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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선교지 탐방보고(라오스 몽족 공동체)

작성자정다삼돌|작성시간15.02.20|조회수350 목록 댓글 0

 

 

 

 

 




선교지 탐방보고(라오스 몽족 공동체)

I부: 라오스 및 몽족 소개

 

1. 라오스 일반

1) 정부형태: 라오 인민 혁명당의 1당 체제 국가, 사회주의

2) 위치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에 둘러싸인 인도차이나 반도 내륙국

3) 지형: 산악지대가 전 국토의 약80%를 차지하며, 농경지는 국토의 약 3%내외

4) 인구 650만명), 수도: 비엔티엔(위얀짱)(Vientiane, 인구70만 명) 47개 종족)

5) 한반도의 1.1배

6) 열대몬순 기후, 평균기온 26.5℃, 연강수량 2,045mm, 우기(5월~9월) 및 건기(10월~5월)

 

 

 

2. 라오스 문화와 관습

1) 역사적으로 주변국의 침략을 받은 경험이 많아 스스로를 지키고 마음을 위안을 얻기 위해 작은 신집(사당)을 만들어 신을 모시는 풍습이 있다.

2) 잦은 전쟁으로 남자들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 되는 경우가 많아 여성이 가정을 꾸려 가는 모계사회 전통이 있으며 여성의 생활력이 매우 강하다.

3) 라오인은 비교적 내성적이고 온유하며 순종적인 성격으로 큰소리로 말하는 법이 적다.

 

 

 

 

3. 라오스의 간략한 역사 입니다

-> 8세기경 라오족, 중국 남부에서 남하 시작, 1353년 최초 통일왕국인 '란상 왕국' 건설

-> 19세기 말 태국('시암 왕국')의 속국으로 전락

-> 1893년 프랑스 보호령 시작

-> 1945년 일본 군사 점령

-> 1945년 일본 패망으로 프랑스가 재 점령

-> 1975년 12월 라오 인민 혁명당, 베트남 군의 후원 하에 무혈혁명 성공

-> 2006년 6월 촘말리 당 서기장 제5대 대통령으로 취임(베트남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

 

4. 라오스 종교

1) 헌법상 라오스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2) 국민의 95%가 소승불교 신자이며, 라오인의 사고방식 속에는 불교사상이 잠재되어 있다.

 

5. 몽족의 분포

중국 3,000,000 묘족으로 불림 , 베트남 790,000, 라오스 450,000, 미국 275,000, 태국(피난민) 150,000 (강제 송환)

프랑스 15,000, 기아나(프랑스령) 1,500, 합계 4~5,000,000

 

6. 라오스와 베트남의 몽족

베트남과 라오스 몽족은 원래 중국에서 미아오족으로 불렸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황제의 권위에 저항하며 자기들을 멸시하고 ‘야만인’ 또는 ‘개’라고 지칭하는 한족들과 유리된 채 살아왔다. 수 백년 동안 중국인들은 몽족을 복종시키려고 시도했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자유를 갈망했다.

1800년대 많은 몽족이 베트남 태국 라오스 미얀마로 이주해 왔다.

1929년 CMA가 라오복음교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몽족에 대한 복음화 열기가 확산됐다. CMA의 사역은 평신도지도자와 목회자를 길러내 토착교회를 세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몽족 지도자들 중 사이비타오 목사는 라오스복음주의총회 총회장에 오르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기간 중 자국의 공산화를 막아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군대로 미군과 함께 참전했던 몽족은 동남아시아 산지부족 가운데 가장 복음화가 많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과 라오스가 공산화 된 후 이들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라오스, 베트남 공산정권으로부터 혹심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7. 몽족 난민의 강제 송환 실태

박해와 신앙의 자유를 위해 태국에서 피난처를 찾는 사람들인 약 9,000명의 라오 몽족(Lao Hmong)은 2009년 12월 28일 라오스로의 송환의지에 반하여 강제 송환됐다.

 

 

II부: 라오스 몽족 난민 공동체 탐방

 

1. 탐방기간: 2011. 04. 23(월) ~2011. 04.28(토), 5박 6일

 

2. 탐방대원: 담임(조병우)목사, 김춘수장로, 김구화 장로, 이윤숙전도사

윤은실권사, 주명자집사, 박왕하집사, 이남구집사, 김은원집사 - 이상 9명

 

 

3. 방문지역: 라오스 몽족 공동체 씨왕쿠앙지역의 폰사완교회, 비엔타인 근교 쌍왕잉야이교회(가정교회), 라오스 국립대학(강형석형제의 교수사역지(강희호장로의 子)), 에즈라선교센타(유소년 축구팀 운영 공동체)

 

4. 만난이들:

1) 송태규 선교사/홍애숙 사모(켁노이에서 장애인 사역, 특수학교사역, 몽족 난민 사역)

2) 폰사완 교회의 전도사 솜분(남, 38세, 몽족)과 공동체, 쾀쌍왕잉야이교회의 야꾸전도사(남, 23세, 몽족)와 공동체

3) 강형석박사(한국연구재단 파송한 라오스 국립대교수요원)

4) 에즈라 선교센타 이재양 선교사의 사모 및 청소년 70여명

 

3. 라오스 몽족 난민공동체 탐방기

송태규/홍애실 선교사는 태국의 라오스 국경의 켁노이에서 ‘쌩아룬 복지원’과 ‘쌩아룬 선교원’ 그리고 ‘쌩아룬 제1교회, 제2교회’도 설립하여 운영 중, 2004년경부터 송 선교사의 사역지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라오스에서 넘어온 7천여 명의 몽족들이 난민촌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들은 쌩아룬 복지원에까지 찾아와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태국정부는 몇 차례 난민촌을 강제 철거했고, 현재는 완전히 라오스로 강제 송환하였다.

