이 죄인데 죄가 중하면 우선 사형을 시켰습니다. 간음자도 그렇고 우상 숭배자도 그렇고 그리고 살인자도 그렇고 다양한 범죄에 대한 사형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에는 미치지 않는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제사장에게 제물을 가져다가 피를 흘리게 하고 죽여서 제사를 지냄으로 죄를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어떻게든 죄인을 회복을 시켜서 의롭게 만들려는 정의로운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계약을 맺고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롭게 산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나타난 것입니다. 택한 민족 이스라엘은 죄를 짓고 회개치 않고 아무리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회개를 촉구해도 듣지 않다가 결국은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선택된 민족의 운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의가 이제 다시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나타났습니까? 그리고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롬 3: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율법을 통한 의의 추구는 율법을 잘 알고 지킴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런 방법의 의가 아니라 율법과 즉 모세 5경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즉 예언서를 통해서 미리 예언이 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바울이 말한 하나님 나라의 특징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라 할 때의 의는 우선 가장 먼저 이렇게 나타난 의를 말씀하심이 분명합니다.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의롭게 될 수 있는 의라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율법이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이 의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모든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기에 그렇게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고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죄인으로 그리고 살면서 늘 죄를 짓고 살기에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율법에 이미 짐승의 피를 흘림과 죽임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 길이 규정되고 이스라엘을 통해서 오랫동안 행해졌습니다. 이렇게 예고된 죄인이 용서받는 길이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해서 이를 믿는 모든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값없이 어떤 사람의 희생이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랍니다. 이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속죄 제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인간과 화목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의 죄를 바로 벌하시지 않고 오래 참으시다가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때 용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 죄는 전에 즉 예수님을 믿기 전에 그 사람이 지은 모든 죄를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려 하신 측면이 하나 있고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정의롭게 하시기 위한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심이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정의는 죄에 대한 벌입니다. 죄를 절대로 그냥 두실 수가 없는 분입니다. 구약에서는 짐승과 피로서 그리고 그 죽음으로 죄를 벌을 하심으로 의를 나타내셨고 즉 죄인은 죽이는 대신에 흠 없는 짐승을 잡아서 벌을 받게 하심으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셨고, 이번에는 그의 아들을 우리 모두의 죄를 대신해서 벌을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벌을 행하시는 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여러 측면이 있지만 죄에 대한 합당한 벌이 곧 하나님의 정의이며 이에 대한 가장 마지막 나타남이 최후의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이 온 인류에게 최후의 심판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이렇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또 예수를 믿는 사람도 죄의 용서를 통해서 의롭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을 통한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다른 의이며 이는 이미 율법과 예언서를 통해서 인류의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겠다는 예언 즉 증거가 되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의가 하나님 나라의 의입니다. 따라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시는 말씀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며, 먼저 모든 불의한 사람을 예수님을 믿게 해서 구원하고 의롭게 하라는 말씀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의 나라라고 할 때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된 사람들의 나라라는 의미가 가장 강할 것입니다. 이와 아울러서 하나님의 나라가 의의 나라라 할 때 그 의는 율법이 완성이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씀하실 것입니다. 모든 율법은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기에 그 내용이 모두 정의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정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신 것이기에 율법이 완전히 실행이 되면 세상이 천국과 같이 정의로운 곳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기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그리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고 그리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때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설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성령을 선물 받고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늘 이기며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며 선을 행하므로 역시 의로운 세상 즉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이 의로운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바로 깨달으면 예수를 믿고서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되었으니 천국이 보장이 되었다고 함부로 즉 정의롭게 살지 않으면 절대로 의로운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신자는 정의로운 삶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정의롭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의가 넘치는 곳에 질서가 있기에 평안이 있고 평안이 넘치기에 또 희락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희생하셔서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나라임을 믿습니다.
