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후배님들 덕분에 제가 큰 선물을 받게되었네요~~선생님~~^^
책을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져 행복하고 또 행복했어요~~^^
마침. 태안.천리포.단양은 제가 다 다녀온곳이라서 실감나게 함께 여행한 기분입니다^^
선생님 행복 해 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고~~~울 선생님 행복하게 해준 후배님들에게 감사하게 되네요~~^^
선생님 수술 대목은 좀 놀라고~~하지만 능히 이기실 선생님.
걱정은 조금만 해도 되지요??
건강 잘 챙기시면서 자유 만끽하시며 선생님의 우아함과 미모 잘 간직 해주세요~~
남편에게 사진 속 선생님 찾아보라 했더니 못 찾아요~~너무 젊으신 탓이예요~~ㅎㅎㅎ
이번에 웰아이수PLuS 이름의 기능성 생수가 출시되었어요~~물 좋은 옥천이 수원지이고~~ 게르마늄과 규소함량이 좋은 물이예요~~
공장에서 아직 서울 물류센타로 올라오지 않아 택배를 못 하고 있으니 올라오면 선생님께 보내드리라는 남편 명령이네요~~ㅎㅎ
실은 제 마음에 먼저 생각하고 있던 부분 이지만요~~
선생님~~^^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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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첫 담임의 김경옥 제자가 1984년 2월 졸업 후
33년이 지난 2014년 6월에 나를 찾아오던 날의 일기를 덧붙입니다.
보통 때 같으면 칼퇴근할 텐데 이날 따라 왠지 컴 준비실에서 더 작업하고 싶었다. 일에 열중해 있는데 핸드폰이 아닌 일반 전화가 울렸다. 본 교무실에서 날 찾는 전화 아니면 별로 울리지 않은 전화다. 이 시간에 왜 찾지? 하며 좀 이상하다는 느낌으로 전화를 받았다. 전혀 낯선 음성으로 “정금선 선생님이세요?” 한다. “맞다”고 하니 제자란다. 화들짝 놀란 난 “아니 정말? 누구? 지금 어디니?” 연발로 물었다. 교내에 와 있다는 말에 과학관 컴퓨터실에 있으니 물어서 찾아오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하던 내 일에 집중했다.
잠시 후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얼굴은 너무나 친숙하고 반가운 얼굴이었다. 우린 뜨거운 포옹을 하고 소파에 앉았다. 32회 졸업생이라는데 분명 얼굴은 생생한데 몇 년도 졸업생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얘기했다. 사실 모습은 하나도 변하질 않아 뚜렷한데 나머지 것들은 전혀 어림짐작도 가지 않았다. 제자 경옥이는 “이렇게 말씀하시면 기억하실 거예요.”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나하나 그해의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하고 학급 아이들의 이름도 모두 되살아난다. 내가 처녀 시절 이곳에 근무하기 시작하여 바로 다음 해인 81년도 첫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다. 당시 직업계반 아이들로 어쩜 학급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정신 연령이 높은 아이들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저녁에 집에 돌아가 오래전 앨범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교생시절부터 사진들을 찍어 정리해둔 게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난 이 아이들과 2박 3일의 수학여행을 다녀와 단체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경옥이와 마주 안고 찍은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시엔 대부분 아이는 사진 뒷면에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았는데 경옥이는 자신의 이름을 사진 뒷면에 또렷하게 적어 둔 것이다. ㅎㅎㅎ~~~ 자~~아~~씩!! 잘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 것일까? 이날 경욱이는 자신은 할머니가 되었다며 손자들도 있다고 자랑한다. 허얼~~~~ 청출어람이라~~~
나는 이날 저녁 애들 하나하나 이름을 기억해 내느라 잠을 못 이루었다. 첫해의 담임은 첫사랑의 의미도 지니는데 어설픔 또한 무지 많았을 것이다. 다른 학급보다 학생 수는 적었으나 이 해에 농구부 13명도 내가 맡은 학생들이었다. 이때만 해도 가정과 교사로 조리 실습이 있던 날 농구부 아이들을 모두 불러 탕수육과 잡채를 포식(?)시킬 기회였다. 당시 수피아여고 농구부는 전국을 제패하는 우승팀이었다.
아아~~~ 옛날이~여~어~~~
2014년 6월2일
거문고선녀
[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인 1981년 2학년 10반 아이들과 수학여행가서 찍은 학급사진. 가운데 청일점은 지금은 작고하신 김오봉 교장 선생님 ]
33년이 지난 2014년 6월에 나를 찾아오던 날의 기념샷.
세월의 무상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