현재 이들은 생산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절대극빈 상태로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전적으로 외부의 원조로 살아가야 하는 7천여 명의 몽족 난민들이 송선교사에게 교회 건축을 지원해 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이 사연을 송태규선교사를 통하여 조병우목사님께서 알게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이 일을 감당하기로 작정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고난의 환경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기도로 간구한 몽족 공동체를 돕는 일에 김천제일교회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일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이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김천제일교회와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사용하시는 주님의 놀라운 계획이며, 이를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씨앙쾅 지역 교회 사역소개(2011. 4. 23. – 24, 버스로 이동 시간 15시간)

. 교회 이름: 폰사완교회

. 교인: 300여명(장년 200여명)

. 전도사 이름: 솜분(남, 38세, 몽족)

경력: 태국 켘노이 난민 캠프 '쌩아룬제2교회'에서 부교역자로 4년간 사역 후

2008년 라오스 귀국 후 현재까지 폰사완교회 섬김.

씨앙쾅은 태국 국경에 인접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앤(위얀짱)에서 북서쪽 방향으로 11시간 거리의 해발 1200m의 고원에 형성된 도시로서 인구 27만 명 중에 몽족 8%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흙바닥, 갈대 지붕의 허술한 전통구조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 ‘솜분’ 이 교회의 건축이 시급하다고 송태선교사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송태규선교사님은 그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본 교회의 한정임권사/김태수집사를 사용하시어 교회에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 일행은 버스를 무려 15시간 차를 타야 했으나 주의 사랑을 전하고 생명을 심기 위한 여정의 감동으로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맨땅에 허술한 갈대 지붕을 통하여 하늘이 보이는 그곳 예배처에서 목사님께서 생명을 심는 메시지를 전할 때 그곳은 모두에게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부교역자로 섬기며 찬양사역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몽족 부부의 감격에 찬 눈물의 찬양을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눈시울을 적시는 감격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의 순수함과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주의 나라를 세우는 기쁨을 경험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감격의 순간도 잠시 우리는 가져간 선물을 전달하고 기념 촬영 후 먼 길을 되돌아 가야 하는 현실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그들을 뒤로하는 발길을 재촉하여야 했습니다.

 

 

 

2) 수도 비엔티앤(위양짠) 근교 교회(2011. 4. 25 오전)

. 교회 이름: 쾀쌍왕잉야이교회(2010년 독립 개척)

. 교인: 장년 50여명

. 전도사 이름: 야꾸(남, 23세, 몽족)

경력: 라오스장로교단 위양짠 시찰에서 1년간 사역 훈련 받은 후

2010년 현재의 교회 개척하여 시무하고 있음.

-> 목회적 돌봄이 절실히 요구되는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하였습니다. 김천제일교회와 함께 라오스와 인도차 이나의 복음화에 중심으로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비엔티앤(위양쨘)에서 차량으로 1시간 30분 거리의 몽족 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정교회에서 예배를 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현재 55명의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교회가 건축되면 200여명이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합니다.

교회 부지로 확보한 곳이 도로변에 바로 옆에 학교가 위치하여 아주 훌륭한 장소였습니다.

이곳에 주님나라를 세울 교회를 윤은실권사, 방왕하집사, 주명자집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가정을 교회로 세우시고 그 교회를 창대하게 세우시는 역사에 참여하며, 주의 사도들이 초대교회의 교회를 세우셨던 그 방법으로 김천제일교회를 사용하시는 감동 경험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주님 주시는 위로와 은혜를 나누는 감동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격려와 감사의 교제를 나누며, 그들이 모닥불을 피어서 준비한 밥과 계란 스크램블 그리고 태국식 컵라면으로 맛있는 식사를 그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진실로 감동이 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나누면 커지는 것이 은혜인 것과 낮은 자를 사용하시고 변두리을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주님의 능력, 생명을 심는 주님의 섭리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 사역에 우리를 참여하게 하신 주님께 무한 감사했습니다. 입술에 찬양이 흘러 넘쳤습니다.

 

 

 

3) 라오스 국립대학 방문(2011,. 4. 26 오후)

강형석 형제가 한국연구재단에서 파견 교수 요원으로 섬기고 있는 라오스 국립대학 방문하여 강박사가 가르치는 현장을 방문 하였습니다.