세상은 샌달이나 롤스가 정의에 대해서 잘 논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정의를 배우고자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에 가고자 했습니다. 정의는 오직 하나님의 정의 외에 정의라 할 수 있는 어떤 인간적인 설명도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내리는 정의는 어떤 계층의 이익과 관련이 되어 있고 어떤 집단의 이익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공평의 부분에 있어서 정당하지 못하며 그리고 올바른 기준에 있어서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배우는 정의가 참된 정의입니다. 다른 말로 성경에 기록된 정의가 오직 올바른 정의가 될 것입니다. 이 의 중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인간이 얻는 의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심적인 의가 될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죄인의 모습을 스스로 씻고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의한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 의롭게 됨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의가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잘 배우고 이를 삶에서 잘 실천이 되게 사는 것입니다.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의롭게 된 신자가 세상에서 의롭게 삶을 사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신자가 개개의 율법을 잘 배우고 조문 조문 잘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을 하지만 또한 예수님을 믿고서 사랑을 실천함을 통해서 모든 율법을 완전히 완성하는 것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죄를 완전히 이기는 것을 또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서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선 율법을 잘 몰라도 친형제를 사랑하듯이, 혹은 자신의 부모님을 공경하듯이 어른을 대하고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면 많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또 율법을 잘 몰라도 완전히 자신의 모든 욕망을 자제하고 성령의 인도를 온전히 받으면 또 모든 율법을 잘 지키며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과연 사랑을 제대로 하는지 알고 싶고 분별하고 싶다면 성경에 기록된 율법을 살펴보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율법을 잘 배우는 일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말은 모세 오경을 유대인 이상으로 잘 배우고 이 율법이 완성되는 삶을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통해서든 혹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통해서든 혹은 개개의 조문을 잘 보면서 지키는 삶을 통해서든 실천을 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로마서에서 바울 사도가 율법과 믿음과의 관계를 논할 때 율법보다 믿음을 강조하는 부분은 정말로 잘 생각하면서 이해를 해야 되는 구절임을 꼭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불의가 판치고 부정이 난무하는 세상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나라에 하나님의 의가 꽃 피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죄인이 예수님을 믿고서 그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정의와 공의가 하수같이 바다같이 넘치는 나라입니다. 성도가 서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율법이 완성되고 성도가 자신의 욕망을 제어함으로써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삶으로써 또한 죄와 사망을 법을 이기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율법의 조문 조문도 잘 지키지만 그보다 중한 율법의 사랑과 정의와 믿음이 실천이 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세상에 건설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시면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구원의 참된 목적을 성도는 절대로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개인의 자유가 끝도 없이 보장이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공동체의 나라입니다. 믿는 성도가 모두가 형제요, 자매로 사랑하고 예수님을 지도자로 모신 공동체의 나라입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고 그리고 가정도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자신이 소속된 집단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정의롭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면서 불신자를 구원해서 의로운 길로 인도해야 될 것이고 빛과 소금이 되어서 그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이 한 명 한 명에게 이렇게 있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누룩과 같은 나라로서 비록 작은 무리로 시작이 된다 해도 곧 부풀고 성장해서 결국은 큰 나라가 될 것이기에 우리는 절대로 가정에서 혹은 작은 무리라 염려할 것 없이 믿고 즐겁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감당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고 질서가 있는 곳에 평안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늘 무질서하고 불의하며 부정이 어느 곳에 나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평화를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 평화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입니다. 고난 가운데 평화입니다. 부족하고 낭패한 가운데 평화입니다. 모든 성도는 이렇게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는 우리의 죄로 인한 고난과 낭패가 있고 불의한 세상이 주는 고난이 또 있습니다. 원치 않는 질병과 혹은 인생의 실패를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디에 평화가 있지 할 때가 있으나 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시고 또 복을 주시기 위해서 잠시 고난을 허락하는 것이니 잘 참고 승리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성장하는데 절대로 어렵고 힘들다고 교회를 떠나지 마시고 교회에 꼭 붙어 있어야 고난을 견딜 수가 있습니다.
희락 기쁨은 좋은 일이 있으면 당연히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기뻐하며 살아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늘 웃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변치 않고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감화와 함께 충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의 기도가 있습니다. 어떤 남편이나 혹은 아내가 남편이나 아내 몰래 돈이 급해서 집문서나 혹은 통장을 몰래 깨어서 그 돈을 곧 채워놓지 하고 큰돈을 상대방 몰래 썼다고 합시다. 그런데 시간이 가도 돈이 생기지 않아서 늘 불안한 가운데 살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상대방은 이를 알지 못하고 나를 믿고 산다고 합시다. 언젠가 들통이 날 것인데 돈은 없고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이는 갚아야 할 빚이 있기에 그렇게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사정을 알고 내가 갚아줄께 하고 갚아 주었다고 합시다 이혼을 당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심한 비난을 당하고 특히 상대방이 실망하는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이 죽는 것만큼 싫은데 이를 해결하지 못해서 숨도 쉬지 못하고 늘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고 있는데 누가 선뜻 이 빚을 갚아 준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안도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죄로 인해서 진 빚은 그 갚아야 될 비용이 우선은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영생을 못하고 죽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가계로부터 내려오는 온갖 저주를 이 땅에서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가는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성경도 모르고 교회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고 진리도 모른 채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 처참한 상태에 있는 나를 모든 죄의 빚을 탕감해 주시고 예수님께서 건지셨습니다. 이 구원에 대한 안도가 구원에 대한 감사가 쉬지 않고 기뻐해도 모자랄 일이기에 우리는 늘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험한 일을 당해도 이 기쁨을 이 좋은 일을 이길 일이 없기에 우리는 늘 기뻐해야 되는 것이고 이렇게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모인 희락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전의 나의 모습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이웃이 바로 나 자신임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바로 꼭 그렇게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사랑도 없이 배려도 없이 내 마음대로 타인을 괴롭히며 살던 사람이었음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빚이 우리는 있으니 이 빚을 갚는 것이 과거의 나와 딱 닮은 사람을 즐겁게 사랑하고 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즐겁게 이 일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늘 나의 옛 모습을 알고 싶으면 이웃을 품고서 사랑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다 보면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나를 바로 만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로 인해서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날로 성장, 확대가 되는 것을 믿고서 어디에 있든 어떤 사황에 처하든 기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는 이 땅에서 우리가 건설해야 되는 하나님의 나라이기도 하겠지만 영원한 하늘에 있는 예수님께서 다스리시고 성도들이 다 가 있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도 역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일 줄로 믿습니다. 절대로 불의한 자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서 여러 번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서 의롭게 살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고전 6: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