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존 당시 '사위국'의 ‘바사닉’왕이 '가비라국'의 '정반왕' 석씨(釋氏) 문중과
혼인하겠다고 청혼을 했다. ‘사위국’에 서는 ‘바사닉’왕이 성격이 포악하여
청혼을 거절하면 화(禍)를 당할까 봐 망설이다가,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마하남'이 자기 집 하인의 딸을 왕족(王族)이라 하고 보내어 결혼을 시켰다.
‘바사닉’왕이 여인을 왕비로 삼아 '유리 태자'를 낳았고, '유리태자'를
‘가비라’국으로 보내어 왕자의 도(道)를 배우게 하였다.
그런데 '유리태자'가 공부는 안 하고 법당(法堂)에서 난동을 부려
석씨들이 끌어내어 종(隸)의 자식이니 별수 없다고 매를 쳤다.
후일 '유리태자'가 사위국 왕에 올라 앙심을 품고 '가비라국'에 쳐들어 왔다.
처음에는 정반왕의 아들인 '붓다'께서 길목을 막고 앉아 “친족의 그늘이
외인(外人)의 그늘 보다 낳다.”라는 법문을 설해 돌아갔다.
그 다음 또 쳐들어 왔을 때는, 대항하면 이기기는 하지만 원한이 커져
죄업(罪業)만 늘어난다. 과거(過去)의 업보(業報)는 어쩔 수 없으니
그대로 받고 원한을 끝내자고 하시어 성문(城門)을 열어 주었다.
'유리왕'이 석씨 가문을 멸망시키고 포로를 끌고 '사위국'으로 돌아갈 때,
'마하남'이 '유리왕'에게 간절히 간청했다.
"내가 연못속에 들어 갔다가 나올 동안만이라도 포로들이
도망가게 허락해 주십시오." 했다. '유리왕'이 허락하자
'마하남'이 연못 속으로 깊이 들어가 나무뿌리에 머리를 매고 나오지 않는 동안
가비라국 많은 포로가 도망을 쳤다.
한참을 기다려도 '마하남'이 나오지 않으니 '유리왕'이 연못 속을 확인해 보았다.
자기 친족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마하남'의 마음을 읽고
'유리왕'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너무나도 많은 석씨 가문을 살해한 '유리왕'은 그후 그 업보(業報)로
하늘에서 내리는 불벼락을 받아 궁(宮)과 성(城)을 다 태우고 멸망(滅亡)해 버렸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 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일이 있는데, 첫째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요.
둘째는 이미 지은 업(業)의 과보(果報)를 피할 수 없음이요,
셋째는 중생(衆生)을 일시(一時)에 다 구제(求濟)할 수 없다" 하셨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두 번째, 지은 악업에 과보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대개의 사람은 잘못을 인정하고, 댓가를 지불하고, 용서를 구하면 쉽게 끝날 일인데,
그렇지 않고 힘으로 대항하니 원수가 원수를 만들어 반복되니 죄악이 커져만 간다.
종교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상대의 잘못은 용서하여
함께 밝은 사회를 만들어,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살 수 있게 하여주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