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9. 목요일 _ 따로 또 같이 홀로 가는 인제군 용대리 백담사
아침 식사 중 아들네 가족이 [설악한화워터파크]에 간다는 일정을 말한다. 전날 계획했던 일정이 아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함께할까 했는데 옷을 갈아입으면서 갑자기 내 생각도 바뀌었다. 아이들 건사하는 일 말고 별 의미없이(?) 종일 즐기지 못하는 아쿠아 일정을 보내느니 따로 보내고 싶었다. 처음에 아들은 조금 난감해하면서도 내 뜻에 따른다. 며느리는 “어머니그건 우리를 버리시는 거라” 하지만. 서로 미안해 할 것도 눈치를 볼 것도 없어 내 판단이 맞을 것 같았다. 아들에게 일단 속초시외버스터미널에 데려다 달라니 어디를 갈 거냐 묻는다. 딱히 결정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갈 곳은 많다.
숙소에서 10분 거리의 시외버스정류장에 가면서 목적지는 터미널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아침 10:40분 평창이나 한계령 정도 움직일 생각에 매표소에 물으니 평창은 강릉으로 가야 버스를 탈 수 있단다. 일단 한계령 표를 끊으면서 현재 나의 복장 불량이라 생각했다. 11:05분 버스를 기다리는 중 한 아주머니가 백담사 표를 매표한다. 전광판을 보니 백담사 행 출발시간도 11:05분으로 같다. 거리는 한계령보다 훨씬 가까운 듯 차비가 반 정도다. 백담사도 쉬이 갈 곳이 아니기에 순간 맘이 동했다.
출발 10분 전에 표를 바꾸어 [홀로 가는 백담사]로 정했다. 아주 오래전에 전두환 대통령 유배지로 알려지면서 한 번 가 본 기억은 있지만 뚜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없다. 유명한 용대리 황태덕장과 음식점이 즐비한 미시령고개를 넘는다. 20여 분 지나 첫 정류장이 용대리 백담사다. 내리는 중 동행했던 아주머니에게 백담사로 가는 방향과 되돌아 나오는 방법을 알아보았다. 길 건너 약국 겸 매표소에 들러 속초행 버스 시간표도 확인했다. 아주머니가 알려준 대로 고속철부동산 앞 간판을 보고 안쪽으로 꺾어 십여분 걸었다. 가는 길에는 마가목 가로수가 튼실한 열매를 맺고 있었고 보랏빛 메밀꽃(?) 단지가 나왔다. 이하 이곳이 내설악의 첫 관문이로구나. 잠시 후 백담마을 이정표가 보이고 은방울자매의 노래 가사비가 보인다. 커다란 주차장이 보이고 모든 개인차는 가져갈 수 없으니 주차장에 두고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타야 한다. 편도 2,500원 12:00 출발. 백담사 정문 앞까지 가는 길은 웬만한 운전실력으로는 지나갈 수 없는 꼬불꼬불한 좁은 외길이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기도 하지만 환경을 보호하는 차원이기도 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하얀 계곡에 자잘한 바윗돌로 쌓아 올린 돌탑들 사이로 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흐른다. 백담계곡을 건너는 수심교를 건너며 금강문과 백담사 템플스테이 소개 글이 있는 백담사 문에 들어선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는 1905년 이곳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과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집필하고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는 등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친했고, 일제의 민족 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독립운동가다.
우리가 흔히 설악산행이라 하면 외설악이나 남설악을 중심으로 하게 된다. 하지만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백담사라는 절도 좋지만 한용운님을 만나러 간다는 의미가 컸다. 절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를 이끈 것은 정면의 극락보전이 아니라 오른편의 만해 한용운 님의 시비 [나룻배와 행인]와 흉상 그리고 기념관이다. 위대한 만해 정신의 산실. 기념관 입구까지 형형색색의 백합 화분이 황홀한 향내를 뿜어낸다.
기념관을 한 바퀴 돌아보며 그냥 나오기 아쉬워 관리자에게 도록이나 팜플렛이 있냐고 물었다. 따로 자물쇠까지 잠가 둔 서재 같은 곳에 들어가 소책자 한 장을 내민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애국자가 아니더라도 학창 시절부터 한용운 님의 시, 그의 기와 얼을 좋아하며 최근에는 그의 서예 필력이 좋았다. 기념관 내부에 한용운 선생이 형무소 생활할 때. 내건 3대 원칙. 1. 사식 거부. 2. 변호사 거부. 3. 보석 거부. 머리가 싸아~해진다.
백담사는 과거 한계사로 창건 후 1772년(영조51년)까지 운홍사, 삼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극락보전 내부엔 아미타불존과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내부보다 더 관심을 가져진 곳은 외부 벽화 심우도다. 심우도(尋牛圖)는 선(禪)의 수행단계를 소와 동자에 비유하여 도해한 그림이다. 자기의 참 마음을 찾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10단계로 그려 십우도(十牛圖) 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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