그들과의 복음의 접촉 점을 확대하기 위해 그에게 맡겨진 대학부 강의 외에 그가 대학원 별도 개설하여 주님을 알리려는 그의 노력에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교육환경은 몹시 열악했지만 학생들의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강박사를 통하여 예수님을 알아 가길 원하고 그가 시작한 사역이 중단 없이 이어 지기를 소원하며 기도했습니다.

 

 

 

4) 에즈라 선교센터 방문(2011. 04. 26(금) 오후)

이재양 선교사가 운영하는 복음전도의 자유가 없는 라오스에서 축구 선수를 육성하는 공동체활동을 통하여 복음을 심는 현장이었습니다..

70여명의 학생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운동과 기도, 예배로 주님을 깨달아 가며 라오스의 복음화에 큰 역할을 감당할 곳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윤은실권사께서 70여명의 학생들에게 풍성한 저녁(고기 뷔페)식사로 그들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주명자집사와 김은원께서 센터 운영에 보태도록 감사헌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교회의 성도를 너무나 잘 훈련 하셨고 귀하게 사용하시는 현장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청소년을 위로하고 격려하게 하시는 주님의 계획과 사역의 현장에 함께 하게 하시고 목사님과 성도님들의 섬김의 본을 배우게 하신 주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저희 일행을 함께 했던 송태규 선교사님의 장애복지 사역에 보태도록

윤은실 권사님이 아낀 여비를 헌금하는 아름다운 헌신을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14. 선교 후기

저는 개인적으로는 선교지를 몇 차례 방문한 경험은 있지만 목사님께서 인솔하시는 선교탐방에는 처음으로 함께하였습니다.

저로서는 행동과 마음에 조심이 되고 낯선 환경이었습니다.

4월25일 새벽 4:30에 교회에 도착하여 선교지에 가져갈 짐을 옮겨 실으면서 각자의 일을 너무 자연스럽게 하시는 모습에서 저는 가족여행을 떠나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 차에 오르고 목사님께서 기도하시고 차를 직접 운전하시는 모습도 감동이었고 장로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장로님들이 큰 형님 같이 느껴졌습니다.

공항에서 그리고 비행기에서 25인승 미니버스에서 이동 중 서로를 섬기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선교지 까지 이동이 상당히 힘든 여정이었지만 매 시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선교여행의 전 과정이 저에게는 큰 은혜 기간이었습니다.

이제 사역지에서 받은 은혜와 감동을 몇 가지로 정리하고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1) 선교지에서 이동 중에 그리고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또 선교지를 섬기는 모든 선교여정 중에 무엇이 올바른 선교인지를 목사님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하신 탐방 팀을 통하여 선교의 본을 가르쳐 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2) 함께 하신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이 항상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성도의 교통의 바른 모습을 배우게 하셨고 함께 하신 분들의 선교지 사랑과 그곳의 영혼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시는 모습을 보게 하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신들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검소하시면서 현지의 영혼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드리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이었습니다.

 

3) 하나님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적절한 자를 사용하시어 적절한 곳에 생명의 씨앗을 뿌려 주님 나라를 확장하심을 보게 하셨습니다.

 

4) 저는 3년전 몽족을 베트남 산지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의 애절한 모습에서 연민을 느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Buy for me!(저들을 위해 물건을 사 달라고 했습니다).

통상 물건을 파는 자들이 물건을 자랑하는 데 그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을 팔면서 자신들을 위해 사달라고 합니다.

그 음성이 저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3일간의 짧은 기간 이었지만 저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을 떠나오는 버스에서 저는 아무에게도 의지할 곳 없는 그들의 교사가 되어 그들에게 복음으로 소망을 주어야 겠다는 강한 소명을 느꼈습니다.

제가 지금 신학을 배우고 있는 것이 그 때 받은 소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매년 그들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몽족을 가르치고 섬길 만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들을 섬기는 사역을 두고 지금까지 기도했는데 이번 선교 탐방을 통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사역의 비젼을 허락하셨습니다.

 

5) 몽족은 소수민족으로 고난의 운명을 안고 태어나 견디기 힘든 오랜 핍박과 여러 민족으로부터 학대받는 비극의 역사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국가와 어떤 민족으로부터 그들은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습니다.

김천제일교회가 이번 선교탐방을 통해서 라오스의 “몽족 난민공동체”를 만나게 하신 것 하나님께서 주관 하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고 예배할 처소를 짓는 일에 김천제일교회를 사용하신 주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역이었습니다.

제일교회를 라오스, 베트남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그리고 태국과 미얀마에서 소외 가운데 있는 몽족들을 섬기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들과 함께 인도차이나를 복음으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의 도구로 제일교회를 사용하신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6) 라오스는 4-5월이 가장 무더운 시기인데 마지막 하루만 더위를 경험하게 하신 것 외에 저희들의 방문 기간 중 차량으로 이동 중 비가 내려주어 아주 쾌적하고 시원한 환경에서 생활 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음을 믿습니다.

끝으로 기도로 함께 하신 모든 성도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것으로 라오스 몽족 공체 교회 건축 선교 탐방의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1-05-04 21:24:10 / 122.199.8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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