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성국(海東盛國) 발해실이 있는 발해역사관으로 이동한다.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上京城)의 유적들을 분포도와 함께 사진으로 가득한 통로전시장. 입구에 러시아 연해주에서 출토된 발해의 항아리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토기를 완성하는 근후. 가늠할 수 없는 꿈의 크기 대조영이란다. 2006년 9월 16일부터 2007년 12월 23일까지 KBS TV 드라마로 방영했던 ‘부활하는 대조영’ 중심으로 설치되어 있다. 발해인의 외모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정효공주(757~792)의 용두산 고분벽화.
속소해변과 속초수산시장이 답글로 이어집니다.
간단하게 발해의 역사_겨울섬 티스토리 검색 결과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렸던 "발해"는 "진국(振國)"으로도 불렸으며, 668년 고구려 멸망 후 698년 고구려의 유민인 대조영(大祚榮, ?~719)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규합하여 동만주 지역인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는데, 당은 705년에 발해를 인정했고 713년에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발해가 영토확장사업을 벌이자 신라는 721년 강릉 이북에 장성을 쌓아 대비하기도 하였으며, 서기 732년에서 733년에는 발해와 당·신라의 긴장관계가 계속되었으나 문황의 평화외교로 해소되었고, 문황은 대내적으로는 체제정비에 힘쓰고 대외적으로는 평화적 교역의 증대에 관심을 기울여 사회적·문화적 발전을 도모하였고, 818년 선왕은 말갈세력, 흑수말갈에 대한 통제력도 장악했으며 소고구려를 영역에 포함시키면서 대국으로 성장했으나, 선왕 이후 점차 쇠퇴를 보이다가 9세기 후반부터 성장한 거란은 925년 발해를 공격해 발해를 멸망시켰습니다.
발해 제3대 문왕대흠무(大欽茂)의 넷째 딸 정효공주(757∼792)의 묘비로,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변(延邊) 조선족자치주(朝鮮族自治州) 화룡현(和龍縣) 용수공사(龍水公社) 용해대대(龍海大隊) 용두산에 있는, 정효공주의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며, 묘비는 화강암으로 된 규형(圭形)으로, 높이 105㎝, 너비 58㎝, 두께 26㎝ 정도이며, 제(題)·서(序)·명(銘)으로 구성된 18행 728자가 기록되어 있고 글자는 해서(楷書) 정자로 음각되어 있어, 비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정효공주는 대흥보력효감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聖法大王)의 제4녀이다. 출가한 뒤 남편이 죽고, 수절하던 정효공주도 대흥 56년(792) 6월 19일 임진에 죽었다. 이때 나이 36세로 슬하에는 딸을 하나 두었다. 시호를 정효공주라고 하였다. 그해 11월 28일 기묘에 염곡(染谷)의 서원(西原)에 배장(陪葬)하였다."로 요약됩니다. 정효공주(貞孝公主)의 무덤은 벽돌돌방무덤으로 벽돌을 쌓은 당나라 양식과 돌로 공간을 줄여나가면서 천장을 쌓는 고구려 양식이 결합되어 있으며, 모실의 실제크기는 3.1m, 너비 2.1m, 높이 1.9m이고 묘지문을 통하여 유교 경전등 중국의 문학 작품들이 인용된 점으로 보아, 문왕시대에 유학의 수준이 높았음도 엿볼 수 있습니다. 길림성(吉林省) 연변(延邊)에 있는 정효공주(貞孝公主)의 묘실의 모습을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